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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 참석을 위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27일(현지시간) 끝났다. 그의 이번 방문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서, 또 서방외신에서는 "역사적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표출됐다. 그가 자신의 '승리 플랜'(승리 구상)을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공화 양당 대선 후보에게 설명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승리 플랜'의 핵심으로 꼽힌 러시아 본토에 대한 장거리 미사일 사용 허가를 얻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미국을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 공군기의 트랩을 내려오고 있다/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그러나, 그가 워싱턴을 떠난 뒤 이에 동의하는 언론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빈손 귀국' '약자의 수모' '가시밭길' 등 부정적인 평가가 주요 외신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 파이스(El Pais)는 28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며 (미국 방문 결과에 따라)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협상을 준비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크라이나가 처한 현재 여건은 △군사력의 한계에 도달하고 △겨울을 앞두고 심각한 에너지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국민들의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과 자금 조달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하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라는 외부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평화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싶어한다"며 "이를 위해 러시아 쿠르스크주(州)를 기습 공격했지만, 전략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도 했다.
그의 방미 기간에 미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70억 달러 상당의 추가 군사 지원을 발표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미 성과로 볼 것은 아니다. "이미 결정된 지원안을 그의 방문에 맞춰 발표했을 뿐"이라고 스트라나.ua는 해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만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당부했으며, 해리스 부통령은 이를 약속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누구나 예상했던 결과다.
◇ 수모를 견뎌낸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만남
오히려 관심을 모은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대통령(이하 트럼프)과의 만남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확연할 정도로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가다.
악수를 나누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트럼프 전 미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은 "트럼프와 만났을 때 젤렌스키 대통령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드러났다"며 "두 사람 사이에는 '케미'가 전혀 없었다"고 보도했다. 그 이유로는 트럼프의 발언을 들었다.
슈피겔은 “트럼프가 뉴욕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옆에 두고 '푸틴 대통령은 공정한 거래를 원하고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어 있다', '푸틴 대통령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등 그의 속을 뒤집어놨다"고 전했다. 그는 또 “당신과의 관계가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희망에는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받았다. 슈피겔은 이 장면을 놓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국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굴욕감을 삼키는 데 익숙하지만, 그의 미국 방문 중 가장 불쾌한 순간이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회동을 마치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둘 다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을 원하고 있으며, 공정한 (종전) 합의를 원한다는 내 입장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합의는 공정해야 하며, 난 그게 적절한 시기에 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정한 합의'는 두 사람이 만나기 전부터 트럼프의 친(親) 푸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회담에 들어가기 전에 가진 공동 브리핑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공정한 세상'을 이야기 하자, 트럼프는 '모두를 위한 공정한 거래'로 어깃장을 놓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리는 전쟁을 중단하도록 그(푸틴)에게 압력을 가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트럼프는 "이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끔찍한 전쟁이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싸움을 할 것"이라고 그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나의 (우크라이나 전쟁) 전략은 (빨리 전쟁을 종식시켜)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만남에서 얻어낸 성과라고는 △2019년 (트럼프에 대한) 미 의회의 탄핵 무산에 감사하는 인사와 △키예프(키이우) 방문 초청에 대한 수락 정도다.
민주당이 미 하원 다수당이었던 2019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을 거론하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인) 헌터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사업 관련 수사를 압박했다는 이유로 탄핵소추를 당했으나, 상원에서 부결됐다. 트럼프는 "그(젤렌스키)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크고 분명하게 말했고, 탄핵 소추는 바로 그 순간 끝났다"고 설명하며 그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 뉴욕 타임스(NYT)는 "그가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지적하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민주당을 의식해) 트럼프 탄핵 논란과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트럼프는 또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리 모두(우크라이나 국민)를 보러 와야 한다"고 말하자, "그렇게 하겠다"며 "우크라이나는 아름다운 국가다"라고 사실상 초청을 수락했다.
트럼프는 또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왜 우크라이나 침공했는지' 물었다"고 공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답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미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영상 캡처
젤렌스키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리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할 것이라는 매우 분명한 정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에 대한 장거리 미사일 공격 허가에 관해 백악관과 대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는 그의 발언을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이 없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 미국 설득에 실패한 젤렌스키 '승리 플랜'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승리 플랜'을 제시했으나 장거리 미사일의 사용 허가를 받지 못했다. 미국 언론은 미국 고위 관리들을 인용해 "백악관은 젤렌스키 승리 구상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고 전했다. '승리 플랜'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승리 플랜'의 핵심이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서방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허용해달라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당초 이 문제는 그의 미국 방문 기간에 결론이 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미국 방문 전날까지만 해도 서방 외신들은 '장거리 미사일 사용 허가'에 대한 미국의 기본 방향은 이미 정해졌으며, 동맹국들과의 세부 사항 논의만 남았다고 보도했다. 블린컨 미 국무장관이 앞장서서 그 가능성을 분명히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끝나갈 무렵, 미 고위 관리들의 표현은 좀 더 절제된(허용이 안되는) 쪽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언론들도 '내부적으로 결정됐다'는 기사를 쓰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 언론들은 그의 '승리 플랜'에는 새롭거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담겨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미 뉴욕 타임스(NYT)는 장거리 무기의 사용 허용으로 고조될 전 세계적 위험이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얻을 이익보다 더 큰 것으로 미 정보 파트에서는 믿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에 대해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주목할 것은, 그같은 보도가 푸틴 대통령이 25일 핵 사용 원칙을 담은 러시아의 핵교리 개정을 지시한 이후에 나왔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의 핵 위협 '레드 라인'이 미국의 태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러시아의 새로운 핵교리는 '비(非)핵보유국이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하면 지원국 역시 공격자로 간주한다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 핵보유국의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를 위협할 경우, 미국도 공격자로 보겠다는 주장이다. CIA 등 미국 정보 담당 파트들도 러시아의 핵 교리 수정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한 것으로 해석됐다.
