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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원형을 찾아가는 존재론적 개진의 상상력
ㅡ 오현정의 시세계
유성호, 문학평론가
1. 새로운 존재론을 지향하는 언어
오현정(吳賢庭)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라데츠키의 팔짱을 끼고』(책만드는집, 2019)는, 문헌과 풍경, 말과 글, 사막과 초원, 산록과 바다, 시와 신화와 별자리, 정치와 역사와 종교, 우주와 시원(始原), 분단과 통일, 고대와 현대, 국경과 전쟁과 혁명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커다란 스케일의 모험과 극한의 답파(踏破) 기록이다. 시인은 “햇살과 나무와 사람들은 구름으로 흐르고/내일의 꿈들은 상상보다 먼저 날아가”고 있는 순간을 지극한 상상력과 열정으로 담아내면서, “살아있다는 것은/먼저 간 사람의 몫까지 더 멀리 깊이 가보라는 행진곡”(「시인의 말」)이라고 은유한다. 이러한 선언에서 우리는 그가 삶의 엄연한 현재성과 무한한 미래적 가능성을 함께 궁구하는 품과 격을 선명하게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오현정의 시는 일차적으로 시인 스스로 자신을 고백하고 성찰하는 자기 인식의 속성을 강하게 띤다. 이러한 서정시의 자기 탐구적 성격은 이미 잘 알려진 원리이지만, 오현정 시인의 경우 그것은 매우 고유하고도 각별한 것이다. 그의 근원적 창작 동기는 낯선 시공간을 에돌아 궁극적으로 자신으로 귀환하려는 욕망이라고 부를 만하며, 그때 수반되는 새로운 자각과 발견 과정이 이번 시집에 섬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시가 단순한 자기 몰입의 나르시스적 몽환에 그쳤다면,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한 자연인의 생각은 들여다볼 수는 있겠지만 완결된 서정시의 미학을 경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오현정의 시는 철저하게 개인 경험으로부터 발원했을지라도, 그것이 세계를 개진하려는 열망으로 승화됨으로써 순수 원형을 회복하고 새로운 존재론을 지향하는 언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 신생의 언어가 이번 시집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존재론적 개진의 세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도록 하자.
2. 생명 현상에 대한 지극한 긍정
오현정 시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삶의 순간마다 만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물과 사건들이다. 시인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자들의 순간을 통해 신생과 성장과 퇴행과 소멸의 길을 예감하고 경험하고 또 새겨간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과정은 하나의 사이클을 형성하면서 존재자의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시간의 매트릭스로 작용한다. 그래서 신생에서 소멸에 이르는 과정은 불가피한 존재론적 운명과도 같은 표정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신생/소멸’이 곧바로 ‘긍정/부정’, ‘삶/죽음’으로 치환되지 않는다는 데 오현정의 상상력이 깊이 가로놓인다. 말하자면 소멸의 순간에도 생명의 가능성을 바라본다든지, 신생의 순간에도 죽음의 기운을 예감한다든지 하는 역리적 발상과 어법이 그의 상상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곧 신생과 소멸은 존재자를 감싸는 양면적 존재 방식일 뿐이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낫거나 모자라지 않은 양가성으로 현상하는 것이다. 오현정의 시는 이러한 신생과 소멸의 오랜 변증법을 밀도 있는 개성으로 형상화한 미학적 소산들이다. 먼저 다음 시편을 읽어보자.
파랄수록 아껴 먹었다
실천만이 진정한 약속이라고
망고 얼룩이 갈색 반점을 둥글게 그려나갔다
익지 않은 말이 시간의 눈썹을 지나 그늘의 소유자가 되었다
구속당하지 않으려고 식은 열이 오른다
한쪽 넘길 때 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옹이가 떠다니는 숨을 당긴다
숙성된다는 건 목젖에 걸려있는 말꼬리에 먼지를 닦는 일이다
봉인되지 못한 여백의 청가시를 꺼내 접시를 닦고
너를 돋우는 따끈한 소반 정갈하게 차리고 싶어
주어진 재료로 무엇을 만들지 까칠한 입맛까지 부르면
아침햇살에 기억의 거미줄을 걷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 순간들
창고 속 단감상자 위에서 신 메뉴를 출시 중이다
기호와 암호를 푼 요리는 담백하지만
굴릴수록 혀에서 꼭대기로 천천히 고솜고솜 올라온다
― 「수첩이 맛있다」 전문
‘수첩’은 일상에서 일어난 사건과 앞으로의 일정을 기록하는 용도를 가지고 있다. 시인은 파란 수첩을 아껴 먹었다고 표현한다. 아마도 깨알처럼 씌어 있었을 글자들과 그 안에 새겨진 시간을 아꼈으리라. 그 안에는 “실천만이 진정한 약속”이라든지 하는 아직 “익지 않은 말”들이 오랜 시간 동안 ‘얼룩’과 ‘반점’과 ‘그늘’을 그리며 남아 있다.
