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는 졸고
노승은 방문을 활짝 열어둔 채
먼 토굴에 면벽하러 가고 없고
새까마니 그을은 툇마루에서 막 바랑을 풀던 객승 하나
낯선 인기척에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쏘내기 소리로 딱! 이마를 치며 다가서는
커다란 앞산 그리메를 본다. - 이시영 <고사운> 중에서
오래 묵은 벚나무와 애기단풍나무, 노송과 거대한 갈참나무 그리고
쪽빛 호수가 함께 어우러진 백양사 진입로는 언제나 내 마음 속에 긴
여운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호흡이 길고 완만한 그 길을 느림의 의미를 잊고 사는 디지털 인간들은 괴물 자동차로 끝장을 보듯 단숨에 질주해 버린다.
백양사 진입로는 약수리 백양사 관광호텔을 지나면서 바로 이어지는
고풍스런 벚나무 가로수 길에서부터다. 쌍계사나 완주 송광사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산책로의 아름다움이 어디 나무의 규모로 논할 바인가?
백양사 진입로 초입에서 우리를 맞는 고풍스런 벚나무는 한 주 한 주가 예사롭지 않다. 분명 백양의 벚나무는 여느 곳의 벚나무와는 그 격이 다르다. 고풍스런 벚나무가 적당한 간격과 높이로 늘어선 그 길은
도로와 벚나무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보기에 참 편하고 행복한 모습이다.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서서 걷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그윽한 길이다.
벚나무 길을 지나면 왼편에 새로 조성한 거대한 주차장이 보이고 이제부터는 꿈 속같은 애기단풍 터널 속을 지나 곧장 매표소와 일주문으로 이어진다.
저 모퉁이 돌면 뭐가 나올지 우리의 마음을 유혹하는 산책길은 결코
그 속내를 쉽게 드러내 보이지 않은 채 적당한 굽이를 이루며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느리고 완만한 산책길은 마침내 거대한 갈참나무와 비자나무가 군락을 이룬 아늑한 숲길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내 생에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정녕 복된 일이다.
북엔 마하연이요 남엔 운문암이라
속세를 떠나 조용히 불도를 닦는 방을 선방이라 하고, 그 사원을 선원이라 하며, 그 장소를 선불장(禪佛場)이라 한다. 백양사에는 백양사보다 유명한 선원이 있다. 예로부터 '북 마하연, 남 운문'하여 한반도 북쪽에서는 금강산 마하연 선방 만한 곳이 없고 남쪽은 백암산 운문암
선방이 가장 좋다는 말이다. 전국의 선원을 두루 섭렵한 운수 납자들의 입에서 오르내린 평가이기에 가장 공정한 관점을 반영한 것이리라.

쌍계루 지나 부도밭을 끼고 도는 길을 따라 왼편 백양사 본사로 이어지는 길을 버리고 산길로 오르는 길이 운문선원 길이다. 큰절에서 운문선원까지는 약 4㎞. 오르막 내리막이 되풀이되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올라가는 길은 구도의 길만큼이나 멀고도 길지만 햇빛이 들지
않을 만큼 울창한 활엽수와 비자나무 숲으로 인해 결코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다.
국기단을 지나면서 천연기념물 153호로 지정된 비자나무 숲과 만나게 되는데 비자나무 특유의 향과 실핏줄까지 파고드는 순도 100%의
신선한 산소로 졸도(?) 직전이다.
운문암에 오르면 백암산 계곡이 한 눈에 굽어보인다. 시야가 열렸으되 허허롭지 않고, 안온하되 답답하지 않아 그냥 그곳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곳. 처음 온 곳인데도 언젠가 꼭 한 번 와 본 적이 있는 것
같이 익숙한 곳. 무릎 높이의 대울타리가 소담스러운 운문암 마당에
서면 왜 이곳이 선승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방인 줄을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안거 중이어서 일체의 외부인 출입을 허용하지 않은 탓에 마당에
서서 어렵사리 만난 도감 도연스님은 "좌청룡에 해당하는 백학봉 우백호에 해당하는 사자봉이 완연하고 균형 잡힌 계곡과 완만한 경사로
끝없이 이어져서 풍수지리적으로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명당" 이라고
귀뜸해 준다.
한국 선원의 본산 운문암은 지금 하안거에 들어가 깊은 침묵에 잠겨
있다. 속세의 모든 발길을 거부한 채 15명의 눈 푸른 운수 납자들이
용맹정진 중이다.
종정을 다섯 분이나 배출한 고불총림 백양사
지리산을 향해 곧장 남으로 숨가쁘게 치닫던 백두대간은 남덕유산 근처 영취산에서 서북으로 방향을 틀어 장안산과 마이산, 고당산을 거쳐 내장산에 이르러 장군봉과 신선봉을 솟구치게 하고 호남정맥을 형성, 잠시 숨을 고른다.
숨을 돌린 호남정맥 줄기는 새재를 넘어 전남.북의 도계를 나누며 상왕봉 백학봉에 이르니 여기가 곧 호남정맥의 중심 백암산이다. 호남
제일의 길지 이곳 백암산 자락에 선풍 도량 백양사가 둥지를 튼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32년 서기632년에 여환 조사가 개창한 천년 고찰이다. 이후 수 차례에 걸쳐 백암사, 정토사 등으로 이름이 바뀌다 조선조 선조 때 환양선사에 의해 백양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양사 운문암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원으로 한국 불교사에서 그
이름만으로 빛을 발하는 소요, 진묵, 백파 선사를 비롯해 근래에 들어서만도 용성, 석전, 만암, 서옹, 청화스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승들을 배출시켰다.
또한 백양사는 1947년 만암스님께서 개창하신 고불총림을 최근에 다시 복원, 경·율·론 삼장의 가르침을 펴는 사격 높은 총림 사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백양사는 민족 수난기에 언제나 이 땅의 민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빛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동학농민 전쟁을 비롯하여 수 차례에 걸친 의병운동에도 방관하거나 비켜서 있지 않았기에 현재 백양사에는 국보나 보물급 유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는 백양사의 빛나는 전통이며 자랑이지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행의 마무리
사실 백암산 자락엔 골도 깊고 숨겨진 암자도 많다. 천진암, 청류암,
영천암, 약사암 등 아직 언급도 못한 암자들까지 찾아가려면 하루 일정으론 어림없다. 또한 사자봉 상황봉을 거쳐 백학봉으로 이어지는
산행 코스도 결코 놓쳐서는 안될 코스다.
두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의 향기를 만끽하며 걷는 행복한 산책은 6월 저녁이 참 좋다. 초여름 백양사는 지금 눈부시게 아름답다. |
첫댓글 중생들로 하여금 불교에 대한 바른 믿음과 신심을 일으키게 하는 서옹 큰스님!!! 이시대의 스승이셨던 대선사님... 부디 서방정토에 왕생하소서...()()()
산과 절은 큰스님이 계시면서 더욱 빛나는 법이지요..이제 님이 가셨으니...누가 그자리를 대체할지..사찰의 부침이 큰스님의 덕화와 무관하지 않는것이 현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