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서목사님 내외분과 정선교사님 가족을 함께 만납니다.
귀한 교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진리를 알고 기뻐 춤추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본문 주해)
1~3절 : 히스기야왕이 병이 들고,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죽음을 통고받는다.
이때를 앗수르 1차 침공 직후라는 해석과 18만 5천의 앗수르 군사가 다 죽게 되고 산헤립이 철수한 이후 즉 그의 통치의 전성기에 일어난 일이라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그때 히스기야는 다른 도움을 구하지 않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며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한다.
4~7절 :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죽음의 통고를 하고 유다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응답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주권자인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의 병이 낫고 삼일 만에 성전에 올라갈 수 있다는 말씀과 15년을 더 살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었다.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5절)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론적인 말씀은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여(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 때문에) 이 성을 보호한다고 하신다.
이사야 선지자가 무화과 반죽을 히스기의 상처에 놓으니 낫게 된다.
8~11절 : 히스기야가 병이 낫기 전(무화과 반죽을 올려 놓기 전) 치병의 약속을 받고 이사야에게 표적을 구하는 장면이다.
“주님께서 나를 고치셔서, 사흘 뒤에는 내가 주님의 성전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8절).
이에 이사야는 두 개의 표적을 제시하며 히스기야에게 선택하도록 한다. 하나는 해그림자를 십 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해그림자를 십 도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해그림자가 십 도 뒤로 물러나는 것을 택하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께 기도를 드린 후 아하스의 해시계 위로 드리운 그 그림자를 뒤로 십도 물러나게 하였다.
(나의 묵상)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고 29년을 다스렸다. 여기에 기도의 응답으로 받은 생명 연장 15년이 포함되니 그가 38~39세에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30대 후반에 죽을병에 걸렸으니 통곡하며 기도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히스기야의 기도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첫째, 그렇게 종교개혁을 잘한 히스기야가 그 젊은 날에 왜 죽을병에 걸렸을까?
본문에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주권자(개인으로서가 아니라)인 히스기야 왕이 회개할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셨고, 히스기야의 눈물의 통곡은 그가 깊이 회개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둘째, 히스기야가 눈물로 자신의 선행을 아뢰며 기도했기에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어 생명 연장을 해 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죽음이 선포될 때, 이 정직한 왕의 회개를 이미 아셨고, 그의 수명은 기도 후에 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리라.
셋째, 히스기야가 아니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지 못하셨을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6절에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는 확실한 답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와 상관없이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것이다.
과거에 히스기야의 이런 눈물의 기도를 소재로 우리도 열심히 기도해서 응답받자는 설교를 수없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는 ‘죽을병이 나았다!’는 것에 초점이 있어서 오직 두 가지만 생각했었다.
‘와~ 이런 일도 있구나! 진짜 기도 열심히 해야겠다’ 것과 ‘아무래도 나는 히스기야처럼 기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소심한 마음...정도였다.
복음을 알고 나니 육체의 죽음이란 것이 그다지 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물론 내가 이미 살 만큼 살아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생사화복이나 세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도 다 주관하신다.
그러니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죽거나 살거나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은 반드시 다 이루신다.
그러니 나같은 미미한 존재의 죽고 사는 일도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내게 영생을 주시려고 십자가 믿음을 주시고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는 이 영생의 삶을 누리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히스기야의 통곡이 개인적인 아쉬움에서 나온 것인지, 진정 나라를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정결케 하시는 작업을 하신 것으로 여겨진다.
그 정결케 하시는 작업을 통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유일한 하나님이신 것을 히스기야에게, 유다 백성들에게, 온 천하에 알리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일 주님 앞에 정결케 되도록 말씀 앞에 이끌어주심을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만약 갑자기 내게 죽을병이 선포되면 조금은 놀라기는 하겠다.
하지만 면벽 기도를 따로 드릴 것은 없겠다. 기도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울며불며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겠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매일 말씀 앞에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고 있으니 이미 내 마음을 주님께서 다 아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날마다 주님 앞에 정결한 삶이요, 그 정결한 삶은 십자가를 붙듦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제 죽어도 마땅한 자, 당장 지옥불에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자에게 날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정결케 되는 기회를 주셨으니 이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문득 북한 말 ‘일없다’가 떠오른다. ‘괜찮다’는 뜻이다.
이 땅에서의 나의 죽음은 참으로 ‘일없다’이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인간적인 슬픔도 있겠지만, 주님 안에서는 참으로 일없는 것이 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땅에서 시작된 영생이 천국에까지 잇대어 있기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를 회개로 정결케 하시고 15년이나 기회를 더 주신 것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말씀의 다림줄과 추에 저를 재어보고 달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언제나 추하고 함량미달이지만
주님의 보혈을 힘입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주님과의 이 교제가 저의 가장 간절한 기도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날마다 십자가로 달려감이 히스기야의 면벽 기도입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