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문장, 읽기, 쓰기
네 가지 중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것은?
이 단순하고 간단한 질문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울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그리고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나름대로 결론을 도출해서 책으로 펴낸다.
서점에는 그런 류의 영어공부에 관한 책들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모국어에 관한 이런 단순한 질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느냐며 오히려 무시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서인지 이 질문의 답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단어’다.
혹자는 ‘영어라면 단어일 수도 있지만
한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무슨 단어가 중요하다는 거지?
글쓰기가 중요한 거 아닌가?’라며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을 모두 읽다보면 이유를 곧 알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현상 속에
깊은 원리가 숨어 있듯
근본적인 물음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해답이 숨어 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다른 동물에 비해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지를 내면에서 범주화하여 개념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무수하게 감각되는 이미지들을 잘 분류하여
개념으로 승화시킨 후
개념화된 소리를 붙인 것을 ‘단어’라 한다.
그것은 곧 ‘언어’가 된다.
사람들 사이에는 지적 능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는 이미지의 범주화 능력의 차이다.
사람들 개개인은 이미지를 범주화하여
개념으로 승화시켰더라도
아직 소리를 붙이지 않은 상태의 이미지와 개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모두 다르다.
그중 언어로 승화된 이미지만 공통의 영역 안에서 말과 글로 오고 간다.
그러므로 아직 소리단어가 정해지지 않은 자기만의 주관적인 이미지와 개념들은
개인의 고유한 이미지와 개념들로 존재하게 된다.
결국 이것이 개인의 지적 능력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요소라 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언어는 표면적인 능력에 불과하다.
언어의 이면에는 수많은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범주화된 개념이
아직 언어화 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사람을 많이 거느리는 분야의 우두머리들이다.
성공한 정치가나 성공한 기업가가 주로 이에 해당된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무수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들을
자기 나름대로 구분하여 자기만의 개념으로 연결해 놓는다.
즉, 이미지를 범주화하여 개념으로 승화시켜 놓는 것이다.
다만 거기에 소리를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 이미지그룹과 개념이 항상 사실과 잘 맞아떨어질 때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면 그들이 내면의 이미지와 개념에
소리를 붙여 단어를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그들의 지적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파해서
모든 사람이 공유하게 하면 어떨까.
참으로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소리를 붙여 개인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 내면의 이미지를 밖으로 꺼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개인의 고유한 이미지와 개념을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은 단어로 승화된다.
단어는 모두가 함께 느끼고 볼 수 있는 공통의 이미지와 개념만으로 이루어졌다.
모국어 습득 4단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온 말은 무엇이었을까.
‘단어를 습득한다’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단어를 습득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단어를 배우는 것인데 뭐가 어렵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생각만큼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단어는
실제로 초등학교 입학 전, 글자를 배우기 전에 소리로 습득한
약 1,000개의 단어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영어단어 1,000개로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기본 단어 수와 같다.
그것이 일상생활의 기본 단어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리로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단어가 일상생활의 단어일 테고,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게 되는 소리를 습득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문자화시키지 않고 말로만 사용할 때에는 일상생활에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논리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언어사용에 있어서 이는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된다.
1,000개 정도의 단어로 단지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문자를 통한 보다 높은 지적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바로 학교교육이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과 잘 배우는 학생
학교교육에서의 공부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개념과 이미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즉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렇게 습득한 단어로 타인과 보다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중학교 1학년 수학에 ‘함수’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를 처음 보는 학생이 글자로 함수를 읽고 함수라고 소리도 내지만,
함수의 이미지와 개념은 아직 모른다.
따라서 수학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함수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가르친다.
그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수학 선생님은 함수라는 단어의 다양한 이미지를 말로써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또 함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함수에 관련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말 또는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함수의 개념적 이미지를 그려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그림을 잘 그리면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하지만 수학 선생님이 할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다.
그 다음은 학생들의 몫이 된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한 말과 칠판 위에 그려진 함수의 이미지를 받아
뇌 속에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다시 그린다.
즉, 자신의 능력으로 함수의 개념을 찾아 뇌 속에 그려야 한다.
이를 제대로 못하면 선생님이 그려준 이미지도 사라지고 개념도 잡지 못한 채,
오직 ‘함수’라는 소리와 글자만이 뇌 속에 남게 된다.
따라서 단어 네트워크에서 이미지와 개념이 텅 비게 되고
새로운 단어를 습득하는 데 실패한다.
단어 습득의 실패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새롭게 배우는 단어들의 이미지와 개념을 잘 습득한다.
남들이 어렵게 만들어놓은 단어들의 이미지와 개념을 자기 뇌 속에 잘 그려 넣고,
개념으로 명확하게 범주화시킨다.
이 같은 단어 습득과정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 이후에도 평생 계속 이어진다.
단어 습득에 성공하게 되면
그 단어를 활용할 수 있고 실패하면 활용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단어들로 아무리 즐겁게 대화를 주고받아도
자신은 그 대화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인이 한국어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한국말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려우며, 또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것은
단어의 습득이다.
단어 습득에서 이미지를 범주화하여
개념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범주화하는 지적 능력이 따라주어야 하고,
단어 하나에조차 많은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을 수 있고,
그것을 개념화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태어나서 취학 전까지 습득하는 단어는
1년에 고작 100개 정도에 불과하다.
7~8세까지 한국인이 한국어 단어를 습득하는 것이 약 1,000개 정도라는 말이다.
7세 아이가 글도 알고 총명하다고 해서
‘함수’라는 단어를 얘기하면 과연 알아들을까?
그 아이의 뇌 속 단어 네트워크 동체에 ‘함수’라는
단어의 잘 그려진 이미지와 명확한 개념이 들어있을까? 그
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따라서 외국어로서 영어를 가르칠 때,
학생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어(모국어) 단어보다
많은 영어단어는 가르칠 수 없다.
1,000개의 한국어 단어를 알고 있는 아이에게
2,000개의 영어단어를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함수’라는 단어의 이미지와 개념이 텅 비어 있는 학생에게
영어의 소리와 글자를 추가한다면 아래의 그림처럼 될 뿐이다.
의미 없는 영어단어 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