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들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핵심 요충지 중의 하나가 또 러시아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블룸버그 통신은 2일 "도네츠크주(州) 남쪽의 우글레다르(부흘레다르)가 러시아군의 손으로 넘어갔다"며 "러시아군은 추운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전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고 전했다. 우글레다르의 함락은 도네츠크주에서만 마리우폴, 바흐무트, 아브데예프카에 이어 4번째다.
러시아군의 폭격에 처참하게 부서진 우클레다르/사진출처:우크라 제72 기계화보병사단 제공 스트라나.ua 캡처
쉽게 말하면 우크라이나가 지난 2014년 친(親)러시아 분리주의자들과의 무력 충돌 이후, 10년 가까이 장악해온 도네츠크주 서부 지역의 견고한 성(城) 4개가 함락된 것이다. 그것도 도네츠크주 서부를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의 통제 하로 두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접전 지역의 성(방어 진지)이다. 성이 하나 무너지면, 적은 곧바로 그 다음의 성으로 내달아 점령지를 계속 넓혀가는 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다를 게 없는 전쟁터의 모습이다.
스트라나.ua는 2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의 '우글레다르는 왜 함락됐고,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Почему пал Угледар и что он значил для фронта)라는 코너에서 "우크라이나 군은 지난 밤 우글레다르의 함락을 발표했다"며 "러시아군이 올린 도심의 국기 게양 등 주요 영상이 실제 상황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매체에 따르면 이 지역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호르티차(Хортица) 작전 사령부는 "도시가 러시아군에 의해 포위될 위험이 높아졌으며, 상부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약 7개월 전인 지난 2월,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에 방어진지(옛날 식으로는 성)를 버리고 부랴부랴 떠났던 아브데예프카를 연상케한다. 당시 결사항전 명령을 받았던 아브데예프카 주둔 우크라이나군은 후퇴 명령이 너무 늦게 떨어지는 바람에, 부상자들을 버려두고 도망가듯 필사적으로 성(도시)을 빠져나갔다.
한 우크라이나군 중위(호출부호 알렉스)는 "퇴각 명령이 너무 늦게 내려졌다"며 "이미 1주일 전에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처했는데, 왜 이렇게 늦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전날 밤 무기를 버리고 10명씩 떼를 지어 도시를 빠져나오다 그 중 절반 가량(4~6명)을 잃은 우크라이나군 제72 기계화보병여단의 몇몇 병사들은 영국 BBC 방송 측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철수 상황을 이렇게 털어놨다.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걸어서 후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러시아군의 포 사정권에 든 도로를 포기하고 밤에 위험한 지뢰밭을 건너야 했다" “최근까지 밤에 헤드라이트를 끄고 차량 운행이 가능했지만,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무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일부 부대는 자체적으로 철수를 결정했고, 철수 과정에서 많은 동료들이 러시아군 드론과 포격에 죽거나 다치고, 실종됐다"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 병사들도 완전 탈진한 상태다."
우글레다르는 도네츠크주의 주도인 도네츠크시(市)를 기준으로 남서쪽으로 진격하는 러시아군을 막을 수 있는 전략적 요새다. 북서쪽으로의 진군을 막는 요새는, 이미 함락된 아브데예프카였다.
거꾸로 우크라이나군 입장에서 보면, 아브데예프카는 도네츠크시를 포 사정권애 둔 최전방 공격 거점이었고, 우글레다르는 반격작전의 궁극적인 목표인 크림반도로 향하는 길목이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여름철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막기 위해 러시아가 우글레다르의 남동쪽에 방어벽(통칭 차르·황제 열차, царь-поезд)을 구축한 이유다.
우글레다르를 겨냥한 러시아군의 이번 공세는 북쪽으로 50㎞ 떨어진 우크라이나군의 또다른 전략 요충지 포크로프스크 공략과 동시에 진행됐다. 지난 2월 아브데예프카를 장악한 러시아군은 현재 포크로프스크를 향해 북서진 중이다.
