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월 맑음.
오늘은 일어나서 이불을 모두 접고 아침을 먹은 후 아버지는 고추 뽑은 것 안골에 가셔서 실어가지고 오신 후 점심 먹고도 실어오셨다.
계수씨는 종일 빨래를 하셨으며 나는 고추 갔다 놓은 것 3단 정도 따고 소죽을 끓였다.
그동안 밀린 일기를 정리 기록했다.
점심먹고 대학병원에 전화해보니까 박상영씨는 퇴원했으며 정대식씨는 3층으로 올라가고 김성득씨는 여전히 차도가 없다며 아줌마가 받았으며 전화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셨다.
국회 언론 청문회를 보고 오늘 하루 감사히 보내고
생질여 명을 김 朗밝을랑 玄검을현 이라고 작명했다.
내가 연구한 결과는 더 이상 안된다.
오늘은 이만 잠자리에 들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11월 22일 화 맑음
아버지는 고추 따시고 나는 국회 청문회 하는 것을 보고
계수씨는 오늘도 어제 이어 빨래를 하시고 오후 점심 먹을 때까지 한단 따고
종형수 종질 기준이와 병일조모 등 함께 점심을 먹었다.
오후 계속 TV를 시청하고 부친께서 여물을 썰고 소죽을 끓이시고
계수씨 고추 따는데 함께 따셨다.
저녁에도 생질녀 성명을 작명 연구하여 오늘은 랑현으로 정하고 일기를 기록하고
대학병원에서 지란지교를 위하여 쓴 것을 다시 검토하여 읽어보고
국어사전을 찾아 지란지교를 위하여란 뜻을 깊이 헤아려 찾아 읽어보니
정말 좋은 뜻이었다.
저녁 종형님한테 전화하여 동생이 부탁한 돈 20만원을 제수씨 가셔서 십만원 빌려오셨다. 상명 할매 돈이자 더 받은 것 천원과 상명모 빌려갔던 천원을 갖다 주고 가셨다.
기분 나쁜 이야기와 마음 상하게 하는 일이 있으나 부처님 인욕으로 염불합니다.
부처님이 해결하여 주옵소서.
11월 23일 수 맑음 새벽 비 3cm
오늘 계수씨 애들 데리고 첫차로 정산가시고 아버지는 종일 고추 따시고
나는 청문회 재방송을 보고 전두환 대통령 사과성명문을 발표한 후
연희동 자택을 떠나 강원도 소재 내설악산 백담사에 은둔 생활로 들어갔다.
점심은 짬뽕찌게를 만들어 아버지와 먹었으며
앞집 할매 콩나물 좀 달라하여 가져가시라 하였더니 가지고 가시고
미산 아지매 감주 해 준 찜통 찾으러 와서 가지고 갔다.
옥신네 엄마 와서 양말 선물가지고 갔으며
숙모 빨래 같다주고 앞집 시목이 신발 부산이모 소포로 보내온 것 같다주고 오셨다.
아버지 TV보다 저녁 소죽은 내가 끓이고 큰집 발이 두개 같다주고
앞집 화독 같다주고 찌게 다시 끓여 저녁을 먹고
오늘이 매제 생일이여서 축하전화를 하니 놀러가고 없었으며 사장댁 받았다.
동생이 받아 사돈아가씨 결혼날짜 크리스마스 날이 좋다고 해주고
생질녀 랑현으로 작명했다니까 너무 어려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맘대로 하라고 했다.
일기를 대강 속기하고 잤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시목이 초 생일이라고 돈 만원을 못 주어더니 오늘에야 줄 수가 있었다.
11월 24일 목 맑음.
바람이 많이 불고 영하로 떨어졌다.
제수씨 오후 오시어 아버지와 함께 배추 뽑아왔다.
아버지 고추 모두 따시고 나는 날이 추워 꼼짝없이 방에 있었다.
효순 조모 오시고 뒷집 할매 오시어 놀다 가시고
양조장 운전기사 탁주상자 찾으러 왔으나 없어서 그냥 갔다.
