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와 청둥오리
전주은빛수필창작반
강
우
택
추운겨울
어느날, 나는 지인들과 함께 우아동 왜망울로에 있는 한 기러기전문음식점을 찾은 일이 있었다.
아중
저수지 곁에 자리잡은 이 동네는 항왜(降倭)의
후손들이 모여 살고있다하여 왜막실(倭幕室)로
불렸고,
둘레
야산은 온통 고목사(古木死)한
나무들로 숲을 이루어 땔감나무를 얻으러 다니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큰길이 나고,
호숫가에
산장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옛날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음식점에
들어서니 닭장안에 몇 마리의 기러기들이 처량하게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저
기러기들이 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들이란 말인가, 믿어지지 않았다. 알을
부화시켜 사료를 먹여 키운 기러기들이라고 한다.
실내의
액자에는 기러기 사진과 함께 골다공증과 남자의 정력에도 좋은 보양음식이며,
동의보감에도
신장병과 여성의 냉대하증에도 효험이 있다고 했다.
기러기는
우리나라의 시,
동요,
그림
등 여러 곳에 등장한다. 또
혼례상에
기러기 목각상이 놓이기도 했다.
기러기는 우리
겨레와 옛부터 친근한 새였다.
나는
기러기고기의 맛이 어떨까 궁금해 하다가 문득 옛 미군병사가 사냥해온 청둥오리를 어머니께서 요리해주신 그 고기맛을 떠올렸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해에 나는 부안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어느 날 우리 집 대문 앞에는 딱정벌레같은 미군 찦차에 미군병사 두 명이 앞좌석에 앚아있었다. 우리 집을 찾아온 게
분명했다.
나는
두 미군명사를 번갈아 몇 번이고 쳐다 보았다.
처음
보는 미국사람은 우리와 모습이 똑같았다.
다만
푸른 눈동자만 달랐다.
나는
그럴 리가 없어 하며,
차를
돌면서 귀신같이 생긴 귀축(鬼畜)이라며
살펴보았으나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병사들이
웃어 주어 나도 따라 웃은 기억이 난다.
일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담장 뒷문을 넘어가 아버지께 사실을 알렸고,
나를 따라
들어온 미군병사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오리묶음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한
달에 두어 번 전주에서 먼 이곳까지 뿌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올 때마다 청둥오리 몇 마리 묶음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엔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며 차의 뒷자리를 가르키며 타라고 하더니 읍내에서 조금떨어진 저수지로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총을
쏠 테니 귀를 막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
무렵
내
또래 아이들이 아는 영어란 ‘핼로우’와 ‘오캐이’ 두 마디였다.
말을
못한다고 의사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것도
그때에 알았다.
지금의
바디랭귀지(body
language)로도
통할 수 있었다.
총성과
함께 몇 마리의 청둥오리가 호수 상공을 날았으며,
그중
몇 마리가 호수에 떨어졌다.
두
병사는 나무보트를 저어가서 주워가지고 와서 차에 실었다.
2차대전
역전의 용사인 그들이 오리 몇 마리를 총으로 맞추어 떨어뜨리는 것은 식은죽 먹기보다 쉬웠을 것이다.
당시
전북미군군정청장인 미육군 ‘버크’ 중령은 영어에 능통하고 행정경험이 있는 인사를 찾고 있었으며,
그러한
아버지를 회유하기위한 선물공세였디고한다.
버크
중령은 군정이 끝나고 본국으로 귀환할 때까지 참으로 친하게 지내셨다고 하셨다.
드디어 기러기요리가
식탁에 올랐다.
고기맛은
부드럽고 상큼했으며,
여느
닭고기맛과는 달랐다.
무와
채소를 넣어 끓인 탕은 옛날 어머니가 해주신 바로 그 오리고기 맛이었다.
같이
온 사람들은 맛이 있다며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빨리 해치웠다.
조류분류학으로
기러기는 오리과에 속한다. 따라서 고기맛이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야생의
멧고기 맛과 사육한
고기맛은 같은 고기인데도 분명 맛의 차이가 있다.
야생에서
잡은 꿩고기맛과 농장에서 사육한 꿩고기를 먹어본 사람은 그차이를 안다.
야생의
새들을 함부로 잡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얼마전
바닷가의 주민들이 철새가 날아오는 지역에 큰그물망을 세워서 철새들을 대량으로 포획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다음에는
어떤 새가 사람의 미각을 충족시켜 주기위해 사육돠어 우리 식탁에 오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자연생태계 그대로의 야생조류가 보존되어야 할 것이며,
자연생태를
훼손시켜 가면서까지 인공사육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2019.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