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4일(주)
* 시작 기도
(시 2:12)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주님...
이 땅에서 자기 의 곧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자기주장 의지는 우리를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합니다.
그렇게 깊은 수렁에 빠진 다윗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3가지 징계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 때 자기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구하며 선택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립니다(대상 21장).
이 때 하나님은 3가지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재앙을 내립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는 길임을 다윗은 깨닫습니다.
내가 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 길을 걷는 것이 가장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비록 죽음의 길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날입니다.
공동체로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나의 뜻과 나의 생각대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예배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어느 곳에서든 예배하는 주의 백성들을 살피사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이 시간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오니 오직 주님의 손에 빠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9:1-13
제목 :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4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5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7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9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10 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11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12 내 조상들이 멸하신 여러 민족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
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 나의 묵상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와서 유다 백성들과 관리들과 히스기야 왕을 향하여 겁박한다.
이에 히스기야는 마치 고양이 앞에 쥐와 같은 신세가 되어 두려워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애굽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앗수르에 항복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몇몇 신하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에게 보내어 이렇게 말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다.
“오늘은 환난과 심판과 부끄러운 수치의 날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는데 마치 아이를 낳을 힘이 없는 여자와 같습니다. 랍사게가 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조롱하였는데 하나님께서도 그의 말을 들으셨을 겁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신하들에게 말하여 왕께 전하라고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셨소. 왕은 앗수르 왕의 신하들에게 들은 말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오. 내가 한 영을 앗수르 왕에게 두어 그가 앗수르로 돌아가게 할 것이며 또한 그의 나라에서 칼에 맞아 죽게 할 것이오.”
히스기야가 이전에는 앗수르를 배반하긴 하였으나 애굽을 의지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결국 앗수르의 침공을 받고 성전과 왕궁의 모든 금과 은으로 예물을 바치는 수모를 겪고 말았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더 이상 애굽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앗수르에 항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비록 두렵고 떨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쉐마하는 것이다.
그 후에도 앗수르 왕은 여전히 히스기야에게 겁을 주며 하나님을 모독 하는 일을 늦추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의 모습은 마치 본문의 히스기야와 같다.
빌라도 앞에서 심문 당하시는 예수님은 힘없이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한 마리의 양과 같으셨다.
대제사장들이나 장로들에게 조롱과 모욕을 당하셨고 그를 지지하던 많은 백성들은 돌아서서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세상에는 그를 도와 줄 이가 아무도 없어 보인다.
철저히 외면당하고 홀로 십자가 앞에 서 계신다.
심지어 그 때는 하나님도 아들을 버리셨다.
이는 아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가 미워서다.
나의 죄를 벌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시고 대신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에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외면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이 일을 잘 감당하도록 말없이 격려하신다.
아들의 고통은 곧 아버지의 고통이다.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외면하시지만 이는 아버지께서 친히 그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히스기야에게 하시는 말씀은 이렇다.
“나를 조롱하고 너에게 겁을 주는 앗수르 왕의 말에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그에게 한 영을 보내어 그로 하여금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를 거기서 칼에 죽게 하겠다.”
아들은 당신을 철저히 외면하신 아버지께 부르짖는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들의 그 절규에 아버지의 마음은 찢어지시나 바꿀 수 없는 것은 창세전 우리에게 약속하신 아들의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말없이 십자가를 지는 아들을 격려하신다.
“두려워 말라”
이 새벽,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원수인 나를 자녀 삼으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에 나는 이 자리에 고꾸라진다.
죽어 마땅하고 죽기에 합당한 자인 나를 구원하시고 양자 삼아주시는 아버지의 그 큰 사랑에 감격하며 오열한다.
날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시다.
나는 히스기야를 겁박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며 조롱하는 산헤립이나 랍사게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위하여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내 심령에 생수가 터져 주의 은혜가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와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수도 없이 주를 외면했던 나는 주님의 외면을 받아 지옥의 아랫목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 나를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날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그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심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복음과 진리이다.
내가 살 수 있는 곳은 애굽도 앗수르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히스기야는 그것을 깨닫고 세상을 향하여 손을 벌리지 않고 오직 주의 말씀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 보고 들었던 것을 그대로 전했으며 아버지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을 사셨다.
아들의 복종을 받으시고 아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의 내용은 아버지의 영광이다.
그 영광은 아버지가 어떠한 유익도 취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시는 본질의 계시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온 히스기야에게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시고 너의 두려움의 원천을 내가 제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는 두려움 앞에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한없는 격려와 힘을 공급받으신다.
아들의 복종으로 아버지의 온전한 사랑을 내어주시는 것처럼, 아들의 십자가의 복종은 아버지께서 친히 자신의 사랑으로 그를 품에 안으신다.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셨던 그 모습,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 즉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셨다(요 1:18).
비록 아들의 십자가의 고통이 당신의 고통이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쉐마하여 복종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영광을 계시하신다.
심판은 공의를 세우며 의의 결과 화평이 임한다.
내 죄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나, 이제 나도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
날마다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는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원욕인, 자기주장의지로 이루는 선한 일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고 오직 주의 영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선한 일을 하여 그 결과를 주님께 올려드린다.
오늘도 나를 붙드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는다.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임을 믿는다.
복종하는 자리에 임하시는 주의 영광을 다시금 받으소서.
* 묵상 후 기도
주님...
원수를 대신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살려 주셨나이까?
앗수르의 산헤립과 같은 원수요 그의 졸개인 랍사게에 불과한 나에게 주님은 은혜를 베푸시어 아들을 죽이시고 나를 살리셨나이다.
이런 일은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제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라 주의 것입니다.
나의 생각은 주님의 생각이 되고 나의 행동은 주님의 행동이길 원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나에게 주시는 주의 영광은 주의 것이오니 받아주소서.
주님 안에서 잠잠히 주를 묵상하며 주를 갈망하여 주님과만 함께하길 원하나이다.
주님만이 나의 전부이길 소망하오니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게 하소서.
오늘도 주의 영광이 해같이 빛나게 하소서.
주의 은혜가 새록새록 새로워지게 하소서.
찬송과 높임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