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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일(금)
* 시작 기도
(삿 16: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은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이 되어 하나님의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블레셋 소렉골짜기의 블레셋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여 그에게 자신에게 있는 힘의 비밀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이를 블레셋 방백들에게 말하였고 그 방백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행하였지만 다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해도 안 되자 들릴라는 삼손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강짜를 부리자 진짜 자신의 힘은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나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머리털을 밀면 힘이 빠질 것이라는 것까지 알려주었습니다.
어느날 여인은 삼손을 재운 후에 그의 머리털을 밀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삼손의 힘이 빠져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눈을 빼고 가사에 내려가서 놋줄로 맨 후에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에게 힘이 조금씩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노예와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그의 사명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었기에 어떻게든 블레셋 사람을 많이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옥에 있는 두 기둥 사이에서 두 팔로 두 기둥을 잡고 힘을 쓰자 기둥이 부러지면서 그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가 살아 있을 때 죽인 블레셋 사람보다 죽을 때 죽인 자가 더 많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나 역시 마지막 나의 목숨이 다 하는 그날까지 원수 마귀를 대적하며 주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정결한 맘을 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내 안에 나의 자리는 지우기 원합니다.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오늘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로 서게 하시되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8:13-25
제목 :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13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14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18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
19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22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23 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2천 마리를 주리라.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 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지라.
* 나의 묵상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는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
하여 오랜 세월 하나님의 숙원이었던 산당을 제거하였으며, 각종 우상들을 철거하고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700년 동안이나 음란하게 섬겨오던 모세의 놋뱀을 박살내고 이를 느후스단, 즉 놋 조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들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5절).
곧 그가 온전히 하나님께 연합하여 떠나지 않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그 계명을 잘 지켰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시면서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셨다.
그때는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여 섬기지 않았었다.
히스기야가 애굽과 손을 잡고 반 앗수르 정책을 펼치므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하여 성읍들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13절).
이때 무슨 일인지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굴복하고 만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시면 내게 부담시키는 것을 감당하겠나이다.”
그러자 산헤립은 그에게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부과시킨다(14절).
이에 히스기야는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내준다(15절).
게다가 성전 문의 금과 모든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준다(16절).
그런데 히스기야의 예물을 받은 앗수르 왕 산헤립은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하들에게 명령해서 히스기야를 치라고 명령한다(17절).
이것이 사탄의 전략이다.
사탄은 자기가 제시하는 요구를 받아주면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대적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벧전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1차 침공 때는 두려워하여 산헤립의 요구대로 응하였으나 그가 2차로 침공하였을 때는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또한 애굽을 의지하지도 않았다(29, 30절).
앗수르나 애굽이나 모두 세상 임금이요 공중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을 예표한다.
당시의 패권은 애굽이 아니라 앗수르가 쥐고 있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이전까지 앗수르 왕을 섬겨오던 것을 끊어버렸다.
그로 인하여 앗수르는 히스기야를 공격하였다.
그 때 히스기야는 애굽과 손을 잡고 앗수르를 이겨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치욕을 당하고 만다.
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 유혹하는 악한 사탄을 싫어한다.
그래서 그가 행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싫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우리를 유혹할 때 우리가 싫어하는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미를 당기게 하고, 안고 싶고 만지고 싶은 것들로 유혹한다.
뱀이 하와를 유혹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당시 뱀은 가장 순전하고 사랑스러운 애완동물과 같은 존재였다.
창 3:1절의 뱀이 가장 간교하였다는 것은 오역이다.
오늘날 뱀의 이미지를 가지고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간교하다는 뜻의 원어는 ‘아룸’인데 이는 가장 순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즉 창 2:25절의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벌거벗다’는 뜻의 히브리어 원어가 ‘아룸’의 복수형인 ‘아루밈’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하와에게 접근하면서 징그러운 동물이 아닌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뱀을 이용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를 범죄하게 한 뱀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지금의 뱀처럼 징그럽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유혹하는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우며 갖고 싶고 만지고 싶은 그런 것들로 다가온다.
따라서 웬만한 사람이라도 그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탄의 정체는 악하다는 것을 알기에 죽기보다 싫다.
그러나 변장하여 다가오는 그 유혹을 이겨내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얼마나 많이 넘어지는지 모른다.
앗수르는 대적을 하면서 애굽과는 손을 잡고 노는 것과 똑같다.
하나님은 앗수르나 애굽이나 모두 손을 끊고 오직 주님과만 교제하기를 원하시는데 나는 앗수르를 끊었다는데 위안을 받으면서 애굽과는 손을 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넘어지면 죄책감에 사로잡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주님께 나아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죄에 대하여 무뎌지고 또 다시 넘어지고 또 회개하고 용서받는다.
마치 사사 시대의 crying circulation(부르짖음의 순환공식)이 지금도 내게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
그러나 결국 이것이 지속되다 보면 이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 생활이 되고 만다.
다른 종교에도 다 있는 죄 씻음의 양상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다.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랍사게를 유다에 보내어 모욕적인 말로 그들을 수치스럽게 한다.
이런 모욕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받게 되면, 모욕이 아니라 핍박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악한 자들을 의뢰하면서 받는 모욕은 수치에 불과하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히스기야가 어느 순간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의지한다.
그리고 앗수르에 굴복할 때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앗수르의 멍에와 전쟁 배상금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히스기야와 같이 나는 반복되는 crying circulation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내가 나를 생각해도 나는 정말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주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내게 주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것에 빠졌던 적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나는 이미 죽은 자이다.
주님의 구원받은 자이면서도 주님을 기뻐하기보다 세상의 쾌락을 즐겼던 나는 정말 백 번을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주님은 그런 나에게 은혜를 주셔서 복음을 알게 하셨다.
이제 그 복음이 나를 살리심을 믿는다.
복음은 곧 생명이다.
날 위하여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분은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용서해 주셨다.
이제 내가 그분께 나아가면 된다.
복음을 알기에 그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가면 된다.
세상의 유혹 역시 아들의 생명을 자원으로 이겨낼 수 있다.
오늘 그 생명이 나의 살아가는 생명의 자원이요 힘의 원천이다.
세상은 위로 오를 것을 요구하지만, 나는 아들의 생명으로 낮아진다.
세상은 부자가 될 것을 요구하지만, 나는 아들의 생명으로 가난하여져서 오직 예수로만 부요할 것이다.
세상은 수많은 풍요와 쾌락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요구하지만, 나는 오직 주님의 음성만 들을 수 있는 광야로 간다.
그곳만이 내가 살 길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 내가 아니라 주님이 사시기에 그분의 생명이 내 삶의 전부이다.
이제는 죄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을 먹고 산다.
그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알 수도 없는 참된 하늘의 기쁨, 즉 Joy를 맛보며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다.
오늘 말씀묵상을 통하여 나는 감추어지고 오직 그리스도이신 아들의 생명만 나타난다.
이로 인하여 다시 한 번 샘솟는 기쁨을 맛보며 영생을 누린다.
주의 은혜는 한량없이 크고 넓고 오묘하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고 용납하여 주신 주님을 이제 내 안에 온전히 용납하여 그분으로 살기를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당신은 나의 생명입니다.
내가 죄에 물들어 헤맬 때에도 나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 강력한 손길은 나를 살리는 구원선이오니 오늘도 그 주님을 의지하며 신뢰합니다.
나는 오직 주님의 기쁨으로 살기 원합니다.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를 것이오니 당신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죄과를 멀리 하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시며 내 안에 주의 영으로 가득 채우소서.
종이 그 안에서 살게 하소서.
주의 영광의 빛이 나를 둘러 비치며 내 생명이 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