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둥지를 날아간 뻐꾸기
홍도와 기남이가 둘이 만나 꿈같은 사랑을 나누는지도 벌써
석달을 넘기고, 참외농사도 끝나 휑한 원두막에
달도없는 칠흑같은 어두움 속에서 그들의 하루 일과를 끝낸
홍도는 기남이의 품속에서 가쁜 숨을 고른다.
기남이는 오늘따라 말이없고 어두워 표정은 잘 보이지 않지만
전과 다른 모습이다.
기남이가 홍도를 안고있는 팔에 더 힘을주어 끌어안고
내뿜는 긴 호흡이 파르르 떨린다.
아직 나이어린 홍도지만 이런 기남이의 불안한 기색을
모를리가 있겠는가...
홍도도 역시 불안하기는 기남이와 다르지 안아서일까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오빠...무슨 안좋은일 있어? ...왜 오늘은 말을 잘 안해?"
"홍도야..."
"응 오빠...말해봐 괜찮어..."
"홍도야...사랑해...사랑한다...홍도야..."
"어어...오빠...지금 울어...?"
"ㅎㅎㅎ...홍도야...ㅎㅎㅎ"
"오빠...큰엄마가 나 만나지 말래...? 나 만나는거 아셨어?
빨리 말해줘 그런거야..."
"아니야 그런거 아니야...괜이 눈물이 난다..."
"그럼 뭐야...내가 싫어졌어?...어?...내가 싫어?'
"바보야 내가 널 왜 싫어해...네가 좋아 죽을 지경인데..."
"그런데 왜그래...? 뭐 안좋은 일 있어?"
"홍도야..."
"응 말해..."
"홍도야...나... 낼 군인간다..."
홍도가 놀래서 벌떡 몸을 일으키고 채근했다.
"뭐? 오빠 다시 말해봐.."
"입영 영장 받은지 한참 됐는데 너한테 얘기 못했어
미안해 홍도야..."
"싫어 그런법이 어딧어? 나혼자 어떻하라구..."
"홍도야 걱정하지마...군대 갔다 와서 너랑 꼭 결혼 할꺼야...
삼년이야...삼년만 기다리면 돼..."
"아잉...싫어... 삼년씩이나 오빠 없이 어떻게 살어...하루도
못살거 같은데 삼년 씩이나...어떻게 살어....ㅎㅎㅎ"
"홍도야...나두 너 없이 하루도 못살거 같아...나두 정말
가기 싫어...하지만 안갈 수도 없는거잖아...홍도야 삼년만
기다려주라 어...너 그동안 딴놈 만나면 안돼 알았어?..대답해 빨리"
"아...잉...하루도 안보면 미칠거 같은데...삼년을...어덯게..."
"홍도야...약속해 빨리...기다린다고 빨리 대답해...사랑한다 홍도야..."
"몰라..몰라..."
"홍도야...편지 열심히 쓸게...꼭 기다려야 돼 응"
"알았어...기다릴께...기다릴거야...오빠두 약속 꼭 지켜야 돼?"
"그래 하늘이 두쪽나도 꼭 지킬께?"
"그럼 오늘이 오빠와 미지막 이잖어...낼부터 못보잔어..아이..."
그들의 애절한 맹세는 차돌같이 단단했고 안타까운 이별의 아픔은
밤이 이슥 하도록 그칠 줄 모르고 새벽녘이 돼서야
홍도는 후들거리는 몸을 겨우 추스려 집으로 돌아갔다.
뜬눈으로 새벽 아침을 보낸 홍도는 기남이 입영길이 멀리 보이는
뒷동산에 올라 이복형과 함께 읍내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기남이를
바라보며 가까이서 보낼 수없는 안타까움에 가슴만 움켜쥐고 흐느낀다.
몰래한 사랑 때문에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작별인사도 없이
메어지는 가슴을 두드리며 눈물로 기남이를 보내야 했다.
"오빠...기다릴께...꼭 ...기다릴께..."
