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들어 두번째 산행이다.
유난히 긴 올여름도 이제 갈 때가 되었건만
무더위의 기세는 꺾일 줄을 모른다.
제주시쪽에는 화창한 날씨였었는데
성판악을 지나자 안개가 끼고 빗방울도 가끔 뿌려
변덕스런 한라산 기후의 진수를 보여준다.
서성로 입구에 아홉명이 모였다.
긴 여름휴가를 마친 관수부부가 보이고
사모의 병환으로 몇주째 빠졌던 선달도 보인다.
제일 늦게 도착한 은하수가 오자 곧 출발했다.
그런데 생길이로 가는 도중에 관수부부는
갑자기 산행을 포기해야할 일이 생겨서
아쉽게도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생길이오름
생길이오름은 서성로 위미 교차로에서 남쪽으로 1.6km
내려간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길 오른쪽에 생기악농원
이라는 붙어 있어서 찾기가 쉽다.
아마 이 오름과 주변이 사유지로서 조경수를 재배하는
모양이었다. 농원 입구에는 호안공사를 한다고 중장비
소리가 시끄럽다. 철문이 달려 있었으나 출입을 통제하
지는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농장 안길로 들어선지 얼
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을 찾아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름 기슭에는 자연림이 울창하여 어두컴컴
할 정도이다.
정상 부근에는 이 오름의 주인인 듯한 커다란 묘가 자리
잡고 있고 경방초소가 있어서 주변을 감시할 수 있게 나
무를 베어 풀밭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산화경방 기간
이 아니라서 그런지 풀이 무릎위까지 자라 볼품은 없었다
우리는 경방초소 지붕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주변에 함석
을 쌓아 놓은 곳에 올라가서 주변을 살폈다.
한라산이 아주 가깝게 보이고 수악, 이승이, 사려니 등
주변오름들이 잘 보였다. 남쪽으로는 섬들이 떠 있는
서귀포 앞 바다가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지경이 낮아서 그런지 풀모기가 기승을 부려 오래
머물지 못하고 서둘러 내려왔다.
고이오름
고이오름은 고리오름이라고도하며 한남교차로에서 남쪽
으로 300m 정도 내려와서 위미리 공동목장 내에 자리하
고 있다.
그러나 목장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않은지 오래된 듯
고사리와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입구쪽에는 죽은지
오래 되어서 백골이 다된 송아지의 사체가 널려 있어서
기분이 섬뜩했다. 아침에 비가 내려서 물이 고인 곳이
많아 질퍽거리는데다 허리까지 올라온 고사리와 풀을
헤치고 전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아무리 가도 오름이 보이지 않아서 중간에 그만
포기하자는 불평이 많았으나 앞장의 굿굿한 의지로 결국
오름을 찾았다. 한 시간 가까이 풀을 헤쳐 가느라고 다들
기진맥진해졌다.
정작 고이오름에 들어서자 진입로와는 딴판으로 잘 정비
된 오름이었다. 삼나무와 편백등이 줄을 지어 잘 심어져
있고 오름 정상에는 고운 잔디밭을 이루고 있었다.
경방초소 주변에는 단단한 쇠파이프로 전망대도 만들어
놓았다. 마침 우리가 정상에 올랐을 때 비가 내렸으므로
우리는 전망대 밑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주변을 자세히
보니 사람의 손이 안 미친 곳이 거의 없었다. 작은 소나무
들도 일일이 가위로 손을 보았고 경방초소 안에도 말끔히
치워져 있어서 주인의 평소 성격을 읽을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직장이고 그것도 1년에 몇 개월
근무하는 것이 고작일텐데 자기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최
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내려올 때에는 쉽고 뚜럿한 길을 찾아보려 했으나 찾을
수 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갈때와는 다르게 올 때에는
훨씬 수월했다. 갈 때 우리 일곱사람이 헤쳐가면서 만들
어진 길이 신작로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과 떨어져 다른 길을 개척한다고 나선
꼴찌는 다시 고생을 사서 했다. 우리가 도착한 후 20분
늦게 도착한 그의 얼굴을 보니 안보아도 알겠다.
정말 족은 고추가 맵다더니 예상외로 많은 땀을 흘렸다.
넙거리오름
고이오름에서 예상외로 고생한 우리는 넙거리는 좀 높지
만 수월하게 올라서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서 느긋하게
늦은 점심을 먹을 참이었다.
그러나 진입로에 들어서서 등반로를 찾으려 했으나 잘
찾을 수가 없었다. 오름 전체가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로
덮였고 나무그늘에서 자라는 관목류도 발달하여 길이
없으면 잘 오를 수가 없겠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냇가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비고가 100m 가 넘는 오름을 바위
투성이인 냇가를 따라 오르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빨래를 걸친 격이다. 이렇게 해서 흘린
땀 우리의 건강으로 보답할 것이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까지 삼나무가 꽉 차 잘
분간할 수는 없지만 가운데 그리 깊지 않은 원형굼부리를
끼고 넙적한 등성이가 둘러싸고 있는 듯하다.
땀 흘려 산에 오르고 늦게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오늘은 마침 은하수가 따끈따끈한 오곡빵을 사와서
중간에 먹었으니 견뎠지 그렇지 않고서는 다들 탈진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얼마 쉬지도 못했는데 벌써 돌아가야할
시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고이오름에서 처럼 올 때는 훨씬 수월하다. 길이 없어도
삼나무 밑을 걸으니 거칠 것이 없다. 거의 다 내려와서
관목 숲이 있는 곳만 올라갈 때의 냇가를 이용했다.
오늘은 낮고 수월하게 생각했던 오름들이 이외의 복병을
만나 힘들었던 하루였다. 그러나 그 역경을 꿋꿋이 이겨
냈고 충분한 운동량으로 보람이 있었던 하루였다. 불평
한마디 없이 앞장을 따라 열심히 산행에 힘쓴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0.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