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남이는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전기 용품을 파는 도매상의 점원입니다. 전기 용품을 배달하고 가게를 보는 것이 수남이의 일입니다. 그런 수남이는 못한 공부를 하기 위해 저녁에 야학(夜學)에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바람 부는 어느 날 배달을 갔다가 자전거가 바람에 휩쓸려 고급 승용차에 흠집을 냈습니다. 자동차 주인은 5000원을 내라며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웠는데 수남이는 자전거를 몰래 들고 가게로 돌아옵니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줄 알았던 가게 주인은 자물통을 깨고 나서 잘했다고 수남이를 칭찬합니다. 그것을 본 수남이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 다음날 짐을 꾸려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수남이는 고등학교에 가지 못한 소년입니다. 그래서 취직해 밤이면 고등학교 공부를 혼자 합니다. 이런 수남이에게 주인은 야학을 가더라도 일류 야학을 가야 한다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줍니다. 그렇다면 수남이는 왜 제 나이에 공부하지 않고 점원이 되었을까요?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절은 한창 우리 나라가 경제 개발을 하던 20~30년 전입니다. 경제 개발이라는 것은 공산품(工産品)을 많이 만들어내 외국에 수출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도시라든가 공장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한 인력은 농촌에서 구할 수밖에 없어 농촌의 소년들이나 소녀들은 모두 공장에 취직을 하면서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농촌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살기 힘들어졌습니다. 당시의 청년들이나 어린 아이들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일거리를 찾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것을 ‘무작정 상경(上京)’이라 합니다. 수남이 역시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시골을 버리고 서울의 청계천에 와서 한 가게의 점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전거가 바람에 휩쓸려 자동차에 흠집을 내고 수남이가 그 자전거를 훔쳐온 것은 본의 아닌 도둑질입니다. 자기 자전거이지만 자물쇠로 채워 놓은 것을 들고 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건이 얽히고 설키며 도둑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바로 순간의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주인은 바람에 쓰러진 자전거가 자동차를 흠집 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수남이의 잘못이 아님을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악착같이 자전거의 자물쇠까지 사다 채우면서 5000원을 가져오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해주고 기분 좋게 수남이를 보내는 것과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는 것,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자동차 주인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자동차 주인은 돈을 받아내겠다는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서 수남이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수남이 역시 자물쇠를 채워 놓은 자전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다 주변 사람들이 부추기는 대로 도망가기로 결정을 한 순간 스스로 도둑질을 하게 됩니다.
만일 제대로 했다면 주인에게 돌아와서 이야기한 뒤 돈을 가지고 가서 자전거를 찾아 왔어야 합니다. 수남이 역시도 최악의 선택을 해서 자전거 도둑질을 한 겁니다. 점포 주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른 선택이었다면 수남이를 꾸짖고 자동차 주인을 찾아가서 돈을 물어주었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자전거가 남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자전거 주인은 오히려 수남이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하면서 열심히 자물쇠를 뜯어내려 애를 씁니다. 자전거 주인 역시 최악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은 크게 바뀌거나 잘못될 수도 있고 잘될 수도 있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고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도덕과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순진하기만 한 수남이는 자전거를 훔치고 나서 갑자기 이 세상을 알아버렸습니다. 인자하고 따뜻한 줄로만 알았던 주인 아저씨의 행동이나 자동차 주인의 행동을 통해서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았던 것입니다. 도둑질을 해서 잡혀가던 형의 옛 모습을 보면서 수남이는 절대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전거를 들고 옴으로써 결국 도둑질을 한 꼴이 되었습니다.
수남이의 얼굴이 누런 똥빛이 된 것은 바로 자신이 양심에 거리낀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에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선량한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양심을 거리끼게 되면 자신의 마음이 비뚤어지게 되고 결국은 영혼까지도 병들게 됩니다. 인격을 쌓으려면 바로 이러한 양심을 잘 길러야 하는 것이지요.
수남이는 자전거 사건을 통해서 어른들의 사악한 면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그 가게에서 더 이상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떠나기로 작정을 하자 수남이의 얼굴이 비로소 순수한 청년의 얼굴로 바뀌었던 것은 이러한 어려운 경험을 하고 난 뒤 어른이 되고 자신의 양심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용서할 수 없는 죄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