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똥(NewDDong)-26

<DIV> <IMG style="FLOAT: none; CLEAR: none" id=A_19452F124CD2B2A057E863 class=tx-daum-image border=0 hspace=1 vspace=1 src="https://t1.daumcdn.net/cfile/cafe/19452F124CD2B2A057" width=700 actualwidth="700" id="A_19452F124CD2B2A057E863"/>  6.초연(初演)하고 의연(義捐)하게(1) 초연:① 얽매이지 않고 태연하거나 느긋하다. 의연:② 의지가 강하고 굳세어 끄떡없이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산을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자고 했던 메기와 사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의 관절염을 핑계 삼아 삼십분만에 하산하는 경의적인 기록을 세우고 사라졌다. 등산을 처음부터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첸은 아예 오르지도 않았다. 끝도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해 오르고 또 오르고 있는 건 도준과 선뿐이었다.   메기의 말대로 등산용품은 완벽하게 갖추어져있었다. 등산복과 등산화는 그 치수마저 정확했다.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이런 것들을 완벽하게 준비했는지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첸의 재력으로 봐서는 놀랄 일도 아니었다.   도준의 얼굴 한가득 땀이 흐르고 있었다. 세발자국 앞서 걷고 있는 선은 호흡하나 흐트러져 보이지 않았다. 진달래대피소를 앞두고 쉬지 않고 걷는 선을 향해 도준이 말했다.   “김선씨, 잠시 쉬었다 갑시다.”   등산의 목적은 오로지 오르는 것밖에는 없는 것처럼 앞만 보고 걷던 선이 도준의 말에 잠시 멈춰 서서는 도준을 돌아본다.   “이사님, 쉬는 코스 지났어요.”   의미도, 이유도 없이 계속해서 산을 오르기만 했던 도준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까는 쉬는 코스 멀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산에는 쉬는 코스 지정석이 따로 있답니까?”   도준의 생각지도 않은 투정에 선이 살풋이 웃으며 대답했다.   “삼십분만 더 가면 대피소에요. 거기서 쉬었다 가요.”   울창한 숲길에 둘러쌓여 쉴세 없이 오르고 또 올랐다.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단절된 숲길이 더없이 싱그럽고 깨끗했다. 녹음이 코를 통해 폐로 들어가자 몸속을 정화시키고 마음을 씻는다. 하지만 쉬지 않고 오르는 것이 등산의 전부는 아니다. 걸어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적절히 조절해 주어야 결국 정상까지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선이 짙은 푸름을 한 바퀴 둘러보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물이라도 마시고 갈까요?”   선이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도준이 오기를 기다렸다. 도준이 우거지상을 하고 선의 옆자리에 와 앉는다. 가방을 벗어 물을 꺼낸 후 한참이나 들이켰다. 등산 중에 처음 열어본 가방이었는데 그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 들어있었다. 비닐팩에 오이와 토마토, 플라스틱통에는 과일이, 견과류가 든 깡통과 초코바와 양갱, 이온음료와 물병, 약간의 상비약과 손수건까지. 처음 멧을 때 생각보다 무거워 무엇이 들었나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빼곡히 들어 찬 물건들을 보니 수긍이 갔다. 아침도 먹지 않고 산에 오른 터라 도준은 시장기가 돌았다. 오이를 꺼내어 한입 베어 문다.   “맛있어요? 먹어보라는 소리도 안해요?”   “......”   “한라산은 처음이지요?”   “그렇습니다만...”   “옛날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선의 물음에 도준은 대답이 없었다. 선도 딱히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산을 업은 사람이 살았데요. 산을 업고 한참을 걷다보니 혈관이 끊어지고 생명이 다할 지경에 이르렀지요.”   뜬금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선의 표정은 홉사 그 사람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괴롭기만 했다. 