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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사각형을 그리고 있는 청치마를 쳐다보았다. 이걸.. 나보고 입으라고? 기가차서 웃음도 안나온다. 어린애들이 입을법한 크기를 나보고 입으라니, 게다가 길이가 긴것도 아니고.. 이게 내사이즈를 유아사이즈로 아나- 한숨을 쉬고는 검은 쫄바지를 엉거주춤 입었다. 무릎바로 위에 위치하는 쫄바지. 청치마를 다리에 대어보고 다시 한번도 욕을 지껄였다. 쫄바지보다 짧은 길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화장실에서 계속 안절부절 거리면서 머리를 박았다. 내가 고르는건데.. 후회하긴 이미 늦었다. 내머릿속엔 삼십팔만원이 둥둥 떠다녔고 나는 크게 숨을 내쉰뒤에 청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나한테 돈이 어디있어, 입자 입어- 이런 일탈도 가끔은 해보는게 좋지 안그래?!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교복치마보다 입기힘든 청치마를 서서히 입어갔다. 입으면서 나는 태재녀석을 향한 저주도 잊지 않고 계속 중얼거렸다. 나쁜놈- 내 사이즈 알면서 이딴 옷을 사오냐고- 으헙-!! 힘겹게 지퍼까지 채우자 한시름 놓았다는듯 팔에 힘을 뺏다. 근데 참으로 짧구나.. 이런 코끼리 다리를 어떻게 내고 다니란 거냐. 레이스가 달린 하얀 민소매옷을 입고 자켓을 입었다. 자켓 길이까지 짧네. 이자식 짧은거 너무 좋아하는거 아니야!? 궁시렁 대면서 끈을 이용해 리본을 묶어주고는 실내화를 벗고 굽높은 하이힐을 신었다. 옷들을 주섬주섬 종이가방에 넣고 밖으로 나가 거울을 보았다. 흐음- 이리저리 돌려보며 내 모습을 보자니 그리. 못나지는 않았다. 음흣- 처음 옷을 꺼내들었을땐 흐늘흐늘 거리면서 얇아 천쪼가리인줄 알았다. 그리고 청치마의 크기에 다시한번 경악했고.. 그런데 막상 입어보니 아주..아주 그냥 이쁘다! 잘났다! 크하하하- 태재녀석 옷 한번 센스있게 잘고르네(<방금전까지 욕했음) 화장실을 나가자 벽에 기대어 나를 기다리는 태재앞으로 다가갔다.
"야-"
"엇- 입었네? 이야- 우리 마누라 너무 이쁘다!!!"
나의 손을 잡고 방방 뛰는 태재녀석을 뿌리치고는 띠꺼운 눈으로 녀석을 흘겨 보았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거 맞아 이자식? 옷을 다입고 미용실로 향해 머리를 다듬고는 다시 백화점 주차장으로 왔다.
"굵게 웨이브 주니까 너 아닌거 같다."
"뭐야- 본판이 원래 잘나니까 이정도인거지"
"공주병"
어제보단 많이 친해진 녀석과 함께 농담을 주고 받으며 주차장에 도착했고,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연신 싱글벙글거리면서 다녔다. 녀석이 오토바이를 세우자 뒷자석에 요염한자세로 앉았다. 아까의 창피함을 잊은듯 나는 그렇게 당당하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자- 놀이동산으로 가자-"
"출발!"
오랜만에 소풍으로 들뜬 아이처럼 나는 손을 휘휘저으며 좋아라-했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녀석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헬멧을 쓰라는 녀석의 말에 머리 망가진다며 거부했고, 그렇게 나의 생얼을 당당히 들이 밀면서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_+ _ +_+
"와아-"
처음와보는 놀이동산에 입이 쩍 하고 벌어져선 계속해서 태재의 팔을 흔들면서 저거봐 저거봐 라고 미친듯이 중얼거렸다. 자유이용권을 끊고는 태재를 따라 놀이기구를 타기위해 놀이동산을 배회했다. 태재와 함께 바이킹을 타고, 자이로드롭도 차고, 청룡열차도 타고, 귀신의집도 가고..등등 재미없든 있든 그냥 놀이기구가 내눈에 포착되면 서슴없이 태재를 재촉해 타러 다녔다. 심지어 유아들이 타는 놀이기구까지 죄다 타버렸다. 어린아이처럼 신난 나를 녀석은 자기의 카메라에 담기 바빳고 나는 다음 놀이기구를 결정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다.
