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자녀들아!
골로새서3:20
오늘로서 제 외손자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1주일, 조리원에서 2주 동안 있다가 집으로 와서 한 주간 있는 동안에 아이가 제법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1주일동안 애 엄마가 많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밤에 안고 있으면 자는 것 같아서 내려놓으면 울고, 또 안아주면 가만히 있어서 내려놓으면 또 울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니까 힘도 들고 짜증도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고충을 이야기를 하면서 언니한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하고 언니하고 엄마 아빠한테 더 잘해야 돼’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니까 이게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이 많겠습니까?
교육학자인 쿠주마 박사가 젊은 엄마로서 직접 세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통계로 내어보았는데요,
한 살, 세 살, 다섯 살 난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에 한 일은 32회의 기저귀를 갈고,
71회의 숟가락을 아기의 입으로 날랐으며,
화장실 변기에서 노는 아이들을 13번 밖으로 끌어냈고,
옷에 음식물을 흘리거나 똥을 싸서 18번 옷을 갈아 입혔으며,
그네를 밀어준 것이 623번이었으며 세 아이를 18살까지 키우는데 아이에게 바치는 시간이 1만 8천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스스로 크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교회가 정하여 지키는 오월 둘째 주일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주일은 원래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26년 동안 교사로 봉사하던 ‘잘 빅스’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살아간 시간이 제일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1주년 추모식 때 그의 딸 안나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모두의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씩 달아드린 것이 계기가 되어서 전국적으로 어머니 주일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는 1930년부터 어머니주일을 지키다가 이제는 어버이주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어버이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효를 다하는 삶이되기를 다짐하는 귀한 주일인 줄 압니다.
하나님은 오늘 성경 곳곳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잠언 23장에서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일이니라”
에베소서 6장에서는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자들에게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자녀로서 마땅한 일이요 옳은 일이요 축복받는 비결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어느 인질범이 할머니를 납치해서 인질로 잡아놓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너의 시어머니를 인질로 잡고 있다. 시어머니를 살리고 싶다면 천만 원을 즉시 내 계좌로 송금하라.”
그러자 며느리 하는 말이 “어림없는 소리마라. 니 마음대로 해라.”
그러자 인질범이 다시 말합니다.
“그래, 그럼 너희 시어머니를 네 집에 도로 데려다 놓겠다.”
그러자 당황한 며느리가 황급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잠깐만요. 은행계좌 번호가 어떻게 되죠? 바로 송금하겠으니 제발 우리 집에 데려오지 마세요.”
부모 모시기를 싫어하는 세태를 풍자한 유머입니다.
오늘 우리 세대는 이런 저런 시대적인 편의를 따라, 유행을 따라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일에 얼마나 등한히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시대는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변천에 휩쓸리지 말고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자세고 이것이 또한 축복받은 삶의 비결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에 이 삶을 다짐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부모 공경의 당위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하면서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있어서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일은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이 왜 옳은 일이고 왜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여기에는 부모님의 은혜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일어나 걷기도 하고 젖도 빨지만 사람은 스스로 먹고 자랄 때까지 오랫동안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젖을 물려줘야 빨고 젖이 안 나오면 우유를 타서 먹여줘야 합니다.
젖을 안 먹겠다고 고집부리면 얼마나 속상한지 모릅니다.
한밤중에도 몇 번 씩 배고프다 칭얼대면 일어나 젖을 먹입니다.
아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아프기라도 하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아프면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너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아기가 자랄 동안 잘못될까봐 눈도 떼지 못합니다.
그리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부모가 쏟는 정성은 얼마나 대단합니까?
자기는 못 먹고 못 입어도 지식 잘되기를 바라며 희생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돌보지 못할 때는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가시고기는 아이들 손가락만 한데 아주 맑은 물에서만 사는 물고기입니다.
가시고기가 유명한 것은 새끼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 때문입니다.
아빠 가시고기는 어미가 알을 낳을 때가 가까워오면 몸에서 끈끈한 액체를 내서 알을 낳을 수 있는 둥지를 정성껏 만듭니다.
엄마 고기는 알을 낳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가버린답니다.
그러면 아빠 가시고기는 알 주변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알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다가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면,
어린 새끼들을 잡아먹으려고 알 주위를 서성거리는 물고기와 물벌레들을 목숨을 다해서 막아냅니다.