도준은 입에 담긴 것을 기계적으로 씹으며 잠자고 듣기만 했다.   “아무도 그 산을 같이 지고 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질시와 공격으로 그 산은 더욱 더 무거워져만 갔죠. 결국엔 그 사람이 산을 업은 체 쓰러졌어요. 그 산은 그 사람의 살을 파고들고 뼈를 부수고 피를 내고 내장을 찢었어요. 그 사람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산을 버릴 수 없었어요. 산은 그 사람 자체였으니까요. 부서진 팔과 다리를 추스르고 찢어진 마음을 다시 이어 사내는 다시 일어섰어요. 오르는 것이 산인데 도리어 산이 이 사내에게 올라타 그 무게를 온전히 실었으니 이 사내는 그 산을 감당하며 걸을 수밖에 없었어요. 산을 지고 걷는 사내에게 무슨 해결책이 있을까요?”   선의 길고 긴 물음에 도준은 담담하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내려 놓으면 되지 않습니까.”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도준을 보고 선이 나무랐다.   “말했잖아요. 산은 그 사내 자체에요. 이사님은 팔이 귀찮으면 때어 버릴 수 있어요? 산은 선택상황이 아니에요. 이야기를 콧구멍으로 들은거에요?”   선이 산을 짊어진 사내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몇일 전 한복집   “선, 큰일났어!”   “무슨 일인데 그래?”   좀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는 진이 호들갑을 떨며 작업실로 올라왔다.   “네 디자인이 세어나갔어.”   “뭔 소리야?”   “이번 패션쇼에 선보일 네 디자인이 세어 나갔다고.”   “뭐?”   아님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였다.   “뭔 소리데요?”   상구도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물었다.   “이것 좀 봐.”   진이 허둥대면 잡지책 한권을 내밀었다.   <최복한복디자이너의 패션쇼 ‘사군자’>   큼지막한 타이틀과 함께 사군자가 수놓인 한복을 입고 있는 모델과 환하게 있고 있는 어느 디자이너의 사진이 페이지가득 장식하고 있었다.   “이게 뭐데?”   잡지책을 받아든 상구가 아연실색하며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된거에요?”   좀처럼 놀라지 않는 상구의 반응에 혜주가 다가가 책을 본다.   “어머, 어떻하면 좋아.”   상구의 옆에서 혜주도 어쩔 줄 몰라하며 울먹였다.   “언니, 어떻하면 좋아요.”   그렁거리던 눈물의 어느새 혜주의 눈에서 떨어졌다.   “뭔 일이고? 이게 뭐꼬!”   미숙의 반응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반응에 선도 다가가 빼앗듯이 잡지책을 집어 들고 문제의 페이지를 보았다. 너무나도 잘 아는 동료디자이너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패션쇼에 내보일 한복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게...대체....”   사군자라는 주제는 선이 일년동안 준비했던 패션쇼의 주제였다. 아무도 모르게 준비했고 또 심혈을 기우려 준비했다. 외부에는 일절 알리지 않고 준비했던 쇼인데 어떻게 버젓이 똑같은 소재와 똑같은 주제로 다른 사람이 먼저 공개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할 말을 잃은 선을 보며 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아...놀라지 말고 들어...”   “누구야.”   선이 책에서 시선을 때지 않고 물었다.   “범인이..... 초희란다.”   “뭐?”   “거짓말”   “뭐시여?”   진의 말에 선이 독기를 품을 눈으로 진을 쳐다봤다.   “누구?”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워매 미친년, 내 이년을 당장!”   상구가 분노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이 상구를 저지했다.   “초희가 그랬다고?”   선의 눈빛이 무시무시하게 빛났다.   “얼마 전부터 만난다는 그 남자 있잖아. 회계사라던 그 남자. 그 남자 알고 보니까 회계사가 아니라 최복 직원이었데... 네 디자인 빼내려고 초희한테 의도적으로 접근 했다나봐.”   “....”   선이 할 말을 잃었다.   “그 옆 건물에서 일한다는 그 회계사? 그 미친놈이 어떻게 우리 디자인 빼내갔는데? 그거 돌아이 아이가?”   진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얼마 전에 다들 퇴근하고 초희가 그 남자한테 가게를 구경시켜줬데요. 