신학과 1학년 시절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이면서도 그런 줄도 모르고 있던 교만한 신입생이었다. 성경을 몇 번 통독했을 뿐이고, 목사님들의 성경공부반과 사경회같은 집회에서 조금 귀동냥한 것밖에 없으면서도, 마치 성경을 통달한 자인 것처럼 나 자신을 과대 평가했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면서 학문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지만,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벗어나야 할 수많은 우물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만남을 통해, 특히 스승의 도움으로 그의 세계와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고, 배움의 깊이도 더해 가는 법이다. 대학과 신학연구원 그리고 대학원에서 은혜를 입은 많은 은사들을 이 자리에서 모두 언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신학자로서 1학년 <구약개론>을 자청하여 강의해 주셨던 김의환 교수, 기독교교육과 상담에 눈을 뜨게 해주신 김득룡 교수와 정정숙 교수, 겸손하신 구약학자 김희보 교수, 독특한 분위기로 복음서를 강의하신 한제호 교수, 중후한 스타일의 구약학자 이진태 교수와 명쾌한 강의의 박형용 교수, 칼빈주의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하신 정성구 교수, 인간미 넘치는 역사신학자 김명혁 교수, 영적 품위를 잃지 않으신 조직신학자 신복윤 교수, 현대신학과 변증학을 가르치신 박아론 교수, 멋쟁이 영문학자 최종수 교수, 성실하게 논어와 독어를 가르치신 이형국 교수, 서양사를 안내해주신 이석우 교수, 독특한 설교학 강의를 하신 박희천 교수, 그리고 성경 통독을 강조하신 김진택 목사님 등등. 세월이 지난 후에야 많은 은사님들이 나의 삶과 배움에 끼친 은혜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함께 이 길을 걷는 동역자들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섭리는 기묘하고,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다.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에서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 김형철은 나를 조계사에 데리고 갈 정도로 불교에 호감을 갖고 있었고, 나중에는 동국대학교 통계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러나 거기서 친구는 UBF를 통해 복음을 듣게 되었고, 결국 10여년 후 신학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나로부터 선물 받은 작은 성경책을 기억하고 있었다. 현재 김형철 목사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졸업 후, 충북 음성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역시 문예반에서 만난 후배 최충산도 형 최명산 목사와 함께 신실하게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일신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젊은이들 중에도 여러 사람이 목양의 길을 택하였다. 현재 장상래 목사와 유재선 목사, 그리고 전한종 목사는 서울과 지방에서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모두 함께 기도하며 깊은 신앙의 교제를 나누었던 신실한 일꾼들이다.
대학부를 지도했던 한성교회에서 만난 정일오 목사, 배정양 목사(현재는 선교사)는 여러 면에서 필자에게 본이 되고 도전이 되는 분들이었다.
총신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학우들 중에는 현재 각자의 뛰어난 달란트를 발휘하는 일꾼들이 적지 않다. 청소년교육선교회의 손종국 목사, 구약학자 김영철 교수, 모범적인 목회자 정화영 목사, 김영계 목사 등이 있으며, 시드니 한인교회의 원광연 목사는 탁월한 번역가로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다. 비록 목회의 길을 걷고 있지 않지만, 박명곤 대표(크리스챤다이제스트)는 문서선교의 차원에서 기독교출판계와 신학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책사랑에서 독서운동으로
필자는 현재 한국교회 독서문화연구회 대표로 섬기고 있고, 여러 월간지와 웹진(Webzine)에 서평(북리뷰)을 쓰고 있다. 80년대 말 한 신학교에서 여학생을 중심으로 독서모임 <글사랑>을 조직한 적이 있다(회장 김희숙 전도사). 그 모임을 통해 독서의 신앙적 의미를 조금씩 인식하면서 독서회원들의 책사랑은 뜻을 같이하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일종의 독서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드디어 1993년 조만제 교수('책읽는 젊은이에게 미래가 있다'의 저자)를 명예회장으로 모시고 출발한 사랑의 나라 독서운동본부(후에 독서문화센터로 개칭)는 여러 차례 독서세미나를 열었고, 독서지도자를 위한 교육 과정을 개설하여 많은 교육생을 배출하였다. 당시에는 상도동 한성교회의 교육관과 아현성결교회의 사회관 등을 빌려 강의를 했고, 일신교회와 지역의 두란노 문화센터에서 단기 세미나를 열었다.
1995년 필자는 임마누엘선교미디어의 협조로 <독서가족만들기 31일>이라는 이름으로 독서동기를 부여하는 작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의 저자로서 극동방송에 출연하여 독서운동을 소개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비전북출판사에서 <좋은 독서가족 길라잡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여기서 필자의 독서론을 다 펼칠 수는 없다. 다만 그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다산 정약용은 말하기를 "나는 소시적에 새해를 맞을 때마다 꼭 일년 동안 공부할 과정을 미리 계획해 보았다.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겠다는 식으로 작정을 해놓고 꼭 그렇게 실천하곤 했다"고 했고, 임어당은 "평소에 독서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자기만의 세계에 감금되어 있다"(<생활의 발견> 중에서)고 했다.