이때 오현정 시인이 둥글게 배열해가는 ‘수첩’의 말들에는,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옹이가 숨을 당기는 팽팽함을 품고 있다. 구속당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견고하게 지키면서 시인은 목젖에 걸려있는 말꼬리에 먼지를 닦듯이 성숙해간 시간을 바라보는 것이다. 차근차근한 숙성 과정을 거쳐 이제 시인은 “봉인되지 못한 여백의 청가시”로 접시를 닦고 정갈하게 소반을 차리고자 한다. 까칠한 입맛까지 부르는 “아침햇살에 기억의 거미줄을 걷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 순간들”이야말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정성스레 기록했던 그 빛나는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새삼 혀에서 꼭대기로 천천히 올라오는 맛있는 순간이 바로 수첩의 존재론을 가능하게 한 은유적 사건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푸르고 깊은 언어”(「동지同志라는 말」)를 통해 “너에게로 가는 희미한 길”(「그 여자, 비천도해飛天渡海」)을 밝혀온 오현정 시인은 자신의 시업(詩業)이 어떤 낱낱의 시간을 기록하고 오랜 시간 후 그 봉인을 풀어 한없이 향기롭고 맛있는 순간을 원심력으로 펼쳐가는 기억의 유산이 되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오현정’이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하고 고솜고솜 올라오는 신생의 장면이 여기에 새겨져 있다. 다음은 어떠한가.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오는데 구름나무에 은행비가 내린다
무던히도 사계를 버티며 통증을 파도타기 하던 독신귀족나무는
할 말이 아직 많은데 수액을 잃어버린 채 낯선 곳으로 혼자 가려다
비행기 좌석을 나란히 예약했는지 은행 두 알 내 어깨 위에 얹어놓고 간다
영혼은 3막 3장 다음 붙임줄을 해독하는 행진이라고
남은 신명을 어쩌지 못해 셰익스피어의 오텔로처럼 외치다
못다 부른 노래 지휘봉에 실어 영광과 희망의 나라로
피아니시시모(ppp)를 타고 포르티시시모(fff)를 건너고 있다
다시 만날 땐 너의 웃음보따리가 더 커야 해
마지막 말을 품고 가라앉는 눈시울을 서로 올린다
연두 싹 돋는 무릎으로 발맞춰 걷는다
― 「라데츠키의 팔짱을 끼고」 전문
이번 시집의 표제작인 이 작품은 순간성과 영속성의 변증법을 아름답게 구현한 결실이다. 대학병원 장례식장이라는 배경과 “무던히도 사계를 버티며 통증을 파도타기 하던 독신귀족나무”는 참으로 잘 어울린다. 그 나무는 아직 할 말이 많지만 수액을 잃어버린 채 낯선 곳으로 혼자 가려다가 은행 두 알을 시인의 어깨 위에 얹어놓고 간다. 구름나무에 언뜻 내렸던 은행비의 실체가 그것이다.
시인은 “영혼은 3막 3장 다음 붙임줄을 해독하는 행진”이라고 외치면서 “못다 부른 노래 지휘봉에 실어 영광과 희망의 나라”로 나아가고 있다. 이때 시인이 팔짱을 끼고 있는 ‘라데츠키(Radetzky)’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지은 행진곡 「라데츠키 행진곡」에서 따온 것일 터이다.
행진곡을 연주할 때 관객이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치는 관례가 있는데 이러한 행진곡 풍의 음악을 가져와서 시인은 “너의 웃음보따리”를 소망하고 “마지막 말을 품고 가라앉는 눈시울”에서 장례식장과는 전혀 다른 “연두 싹 돋는 무릎으로 발맞춰 걷는” 풍경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오현정은 “그늘 진 나이테가 환해”(「고령가야 트래킹」)지는 신생의 순간을 발견하거나, 그 안에서 “생명의 신비와 자연의 갈채”(「호모 데우스를 활주하다」)를 한껏 느껴가는 생명의 시인이다.