"에고고- 다리야-"
의자에 털썩 앉아 허벅지를 통통 두드렸다. 쉬지도 않고 돌아다닌 탓에 뒤늦게 무리가 오는것 같았다. 정신없이 타러 다니고 몇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게다가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어린이 날 아니랄까봐 가족끼리, 연인끼리 놀이동산으로 다 몰렸나 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듯 어느새 해는 기울어져 있었다. 지칠대로 지친 내가 테이블에 축 쳐져있자 음식을 들고 오던 태재가 인상을 구겼다.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돌아다니래?"
"그래도 재밌는걸- 다리 아프다.."
많이 편해진 태재에게 투정을 부렸다.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였고, 무엇보다 잘난놈과는 정 반대인 성격에 정이 많이 갔다. 잘난놈은 뭐랄까.. 지잘난 맛에 사는 사람같달까? 아무튼 천상천하 유아독존! 딱 그녀석을 뒷바침해주는 말이다.
"먹어- 너는 배고픈것도 모르고 돌아다니냐? 우리 아침, 점심.. 하나도 안먹었다구-"
"맛있겠다- 잘먹을께!!"
큰 햄버거를 한입 베어물고는 베시시 웃었다. 남자와 함께 놀이동산을 오게될줄이야..내가 먹는걸 보자 녀석도 이내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먹는데 정신이 팔린 우린 아무말 없이 먹기만 했고, 정적사이로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웃어버렸다. 참 웃긴다. 누군가와 식사를 해본게 얼마만인지. 이렇게 웃으면서 함께 무얼 먹을 사람이 있다는게, 참 행복한거야.. 채은이 써글것. 그 잡것은 맨날 나만 두고 다이어트 한다고 매점가서 빵사먹고 우유사먹고 커피 뽑아마시고.. 사탕먹고.. 암튼 별걸 다사먹더라....그게 더 살찌는건줄도 모르고..이유없이 당당한뇬. 한참 먹는데 정신을 팔린 우리 테이블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졌다. 응? 잘려지지 않는 양배추를 손가락을 이용해 쏙 넣어버리곤 우물거리면서 그림자의 주인공을 향해 눈을 돌렸다. 왠 남정네 셋이 우리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모르는사람인데- 그녀석들을 쳐다보면서 양배추를 입에 넣는다고 손가락에 뭍어있던 소스를 쪽쪽 빨아먹었다.
"뭐야?"
태재가 짜증난다는듯이 그녀석들을 쳐다보았고 녀석들은 얼굴이 빨개진채로 어쩔줄 몰라하며 그냥 꾸물꾸물 대고 있었다. 뭐지? 태재녀석이 다시한번더 짜증을 내자 셋중 하나가 나에게 사진기를 들이밀었다.
"응??"
"사..사진좀.. 가, 같이 찍어요.."
햄버거를 계속해서 오물거리며 사진기를 쳐다보았다. 와- 좋은 디카네- 이쁜데? 내가 허락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리자 녀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참.. 어색해 하며 햄버거를 놓자 그 녀석이 태재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며 사진기를 주었다.
"니네 내 마누라 얼굴 팔아 먹으면 죽을줄 알아. 포즈 잡아- 하나- 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녀석이 숫자를 부르더니 나는 급방긋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밝은 빛이 한차례 지나가자 녀석들은 사진을 확인해보며 탄호성을 질렀다.
"저..저기요! 진짜 이뻐요! 연예인 지망생이세요?!"
"야! 너네 찝쩍대지 말고 그냥 가라? 우리 식사중이였거든?"