◇우크라 전쟁 확전시, 해리스 후보 낙선 위험도
미 공화당은 대선 유세에서 바이든-해리스 정권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통해 '제3차 세계대전을 도발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장거리 미사일의 사용 허용이 자칫하면 미국 대선판을 흔들어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러시아는 본토 공격에 서방 무기가 사용될 경우, 실제로 가혹하게 대응하거나 적어도 그 가능성을 발표하면, 전 세계는 핵 위협에 휩싸이게 된다. 이같은 상황 전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즉각 종식을 내세우는 트럼프 진영에게는 큰 이점을 안겨줄 것이다. 객관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군사 지원하다가 (핵 위기와 함께) 세계적인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지지하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이같은 결과를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는 미국 도착 직후 펜실베이니아의 군수 공장을 방문해 공화당의 불만을 초래했다. "그가 미국 대선에 개입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공화당에서 즉각 터져 나왔다. 공화당이 대선과 함께 치러질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거나,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검백할 경우, 젤렌스키 대통령의 섣부른 행동으로 우크라이나가 치러야 할 미래 위험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가 트럼프와 만나자고 거듭 요청한 것도 이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트럼프와의 만남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 펜실베이니아 군수 공장을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NYT는 '미 국회 의사당에서 빛이 바래는 젤렌스키의 스타성'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러시아와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워싱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신문은 "붐비는 홀과 천둥 같은 박수로 환영받은 이전 방문(2022년 12월)과 달리 이번에는 수십 명의 의원들이 그를 비공개로 만났고, 존슨 하원의장은 만남 자체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장거리 미사일 외에 '승리 플랜'에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나토(NATO)와 유럽연합(EU) 가입,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 등도 이번 방문에서 분명히 해결되지 않았다.
◇달라지는 서방의 대우크라 노선
젤렌스키 대통령을 더욱 당혹하게 만든 것은 서방 지도자들의 대우크라이나 전략 변경을 촉구하는 언론 보도다. NYT는 물론이고, 영국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1991년 국경 도달 목표는 달성이 불가능하다"며 "현재 전선을 따라 전쟁을 중단(휴전)한 다음, 국가 번영에 힘쓰는 보다 현실적인 과제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번영한 민주주의 국가'가 우크라이나에게는 실질적인 승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주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화 공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은 여전히 '젤렌스키 평화 공식'을 지지하고 있지만, 언론의 노선 변경 촉구는 잦아지고 있다. 스트라나.ua는 "비공식 정보에 따르면 숄츠 독일 총리를 비롯한 다수의 서방 지도자들이 최전선에서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하고 있다"고 썼다.
서방 지도자들의 고민은 나토의 개입이나 러시아와의 정면 대결 없이는 우크라이나가 군사적으로 패배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우크라이나의 전황은 어렵다.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초기부터 서방 측 일각에서 내심 기대했던 러시아내 반전 시위→내부 격변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아직 징후를 찾기 힘들다.
이에 따라 서방 측도 이제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스트라나.ua는 주장했다. 앞으로 러시아와 직접 전쟁할 각오로 적대 관계를 확대할 것인지, 현 전선에서 휴전하든지,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게도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내달(10월) 12일 독일에서 예정된 바이든 미 대통령-숄츠 독일 총리-젤렌스키 대통령 간의 3자회담에서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도 그때까지 최대한 미국 대통령 설득에 나설 것이다.
다만, '레드 라인'을 넘을 경우 '비대칭적 보복'(상대의 도발을 넘어서는 수준의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모스크바는 허세를 부리고 있을 뿐,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할 것이라는 우크라이나의 주장은 아직 먹혀들지 않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측했던 미국 정보 파트는 모스크바가 정말로 뭔가 큰 일을 저지를지, 허풍을 떨고 있는지 판단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사용 허가를 받아내려고 하는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사진출처:록히드마틴
다른 한편에서는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개발도상 국가들)는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 중국과 브라질은 최전선에서 전쟁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평화구상을 내달 20일 카잔에서 열리는 브릭스(BRICS) 정상회담에서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안을 러시아가 이 안을 지지한다면, 상황은 크게 바뀔 수 있다.
우크라이나 야당이 이미 지적한 대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 측으로부터 장거리 미사일 사용에 대한 허락을 끝내 받아내지 못한다면, '서방이 도와주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며 러시아와 평화협상에 나서거나, 국민의 선택을 묻기 위해 국민투표 실시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마지막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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