홍도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져 앉아 가랑닢 사이로
멀리 모퉁이를 돌아 멀어져 가는 기남이를 망연자실 바라본다.
홍도의 검은 눈동자는 촛점을 잃고 눈물이 앞섶을 적신다.
기남이의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찻던 홍도의 부푼 가슴속은
한순간에 텅 비고 허전함만 남았다.
짧은 순간에 너무 뜨거웠던 사랑 이었기에
삼년이라는 한시적인 이별 이지만 홍도에겐 삼십년 보다도
더 긴세월이 될지도 모르겠다.
낮 뻐꾸기 우는 소리가 홍도의 여린 가슴을 파고들어 더 아프게 했다.
"뻐꾹... 뻐꾹... 뻐꾹..."
참외도 수박도 없는 황량한 원두막에 쪼그리고 앉아
기남이의 체취로 텅빈 가슴을 달래보려 하지만 기남이의
달콤한 밀어가 귓가에 맴돌아 더욱 참을 수 없는 그리움만 더해간다.
낮뻐꾸기도 밤뻐꾸기도 기남이와 함께 날아 가고 가을 바람만
스산하게 원두막을 스쳐간다.
앞마당 한구석 돌담가 감나무 가지에 무겁게 매달린 감이
짙은 주홍색으로 익어 가지만
기다리는 기남이의 소식은 오지 않았다.
기남이를 가슴저리며 배웅하던 뒷동산 떡갈나무 아래 앉아
기남이가 점점히 멀어져 간,
길 모퉁이를 하염없이 바라보지만
빛 바랜 억새풀 사각 거리는 소리만 귓가에 맴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노란샤스를 흥얼 거리며
즐거워하던 홍도가 갑자기 초췌해가는 모습을
의아하게 보시던 어머니의 얼굴에도 근심이 잔득 배어있다.
"홍도야 너 요새 왜 그러는거여? 꼭 넋나간 년처럼 어디다
정신팔구 다녀? 너 혹시 기남이 좋아한거야?
그 첩의 자식하구 뭔일 있었던게야?"
"아냐 엄마 일은 무슨일..."
"아니면 왜 그놈 군인 가던날 부터 넋을 놓구있어?
설마 그놈하구 연애질 한거아녀?"
"엄마 왜그래...으흐흑...."
"이년좀 봐...기남이놈을 좋아한거냐?"
"아니야... 나니라구....흐흐흐"
"아이구 속터져...너 이년 행여 그놈하구 어쩔생각 아예
하지말어...군인간게 천만 다행이지만 그놈하구
소문이라두 내면 너죽고 나죽을 줄 알어 아버지가 아시면
너는 그날로 쫒겨나는거여 이년아..."
울면서 사립문을 뛰처 나가는 홍도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 지는듯 고개를 가로 졋는다.
"에이구... 저것이 아무래두 수상해...그렇지 안구서야
저럴 까닭이 뭐람...?봉순이 한테 좀 물어봐야 되겠구먼
마실을 자주 가더니만 싸우기라두 했나...원...
통 말을 안하니 저년의 속을 알 수가 있어야지... "
요즈음 들어 밥맛도 잃고 짜증만 가득 들어찬 얼굴에
말수까지 잃은 홍도를 바라보는 어머니는
가을 걷이에 동생들 수발에 힘들어 그러려니 하면서도
좀처럼 짜증 한번 내는 일이 없었던 홍도였기에
더욱 걱정 스러울 수 밖에 없다.
힘든 일이던 짜증나는 일 이던 부모님의 일손을
한몫 거든다는 생각 뿐 이었고,
집 에서나 원두막 에서나 한가할 땐 월간 잡지를
한 페이지도 빠짐없이 탐독하며 슬픈 이야기엔 눈물도
흘렸고, 우스갯 이야기엔 혼자 깔깔거리며 웃고,
가슴 설레이는 이야기엔 얼굴도 붉히고 가슴이
콩닥거리는게 전부였다.
며칠 전 부턴가 속이 메스껍고 밥냄새가 싫어졌다.
