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인사를 어떻게 드릴까 생각하다가 봄방학 맞은 아이들과 꽃밭에 다녀온 모습 나누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집에서 한 30분 떨어진 곳이지요.
활짝 피어 있는 꽃이 있는가 하면 얼굴 내밀기가 수줍어서인지 아니면 영심아녜스님 말씀처럼 아직도 회의 중인지
어떤 꽃들은 봉오리를 옴추리고만 있었지요.
저만치 노부부 한 쌍이 꽃길을 걸어 오십니다.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그 떨어져 있는 공간에서 서로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여유가 느껴져서 좋습니다.
동행하는 길, 하늘까지 잇닿아 있는 그길이 언제나 꽃길은 아닐지라도 누군가 함께 걷는다는 것
삶의 커다란 위안이지요.
꽃들이 마치 하늘에라도 오를 듯 부활 후 승천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무언(無言)으로 오는 봄 / 박재삼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천지신명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연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 말이 가장 많은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보게나
천지 사방에 봄빛이 깔리는데, 꽃을 설명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야말로 시인의 말처럼 그냥 곰곰이 느껴볼밖에요.
길손이여! /백선진 (사랑의 씨튼 수녀회)
높낮이도 없이 둥글게 모여앉아
낮은 담장 안에 봄꽃이 피어나고
도란도란 속삭임으로 번지는
당신이 오셨다는 숨가쁜 소식
우리의 님은 눈부심이 아니라
일상의 아침으로 오시어
삶의 정원을 가꾸시는 동산지기
'와서 아침을 들라'는 따뜻한 초대로
당신을 바라옵는 우리의 마음
비로소 밝아져
가장 가까이에 계신 당신을 알아뵈오니,
스승이여!
내 가난함으로 이웃의 손을 잡게 하소서.
스승이여!
나의 길손이여!
부르는 소리 곳곳에 여울지나
오늘은 둥근 우리 잔치상에
편히 앉아 쉬어 가소서.
서로의 창가에 길손들인 우리,
다정한 쉼의 자리 빈무덤으로 마련하고
너의 지친 마음 내 마음 자리에 갈아눕혀
당신 사랑으로 새로이 숨트이는
일상의 부활이게 하소서
꽃구경 가자는 말에 주춤거리던 녀석들이 순전히 엄마 위해 따라나선다는 마음으로 함께 가더니
가서는 나오길 잘했다 싶었는지 즐거운 표정입니다.
안경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긴 했어도 참 쑥스럽네요^^
흐르는 곡은 나윤선의 '안개꽃'이라는 노래로 1992년 브라질 리우데 자네이로 세계환경의 날에 즈음하여,
최초로 환경음악(Environmental music)이라는 장르로 프랑스 대사관 샹송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Des oeillets de poete 는 안개꽃의 학명으로 "시인의 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들으며 제가 안개꽃이라는 제목으로 끄적인 시가 생각나서 함께 나눕니다.
안개꽃/가브리엘라
가만가만
속삭이고 싶습니다
내 모든 사랑의 말들을
떨리는 가슴 가다듬은
고운 숨결로
다가서고 싶습니다
하얀 웃음 눈처럼 날리는
화사한
세월이고만 싶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
안개처럼 피어나
아물아물 사라질
고운 꿈일 뿐입니다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Mary Frye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고, 잠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천 갈래 만 갈래로 부는 바람이며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눈이며
무르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빛이며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당신이 숨죽인 듯 고요한 아침에 깨면
나는 원을 그리며 포르르
말없이 날아오르는 새들이고
밤에 부드럽게 빛나는 별입니다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습니다, 죽지 않았으니까요
위의 시는 인디언들에게 구전되어온 시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요즘은 미국의 여류시인 매리 프라이의 시라고
장영희 선생님의 [생일]에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 무덤 앞에서의 오랜 기다림과 슬픔에 갇혀있던 마리아를 부르셨던 그 음성으로
부활하신 그분은 이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한 줄기 바람으로,
우리의 깊은 어둠을 비추시는 맑은 햇빛으로,
혹은 그리움의 눈빛으로 내려다 보시는 글썽이는 별빛으로
우리의 이루지 못한 오랜 염원과 자유에의 꿈을 담고 먼 길을 떠나는 새들의 몸짓으로
고사목에 다시 연두빛 잎이 돋게 하는 푸르른 봄비로
우리곁에서 아주 나지막한 음성으로 여러번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그 여인이듯 '예수께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라뿌니' 하고 그분을 불러보렵니다.
아니 우리들 서로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의 응답에 봄꽃향기 가득하길 바래보면서요.
다시 부활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