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 기도대성회를 시작으로 한국 교회가 ‘일년 동안’ 매일, 4차 로잔대회와 한국 교회 영적 대각성을 위하여 합심기도를 하게 됩니다.
714 기도 대성회를 앞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연합기도를 통하여 한국 교회 기도 회복을 원하심을 알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기도 하나가 유명했던 교회였습니다. 제 어릴 때 기억으로 당시 교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집에 편히 지낼 형편이 아니었기에 교회와 기도원에 와서 기도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꼭 어려워서 기도하였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역사상 어렵지 않았던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했다고 한국 교회처럼 기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기도는 정말 특별하였고 세계 교회에 ‘한국 스타일 기도’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기도가 있었기에 지금 한국 교회가 이 정도라도 유지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한국 교회 교인들이 목숨걸고 기도하던 것도 다 지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교회의 기도의 결과는 다음 시대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미 그런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너무나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의 회복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0-41)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둔 시점에 제자들의 문제를 기도에서 보았던 것입니다. 4차 로잔대회를 앞둔 한국 교회의 문제 역시 기도에 있습니다.
토우져 박사는 ‘열심 있는 그리스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과오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하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기도 회복’ 이 714 기도대성회의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다 있습니다. 문제는 기도가 안되는 것입니다. 대상 10장에 사울 왕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는데, ‘신접한 자에게는 묻되, 하나님께는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31장을 읽어보면 사울 왕은 하나님께 다급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 신접한 자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고 하였을까요? 사울 왕의 마음 중심과 평소의 삶이 하나님께 묻는 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영적으로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다급하여 기도하지만 기도가 될리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에서 답을 얻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기도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사울 왕과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한국 교회에 기도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동안 안타까움은 컸지만 마땅한 계기가 없었는데 4차 로잔대회가 한국 교회가 연합하여 기도할 계기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다시 기도의 불이 붙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년을 작정하고 기도하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