오늘 점심엔 감자 냄새가 역해 헛구역질 까지했다.
툇마루 끝에 앉아 멀리 원두막을 바라 보지만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기남이의 입영길 마지막 뒷모습을 바라본 뒷동산 마루턱에
앉아 오가는이 없는 길목을 촛점 없이 바라 보지만
스산한 갈바람에 엉클어진 머리카락만 흩날린다.
기남이가 군에 입대한지 겨우 달포가 넘어 가지만
홍도에겐 기남이 생각 밖에없는 텅빈 하루가 삼년 이고,
소리없이 베개깃을 적시며 잠 못이루는 하루밤이 십년 처럼 길었다.
날이 갈 수록 늘어만 가는 헛구역질에 생기가 넘치던 얼굴마져
핏기가 사라지고 시도 때도없이 틈만 나면 뒷동산을
오르내리는 홍도의 전에 없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무거운 한숨도 늘어갔다.
오늘도 석양에 지는 노을에 주홍 빛으로 물든 억새꽃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마루에 앉아 오지도 안을 기남이를 기다리는 홍도의 여린 가슴은
타 들어 가지만 알리 없는 갈가마귀 떼만 먼하늘을 무리지어 맴돈다.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홍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조용히 다가가 옆에 안는다.
"누구여? 두석이여? 기남이 놈이여? 두석이라면 니가 이렇게
혼자 애태울 일은 아닐게구...기남이놈인거여? 그놈이여?
니년이 지금 홀몸이 아닌거 같은데...속 시원히 털어놔봐 이년아...
기남이여? "
다그치는 어머니의 성화에 홍도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고 격하게 흐느낀다.
"엄마....흐흐흑..."
"어이구 이년아 네나이 인제 열일곱이여 이일을 어쩐다니
이 미친년아 이년아...어쩐지 밤마실을 뻔질나게 댕긴다 했더니
그 첩에 자식 한테 미쳐 밤이슬 맞아가며 거기다
애까지 만들어 온거여...? 어이구 미친년아...이일을 어쩌면 좋아...
아이구 이년아...응?...왜 하필 기남이여...동갑내기 두석이도
있는데 왜 하필 첩에 아들놈이여 이년아...?"
"엄마...흐흐흑...."
"어이구 시상에...어이구 이 일을 어째...? 애띠두 들벗은 년이...
나이 열일곱에 혼인두 하기전에 애를 먼져 갖다니...처녀가 애를 낳다니..
동네 챙피해서 어덯게 낮을 들고댕겨 이년아...니년을 이렇게 망쳐놓구
그놈은 훌쩍 군인을 간거여...?...차라리 애를 갖을거면 두석이 애를 갖지
아이구 미친년... 아이구 속터져..."
"엄마...엄마...으흐흑..."
"얼른 내려가...아버지 아시면 너는 맞아죽어..."
낮뻐꾸기 소리마져 사라지고 귓볼을 에일듯 찬바람만 휘 몰아치는
원두막에서 울고,
산모랭이 기남이가 금방 이라도 손을 흔들며 돌아올 것만 같은 길이 보이는
산등성이 앙상한 나무가지에 삭풍 스치는 소리만 요란한 억새밭에 앉아 울며
알듯 모를듯 태동이 느껴지는 아랫배를 어머니의 도움으로 졸라매고,
그렇게 한겨울이 가고,
기남이가 떠나가던 길가에 진달래가 붉긋붉긋 피어나는 봄이 와도,
홍도가 애타게 기다리는 기남이의소식은 오지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진달래가 만발하고 벗꽃 흐드러진 뒷동산에 앉아
혹시나 기남이가 돌아 올지도 모를 길 모퉁이를 바라보던 홍도의 눈동자가
갑자기 커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기남이가돌아 와야할 그 길모퉁이에 빨간 자전거를 타고 바삐오는
우체국 집배원이 눈에 들어오자 길도없는 산비탈을 재빠르게 뛰어 내려간다.
"아저씨...저 김홍도 인데요 저한테 온 편지 주세요..."