결국 오현정의 시적 상상력 안에서 ‘수첩’과 ‘행진곡’은 모두 오랜 시간을 관통하여 막 새롭게 태어나고 번져가는 어떤 신생의 언어적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모두 자신이 써가는 ‘시(詩)’의 은유적 등가물일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순간/영원’, ‘삶/죽음’ 같은 표지(標識)와 경계가 지워졌을 때의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 자유로움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의 속성이자 원리일 터인데, 오현정의 시는 이러한 생명의 속성과 원리에 대한 형상화에 매진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오현정 시인은 우리 시대의 불모성과 교감 단절 양상에 대한 유력한 시적 항체를 구축하는 쪽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고, 그의 시는 이러한 생명 현상에 대한 지극한 긍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우뚝하게 기록될 것이다.
3. 순수 원형을 찾아가는 문학적 탐험 과정
다음으로 오현정 시학에서 빠질 수 없는 모티프는 단연 ‘여행’이다. ‘여행’이란 미지의 길 위로 자신을 자발적으로 내몲으로써 일상에 길들여져 있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익숙한 환경에서 훌쩍 벗어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감싸안는 사물과 풍경을 만나보는 여행은, 그 점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고 과잉되어 있는지를 성찰하게 해주는 실천적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닿지 않은 순수 원형의 풍경 혹은 시간의 속살들을 만나는 상상적 제의(祭儀)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오현정 시인은 근대적 효율성에 의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 사라짐의 눈부심으로 하여 오히려 역설적으로 빛나는 시간의 흔적들을 찾아나서는 문학적 탐험가로서의 모습을 환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과 자연 사물이 이루고 있는 비대칭적 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들을 우리에게 가득 선사해주는 것이다. 다음 작품을 한번 읽어보자.
너에게 갈 때 조이는 신발 끈 둘은 오늘도 평행선이다
X와 Y로 묶여지지 않는 도저히, 를 단단히 싸고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던 마음 서툴게 풀어 놓는다
인연이란 바로 너야, 허겁지겁 달려와도 타이밍은 늘 어긋난다
차라리 비자도 없이 화폐도 없이 그냥 갈 걸
한 해의 절반을 어둠 속에 누워 오직 너에게만 푹 잠길 걸
백야를 밝힐 전압도 창가를 두드리는 이방인과 나눌 공용어도 모른 채
경선이 만나는 극점 부근에서 너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이 개념 없이 사라지는 거기
한 발짝 내딛으면 한 시간이 지나버리는 경도
너에게 안겨 바다표범처럼 수수만년 유빙을 건져올려
빙하 칵테일로 혀를 식히고
펭귄의 신비한 몸에 깃발을 꽂을 걸
안타티카Antarctica 그 땅 아래 꿈틀대는 살아있는 것들로
나의 숨을 오래오래 너의 피톨에 담그는 동안
고무보트를 타고 상륙하는 연인들
맨발이 되어
환호하는 그곳, 언제 출발이지?
― 「남극은 해평선이다」 전문
오현정 시인의 발걸음은 사막에서 초원까지, 대륙에서 해양까지 안 닿는 데가 없다. 그 가운데 가장 극지(極地)이자 험지(險地)라고 할 수 있는 ‘남극’을 다룬 작품이 여기에 있다. 시인은 오늘도 시간의 평행선을 달릴 “신발 끈 둘”을 조이면서 ‘너’에게로 간다.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던 마음을 풀어놓으며 “인연이란 바로 너”라고 외치면서 달려간다. 그렇게 “한 해의 절반을 어둠 속에 누워 오직 너에게만 푹 잠길 걸” 상상하는 시인은 백야를 밝힐 전압도 없는 곳에서, 이방인과 나눌 공용어도 모르는 곳에서, “너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을 열망한다. 그 “시간이 개념 없이 사라지는” 순간, ‘너’에게 안겨 수수만년 유빙을 건져 올리는 신비로운 꿈을 꾼다.