제일상회 음료수 빈병 3상자 가지고 갔다.
미나무 할매도 오셨다 가신 후 제수씨 애들 데리고 영구네 경운기 타고 오시었다.
큰집 형수 나오시어 배추 싣고 온 것 함께 내려주고 가신 후
선례가 나무 가지고 와서 소죽솥에 물을 부어 불을 넣을 수가 있었다.
조그만은게 스스로 한다고 추운데 그만 두라니까
기어코 한다고 하며 물을 갔다 부으니 참 기특하다.
저녁은 배추를 찍어서 잘 먹은 후 계수씨는 김장 고추 다듬는다고 어디로 가시고
나는 애들하고 놀다 편지 자원봉사자님한테 보내려고 초안 잡아놓고
일기쓰며 TV보다 잤다.
부처님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지혜와 용기와 희망이 생기도록 하여 주옵소서. 관세음보살.
11월 25일 금 맑음. 강추위 영하 -4℃
서울 이성친우 기숙한테서 밤 10시 40분경 전화가 왔다.
편지가 또 들어가지 안앗나 내용이 잡스러웠음으로 인품에 누가 되지 않았을까?
오는 일요일에는 전화하려나 기분 좋은 하루.
식전에는 동장이 장애자 등록 삼촌, 부, 나 사진 준비하여 도장과 신분증 가지고 면사무소에 신고하라고 했으며 대구에서 경현이가 편지를 하여 반갑게 받아 읽고,
이미영씨와 경현이께 답장을 즉시 썼다.
계수씨는 메주콩을 다듬으시고 아버지는 과원에 사과 꼬다마 4상자 실어오시고
저녁 식사가 끝나고 계수씨 마늘 까러 병일네 집에 가시고 애들하고 논다.
TV보고 아버지와 모두 잠든 후 나는 금요토론 KBS1 보면서 곡차 한잔 하고 있으니
전화벨이 울린다. 김실일까 아니면 서울 친우가 아닐까 예감이 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서울입니까/ 서울에 숙입니다. 안녕하세요?
전화해주어 감사합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편지에 밝혔듯이 염려 놓아도 된답니다.
장거리 여행 다닐 때는 자원봉사 도움으로 다니지요.
대구대학 학생들 한번씩 시외 나가자면 택시로 다니므로 경비가 많이 들므로
서울은 친척과 아는 곳도 있으나 마음 못 낸다니까 뵙고 싶어 한 번 찾아올 생각이란다.
삼일은 시간을 내야 한다고 했다.
방학이나 휴가 같은 것도 없을 텐데요 하니 그렇다고 했으며
대구에서 한 편지와 20여 통 한목 보낸 편지는 못 받았으며
대구가기 전에 보낸 것 받아보고 이번 21일날 보낸 것은 받았다고 했다.
26세 된 언니와 기숙사에서 근무한다고 했으며
전화번호 634-7104 토요일 날 오후에 하라고 했으며
언니와 목소리 비슷 안동친우라 하고 하면 된다고 했으며
기숙이 직접 받으면 친우입니다 할테니까요.
가르쳐주고 목소리 언니 카드 빌려 공중전화로 아주 밝은 목소리로 잘 들렸다.
찾아온다니 고맙고 감사하오나 대접도 못할 것이며 누추합니다. 하니
다음주 안으로 편지한다고 일단 더 확실한 주소 알아서 편지한다고 했다.
낭랑한 음성 귀가에 아른거린다.
작은 숙녀 기숙이 지란지교를 꿈꾸며 아름답구나?
내 인생이여 행복 하구나 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감기 조심 하세요? 했다. 기숙이가 고마워 예 예 하고 끊었다.
11월 26일 일요일 영하 3℃
차가운 날씨가 계속되는 오늘
계수씨는 메주를 쑤며 유태 타작을 하시는데 도우시며 함께 하시였다.
