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소속인 그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34기)을 수료했다. 법복을 입은 지 3년째다. 김 판사를 지난달 30일 밤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발성 훈련으로 단련된 그의 목소리는 진지함과 발랄함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섹스 볼란티어’에 출연한 과정이 궁금하다. “3년 전 군 법무관으로 있을 때 홍승기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 오셨다. 자신이 ‘노 개런티’로 영화에 출연하는데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홍 변호사는 주연급인 신부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라는 작업은 내게 호기심 나는 도전이었다.” ● 감독이 김 판사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료 출연이란 것도 영향을 미쳤을 테고, 연기상을 받았던 경험도 있고 하니까….” ● 연기상이라면. “2006년 춘천에서 법무관 생활을 할 때였다. 지역 극단인 ‘굴레’에서 활동했는데 강원연극제에서 ‘미라클’이란 작품으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식물인간 상태로 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의 영혼을 연기했다. 운이 좋아서 정말 좋은 역을 맡게 됐다. 몸의 느낌이 기억에 남아 있어서 지금도 버스 타고 가다 대사를 입에 굴리면 눈물이 맺힐 정도다.” ● 연기를 시작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스토리 짜고 남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다. 연극 동아리 ‘법대 연극 사단’에서 4학년 때까지 내내 연극만 하면서 보냈다.” ● 배우가 그렇게 좋았나. “무대에 서는 것은 마약과 같다. 무대에 서면 처음 눈이 부시다가 차츰 관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내 연기를 보고 울고 웃는 게 보인다. 손을 움직이면 손 끝에 관객 300명이 쭉 따라온다. 그렇게 내가 몰입하고, 또 관객들이 몰입할 때의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 지금까지 몇 가지 역할을 했나. “연극과 단편영화를 포함해 15번 정도 공연을 했는데 교수, 배우, 하숙집 관리인, 고등학생, 탈영 군인…. 아, 판사 역도 있었다. 코뿔소 역할도 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연기 연습을 했다. 지역방송 재연배우로 ‘불륜남’ 역을 하기도 했다.” ● 사법시험을 준비한 계기는. “대학 3학년 말에 사법시험 원서 내고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부모님께 ‘연기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많이 놀라셨는데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그때 부모님께서 강요하셨다면 내 삶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4학년 1학기 몇 달 동안 배우 선생님들, 영화 하시는 분들을 찾아다녔다.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에서 서성거리기도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난생처음 주체적으로 생각한 시간이었다.” ● 결론은 무엇이었나. “무대의 길은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 도를 닦는 것이다. 지금도 연극 하는 친구들에게 술 마시자고 하면 ‘차비가 없어 못 나간다’고 한다. 그렇게 극한의 예술가로 살 자신이 없었다. 법조인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직업으로 다가왔다. 법조인과 연기, 두 길을 모두 걷는다면 좀 더 넓게,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이 재미있어지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책상에 앉아 있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빨리 시험 공부 끝내고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신나게 공부했다. 목표를 정해 놓고 게임하듯이 했다. 민법 교과서 표지에 ‘이효리’라고 써놓고 ‘이효리와 5시간 동안 데이트해 볼까’ 하고 책을 폈다. 그렇게 해서 2년 만에 합격했다.” ● 법조계 분위기가 보수적이지 않나. “판사들 가운데 자유로운 영혼도 많지만 아무래도 사회를 지키는 역할을 하다 보니 보수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판결은 객관적인 해석이 중요하고, 판결문도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객관화된 문체로 전달해야 한다.” ● 배우 경험이 판사 생활에 주는 도움이 있다면. “몰입할 수 있는 감성을 키워주는 것 같다. 판사는 사건 기록을 보고 재판을 하면서 당사자 입장에 들어갔다 빠져 나와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일이다. 맡은 역할에 몰입해야 하는 배우와 비슷한 면이 있다.” ● 재판을 하다 보면 증인이나 피고인이 연기하는 것, 거짓말하는 것이 잘 보이지 않나. “간혹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이 틀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속단은 피해야 한다. 재판 경험이 많아야 증인 보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 ● 새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영화 ‘색계’의 양조위 역할이 매력적이었다. 감정을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린 뒤 덤덤한 말투와 미간의 찌푸림으로 표현해 내는 내면 연기가 놀라웠다.” 글=권석천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 칵테일 >> “언젠가 연기하는 연수원생 나올 줄 알았다” 김용희 판사에겐 두 명의 멘토가 있다. 양창수(58) 대법관과 홍승기(51) 변호사다. 서울대 법학과 교수 출신인 양 대법관은 김 판사가 연기를 익혔던 대학 동아리 ‘법대 연극 사단’의 지도교수였다. 그 자신 대학 시절 연극 활동을 했던 양 대법관은 학생들에게 “발성 연습도 제대로 안 됐는데 무슨 연극이냐”며 애정어린 꾸중을 아끼지 않았다. (※양 대법관은 바리톤의 저음으로 유명하다.) 연극 팸플릿에 싣는 ‘지도교수의 글’에 “연극을 하라고 할 수도 없고,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93년 ‘아주 특별한 변신’으로 데뷔해 ‘축제’ (1996년), ‘하류인생’(2004년) 등 영화에 출연했던 홍 변호사는 김 판사와 춘천의 극단 ‘굴레’를 연결시켜주기도 했다. 연수원 특강을 하러 갔던 홍 변호사는 김 판사가 첫 인사를 하자 “언젠가 연기하는 연수원생이 나올 줄 알았다”며 반갑게 맞아줬다.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reporter/ [J-Hot] |
첫댓글 우리사회도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경험할 수 있는 열린 세상이 되어야한다. 한가지로 속박당한채 식물인간처럼 죽어가는 비극적 현실에서 좋은 귀감이 된다. 그래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서로간의 소통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여기 판사 겸 배우 이런 사람이 전혀 기사거리도 안되는 세상은 언제나 오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