"아, 죄.. 죄송해요- 맛있게 드세요!!"
푸하하하- 녀석들이 등을돌리고 돌아가자 참았던 웃음이 이내 터져버렸다. 이쁘단다..나보고.. 푸하핫. 한번도 그런소릴 들어본적이 없었던 나인터라 왠지 어색하기만 하고 민망스럽기만 했다.
"모르는 애가 이쁘다니까 좋냐?!"
"그냥- 우스워서그래- 이쁘대..푸하하- 그건 나랑 전혀 안어울리는 말이잖아-"
"이뻐"
다시 햄버거를 먹기위해 들어올렸던 손을 멈칫거렸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녀석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것들이 오늘 단체로 약물복용을 한건가..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주고는 다시 햄버거를 먹기시작했다.
"야- 유계원"
"애그애?"(왜그래?)
"우리 사귈까?"
햄버거를 너무많이 집어넣은탓에 쉽사리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자 콜라를 먹고 있던 그때..
"푸핫!!"
"그렇다고 먹던걸 내 뱉다니.."
"아, 미안 미안."
당황스러운 그녀석의 발언에 콜라를 뿌려대었고 곁에 있던 휴지로 닦기에 바빳다. 처음받아보는 고백에 당황해 버렸고,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이녀석과 나는 지금이 두번째 만남일뿐이였고, 모르는게 많은 사이인데.. 뭐 요즘엔 마음만 맞으면 하룻밤도 자는 시대이긴 하지만 난 연애라는걸 해본적이 없는터라 그렇게 개방적이질 못햇다.
"뭣때문에 그런소릴 나한테 하는데?"
사뭇진지해진 녀석의 표정에 장난이라고 받아치기엔 너무나 잔인한것 같아 다시 되물었다.
"넌 모르겠지만 난 널 알고 있었어, 태하형이 너를 집에 데리고 온 순간부터말이야- 그때부터 호감있었고 친구를 통해 널 만날려고 소개팅도 부탁한거야"
"우린 지금 두번째 만남이잖아-"
"이르단것도 알지. 하지만 만나는건 앞으로 차차 늘려갈테고, 서로에게 궁금한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되어있잖아."
"..그럼.. 내가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이벤트를 받고싶어. 내 맘을 뒤흔들만한.."
우리의 대화는 끝이났다. 하지만 심장은 계속해서 쿵쾅거리고 있었고, 난생처음 느껴보는 떨림에 기분이 묘해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이녀석. 내가 너무 힘든걸 시켜서 포기해버린거 아니야? 마음속으로 알지 못할 불안이 엄습해 왔고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애라.. 우습지.. 하녀주제에 연애라니.. 잘난놈이 알면 콧방귀를 입으로 끼고도 남을거야- 연애할시간에 집안일이나 더하라 그럴텐데.. 다시금 잘난놈이 있는 집으로 간다 생각하니 짜증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녀석이 가고나면 분명히 날 구박할텐데.. 아주머닐 안불러서 집안을 안치운건 아니겠지?! 나에게 복수하려고! 설마.. 완전 집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다 치우고 자라는 그런 망언을 내뱉는건 아니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불안해져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오피스텔로 진입하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게 보였다. 아..왔구나- 괜시리 풀이 죽었다. 태재녀석은 나를 내려주고는 바로 집으로 향했고,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이층으로 힘없이 올라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어둠이 집어삼킨 거실에서 붉은 담배 불빛이 보였다.
"뭐해요- 불도 안켜고"
"불켜지마"
딱딱하게 굳어버린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불을 켜려던 손을 다시 거두었다. 뭐야- 혼자서 개폼을 잡고. 그러면 누가 멋있다고 할줄 알았나?
"잘 놀았어?"
이제 드디어 구박이 시작되는가 보다. 한숨을 길게 내 뱉고는 네.하고 짧게 대답했다. 내가 대답한뒤 긴 정적과 어둠이 우릴 감싸안았다.
첫댓글 꺄잼있어요~ㅋㅋ
재밌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