나는 콩 삶는 부엌에 불을 지피며 애들과 놀면서
마늘 한 접 꼭지 다듬어 달라하여 다듬어 담아놓고
어제 밤 친우 전화를 받은 후 낭랑한 음성 귀가에 쟁쟁 일기를 정리하고 있으니
김실이 전화가 와서 받았다.
그러고 있으니 동장이 와서 서류 할 것 하고 간뒤 불광을 읽고
어제 밤 친우 전화를 받을 때 전에 없이 마음이 이상야릇하게 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튼 어제 기분은 오늘까지 남아있어 기분이 좋다.
자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위신력을 보여 주시옵소서.
변함없는 불자로서 신념은 불퇴진의 용맹과 한결같습니다.
저녁 소죽을 끓이고 계수씨 메주콩을 포대에 넣어 밟아서 놓고
저녁 아버지 밟아 달았는데 모두 8장이었다.
영구모 효순 조모 큰집형수도 왔다 가시었다.
TV 노태우 대통령 대국민 담화문 시청 저녁 토론 시청 직업병 논픽션드라마 등을 시청하고 선례가 귀밑이 부어 아프다며 울어서 영구네 기탁이네 오환네 집에 전화로 찾아오시라
하여 선례를 잠재웠다.
아프다고 울더니 엄마 손이 약손인지 울지 않고 옥도정기 발라주니 잠을 자고 있는 것 같다 부처님 별탈 없이 났게 하여 주소서. 관세음보살.
11월 27일 일요일 맑음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TV보고 놀다 점심을 먹은 후 집 뒤 올라갔다.
아버지 마늘 논 비닐 덮으러 가시라 하고 계수씨는 빨래하시고 나는 수염을 깎았다.
큰 집 형수 나오시어 매제 지황씨 사로 구룡 도착하였는지 형수 확인 전화하니
아직 안 왔다고 했다.
소죽을 끓이고 물을 한 통 끓여 머리를 감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선례가 귀밑이 부어서 아프다더니 자고 일어나서 동생께 제수씨 약사오라고 전화하더니
안와서 오후 내가 또 했더니 오락 기계를 뜯어놓았다 하여서 그러면 오지 말라고 했다.
저녁 먹고 잘 놀다 잠을 자서 맘이 좀 놓인다.
TV보다 자정이 넘어서 잤다.
오늘도 기숙이가 무얼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가 궁금하였다.
친우가 보고 싶었다.
부처님이 도와주시리라 믿는다.
11월 28일 월 맑음.
오늘 아침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데 아차 실수로 넘어졌다.
혼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버둥대며 일어나야 하지만 계수씨 일으켜 줄까요? 하여서
그렇게 하세요. 일으켜 주세요? 했다.
참 부끄럽다면 한없이 부끄럽지만 제수씨 일으켜 주셔서 쑥스럽게 애이지기미 마음으로 제수씨 고맙습니다. 하면서 말로 직접 못 그러는 것은 내 자존심이 고약해서인지 쑥스러워 그만 일에 뭐 그런 소리까지 하면 제수씨 어떻게 생각하실까 싶어서 그런지 왜 말이 선뜻 선뜻 나오지 않는다.
아침을 먹고 모두 용계아제 생신 축하파티에 가시고 혼자 누웠다 일어나서 소피를 보고 있으니 웅동생이 비누와 편지지 풀을 가지고 왔다.
조금 있으니 고추상인이 아버지와 함께 오시었다.
뽑아놓고 딴 고추를 영구네 벌크에 건조시키는데 오늘 식전 7시반경 날이 다 밝았는데
아버지는 소죽을 끓이고 들어오셔서 잠이 들고 제수씨도 잠이 든 모양이고
나도 괴상한 꿈속에 있다가 포대 고추 넣게 주소. 하는 소리 한번 들려 눈을 뜨니 꿈이 아닌 것 같아 아버지 깨워 영구네 집으로 보내셨다 짊어지고 오셨다.
백70근 정도 되는데 만 오천 원만 달라고 하신다.
그래서 팔아가지고 준다하고 300원씩 125근 팔았다.
나머지는 떡볶이 한다하여 남기었다.
