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나이는
주관적 정체성입니다.
거의 모든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성숙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시간 자체가 만드는 성숙은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가끔씩 드물게 접하는 성숙한 어른을
보며
그런 환상을 가집니다.
정작 중년을 마무리하는 지점에
이르면
대부분의 중년이
젊은이들보다 더 성숙했다 할 것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경험의 절대량이 많기에
사회 생활에 더 능숙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활의 요령이지
존재론적 성숙은 아니지요.
시간은
단순한 환경입니다.
성숙은
구체적 과정과 댓가를 요구하는
결과물이지요.
막연히 시간을 보내면
중년을 지나 노년이 되며
인간은 더욱 퇴화합니다.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퇴화입니다.
도약이 없는 경험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패배의식을 심습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더욱 주눅들고 폐쇄적으로
변해갑니다.
자기 보호 본능이지요.
의식은 경직되어
새로운 것을 싫어합니다.
그 사회가 가부장적이라면
그들은
권위로 젊은이들을 대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지요.
합리성과 능력이 아닌
위계적 환경을 선호합니다.
옛말에
"떡잎부터 다르다" 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해석이 있겠으나
시간이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숙엔
시간과 무관한 고유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도약에 대한 의지와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지요.
주의력 있는 이들은
젊은이들을 면밀히 보며
그들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점쟁이가 하듯
언제 무엇이 된다는 점사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잠재성의
예측이지요.
사회적 성과가 아닌
인간의 품위와 존엄과 의미에 대한
예측입니다.
성숙은
환경과 사건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태도에서
이미 결정납니다.
도약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이들만이
성숙의 열매를 땁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성숙이 주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시간은
대부분 퇴화의 애벌레로
잠재성을 갉아먹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멍하게 삶을 방치하면
시간은
우리를 부식시키는 수순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문명이
우상향의 그래프를 그리는 것에는
착시가 끼어 있는데
우상향의 동력은 다수가 아닌
소수의
도약을 이루는 이들의 결실을
나눈 덕분이지요.
아직 자신이 젊다고 느낀다면
도약에 대한
끈을 놓지말아야 합니다.
정확히는
도약의 끈이 있어야 젊은이이며
도약의 여정을 걷고 있다면
나이의 개념은
무용합니다.
생사와 질병은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생체적 노화는
머지않은 시점에
극복될 수도 있습니다.
생체적 시간은
점점 의미를 잃어갈 것입니다.
갓 사회에 들어온 신참이
좋은 떡잎을 가지듯
삶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능동적이며
유연하고
개방된 의식 시스템이
역량이고 능력이고 자산입니다.
시간에 누적되는 경험은
자칫
경비를 들여 치워야하는
폐기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도약을 지원하지 못하는 경험은
보관창고의 청구서만
남발합니다.
나이듬이
경험이
제값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닦는 이들은
자신의 시간과 경험에
책임과 결실을 산출하고자
분투하는 이들이지요.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다가오는 사건을
깨어서 맞이합니다.
시간에 대한 선입관이
우리를 가두고 있습니다.
성숙이란
존경받고 위대한 인간이 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끝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시 특별함을 쫓고 있지요.
기본이 바로 서지 않았기에
우리는
늘 꿈속에 갇혀있습니다.
푸른 배경에 흐르는 사건
빛과 형상 저마다 달라도
누군가의 의지에 엉기니
작은 속삭임 살결 구르네.
..250205小野
카페 게시글
소야小野의 옹달샘
시간이 성숙을 만들지 않으니
소야(小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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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
25.02.05 11:49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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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주법계중생 지구촌사람 모두함께
아나타마
아닛짜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숙연의일대사인연 덕분입니다
현산김봉현 합장ㅅㅎㅅ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