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언급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인들에게 불안증세가 타국에 비해 많다는 것입니다. 불안증세는 불쾌한 감정과 불쾌감으로 신체가 인지하고 행동하는 반응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전적 의미여서 확 다가오지 않을 수 있는데 한마디로 뭔가 쫒기고 마음이 편하지 않고 매우 흔들리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급함도 비슷한 것입니다. 도로에서 옆차로는 빨리 가는 것같고 자신의 차로만 막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누군가가 끼어들려는 움직임에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불안함의 표현일 것입니다. 이웃의 아파트값만 상승하는 것같고 자신의 아파트는 오히려 하락하는 상황에 생기는 정신적 혼란도 불안감의 일종입니다. 한국에서 갈등이 유독 심한 것도 이 불안함의 또 다른 징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한국인들의 불안감은 과거와 현재의 현상에서 종합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그리고 한반도는 외세의 침입이 많았던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 러우전쟁이 진행되는 우크라이나와도 비슷합니다. 우크라는 서유럽과 동유럽 그리고 러시아로 이어지는 중간에 위치합니다. 서유럽의 강국들이 러시아로 침공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고 러시아에서 서유럽을 공격할 때 필히 경과해야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니 우크라를 가운데 두고 얼마나 전쟁이 많았겠습니까.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경우 나라를 통일한 이후 마지막 정리개념으로 한반도를 침공했습니다. 예외가 없었습니다. 일본은 섬나라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대륙으로 향하는 데 발판이 바로 한반도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는 외세의 침략이 그치지 않은 나라가운데 으뜸입니다.
과거부터 지속되어온 외세의 침입으로 한반도 백성들은 불안함속에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나라의 정치적 리더들이 백성을 편하게 했을까요. 허구헌날 탐관오리들이 괴롭히고 나라는 당파싸움에 날이 새고 날이 졌습니다. 언제 어디서 외세가 침략할 지 모르는 상황에 나라 내부에서는 이런 저런 무리들이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고 노비로 삼는 행위를 자행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백성들이 편안할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세계에서 밥을 물에 말아 급하게 들이키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모르니 빨리 배를 채워야 한다는 불안감의 발로가 아니겠습니까.
한국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독립이라는 것을 이루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우익세력과 좌익세력이 치고 받는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급기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졸지에 국민들은 피난행렬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휴전후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시절을 거쳤습니다. 압축성장으로 국민들은 경제적으로는 윤택해질 수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불안감속에 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빨리 빨리 그리고 성적지상주의에 일등지상주의라는 과도한 경쟁은 어릴 때부터 심적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그런 심리상태가 초이기주의라는 요상한 성향으로 흐름을 이루더니 서로의 경쟁에서 반대편에 선 세력에게 갈등현상을 보이고 그 갈등은 집단 갈등으로 확대됩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이데올로기 갈등이 보혁갈등 보수진보 갈등양상으로 이어집니다. 갈등은 갈등을 양산합니다. 세대갈등 남녀갈등 빈부갈등 등 이루말할 수 없는 갈등이 속출합니다. 갈등은 필연적으로 혐오를 잉태합니다. 개인적 혐오에서 집단적 혐오로 그 세력을 넓히게 됩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통령 비상계엄후 탄핵 찬성 반대 갈등은 극한 혐오현상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결국 불안은 갈등과 혐오를 낳고 갈등과 혐오는 더욱 강한 사회적 개인적 불안을 야기시킵니다. 갈등과 혐오현상은 비단 한국에 그치지 않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도 매우 우려스런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불안은 개인의 정신뿐 아니라 신체까지 망치는 주범이라는 분석입니다. 모든 정신적 장애현상은 불안에서 출발한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정신과 병원이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선포 이후 생긴 집단적 불안감으로 인한 집단적 불면증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말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긍정적 심리를 곡해하는 부분도 상당한 것이 현실입니다. 긍정적이라는 것은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드리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과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냥 좋은게 좋다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게 좋다는 생각은 일종의 왜곡이며 더 나아가서는 망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불안함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전쟁일 것입니다. 전쟁중에서도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른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할 것입니다. 독일에 의해 대학살을 당한 유대인들이 가진 그 불안감은 표현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유대인들 가운데 생존자들의 말을 빌면 생존자가운데 현실을 부정하는 비현실적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비현실성 긍정적 사고방식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갖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이 가혹해지면 더욱 부정적인 생각으로 변하고 불안증세가 더욱 가중되었다는 의견입니다. 자신은 유대인으로 독일군에의해 체포되고 수감되어 있으며 자신들은 독일군의 전쟁 희생양이다라고 판단하고 유대인으로서 비참한 대우를 받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드리고 견디어낸 사람들은 생존할 확률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때 포로로 8년간 잡혀있다 생존한 미국인 장교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스톡데일 미국 장교는 전쟁이 끝난뒤 밝힌 그의 생존경험이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용어로 남아 있습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냉혹한 현실을 냉철하게 받아드리면서 앞으로 잘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갖는 것입니다. 역설이라는 표현은 현실을 받아드린 것이 오히려 생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허무맹랑한 비합리적 내지는 극단적 낙관주의는 단시간에는 효과를 보일 수 있지만 비현실적 낙관주의가 현실속에서 리얼하게 부딪힐 경우 허물어지기 쉽고 그런 현상은 자기 파괴와 사회 파괴현상으로 변질된다는 것입니다.
2차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의 생존 포로들의 회고를 볼 때 극한 불안감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비현실적인 낙관론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드리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불안감을 극복하는 것은 비현실적 낙관론적으로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을 파악하고 감내하면서 통제하는 능력을 스스로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무모한 기대감을 갖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기대감을 접으면 불안감도 다소 해소되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입니다. 지금 이런 불안은 현실이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래도 악이 선을 일시적으로 누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선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리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어두움이 밝음을 이긴 적이 역사상 없다는 평범한 이치를 갖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매우 필요해 보입니다. 또한 불안함속에 몸과 마음이 망가지면 그야말로 자신만 손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하는 자애적 생각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한국인이 불안감을 갖는 것은 오랜 과거로부터 유전자속에 담긴 어쩌면 숙명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불안감을 스스로 견디면서 조금씩 정신적 근육을 키워가다보면 어느날 웬만한 불안은 그다지 불안감으로 느끼지 않는 시기도 찾아올 것으로 믿습니다. 이런 저런 괴롭힘을 당하고 강자로부터 심한 대우를 받은 인물들이 그 고난을 이기고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왔습니다. 오늘 하루도 참 편치않은 나라의 현실속에 많이 불안해 하고 힘든 분들 많으실 것입니다. 부디 과장되지 않은 현실적 긍정생각으로 버티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도 지나갈 것이고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하시길 기원합니다.
2025년 3월 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