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에 놓인 극동러시아의 야생 아무르 호랑이. 한국 호랑이와 한 핏줄로 같은 아종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수용 ‘네이처21’ 대표 촬영. 서울대 이항 교수 제공
100년전 표본 시료 분석결과
아무르 아종과 유전자 일치
1900년대 초 일제의 대대적 해수구제 시책 이후 멸절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 호랑이와 러시아 극동의 아무르(시베리아) 호랑이는 유전적으로 같은 혈통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 수의대 이항 교수 연구팀은 7일 미국과 일본 자연사박물관에 보관돼 온 100년 전 한국 호랑이 표본 시료 4점을 입수해 유전자 분석을 한 결과 한국 호랑이와 현존하는 아무르 호랑이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호랑이는 1900년께만 해도 아시아 전역에 약 10만 마리가 서식했지만 현재는 3천여 마리만 고립된 지역에서 살고 있다. 호랑이는 지리적 분포와 형태적 특성에 따라 모두 9개의 아종으로 분류되지만, 3개 아종은 멸종했고 나머지 6개 중 남중국 호랑이는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어 5개 아종만이 야생하고 있다. 이 가운데 러시아 극동에 서식하고 있는 아무르 호랑이와 지금은 사라진 한국 호랑이가 같은 아종에 속한다는 사실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일본 도쿄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한국 호랑이 두개골. 이들 뼈에서 추출한 시료들의 유전자와 아무르 호랑이 유전자가 일치해 둘이 같은 아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이항 교수 제공
한국 호랑이는 다른 나라 호랑이보다 용맹하고 지혜롭다는 속설이 내려오지만 한국 호랑이가 독립된 아종인지, 아무르 호랑이와 같은 아종인지는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었다. 1904년 생물학자인 브라스는 가죽 무늬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산 호랑이를 아무르 호랑이와 다른 아종으로 분류한 바 있고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도 한국 호랑이를 독립된 아종으로 분류했으나, CITES는 1965년 뚜렷한 근거 없이 한국 호랑이와 아무르 호랑이를 같은 아종으로 재분류했다.
연구팀은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찾아낸 한국 호랑이 뼈들에서 추출한 시료 3점과 일본 도쿄 자연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호랑이 두개골의 어금니뼈를 드릴로 뚫어 추출한 뼛가루 시료를 토대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했다. 우선 한국 수의과대학과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시료로부터 디엔에이를 추출해 미토콘드리아디엔에이(mtDNA)의 5개 유전자 중 8개 단편을 증폭해 염기서열을 결정했다. 연구팀이 1174bp(염기쌍)에 이르는 염기서열과 선행 연구에서 밝혀진 호랑이 아종들의 염기서열을 비교분석한 결과 호랑이 시료 4점은 2개의 유전적 단산형(haplotype)으로 나타났다. 미국 시료 2점과 일본 시료는 같은 해플로타입으로 아무르 호랑이와 완전히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미국 시료 1점의 해플로타입은 말레이 호랑이와 같았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한국 호랑이는 1902년 로드 스미스라는 미국 의사가 목포 근방에서 포획한 호랑이들이다. 그는 당시 3마리를 잡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스미소니언의 말레이 호랑이 뼈는 100년 전에 말레이 호랑이가 한반도에 살았을 리 없고, 스미스가 한국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카스피해 부근 등 세계 전역에서 호랑이 사냥을 다닌 것으로 알려져 표본이 잘못 섞였거나 100년이 넘는 박물관 보관 과정에 기록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팀은 추정했다.
연구팀은 이번 시료 4점 이외에도 국내외에서 수집한 10여점의 한국 호랑이 시료들을 확보해 추가로 유전자 분석을 하고 있다.
서울대 이항 교수
이항 교수는 “아무르 호랑이와 한국 호랑이가 같은 핏줄이라는 것은 아직 한국 호랑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한국 호랑이의 미래는 현재 400마리 정도의 개체만 남아 있는 아무르 호랑이 개체군 보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아무르 호랑이 암컷은 400㎢, 수컷은 1300㎢의 행동권을 갖고, 부모를 떠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400㎞를 이동하는 생태적 특성도 한국 호랑이가 독립된 아종이 아닌 아무르 호랑이 아종에 속한다는 유전자 분석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전성우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극동러시아에 살아 있는 야생 호랑이 개체군 보전에 성공해 이들이 번성하고 러시아·중국·북한 사이에 생태통로가 만들어지면 아무르 호랑이가 서식 영역을 확장해 백두산으로 되돌아오고 통일 뒤 한반도에서 서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의 논문은 한국동물분류학회가 올해 1월 처음 발간한 국제학술지 <동물 계통, 진화와 다양성>에 게재됐다. ==이근영 선임기자 ==
<인터넷 한겨레에서 퍼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