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아저씨, 어딜 갔지? 화장실 간다고 한 것 같은데 행적이 묘연하다. 마음은 바쁘고,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있다.
잠시 뒤 아저씨가 나타나 차 뒤쪽에 치울 게 있다고 해 1분 정도 기다리니 타라고 하신다. 뒷좌석에 탔더니 무슨 축산 리포트가 뒷문 서랍에 담겨 있다. 아, 그 계통 일을 하시는 분이군, 이렇게만 생각했다. 원래 운봉 분인데 구례에 출장 온 김에 잠시 짬을 내 어머니 산소 둘러보고 구례 가는 길이라고 했다. 컴불 형님 연배 정도.
어쩐 일로 이렇게 혼자 산을 헤매고 다니느냐, 뭐 이런 주제로 얘기를 나누다, 지금 노고단 대피소에 8시 무렵에는 들어가야 하겠다는 말이 무심코 나와 버렸다. 그 전에는 느긋하게 차를 몰던 아저씨가 폭주족으로 돌변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말씀을 많이 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저 어릴적 지리산을 많이 돌아다녔다는 얘기 정도만 하고는 운전에 집중했다. 그런데 날 원하는 시간에 성삼재에 내려주겠다는 일념만이 느껴진 드라이빙이다.
뒷좌석에 앉은 채로 배낭 옆주머니에 찔러둔 지갑을 조심스럽게 꺼내 만원 짜리 석 장을 꺼내 손에 쥔 채로 성삼재에 이르렀다. 이미 날은 캄캄, 성삼재 주차장을 마지막으로 빠져나오는 듯한 차량 한 대가 한창 계산 중으로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배려해주신 데 대해 감사해서 드리는 겁니다. 꼭 받으셔야 제가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올라오라고 했더니 8만원을 달라고 해서 그런 부탁을 드렸던 거고요. 제 조그만 성의니까 꼭 받아주세요.
그런 말씀 마세요. 언젠가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면 그뿐입니다. 그 돈을 받으면 제가 더 부담스러워 안됩니다. 그냥 내리셔서 빨리 노고단 올라가세요. 날이 어두워지면 더 곤란해질 겁니다.
사실 1998년부터 레저 기자를 하면서 세상의 많은 인연을 만나 신세를 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남 고성의 한 모텔 주인장. 가을이었는데 공룡 발자국 보느라고 밤 8시가 넘어 모텔에 들어가게 됐다. 밥은 먹을 수 있냐고 질문을 던졌더니 주인장이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왜지? 하고 있는데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와 자동차 쪽으로 데려가는 거다.
이쪽에서는 지금 시간 밥 먹을 데가 없고, 저희 동생 내외가 사천 시내에서 음식점을 하는데 15킬로미터 정도 달려가면 된다. 어차피 내가 늘 이 시간 되면 설거지도 해주고 허드렛일도 도와준다. 그러니 부담갖지 말고 함께 가자.
그래서 5000원인가 하는 백반을 사먹게 됐다. 아저씨는 동생 내외 도우며 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날 태워 모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내일 아침은 우리 식구들 먹는대로 같이 먹자고 그런다. 아이구 이런 신세를, 그런 말씀 하지 마시고.
다음날 주인장이 불러서 생전 처음, 그리고 유일하게 모텔 사무실-키 맡기고 그러는 곳-에 소반 갖다놓고 아저씨와 겸상을 했다. 부인과 아이들은 벌써 먹고 학교 갔다고 했다. 서대 몇 마리 구운 소박한 밥상인데 사실 가슴이 먹먹해 맛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밥상 물리고 나니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오신다. 상족대 건너편 코끼리바위 쪽 가보려고 합니다. 그래요. 마침 별 일도 없고 하니 내가 자동차로 모셔다 드릴게.
저야 고마운 제안이지만 폐 끼쳐 어떻게 하죠?
그런 말씀 마세요.
코끼리바위를 카메라에 담고 났더니 서울에 어떻게 돌아가시려고요? 네 비행기 예약해뒀습니다. 그래요. 몇 시?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시간-대략 오후 2시쯤이었던 것 같다. 그럼 시간이 좀 남네요. 제가 멋진 곳 하나 더 추천해드릴까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래서 간 곳이 문수암이란 암자였다. 이제 막 길을 닦은 듯한 험한 고갯길을 차로 한참을 달렸는데 암자가 한창 불사 중이었고 거기서 조금 더 오르자 남해 바다가 좍 펼쳐지는 무이산 전망대가 나왔다. 고성에 오면 꼭 들러야 할 부에나비스타였다.
공항까지도 태워다드릴게요. 아니 저 그러지 마시고 공항 버스 탈 수 있는 사천 시내까지만 데려다주세요. 아뇨 뭘, 사실 아저씨는 문수암 오르며 그랬다. 모텔 장사가 안돼 매각했고 이제 며칠 뒤면 인수인계하고 당분간 쉬려고 한다. 그런데 귀한 손님이 오셨다. 마침 시간도 있고 해서 이렇게 돕는 거다. 이렇게 좋은 인연을 쌓으면 나중에 다 내 복이 된다. 그러니 내 행동은 완전 이기적인 거다. 하하. 그러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
사천공항 앞. 모텔 주인은 이름 석자만이라도 알려달라는 내 간청을 한사코 손사래친다. 좋은 인연은 언젠가 다시 만나는 법입니다. 좋은 일 많이 하시고 나중에 좋은 기회에 다시 뵙죠. 합장.