이렇게 밤잠을 자지 못하고 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새끼들을 보호하다가 결국 아빠 가시고기는 지쳐서 숨이 끊어집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아빠의 희생도 모른 채 아빠의 몸을 뜯어먹으면서 조금씩 자라납니다.
아빠의 몸에 덩그러니 가시만 남을 때까지 새끼들은 계속해서 아빠의 살을 물어뜯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가시고기'입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가시만 남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누군가가 우리 부모님은 이렇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하고는 상관없는 얘기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베푼 사랑과 은혜는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기에, 우리가 기억할 수 없기에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미치는 줄 압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나의 나 된 것은 또한 부모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은혜 없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고 어떻게 성장했고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은혜를 생각하면 부모 공경과 순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너무나 옳은 것이고 너무나 마땅한 것입니다.
마땅하고 옳은 이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효도의 방법인데요, 그것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공경은 ‘티마’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에게만 쓰여 지는 특별한 말입니다.
공경한다는 말은 일반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아닙니다.
요즘 부모님을 불쌍히 여기는 자식들이 많이 있는데요, 나이 많이 드신 부모님이 불쌍해서, 몸이 약한 부모님이 불쌍해서 불쌍한 마음을 갖고 찾아뵈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모공경은 그렇게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공경한다는 말은 높이 섬기는 것입니다.
낮춰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높이 사랑하고
그 분이 살아온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공경입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시는 것이나 말하시는 것이나 행색이나 모든 것에서 조금은 구질구질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불쌍히 여기는 존재가 아니요 공경하고 존귀하게 여겨야 할 존재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들이 대통령이 되어 상원에 나가 연설을 할 때 어느 국회의원이 그랬답니다.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입니다."
이런 모욕을 주고 또 "당신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소.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 해놓고 구두를 벗어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거라 했어요.
그러자 링컨 대통령은 그를 향해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바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 나거든 가져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응수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입니다. 내 아버지는 청소부 일을 하며 저희를 키웠습니다."
아버지의 삶, 어머니의 살아온 생에 대하여 "잘 하셨습니다. 훌륭하셨습니다. 그 하시던 일을 나는 존경합니다."
부모님으로 하여금 살아온 생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이삭도 아버지를 공경함으로 효도했던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너를 번제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럴 때 이삭은 얼마든지 아버지의 말에 반박할 수 있었고 완력으로 아버지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드시더니 노망이 나셨는가? 나는 번제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를 공경하였기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아버지는 나를 존재하게 하신 분이요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요 나를 성장시키신 분이요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사신 분이십니다.
그 분을 높이고 존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효도에도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씀처럼 효도에도 때가 있습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때를 놓치지 않고 하는 효도가 진정한 효도가 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제사를 유교식으로 안 지낸다.’고 불효의 종교라 오해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 오해는 효에 대한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것인데요,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을 때 가만히 보니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매일 술주정으로 속을 썩이더니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3년 동안 묘지 옆에 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지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 참 효자다.’ 라고 칭찬을 합니다.
선교사들이 볼 때 이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살아계실 때 불효하다가 돌아가신 후 아무리 잘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으신 분이 무슨 음식을 한 숟가락인들 잡수시겠습니까?
그래서 죽어서 제사 잘 지내지 말고 살아계실 때 잘 모시도록 가르쳤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살아 계실 때 자주 찾아뵙고 용돈도 드리고, 맛있는 것도 대접하는 실제적인 효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기일에는 가족들이 모여 추도예배를 드리며 고인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어버이를 잃고 서러워하는 송강 정철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버이 살아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한번 가신 뒤에 애달프다 어이하리. 생전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박 인노의 조홍시에 보면 ‘반중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니 품음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이를 서러워하노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가 부모님께 왜 효도하지 못하였는가?
왜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잘해드리지 못하였는가? 하는 후회입니다.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신 성도 여러분, 축복인 줄 아시고 더욱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가 우리에게 베푼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를 높이고 존경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부모를 공경하는 데도 때가 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살아계실 때 공경해야 그것이 진정한 효가 되고 공경이 됩니다.
부모 공경은 우리가 행해야 할 마땅한 일이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부모 공경하는 자에게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부모 공경은 우리의 정신을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통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귀한 말씀을 기억하고 부모공경에 최선을 다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2.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