<영적 지도자 만들기>의 저자 로버트 클린턴은 말하기를, "많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전기(傳記) 등 여러 종류의 책들에 기록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았다. 간접경험 과정이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기록(책)을 통해 지도자에게 교훈을 주는 과정을 말한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성경 동화책을 매일 내가 잠들기 전에 읽어 주셨다. 또 어머니가 공립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첫 번째 대출 카드를 만들어준 것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독서하는 습관을 일찍 갖게 되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간접 경험 과정을 통해서 나의 생애에 많은 것을 주셨다."
설교의 황제 찰스 스펄젼(1834-1892)에 대해 동생 제임스는 그의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추억하고 있다: "찰스는 공부밖에 몰랐습니다... 그는 책에만 몰두했습니다. 제가 한 소년이 관심 가질 수 있는 이런저런 모든 일에 참견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 그는 책만 읽었고 서재를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일들에 관계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주 풍부하고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항상 모든 것에 대해 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책에서 세계를 읽는다... 날마다 서점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들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를 말하며 우리는 이를 읽는다. 책의 표지를 닫아놓으면 이 세계도 우리에게 닫혀진다. 그리고 남는 것은 어둠뿐이다. 인간의 배움은 우선 가정과 이웃을 통해서 시작되지만 참 배움은 책을 통해서 비롯된다"(차인석). "나는 수년동안 내 손에 닿는 모든 전기를 꾸준히 읽었는데, 그중 어느 것 하나 나에게 교훈을 주지 않는 책이 없었다"(윌리엄 로버트슨 니콜). 이상에 인용한 말들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에서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해주고 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문화창조의 주체가 되어야
나는 신앙생활 초기에 문학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푼돈을 모아 사두었던 문학 월간지들이 적지 않았고, 창작에 대한 미련이 없지는 않았으나, 나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기독교세계관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온 '균형을 잃은' 태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쓰는 시나 그밖의 글들이 객관적으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982년 9월 4일 새벽에 나는 아래와 같이 <새벽>이라는 시를 썼다.
새 벽
새벽은 깊은 우물이다
새벽에
내면 깊은 곳으로
두레박을 내리는 기쁨,
내 은밀한 가슴 헤치고
뼈 속까지 시려오는
생수를 올려
내 황폐한 뜨락에 쏟아 붓는다.
생수의 투명함은
진리같이
가슴에 와 닿고
와 닿은 하늘의 마음은
싱싱한 새벽 정기(精氣),
네 이마에 내 이마 마주 대고 있으면
스스로 깨달음이 되는 새벽,
늘 깨어
나를 기다리는 새벽.
이 시는 <신앙계> 독자란에 소개되었고, 이성교 시인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찬사를 받았다. 이 격려는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그후 <크리스챤 창조문예>에 응모하여 신인상 당선 통보를 받았다. 당선 소감에서 필자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시는 내게 무엇인가? 자문해 봅니다. 문학소년 시절에 시작한 습작을 아직도 계속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곤 합니다. 그 동안 써온 몇 편의 시들은 싫든 좋은 나의 분신입니다. 표현은 어눌하고, 세상 바라보는 눈도 어설플 뿐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스치는 생각과 느낌을 붙잡아, 세상살이의 안팎을 살펴보거나, 소소한 일상의 파편들을 다듬어 보려고 했습니다. 훌륭한 문인들의 꿈이 그러하듯이, 저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음악인이나 미술가가 그 재능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정신적 풍요와 복지)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문학이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진선미의 세계를 인식하고 즐기고, 이를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많은 크리스챤 문인들이 나타나야하고 질적으로 탁월한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 만일 진리를 아는 자들이 이 영역을 포기한다면, 어둠의 문화가 그 자리를 찬탈할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이제 선교 2세기의 한국교회는 문화적 측면에서도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그 구체적 전략을 세우고 실현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참여와 연대가 절실히 요청되는 때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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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송 광 택
1953년생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총신대학 대학원 졸업(Th. M.)
총신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크리스챤 창조문예 (시부문) 신인상
월간 아동문학(동시) 신인상
빛과 소금, 목회와 신학, 고양연합신문 북리뷰 고정필자
현) 한국교회 독서문화연구회 대표
현) 총신대학교 사회교육원 설교자전문학교 강사
현) 서울 극동방송 [신앙서적 길라잡이] 진행자
현) 월간 신앙세계 "베스트셀러 읽기" 고정필자.
현) 월간 교사의 벗 "송광택 목사의 책읽기" 고정필자
현) c3tv 목회정보 2000 "설교자를 돕는 책" 고정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