문수암 오르자고 했던 건 그저 풍광만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닌 것을 깨달은 건 그때 합장하는 주인장의 얼굴에 번진 미소에서 느꼈다.
아이고, 얘기가 한참 옆길로 샜다. 7시 15분쯤인가 됐다. 날 이곳까지 태워다준 아저씨 차 뒤꽁무니를 눈으로 좇을 새도 없이 노고단 오르는 길을 밟는다. 1년 전 여기서 얼마나 실랑이를 했던가. 만복대 길고 험한 길을 오르고 내려오느라 기진맥진한 피러 회장님은 얼마나 아이고 죽겠다를 연발했던가(결국 다음날 아침 의외로 선선히 종주를 계속하겠다고 해 동행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아침부터 누룽지 주냐고 입 튀어나왔던 가상이, 그리고 팔랑치 넘어서면서부터 계속 전주 따님과 문자 주고받으며 이상 조짐을 보이던 그린랜드 형님이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둘까지 포함시켜 엄청난 반찬과 먹거리를 준비했던 봉규 형님이 가장 섭섭해 하는 것 같았다. 노고단 올라 밥이라도 먹고 돌아가시라,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추억을 되밟다 날이 정말 어두워져 안되겠다 싶어 손전화로 프로야구 중계를 틀어놓고 그 빛으로 길을 밝혀 올랐다. 샛길로 오르다 임도 만났다가 다시 샛길로 오르려는 순간, 갑자기 차 소리가 났다. 손을 번쩍 들었더니 웬일인지 세워준다. 옳다구나 여기고 뛰어가 문을 열려니 공익이 내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듯 안됩니다, 하고는 문을 쾅 닫는다.
내 복장이 지네들 공익과 비슷해서 태워주려고 멈췄다가 아닌 걸 알고는 줄행랑을 친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넘을 봤나. 국립공원 공익 패악 2탄인 셈이다.(한참 뒤 3탄도 나온다)
숨이 턱에 차오르게 노고단 대피소에 올라 주민증 꺼내 보여주고, 내가 그 정령치에서 올라온 넘이다, 이런 얼굴로 일부러 숨소리를 크게 냈다. 니들이 날 이렇게 골탕먹였지? 하는 식으로다.
미안했던지 그저 일반적인 손님처럼 대하며 주의할 사항들을 일러준다.
전투식량-불당기면 데워지는- 꺼내 들고 취사장으로 향하는데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진다. 불 당기니 이런 걸 처음 본듯한 분이 말을 붙인다. 혼자다. 뭐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제가 먹던 건데 드실래요? 햐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런데 1.5리터짜리 병에 딱 두 잔 분량 남았다. 자존심 상할 일이지만 그냥 받아 먹었다. 이것도 어딘가 싶어서였다.
사실 내 번호 침상에는 낯선 이의 짐이 풀어져 있어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들어가보니 취사장의 그 혼자인 남성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둘 다 같은 번호가 주어졌다. 마침 공익이 들어오길래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랬더니 이 싹수 없는 공익이 그런다. 그냥 빈 자리 주무시면 안 되겠느냐고? 지가 잘못한 게 아니더라도 내가 공익이라면 그랬을 거다. 참 송구스럽게 됐습니다만 빈 자리 주무시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이렇게 말본새를 잘못 배운 애들이 국립공원을 관리하고 있다.
양치질 좀 하고 돌아와 잠을 청하자니 정신이 말똥말똥한다. 스트레치도 해보고 프로야구도 다시 보고 하는데 취사장 그 분이 이런저런 말을 걸어온다. 시큰둥하게 받아주고 있는데 아까 산장 올라올 때 풀섶에서 고기 구워먹던 일행들이 술 냄새 풍기며 들어와 한참 이죽거리다 이내 잠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분이 기차 화통을 삶아드셨다.
웬 아주머니가 남편인지에게, 아니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코를 골 수가 있어요? 한다. 아, 오늘 밤 꿀잠 자긴 다 틀렸구나, 나쁜 예감은 늘 적중한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전전반측은 이런 때 딱 쓰는 말이렸다. 왼쪽으로 누워 보고 오른쪽으로 누워 보고, 몸을 구부려도 보고 쭉 펴보기도 하고, 이제 기차 화통이 적어도 서너 개쯤으로, 그것도 돌비 시스템 5.0 정도로 진화했다.
새벽 2시 참다못한 아저씨 아주머니 네 분 정도가 그토록 기피하던 출입구 쪽으로 피난온다고 또 발걸음 소리를 낸다. 하이고 이것도 또 민폐인데 싶었다.
정말 우리 산장 문화는 좀 바뀌어야 하지 않나, 마음 속으로 신문 사설, 아니 우리 신문의 ‘길섶에서’-200자 원고지 3장 남짓으로 짧은 에스프리 형식-를 메웠다.
첫댓글 코골이 심한 나 같은 이들은, 참 곤혹스럴때가 많아서, 괜시리 미안해지네, 홀로 지리산 하는 재미가 쏠쏠 느껴지네.
알대장의 인품이 얼굴에 드러나니 좋은 인연이 계속되지요. 코고는건 나도 만만치 않으나 산장에선 절정 고수가 한두분 있기마련...다음에는 귀마게를 꼭 지참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