남극 대륙 아래 꿈틀대는 살아있는 것들로 하여 시인은 오래도록 ‘너’를 열망하고 ‘너’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해평선’은 하늘과 바다가 만나 수평을 이루는 선이므로, 신비로운 여행의 순간을 끌어올려 시인은 언제나 “꿈으로 출렁이는 사람들이 해평선을 보러”(「바다를 믿어요」) 간다고 노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시인에게 남극이라는 해평선은 “빛의 산란 속으로 날아오른”(「일월오봉도一月五峯圖」) 순간을 가능하게 해준 곳이고, 그에게 여행이란 “절벽 꼭대기에 지어진 호텔”(「절벽호텔」)처럼 “내 속의 것이 네게 닿을 때까지”(「사물에게」) 가닿는 열망의 외적 형식이었던 셈이다.
남아프리카 여행 중 만난
현지인 가이드 지미
두 귀를 떼어내 머리에 붙이면
영락없이 하마 닮은
하지만 반갑다며 내미는 검은 손길
목화송이처럼 부드러웠다
여행 중 목이 아파 연달아 기침을 할 때마다
하쿠나마타타
낯선 물갈이 병으로 끙끙거릴 때에도
하쿠나마타타
짐바브웨의 검은 햇살이 빙긋이 웃는다
모국의 여왕을 흠모한 리빙스턴의 세레나데
빅토리아 폭포소리 너머로
아슴푸레 떠오르는 무지개를 가리키며 연신
하쿠나마타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던 하얀 이 드러내며
하쿠나마타타, 연발하던
그 사내의 눈빛이 가을하늘에 아물거린다
내가 허기뚱할 때마다
― 「하쿠나마타타」 전문
제목 ‘하쿠나마타타’는 아프리카 말로 ‘다 잘 될 거야.’라는 뜻을 품고 있다. 음상이 독특하고 음률적이어서 그 자체로 어떤 주술적 효과까지 가진 말이다. 시인은 남아프리카 여행중에 만난 가이드를 떠올린다. 반갑다며 내민 목화송이처럼 부드러운 검은 손길로 기억되는 그 현지인은, 여행중 시인이 난경(難境)에 처할 때마다 한결같이 “하쿠나마타타”라고 말한다. 그때마다 “짐바브웨의 검은 햇살”도 따라 웃는다.
영국 탐험가 리빙스턴이 발견하여 모국 여왕의 이름을 붙인 빅토리아 폭포에서도 그는 떠오르는 무지개를 가리키며 그 긍정의 언어를 발한다. 그렇게 “하쿠나마타타, 연발하던/그 사내의 눈빛”이 허기뚱할 때마다 아물거리는 시인은, 이울어가는 가을하늘에 궁극적 긍정과 낙천의 언어가 자신을 끌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여행중에 남았던 인상적인 순간들을 현재로 가져와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꿈”(「대신할 수 있어」)을 톺아 올린다. “마차와 람보르기니가 공존하는 도시”(「알렉산드리아」)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백두산록 저 너머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 북간도에 살아 숨쉬는 겨레의 혼”(「봄이 길었으면 좋겠다」)을 탐구하기도 한 시인의 스케일과 행로가 “고대와 현대를 가로 지른”(「두근두근 발굴단」) 열정적 탐구 의지로 나타난 것이다.
독일 미학자 벤야민(W. Benjamin)은 외부 세계와 내면 의식의 순간적 통일, 가령 세계의 근원이나 자연 사물과의 순간적 합일을 ‘아우라(Aura)’의 체험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아우라’는 사물들이 내뿜는 한 번뿐인 고유 속성이자 그 외현(外現)을 함의한다. 오현정 시인이 찾아나서는 여행의 험지들도 이러한 아우라가 살아있는 마지막 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곳은 산간벽지 같은 물리적 주변부일 수도 있고, 보통사람들이 가닿을 수 없는 정신의 극한일 수도 있으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도 하고, 상상으로나 도착할 수 있는 격절의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현정 시인은 이러한 곳을 답사하면서 “네 안의 아우라가 구름과 바람과 햇살의 손을 잡고”(「하늘은 바나나」) 있는 순간을 탈환하고 또 남겨간다. 그러한 실례들을 증언하고 있는 오현정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도 그러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게 되지 않는가. 이 모든 것이 순수 원형을 찾아가는 오현정 시인만의 문학적 탐험 과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4. 존재론적 기원에 대한 애틋한 기억
오현정의 이번 시집은 시간에 대한 경험과 기억의 재구성이라는 서정시의 특유한 양식적 특성을 일관되게 내보이는 성과이다. 그의 시는 기억의 다양한 양상을 취택하면서 기억의 원리를 따라 삶의 근원에 대한 상상적 경험을 부지런히 치러내고 있다. 그의 시는 그리움과 따듯함을 주조로 하는 위안의 언어를 통해 기억의 원리를 수행해나가는 특성 또한 지니고 있다. 그렇게 오현정 시인은 기억과 의탁(依託)을 통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시적 대상을 향한 한없는 매혹과 그리움을 노래해간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origin)’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는 시인의 강한 열의와 만나게 되는데, 그 일차적 관심은 삶의 가장 원형적인 상(像)을 부여해주신 부모님을 향하게 된다. 다음 작품은 특별히 ‘아버지’를 기억하고 노래한다.
