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와 동키호테
Time is brief, 세월은 짧고
anxieties grow, 근심은 커가고
hopes diminish, 희망은 움츠러들고
and yet my desire to live 그러나 살고 싶은 나의 욕망은
keeps me alive. 나의 삶을 지탱해 준다.
영국의 섹스피아 희곡에, 도스토엡프스키와 플로베르, 카프카의 소설에 그리고 많은 서양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키친
세르반테스가 죽기 전에 쓴 글입니다. “그러나 살고 싶은 나의 욕망은 나의 삶을 지탱해 준다.
”이 한마디가 우리 인간이 왜 열심히 또는 나태하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해답입니다.
우리는 “희망이 움추려 들지라도”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돈키호테가 명작으로 인정받는 것은 화려한 문장입니다. 그래서 후진들의 그의 글을
익히고 모방한 것입니다. 다음은 돈키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There is remedy except death (죽음 빼고는 치료약이 다 있다.)
소설가, 시인, 극작가인 그는 1547년 스페인 마드리드 동북쪽 인근인 알카라데에나레스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외과 의사 겸 이발사였다. 그 당시에는 이발사가 외과의를 겸할 때 였다. 할아버지는 권위있는
변호사로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걸쳤다. 어머니는 귀족의 딸이었다. 세르반테스의 젊은 시절에 대하여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죠세피나라는 작부와 사랑에 빠졌던 것은 알려졌다. 둘은 도망하려 했는데 그녀의 아버지에게 들켜 좌절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세르반테스의 장래가 시원치 않다고 보고 자기의 딸과 교제를 못하게 하였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빚을 많이 져 금족령이 내려졌다. 그의 전기 작가들은 그가 대학을 다녔다고 하나 확증이 없다.
그는 스페인을 떠나는데 이는 결투하다 상대방을 중상을 입혔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재판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체포영장을 발부받다 도주했다고도 한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르네상스의 문학, 미술, 조각, 건축 등에 매료되어 로마에 머물렀다. 1570년 그는 스페인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가 승선했던 여러 기독교 국가의 연합함대는 레판토해전에서 오토만 제국의 함대를 격파했다. 그가 부상을 당하여 동료들이 배 선실에 누이려고 하자 그는 스페인을 위하여 죽겠다고 하면서 선실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그는 3발의 총탄을 맞았다. 두 발은 가슴에 한 발은 왼팔에 맞았는데 왼팔은 죽을 때 까지
쓰지 못했다.
1575년 9월 그는 갤리선(대형 선박)을 타고 가다 알제리아 해적 습격을 받아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 5년 동안
4번의 탈출시도가 실패하고 결국은 그의 부모와 “삼위일체수녀 회”에서 몸값을 보내와 간신히 풀려날 수가
있었다. 그는 스페인 함대의 구매 관과 세무공무원으로 일했는데 공무상 부정을 저질러 옥살이를 하였다.
1605년 돈키호테의 1부의 전반부가 호평을 받자 그는 사기가 올랐다.그러나 글이나 써서 생활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생애 후반부에는 마드리드에 정착하여 많은 글을 남겼다.
1615년에는 돈키호태의 2부가 완성 되어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1616년 당뇨 합병증으로 죽는다. 그의 소망에 의하여 그는 “맨발의 삼위일체 성당”에 묻혔다.
다음은 서양의 최초의 소설다운 소설이라는 돈키호테의 개략적인 이야기이다.
돈키호테는 스페인 중부 라만차 지방 출신의 중년 남자이다. 그가 읽은 책에서 칭송하는 기사도적인 이상에 집착한 나머지 장창과 검을 들고 약자를 지켜주고 사악한 무리들을 전멸시키기로 결심하였다. 첫 번째 모험에 실패하고 그는 정신이 좀 모자라는 산쵸라는 농꾼을 데리고 두 번 째 원정을 하는데 산쵸가 충실한 자기의 기사가 되어달라고 설득하였다. 산쵸가 봉사하는 대가로 돈키호테는 산쵸에게 어느 섬의 부자 총독에 임명해 주겠다고 약속 하였다. 늙은 말 로시난테에 올라타고 돈키호테는 영광과 위대한 모험을 찾아 스페인 길을 달린다. 그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모든 안락함을 던져 버렸다. 이 모두가 농부(農婦)인 돌시네아를 위해서인데 그는 그녀를 공주로 생각했다. 두 번 째 원정에서 돈키호테는 이 세계에 위협이 되는 것과 대항하여 싸운다면서 백성들에게서 훔치고 그들을 해침으로서 구세주이기는 켜녕 산적에 가까웠다. 돈키호테는 이발소 대야를 훔치는데 그는 이것이 ‘멤브리노 헬멧(황금으로 된 헬멧 으로 이걸 쓰면 전투에 지는 법이 없다함)’이라고 믿었다. 산쵸는 돈키호테 옆에서 있다가 돈키호테가 저지른 일에 대한 바가지는 혼자서 뒤집어썼다. 여행하면서 산쵸는 돈키호테에게 제 정신 있는 사람으로 행세하며 주인인 돈키호테가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무척이니 애를 썼다. 그의 친구인 신부와 이발사는 그를 고향으로 데려 가려고 온다. 돈키호테는 자기가 마법에 걸렸다고 믿으며 그들을 따라간다.
꼬박 하루를 여행한 끝에 돈키호테와 산쵸는 풍차들이 서 있는 들을 지나게 되었다. 돈키호테는 그것들을 거인들로 잘못 알았다. 그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의 장창이 풍차의 날개를 찔렀다. 돈키호테와 로시난테가 땅에 나뒹굴었다. 돈키호테가 어디를 가든 그의 얘기가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그의 명성은 자자했다.
둘이서 여행을 하는 동안 산쵸는 마술사가 돌시니아를 농부(農夫)로 바꾸어 놓았다고 돈키호테에게 거짓말 했다. 이 마법을 푸는 것이 돈키호테의 목적이 되었다. 돈키호테는 속임수를 쓰는 공작과 공작부인을 만난다. 그들은 돈키호테가 웃통을 벗고 산쵸에게 채찍을 3,300번 맞으면 돌시니아 마법이 풀린다고 거짓말을 한다. 돈키호테는 몇 번이고 산쵸에게 때려달라고 사정했으나 산쵸는 매번 거절했다. 산쵸는 공작과 함께 지내면서 가상(假想)의 섬의 총독이 되었다. 10일 동안 총독이 되고 나서 맹공격을 받았는데 이는 공작 부부가 자기들 재미를 위하여 꾸민 공격이었다. 산쵸는 비참한 총독보다 행복한 농부가 낫다고 생각했다.
백작부인집의 하녀는 돈키호테를 사랑했으나 그는 오로지 돌시니아만 짝 사랑했다.
돈키호테는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데 그의 죽음은 의외로 빨리 온다.
바르세로나 에 도착한 직후 열병에 걸려 죽는다.
첫댓글 . . . Don Quixote de la Mancha - "You are a king by your own fireside, as much as any monarch in his throne."
벽란로가에서 왕노릇하는 돈키호테는 참 행복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마드리드 그 자체가 스페입 박물관 아니던가요?
나는 바르세로나는 가 보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