어떻게 하다보니 작업실까지 구경시켜줬는데 그 짧은 순간에 작업실에 놔뒀던 디자인북을 본 모양이에요.”   “내 이놈 맥아지를.”   “엄마야. 이게 먼일이고...참말로 못되쳐먹은 놈이네...엄마야...”   “언니....”   “내 이 호로새끼를!”   상구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연심 욕지기를 쏟아냈다. 정신없는 와중에 선이 진에게 물었다.   “초희는?”   “탕비실에 숨어서 울고 불고 난리야. 명품 다 팔아서라도 그놈들 고소하고 자기도 죽겠다고 난리다.”   선이 갑자기 잡지책을 미친듯이 찟어 발기며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이런 십장생 도라에버같은 놈 잡히면 죽여버릴꺼야!”   “내 이 잡놈 지금 당장 죽여불고 올라네!”   상구도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마와 삼베, 모시에 그려 넣었던 선비의 정신 사군자는 선의 손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발끈같은 놈 잡히면 아작낸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는 선을 보고도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아니 말리고 싶지 않았다. 모두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상구야, 연장 챙기라. 고마 다 직이삐자.”   미숙까지 솟굳히는 화를 참지 못했다. 혜주와 연도 망연자실해하며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그만!”   땅에 박을 것처럼 고개를 숙인 선이 외쳤다. 소란스럽던 작업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이미 이렇게 된거.... 엎어 버리자.”   “뭐?”   “뭐시라꼬?”   “흑흑...언니...”   “선아....”   선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미 기사는 났고 똑같은 걸로 쇼할 수 없으니까 엎고 다시 시작해.”   “저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것들은 걍 봐주잔 말이여?”   상구가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질렀다.   “법적인 대응을 하려고 해도 증거도 없고 대응하면 시끄러워 질뿐이야. 그냥 덮어.”   “이대로 그냥두면 저것들이 계속 설칠 거 아이가!”   미숙이 안타까움에 탄식했다.   “이기든 지든 무조건 법적인 대응은 할꺼에요.”   진도 미숙의 말에 동조했다.   선이 담담하게 혜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혜주야, 미안한데 초희 좀 올라오라고 그래.”   “네....”   혜주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울며 일층으로 내려갔다.   “사장님, 오늘 예약 스케줄 있어요?”   “예약 손님들은 다 다녀가셨어.”   다행이 퇴근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오늘은 손님들에게 양해구하는 공지올리고 일찍 문 닫읍시다.”   무표정으로 선이 진에게 말했다.   “그러자.”   진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정리를 위해 일층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우리도 이만 정리해요.”   선이 힘없이 웃으며 제작실 식구들을 향해 말했다.   “우짤라고!”   “선아! 내가 다 조져버릴라네!”   일층으로 내려갔던 혜주가 울면서 올라왔다.   “언니...초희언니 못 오겠데요.”   “명품 나부랭이들 다 불사지르기 전에 올라오라고 전해.”   혜주가 다시 내려간다.   “오늘은 이만 정리하고 회식하러 갑시다.”   “뭐라꼬? 니 미칬나?”   “선아....”   연도 선을 안타깝게 쳐다본다.   “니미, 지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냐?”   선이 초라하게 웃으며 식구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난리칠수록 초희가 더 힘들어질 거에요. 물은 엎어졌고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면 다른 물을 다시 담아야 하잖아요.”   선의 말에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악독한 저년이 돈 주고 팔았으면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저 헛똑똑이년이 사랑에 눈이 멀고 마음이 멀어서 벌어진 일이니까 한번 봐줘야 하잖아. 