우글레다르(표식) 주변 지도. 맨 오른쪽 굵은 글씨가 도네츠크시, 바로 위쪽이 아브데예프카, 맨 왼쪽 위쪽이 포크로프스크, 부글레다르 바로 위가 쿠라호보다. 러시아군은 남쪽에서 부글레다르-쿠라호보, 북쪽에서 포크로프스크를 점령하면 도네츠크시 왼쪽(서쪽) 주둔 우크라이나군은 포위(가마솥)에 갇히게 된다. 러시아군 남북 양동 작전의 핵심 목표다/지도출처:얀덱스
지도에서 보듯이, 러시아군은 포크로프스크를 점령한 뒤 남하하고, 우글레다르를 장악한 뒤 북진하면 도네츠크시 서쪽에 주둔한 우크라이나군은 넓은 포위망(통칭 가마솥 작전)에 갇히게 된다. 이 양동작전이 현실화하면, 이 일대의 우크라이나군은 전멸을 당하기 전에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州)와 자포로제주 경계선 쪽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다. 퇴각하는 우크라이나군을 추격한 러시아군은 곧바로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의 주도인 드네프르시(市)와 자포로제시(市)를 압박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군 참호/사진출처:텔레그램 영상 캡처
우글레다르는 이름(러시아어로 탄광은 우골 уголь이다)에서 짐작하듯 탄광지대다. 러시아는 2년 전부터 우글레다르 공략에 나섰으나 큰 손실을 내고 실패했다. 언덕 위에 조성된 지형적 이점 때문이다. 우글레다르 주변은 대부분 대초원 지대로, 드론 정찰과 포병에 매우 취약하다. 또 우크라이나는 민간 거주 지역을 최소화하고, 주요 건물과 기업, 탄광 등을 방어 요새화했다.
게다가 우글레다르에는 석탄 수송을 위한 철도가 지나간다. 도네츠크시에서 마리우폴, 도네츠크시에서 자포로제(자포리자), 헤르손으로 가는 철도는 궁극적으로 헤르손주와 크림반도와 연결된다.
우글레다르(갈색 글씨부분)의 남동쪽을 거쳐 남북(마리우폴~도네츠크)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선(파란색), 초록색 표시는 '차르 열차' 방어벽 표시/사진출처:스트라나.ua
러시아는 이 철도가 부글레다르 주둔 우크라이나군의 사정권하에 들어 있어 그동안 이용할 수가 없었다. 우글레다르를 장악했으니, 앞으로는 이 철도망을 통해 추가 공격에 필요한 군수 물자의 공급 루트를 개선, 혹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나 케리치 해협을 오가는 해상 운송 수단의 대안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개전 초기부타 우글레다르 공략에 나선 것은 철도망 확보와 관련이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오랫동안 점령하지 못하자, 러시아는 이 철도 부분을 대체할 수 있는 우회 철도의 건설을 시작했지만, 아직 완료하지 못했다.
우글레다르 공세에 대해 시시각각으로 속보를 전하던 러시아군사 텔레그램 채널은 1일 우글레다르를 점령했다며 도심에 진입한 러시아군의 모습과 시의회 건물에 걸린 러시아 국기의 영상을 올렸다.
우글레다르의 한 건물에 게양된 러시아 국기/텔레그램 영상 캡처
레그눔.ru 등 러시아 언론도 이날 러시아 군인들이 우글다르 도심에 러시아 국기를 꽂았다고 전했다. 앞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의 수장인 데니스 푸쉴린 9월 25일 러시아군이 우글레다르에 진입했다고 처음으로 발표한 바 있다.
관심은 우글레다르에서 퇴각한 우크라이나군이 앞으로 도네츠크 남부지역 어디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할지 여부다. 러시아군은 우글레다르에서 북쪽의 쿠라호보를 향해 진격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어디쯤에서 치열한 전투가 불가피하다.
러시아군이 지난 2월 장악한 아브데예프카를 거쳐 포크로프스크로 빠른 진군을 계속하는 걸 보면,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