꽃 피는 살구나무 아래서 아버지를 기다린다
사 오신 별사탕을 조롱조롱 달아매 밤엔 알록달록 별을 띄워
친구들 모아 따먹게 할 거야
미친 아버지의 여자가 종종 오는 길 물 뿌려 미끄러트려야지
예측은 맞아떨어져 부러진 다리 절며 도망가면 좋겠다
다시는 허튼짓 않고 고요히 사라졌으면 더 좋겠다
나는 우리 엄마 영원한 애인별이니까
― 「생각한다」 전문
시인은 “꽃 피는 살구나무 아래서” 아버지를 기다린다. 아마도 어릴 적 기억일 그 ‘살구나무 아래’는 모든 것을 환하게 밝히는 만남의 표지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사 오신 별사탕은 조롱조롱 매달려 밤에는 알록달록 별을 띄우곤 했을 것이다. 시인은 친구들을 모아서 별을 따먹게 할 거라고 상상해본다. 아마도 별은 그렇게 어린 시절의 모든 것을 밝혀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음화(陰畫)도 만만치 않아서, 시인의 어린 날은 “미친 아버지의 여자가 종종 오는 길”이라든지 “허튼짓 않고 고요히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든지 하는 것으로 엮인 상처와 분노의 기억이 깊이 깃들여 있다.
그 모든 ‘생각한다’의 주어와 목적어는 그렇게 때로는 단호하게 분리되고 때로는 어느새 자신들의 위치를 바꾸면서 한 몸이 되기도 한다. “나는 우리 엄마 영원한 애인별”이라는 시인의 ‘생각’은 그 모든 과정을 수렴하면서 아버지-엄마의 순간적 회복과 소멸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때 오현정의 시는 기억 속에 웅크리고 있던 순간을 통해 현재형의 자의식을 첨예하게 토로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그의 이러한 의식을 구성하는 직접적 질료는 구체적 경험이고 그러한 경험을 표현하는 원리가 바로 생을 순간적으로 파악해내는 그만의 기억일 것이다. 그 경험과 기억은 “모래폭풍에도 지워지지 않는 상형문자 하나”(「절벽호텔」)처럼 항구적으로 남아 오현정 시인으로 하여금 “잠들지 못한 숱한 몽돌들”(「서귀포를 3D로 굽는다」)을 식솔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이다.
몸이 차면 안 된다고
봄이면 엄마는 애간장을 챙겨 쑥 캐러 가셨다
열두 달 내 몸을 덥힌 파릇파릇한 것은
날마다 새록새록 올라오는
여느 애첩의 밥상보다 뜨거운 것이 되었다
잘 사는 걸 모르면 허해진다고
골똘한 식은 밥 대신 쑥을 닦고 말리던
엄마의 햇살과 바람은
앵 토라진 그늘을 쑥, 쑥 먹고
쑥떡 쑥떡 씹는 소리
나를 더 타오르게 했다
잘 죽는 걸 모르면 세상사 끌탕도 천양지차, 라고
쑥대밭을 헤치고
쑥떡 쑥떡 삼키는 목젖
쓴맛 든 후 더 단 침이 고인다
마음이 차가우면 안 된다고
참새방앗간 바퀴 조이듯 꽃샘 바람 가르며
엄마는 과수원 언저리에 해쑥 캐러 오신다
― 「쑥, 쑥」 전문
이번에는 ‘엄마’다. 엄마는 몸이 차면 안 된다고 봄만 되면 쑥을 캐러 다니셨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인은 파릇파릇한 것으로 몸을 덥힐 수 있었고, 그 쑥은 “날마다 새록새록 올라오는/여느 애첩의 밥상”보다 뜨거운 것으로 남았다. “골똘한 식은 밥 대신 쑥을 닦고 말리던/엄마의 햇살과 바람”은 그때마다 그늘을 쑥, 쑥 먹고 자랐을 것이다.
