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8월이 시작됩니다.
어찌나 피곤했던지 어젯밤은 곯아떨어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깊은 잠을 자게 하시고 새벽에 흔들어 깨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계획된 일정을 쉬고 집에 있으면서 예진이에게 ppt로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은혜 내려 주옵소서.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이 되어 말씀을 받아 먹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9. 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10.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11.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12.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본문 주해)
1~2절 : 이스라엘 호세아 제3년에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유다 왕이 되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25세였고, 그는 예루살렘에서 29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아비는 스가랴의 딸이었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야요 스가랴의 딸이더라”(대하29:1)
히스기야의 어머니 아비(아비야)는 제사장 스가랴의 딸로 알려진다.
3~4절 : 히스기야의 속이 시원한 종교개혁의 내용이다.
그는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그는 드디어 온 이스라엘의 고질병이었던 산당을 헐어 버렸고, 주상(돌기둥)들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렸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때까지 분향하며 섬기던 모세의 구리 뱀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려 버렸다.
그것을 깨뜨리고 ‘느후스단’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작은 의미 없는 놋 조각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즉 놋뱀을 숭배의 대상이 아닌 조소 섞인 단어로서 부르게 하였던 것이다.
모세가 만든 구리 뱀(놋뱀)은 히스기야 시대까지 700년 이상 존재한 제의 상징물이었다. 그것은 모세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권위를 부여받았으나, 놋뱀 숭배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제2계명을 범하는 죄였다.
5~8절 : 히스기야는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들을 준수하였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으로 그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였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앗수르 왕에 반기를 들고 그를 섬기지 않았다.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포위를 받았고 결국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였다.
반면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형통하였고 앗수르를 배반하여 돌아섰다.
또한 히스기야는 가사와 그 사방,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쳐부수었다.
9~12절 :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기술하는데, 앞 내용을 다시 반복한다.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왕하17:5~6)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백성들이 이방 나라로 끌려간 것은 그들이 자기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언약을 깨뜨렸으며,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순종하지 않고 실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이야기가 히스기야 왕의 기록과 함께 나타내 보이는 것은 이 둘의 선명한 대비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나의 묵상)
드디어 히스기야 왕이 등장한다.
히스기야 왕의 행적만을 볼 때는 ‘선한 왕 히스기야’ 했는데, 매일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는 열왕들의 줄기찬 행진을 계속 보다가 이 히스기야를 만나니, 갑갑한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 고질적인 산당을 없앤 것이다.
히스기야가 산당을 없앨 수 있었던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만 의지했기 때문이리라.
백성들이 드리는 산당 제사는 성전 제사에 비해 쉬웠을 것이다. 율법 규정 등의 제한을 받지도 않고, 아무 제물이나 바치면서 자기 소원만 ‘비나이다’ 할 수 있으니 이 산당 제사가 얼마나 그들의 마음에 쏙 들었을까?
히스기야는 백성들의 이런 제사가 참 하나님을 구하는 제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뭇왕들이 백성들의 원망이나 폭동 등을 두려워하여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행한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히스기야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알고, 또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한 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등장하는 구절이 히스기야를 묘사한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7a)
마치 다윗의 전용 구절과 같이 쓰인 말씀이 히스기야에게도 사용된다.
또 놀라운 것은 700년 동안 섬기던 모세의 구리뱀 형상을 부숴버리고 느후스단이라고 부른 사실이다.
어떤 형상도 만들어 섬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제2계명이 있었기에 어쩌면 히스기야의 개혁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면 그 개혁이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만든 놋뱀이었으니, 어쩌면 이것을 섬기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들라 하신 것이고, 위대한 모세가 만들었고, 그 효험이 놀라웠고, 그래서 700년의 역사 속에서 섬겨오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것이 제2계명을 어기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던 것이다.
과감하게 산당을 없앤 것처럼, 이 형상물을 부숴버리고 ‘느후스단’(의미없는 놋조각)이라 부르게 했으니 그의 생각과 지혜는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 느후스단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아주 오래 전 나의 경험 한 가지가 있다.
아들이 두세 살쯤이었 때, 아토피가 너무도 심해 양쪽 다리 오금에 진물이 나고 아주 더덕이가 앉은 상태였다.
약사가 깜짝 놀라 부정적인 말을 하였고, 대구에서 이름 있다는 피부과 의사 선생님도
‘아이고...내가 약은 주지만 이거 잘 안 낫심데이...’ 했다. 그 절망적인 말을 듣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목욕시키고 눕힌 뒤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 약을 바르겠습니다. 의사말처럼 잘 안 나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옵소서.’
다음 날 아침,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흔적은 있었지만 아들의 피부가 싹 나았던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약을 버렸다!
친정 엄마는 그 신통방통한 약을 왜 버리냐고 난리를 치셨지만, 나는 그 약을 버렸다. 약이 낫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셨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드릴 나의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초신자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고 싶어 하신 것 같았다.
원래 피부가 좋지 않은 아들이긴 하지만 아토피가 그 이후로 재발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 약이나 병원이 나의 구리뱀이 되었었을 수도 있었다.
산당을 없애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어 형상물을 섬기지 못하게 한 히스기야의 개혁이 오늘날 내게도 날마다 일어나야 할 개혁임을 생각한다.
백성들의 반발을 두렵게 생각했다면 절대로 해 내지 못했을 그 마음이다.
십자가에 연합된 마음은 상황이나 환경을 뛰어넘는다.
상황이나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쫄아들기까지 하는 내게 매일의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나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또 붙들게 하시니 이것이 매일 새로워지는 내 신앙의 개혁이다.
(묵상 기도)
주님,
적절한 때에 히스기야가 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악한 왕 아하스에게서 어떻게 이런 아들이 났는지 알 수 없지만
또 그 어머니를 통해 신앙 훈련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의 행하심입니다.
히스기야의 개혁을 보며 가슴이 뻥 뚤립니다.
이 개혁이 제게도 날마다 일어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전통에 매이고, 사람에게 매이고, 상황에 매이고....
저의 발목을 붙들어 매는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매일의 생명의 말씀을 통해 이 개혁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유한한 인생 동안,
십자가에 연합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어 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