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님 주신 기쁨이 피곤함을 이기게 합니다.
토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격 없는 자,
아들의 이름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가오니
오늘도 영생의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27. 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28.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소리 질러 불러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29.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32.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33.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35.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36.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37. 이에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하니라
(본문 주해)
26~27절 : 랍사게의 조롱과 모욕적인 말을 들은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그에게 유다어가 아닌, 아람어로 말해주기를 요청한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랍사게의 말을 듣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마음이 흔들릴 것을 염려한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이 지금까지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 산당을 제거하여 버렸기에 이렇게 앗수르가 쳐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랍사게는 일어나서 성 위에 있는 유다 백성들도 들을 수 있도록 유다 말로 더 크게 외친다.
‘자기 대변을 먹고 자기 소변을 마신다’는 것은 포위된 성 안에서의 굶주림과 고통이 유다 백성 모두에게 임하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서 더욱더 모욕적인 말을 퍼부어 대는 것이다.
28~35절 : 랍사게는 유다 백성이 앗수르 왕에게 항복하면 왕은 그들과 평화조약을 맺어 그들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은 평화와 안정과 풍요를 묘사하는 표현이다. 이는 지금 앗수르의 위협에 두려워하는 백성들이 솔깃할 수 있는 회유책이다.
또 앗수르 왕은 가나안 땅에 못지않은 좋은 땅으로 유다 백성들을 이주시키겠다고 회유한다.
그러면서 앗수르의 신이 모든 신보다 뛰어남을 역설한다.
자신들이 정복했던 지역을 하나하나를 들면서 각 민족의 신들이 앗수르 왕에게 굴복했다고 한다.
특히 여호와를 섬기던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였는데, 동일한 신을 숭배하는 너희가 어떻게 앗수르 왕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한다.
인간적으로 랍사게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36~37절 : 이에 유다 백성들은 왕의 지시에 따라 한마디도 반응하지 않는다.
“백성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 궁내대신과 셉나 서기관과 아삽의 아들 요아 역사기록관이, 울분을 참지 못하여 옷을 찢으며 히스기야에게 돌아와서, 랍사게의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새번역)
(나의 묵상)
히스기야의 신하들은 랍사게에게 뭣 하러 아람어로 말해 달라고 요청하는가?
그 요청을 고분고분하게 들어줄 랍사게로 생각했는가?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랍사게로 하여금 ‘옳다구나’ 하고 더 기고만장하게 만들어 조롱과 욕을 더 배 터지게 얻어먹는 것이 아닌가?
공연히 쓸데없는 반응을 해서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다.
그에 반해 백성들이 랍사게의 말에 한마디도 반응하지 않는다.
좀 신기하기도 하다.
그렇게 신나게 잘 드리던 산당 제사를 히스기야가 다 막았으니, 이런 앗수르의 침공이 바로 산당 제사를 드리지 못해 생긴 결과라고 히스기야를 원망하며 술렁일 수도 있는 상황인데, 반응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다.
오늘 본문의 랍사게의 교만하게 떠드는 말은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 앞에 생기는 모든 문제와 같다. 그것이 때로는 으르렁대며 모욕과 협박을 하고,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며 살자고 회유하기 때문이다.
삶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만이 아니라, 일상에 늘 주님을 찾음으로 마음에 주님 생각이 가득하게 하는 것이 더 잘하는 일임을 요즘 더욱 실감한다.
주님과의 일상의 교제가 깊어질수록 문제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시고, 내 얕고 깊은 마음까지 다 아시는 주님께서 내게 생긴 문제를 왜 모르실까?
내 잔머리로 쓸데없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오직 내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오늘 주시는 주님의 말씀’ 앞에 한결같이 나아갈 뿐이다.
그러니 문제에 대해서는 오직 침묵하는 것이다.
잠잠히 침묵하며 주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실지를 기대하는 것이다.
문제가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지만-오늘 본문에서처럼 조급함과 두려움과 분노가 왜 없겠는가?-그것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만 반응하는 것이다.
여리고성을 마지막으로 도는 날,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것이 기억난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수6:10)
여리고성을 어떻게 하실지-무너지게 하실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나의 문제를 어떻게 하실지는 주님만 아신다.
나도 ‘생각’이 있지만, 주님의 생각만이 정답인 것을 주님과의 교제한 세월 속에서 알게 되었다.
그러니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러면 나는 잠잠하게 된다.
나의 침묵은 주님의 일하심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묵상 기도)
주님,
히스기야의 신하들처럼 랍사게에게 부탁하는 말 따위는 하지 않게 하옵소서.
일을 진정시키려다가 더 욕을 당하는 것은 항상 얕은 저의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주님보다 더 좋은 생각이 하나도 없기에 침묵하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각, 저 방법이 떠오를 때
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옵소서.
오직 그날그날 주님과 교제함으로 제 안에 기쁨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문제에 대해서는 잠잠하고,
주님께만 반응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