쑥떡 쑥떡 씹는 소리는 어린 시인을 더욱 타오르게 했는데, 여기서 ‘쑥, 쑥’은 무언가 자라나는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 ‘쑥떡 쑥떡’은 누군가를 험담하는 의성어의 언어유희(pun)로 활용된다. 마음이 차면 안 된다고 과수원 언저리에 해쑥 캐러 오신 엄마의 초봄 모습도 그렇게 “쑥, 쑥” 인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엄마의 아련한 모습은 어린 시인에게 “당신의 경전을 야생의 언어로 읽는”(「사막여우의 길」) 순간을 허락해주셨고, 비로소 “간절한 사람은 전설이 될”(「새털구름이 이불을 펴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해주셨다.
오현정의 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발굴보다는 우리가 효율성의 늪에 빠져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상상적 회복에 더욱 공력을 들인다. 우리가 세상의 속도와 새것을 향한 짓눌림에 의해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서정시의 존재 근거인 삶의 시간성과 실존적 운명 그리고 근원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이때 ‘근원(origin)’이란 형이상학에 대한 충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간 본래의 위의(威儀)랄까 존재 근거에 대한 성찰에서 유추되는 정체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근원적인 것을 탈환하는 상상력은 서정시가 이미 오랫동안 쌓아온 기율이기도 하고, 망각된 것들을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온 서정시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렇게 오현정의 시에는 존재론적 기원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살아 있는 것이다.
5. 생의 크나큰 국량(局量)으로서의 지혜
우리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찬란한 장밋빛 미래상을 그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방향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不可逆)의 재앙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차곡차곡 축적해온 인문적 통찰과 역사 감각과는 전혀 다른 층위에서 인간의 존엄이나 존재 의의에 대한 근본적 위협과 불안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이러한 변화의 행간에 얼핏얼핏 비치는 어두움을 섬세한 감각으로 읽어내는 역설적 절망을 불가피하게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늘의 세세한 결을 읽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대하는 서정시의 권역일 것이다. 오현정의 시는 이러한 우리 시대의 불모성을 증언하고 그 안에서 견고한 지혜의 원리를 발견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의 노래가 도달한 궁극의 지혜가 거기에 있다.
쉬어가라 옷깃 잡던 만월당 동백나무 아래선
휴休, 그림자가 경전이다
낯선 얼굴들이 법문이다
산문을 지나 너른 마당 올라가면
이제까지의 인연은 불이문不二門
돌항아리에 고이 담아
더 이상 엮지 않고 반듯하게 걷는다
만개한 붉디붉은 꽃 한 송이가 해탈이다
― 「화엄사 일주문 지나면」 전문
원래 ‘일주문(一柱門)’은 절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을 말한다. 기둥이 한 줄로 된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일심(一心)을 상징하기도 한다. 신성한 곳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를 향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오현정 시인은 “쉬어가라 옷깃 잡던 만월당 동백나무 아래”에서 “휴休”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휴’는 ‘쉼’이라는 뜻과 ‘휴’ 하는 숨소리를 동시에 환기하고 있다.