"김홍도?...편지 없는데....누구 편지 기다리니?"
"김기남씨요..."
김기남이라는 이름을 들은 집배원이 흠짓 놀랜다.
"엉...누 누구 김기남이...?"
"네 김기남씨요."
"김홍도라구 했지? 김기남씨하구 잘 아는 사이니?"
"ㄴ...저...저의 오빠요..."
"그래요...아가씨 김기남씨 소식이 있긴한데 아가씨한테 온 편지가 아니고...
아... 이거참...이거...어쩌나...이편지 집에 직접 전달해야 되는데..."
"네? "
"아가씨 기남이 부고야...."
"네? 부고라니요...?"
"허...이거참..."
"아저씨 왜요?"
"저...김기남씨가 월남전투에서 베트공과 싸우다 전사 했다는 부고야..."
"네? 저...전사요? 전사라니요? 오빠가요?...오빠가 죽었다고요...?
그럴이 없어요...아저씨 잘못 아신거 아녀요? 오빠가 왜 죽어요...?"
"내가 잘못 안거면 얼마나 좋겠니...에이구...참...ㅉㅉ...나 얼른 가야돼..."
홍도는 땅바닥에 풀썩 주저 앉았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리를 도저히 믿어 지지가 않았다.
"전사라니... 기남이오빠가 죽다니...아니야...그럴리가 없어..."
그럴리가 없어....아닐꺼야...아니야...오빠...안죽었다고...말해...어..
오빠..."
실신 할 것만 같은 홍도의 절규는 기남이가 들을리도 없는 허공으로
흩어지고, 몸을 추스려 일어날 여력도, 울 기운 마져도 없이
기남이의 마지막 모습을 본 먼산 먼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어쩌랴 월남전에서 전사한 젊은 장정들이 어디 기남이 뿐이겠는가?
머나먼 남의 나라 이국땅에서 자식을 잃은 아픔을 안고 사는 부모 형제들이
기남이의 가족뿐만도 아닐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비통에 젖어
드러내고 울지도 못하는 연인들이 어디 홍도 뿐이겠는가?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우리의 피끓는 자식들이 무사귀환 하기를 하늘에
빌고 땅에 빌던 사랑 하는이 들에게 아픔을 남긴채 장렬히 산화 했다.
기남이도 그들과 같이 남의 나라 평화를 위해 싸우다
열일곱살 홍도의 가슴에 불같은 사랑과 그리움을 을 가르쳐 주고,
땅을치며 통곡을 해도 모자랄 고통과 슬픔을 안긴채 싸늘한 한줌의
재가되어 돌아왔다.
한여름 달과 별, 그리고 풀벌래와 이슬이 공존하는 원두막에서
사랑을 부르던 밤뻐꾸기는 훨훨 사랑의 둥지를 날아갔다.
(예고: 4 部 청산비곡 <靑山悲曲> )
첫댓글 설아토님
긴 애절한 사랑글
가슴 조이며 아슬아슬
참 재미있게 잘보았어요
한편의 사랑이야기가
애절한 긴 겨울밤이였어요
감사한 댓글은 느즈막히
이 시간에 올립니다 ㅎ
글을 참 잘도 쓰시군요, 설아토님
되고님 송구합니다
이러구 저러구
저러구 이래서
뒤늦게 인사 드립니다
용서 하시구요
재미 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용기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즐겁고 평안한 시간 되세요.
@설아토
설아토님 82
4부 부탁드려요 ,,
흥미 진진한 소설속으로
진지하게 푹 빠져들고 싶군요 ,, 되고 ㅎ
안녕하세요
반가우신 설아토님
올려주신 좋은 글에
머물다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갑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 가네요
맛저 하시고
행복한 밤이 되세요~^^
감사합니다 나의 향기님
바로 인사 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봄비가 개인 화창한 봄날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나의 향기님 계절이군요
항상 찾아 주시고
꼼꼼히 챙겨 용기를 주시는
나의 향기님
건강 하시고
평안한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