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격 없는 자,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 나아가오니
진리를 보고 기뻐 춤추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본문 주해)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응답의 말씀이 계속된다.
29~34절 : 하나님이 히스기야에게 주신 징조는 전쟁으로 인해 농경지와 과수가 파손되어 적어도 2년 간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데, 2년 간 농사를 짓지 않아도 저절로 난 곡식으로 연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3년째에는 정상적으로 농사를 지어 그 소출을 먹게 된다는 말씀을 주신다.(29절)
그리고 예루살렘(시온산)은 정복되지 않을 것이며, 살아남은 자들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 번성할 것이다. 이는 백성들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열심으로 이루실 것이다.(30~31절)
산헤립은 지금 기고만장하며 큰소리를 치지만, 그의 군대는 공격다운 공격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퇴각할 것이다.(32~33절)
그것은 여호와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해서라도 예루살렘을 보호하여 구원하고, 종 다윗을 보아서라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34절)
35절 : 그날 밤 여호와의 천사에 의해 앗수르 군의 진영에서 185,000명이 죽는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을 때 그들은 모두 시체로 발견되었다.
36~37절 :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퇴각하여 수도 니느웨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하고 있을 때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살해하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고, 그의 다른 아들 에살핫돈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나의 묵상)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앗수르 진영의 18만 5천 명의 군사가 하루아침에 시체가 되었다.
그러니 기고만장했던 산헤립은 완전 기가 죽어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 전쟁으로 인해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저절로 난 먹거리를 2년 동안 주신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응답이다.
이는 히스기야의 기도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의 열심’이라고 본문은 말씀한다.
‘여호와의 열심’이란 바로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자랑하는 히스기야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가지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성도의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과정임을 알겠다.
히스기야에게는 18만 5천의 앗수르 군사의 죽음보다,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가 구원받은 상황보다, 이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눈이 더욱 크게 떠졌겠다.
과거에 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땅에서의 내 삶의 안정과 번영을 이루고자 했다.
나는 그것이 신앙 생활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니,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신앙의 목적인 것을 그제야 점점 더 뚜렷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삶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주님께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그러나 어려울 때 기도한다. 내가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까?), 필요를 채움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아니요(이럴 때도 기도한다. 누구에게 채워달라고 할까?)......
그러면서 나는 점점 주님을 알아간다.
그리고 나의 기도가 달라진다.
그 ‘위기’라는 상황에 매여 있던 마음이 어떻게 응답하실지 모르지만 주님께로 집중된다.
‘필요’에 급급해진 마음이 아니라, 주님으로 인해 오는 평강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땅의 문제들에 빼앗긴 마음들이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주님의 응답에 놀라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내 마음의 필요와 소원 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차츰 아멘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주님을 알아가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시고, 오늘날 신약 성도인 나를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의 여호와의 열심이요,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열심이요, 십자가를 지심으로 새언약을 주시고 이루시는 예수님의 열심인 것이다.
이것을 아는 오늘날 새언약 백성들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히스기야가 당한 위협을 당하지만, 흔들림이 없다.
창세전 언약을 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새언약을 주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예수님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전에는 18만 5천 명이 죽은 그 사실에 놀라서 내 기도도 들어주시겠구나 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런 기도 제목들보다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시는 주님께 집중합니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창세전 언약을 이루신 하나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새언약을 주신 예수님,
나로서는 스스로 절대 살 수 없는 그 십자가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삶의 모든 상황을 통해서 주님을 알려주시는 그 은혜를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