시인은 그림자를 경전 삼고 낯선 얼굴들을 법문 삼아, 산문을 지나 너른 마당을 올라가면서, 이제까지의 인연이 ‘불이문不二門’으로 서 있음을 발견한다. 붉디붉은 꽃 한 송이에서 해탈을 느끼는 시인의 지혜가 화엄사 일주문을 지나면서 서서히 완성된 것이다. 말하자면 지극한 일심으로 일주문을 통과해감으로써 시인은 비로소 “누구를 위해 그 무엇을 해준다는 건 바로 나를 태우는 일”(「그에게서 탄 냄새가 났다」)이며 그 순간 자신도 승화되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등짐이 무거운 것은
채울 수 없는 꿈의 그릇을 지고 가기 때문이에요
지폐 한 장 때문에 울어본 적 있냐고
자기 고통이 가장 크다는 당신
결코 가난에 쓰러지지 않아요
피 말리며 밤새 책과 씨름한 적 있냐고
온몸으로 절정에 닿으려 달려왔다는 당신
흡혈귀에게 결코 목을 빨리지 않아요
불의 피는 동맥으로 땀방울은
허기 달래는 한 모금 따뜻한 물이에요
눈물을 웃음으로 머금은 당신
사원의 자존심을 지키는 기둥이에요
어려운 내용 풀어주는
비유법의 경전이에요
들꽃의 기별, 바람에게 선사한 당신
빈 그릇 채워줄 한 권의 묵직한 책이에요
― 「그릇의 차이」 전문
여기서 말하는 ‘그릇’ 역시 음식을 담는 도구의 뜻을 지나 사람의 성정(性情)이나 국량(局量)이라는 뜻을 함축한다. 등짐이 무거운 사람은 “채울 수 없는 꿈의 그릇을 지고” 가는 것이다. “자기 고통이 가장 크다는 당신” 혹은 “온몸으로 절정에 닿으려 달려왔다는 당신”에게 시인은 고통의 절대성을 물리치고 사실은 그 고통이 “한 모금 따뜻한 물”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라고 말을 건넨다.
그때 비로소 “눈물을 웃음으로 머금은 당신”은 바로 “사원의 자존심을 지키는 기둥”이 되지 않겠는가. 그 ‘당신’이 “빈 그릇 채워줄 한 권의 묵직한 책”이라는 전언에서 오현정 시인은, 그릇의 차이를 통해 생의 크나큰 국량으로서의 지혜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시인은 “진정한 경청은 그 사람의 자서전 읽기”(「대밭 속으로 간 귀」)임을 알아가면서, 사람의 크기가 곧 그릇의 크기임을, 그리고 그 그릇의 차이에 의해 삶의 어떤 차원이 재조정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이는 오현정 시학이 가닿은 궁극의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오현정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반영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세계를 판단하고 해석하면서 근원적인 삶의 형식에 대하여 심도 있게 질문해간다. 실존적 물음을 여러 차례 던지면서 지나온 시간의 깊은 심연을 성찰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삶의 ‘다른 목소리(the other voice)’를 경청하면서 자신만의 상상적 존재 전환을 실천하려고 한 것이다. 존재에 대한 섬세한 확인과 성찰의 이중적 작업을 수행하면서 말이다.
6. 서정시의 근원 지향적 속성
원래 서정시는 고유한 회상과 기억의 형식으로 씌어진다. 현재에 대한 강렬한 해석과 판단을 꾀할 때조차 서정시는 지난 시간을 아득하게 바라보고 표현한다. 오현정의 시는 이러한 원리에 매우 충실한 성과로서 일관되게 자연 풍경 속에서도 시간의 깊이를 읽고 그 안에서 우리 존재의 근원을 상상하는 성취를 올린다. 그의 시는 형식상으로는 비교적 길고 격정적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신산한 세월을 지나온 이의 심미적 견인의 정신을 담고 있는 세계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쌓아온 삶의 양상들을 남다른 사유와 감각으로 표현한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품을 오래도록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오현정의 이번 시집은 모든 사물이 일정한 시공간 속에서 존재하다가 그 물리적 유한성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사라지게 됨을 통해 그 어떤 현상도 순간적으로 존재했던 것에 지나지 않음을 증언한다. 우리에게 영원성이란 그리움의 대상이 될 만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부여하는 상상적 존재 형식인 셈이다. 오현정의 시에서 이러한 영원성에 대한 갈망이나 그리움의 형식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지향과는 대척적 지점에서 일종의 해체와 아이러니의 미학이 활발하게 발견되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시는 서정시가 본래적으로 가지는 근원성에 대한 탐구 의지로 충일하다 할 것이다. 결국 오현정의 이번 시집은 이러한 서정시의 근원 지향적 속성을 통해, 순수 원형을 찾아가는 존재론적 개진의 상상력을 노래한 탁월한 미학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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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문학평론가
1964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同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받음.
1999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저서 『한국 현대시의 형상과 논리」『상징의 숲을 가로질러」와 편서로『대표시 대표평론」
2001년도 대산창작기금과 제1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