카메라 가져와서 장애자등록 한다고 사진 2매씩 필요하다하여
삼촌 나 아버지 함께 찍었다. 웅동생이 카메라 가지고 갔다.
오후 편지4통 박감사 김기락 신금숙 신옥순씨 등 고맙다고 각각 쓰고
TV보면서 일기 쓰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한다.
점심은 용개아지매네 집에서 보내와서 잘 먹고
해숙이 점심 먹으러 오라하여 아버지도 함께 가서 점심 잡수고 오셨다.
11월 29일 화 맑음
오늘 아침 이영호 상인과 아줌마 오시여 유태 5두를 팔고 시목 이모한테 고추와 마늘 참깨 등을 소포 소화물로 좀 부쳐 줄 수 있냐니까 수고해 주신다하여 주소를 적어서 드렸다.
아침을 먹고 도목할매 한태 내일 태백 외가 집에 계갈이 하러 가시면 아버지도 함께 가셨다 오시도록 하려고 문의하시니 그렇게 하라고 하시며 주소와 전화번호 적어났다 달라고 하신다.
오늘 대구 자원봉사 6명께 각각 편지를 썼다.
모두 어제 쓴 것과 10통 이였다.
계수씨 대밭골 신승화 여동생 현숙양 결혼식 부조만 전했다며 연금 쌀을 보리쌀과 타가지고 주진 매부한테 실어보네 준 것 보리쌀은 매부네 한태 팔고 쌀은 아버지 묘펀달에 가서 지고 오시었다.
저녁 소죽을 끓이고 저녁 효순 조모와 삼촌 놀러 오셨다 가시고
TV보고 일기도 쓰고 오늘도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친우를 그리면서 부처님 만나면 어떻게 도와 주시옵소서.
관세음보살
11월 30일 수 맑음
부친께서 태백시에 도목할배 하계아제 등 계원이 가시는데 함께 처음으로 가셨다.
나는 아침을 먹고 누웠다가 광주 특위 국회 청문회를 시청하다 계수씨께 편지 써둔 것 좀 부쳐 달라고 드렸다.
11시경 햇살이 따뜻하여 마당을 쓸고 계수씨는 배추를 다듬어 절이시고 나는 집 뒤 올라갔다 내려와서 점심을 먹고 오전 TV시청하다가 큰집 형수께서 찹쌀 빌려간 것 가지고 왔다 가시고 안동 삼촌께서 큰일 치르느라 수고했다며 김실이 삼칠에 누구 가며 무얼 해가지고 가는지 물으셨다.
아는데로 얘기해 드리고 제수씨께 얘기했더니 큰집형수 함께 간다더니 아니 간다고 하니 심경 변화를 일으켜 안 간다며 여러 소리를 하고 계신다.
어머니가 계시면 이럴 때는 책임 없을텐데 나이 젊은 몸으로 어떻게 사돈댁에 갈까?
좀 쑥스럽기도 하고 어려운 걸음이란 걸 이해는 하고 있다.
그러시다면 기순네 집이나 우실네 집도 사가집인데 아무리 친하고 가까울수록 더욱 조심하고 예의를 지켜야 나중에 말이 없고 실례가 덜 될텐데 내가 보건데 정도에 지나칠 때가 너무 많다.
오후 청문회 시청하다가 효순 조모 옥수수 3승정도 분쇄기에 갈아 주셨다.
형수 김치 섞었다고 가지고 오시어 저녁에 먹고 짭짤했다.
계수씨 무우 말랑이 한다고 한 대야 썰어 놓으시고 소죽 끓였다.
저녁 먹은 후 TV보고 일기도 쓰고 효순 조부모 오셔서 놀다 가시고 계수씨 안동 막내 삼촌께 전화 큰집 형수 옥신네 시목이네 한태 얘기하려니 사람이 모두 맘에 안 들어 얘기하기 그렇고 하여 얘기 안했다고 하며 막내 숙모는 뽑혔다.
여러 사람 중에서 노골적인 사람 차별을 하고 계신다.
그저 볼만하고 듣기만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하나?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