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소망의 씨앗이 될 것인가? 재앙의 씨앗의 될 것인가?』
역대하 24:17-19, 445장
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요아스는 일곱 살에 여호야다 제사장이 면류관을 씌워주고, 율법 책을 준 뒤 머리에 기름을 부어 남 유다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여호야다가 옆에 있을 때 그는 아달랴에 의해 파괴된 성전과 바알에 바쳐진 여호와의 성물들을 다시 대수선하였습니다.
역대하 24장 14절 말씀을 보면 여호야다가 사는 모든 날 여호와의 전에서 항상 번제가 드려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17절 말씀을 보면 여호야다가 죽은 후 방백들이 요아스를 찾아오자 요아스는 그들의 말을 듣고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무시하며 아세라와 우상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여호야다 제사장이 아달랴의 폭정 속에서 어떻게 요아스를 살렸고,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고, 말씀대로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였는데 여호야다가 사라지자 방백들의 꼬임에 넘어간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와 우상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이 너무 안타까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그는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요아스와 방백들을 향해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니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완악해질 때로 완악해진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아무리 완악했던 아달랴도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처형할 수 없어서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던 모습과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요아스와 방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종교적 형식은 있으나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는 자들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3장 35절과 누가복음 11장 50~51절에서 스가랴의 피를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인 후 요아스와 남 유다는 스가랴 사후 더 큰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스가랴가 죽은 지 일 년 만에 아람 군대가 올라와 모든 방백을 죽이고 예루살렘을 노략질한 후 다메섹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요아스도 다쳐 침상에 눕게 되었고 그의 신하들이 반역으로 요아스를 죽인 후 다윗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요아스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이 남겨두신 소망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는 주의 종 여호야다 제사장과 함께할 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전을 멀리하고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우상을 가까이하며 선지자를 돌로 쳐 죽이자, 그는 더 이상 소망의 씨앗이 아니라 재앙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돌감람나무와 같이 아무 짝에 쓸모없는 우리가 참 감람나무이신 예수에게 접붙임 되어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 소망의 씨앗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소망의 씨앗처럼 보이지만 참 감람나무이신 예수에게서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언제든지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문의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소망의 씨앗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삶의 적용 : 나도 얼마든지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십니까?
마무리기도
재앙의 씨앗이었던 죄인이 십자가에 접붙여져서 소망의 씨앗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