저년 지 목숨보다 아끼는 명품 다 팔아서 찾아오겠다고 난리치는데 쓰다버린 명품나부랭이 누가 사겠어. 이참에 저년 명품중독병이나 고치면 큰 수확이지. 한번만 더 그러면 저 명품나부랭이 다 불사지를거야.”   “맞다...배신당한 저년 맘을 누가 위로해주겠노.”   미숙도 안타깝게 말했다.   “워매.”   상구도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언니....”   혜주가 문틈사이로 고개를 내밀자 선이 말한다.   “들어오라고 해...”   얼굴가득 눈물, 콧물 범벅인체 초희가 끅끅 거리며 작업실로 들어왔다.   “....죄....죄송해요.”   얼마나 울었는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죄.....엉엉엉....”   미숙이 초희를 의자에 대려다 앉혔다. 선이 마주앉아 진지하게 초희에게 이야기했다.   “노초희.”   초희는 차마 고개도 들지 못했다.   “잊어!”   선이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사랑 갖고 장난치 개보다 못한 자식은 잊어버리라고.”   “그....그자식....죽여버릴...거야...”   초희가 꺽꺽거리며 말했다.   “노초희, 복수하자. 어마무시하게 하자. 기대이상으로 보여주자. 그 대신 시원하고 복수하고 깨끗이 잊자.”   “어....어....어떻게 패션쇼.....”   여전히 초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쩌긴 뭘 어째. 다시 하면되지.”   “일년이나....준비했는데...어떻게...버려....”   일년동안 고생하며 준비했던 작업실 식구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초희는 사무치는 죄책감에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선은 담담했다.   “버린거 아니야. 잠시 묻어두는 거야.”   곡소리보다 더한 서러움이 초희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엉엉엉...차라리....때리고....욕해!”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미친 듯이 울부짖는 초희를 미숙과 혜주가 말렸다.   “이 문디야. 니 때려서 다시 돌아오면 천대도 더 때렸다. 고마해라.”   “언니 그러지 마요.”   상구가 매운 손으로 초희의 등짝을 때렸다.   “적당이해라. 그란다고 변하는 건 없응께.”   “엉엉엉...”   초희가 쉴새없이 울었다. 선도 가볍게 초희의 등짝을 후려쳤다.   “가자! 니 좋아하는 술 먹으러!”   그날 밤의 회식은 눈물 바다였다. 초희도 울고 미숙도 울고 진도 울고 연과 혜주도 울었다. 경훈은 조용히 술잔만 기우렸고 상구와 선은 뜻 없는 노래만 부르며 흥을 돋구웠다. 회식이 끝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희는 연의 집으로 함께 보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선은 홀로 호텔을 찾아갔다. 휘청이며 자신의 객실로 찾아간 선은 조용히 문을 닫고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미친듯이 울었다.   “엉.....엉.....으악!”   배개에 얼굴을 묻어 소리는 새어나가지 않았다.   죽을 것만큼 가슴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펼쳐 보지도 못한 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주저앉아 울 수가 없었다. 자신이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혼자가 된 선은 시커먼 고통을 남몰래 토해냈다.   “헉....엉....악~!”   미쳐버릴 것 같았다.   죽을 것 같았다.   숨도 쉬어지지 않고 가슴은 찢어지고 너덜거렸다.    차라리 가슴이 없었으면 했다.    차라리 생각이 없었으면 했다.   무엇이든 부셔버리고 찢어버리고 싶었다.   눈물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선은 그렇게 한참이나 홀로 오열했다.   어느내 눈물도 숨소리도 잦아들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쉼 호흡을 했다. 그렇게 선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화사하게 웃으면 출근했다.       “사내는 어떻게 해야 되냐구요?”   선이 다시 도준에게 물었다. 이 여자는 매번 상식밖의 이야기를 상식밖의 표현으로 말한다고 도준은 생각했다.   도준은 선이 어떠한 시선으로 선이 세상을 보는지 사뭇 궁금하기까지 했다.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