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만에 인터넷을 뒤적거리다보니(이런 표현. ^^; 대략 40대 이상이면 뒤적거리고 그 이하라면 서핑한다고 표현한다던데) 이창호 바둑이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대단한 업적이다. 그 의미와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
이창호의 별명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돌부처’이다. 바둑의 신으로 추앙받는 그에게 달라붙는 수식어는 굉장히 많지만 이 ‘돌부처’ 별명만큼 어울리는 것은 없을 듯 싶다.
바둑을 두다보면 옛 선비들이 바둑을 왜 ‘도(道)’를 닦는 것과 연결시키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거릴 때가 많다. 자기수양이라고도 하고 절제, 극복 심지어 자기를 죽여야만 하는 미학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웬만한 사활이야 4~5급이면 대략 볼 수 있다. 세력전개도 1~2급 정도면 대충 파악한다. 한 수 한 수의 의미랄까 그 한 수가 바둑판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2~3단 수준이면 거의 꿰고 있다. 크게 보아서 5단 이상 되는 실력이면 사실 거의 종잇장 정도 (그것도 엄청 얇은) 차이일 것이다.
대략 5단 이상 되면, 그 때는 이른바 흔히 말하는 ‘실력’ 그 자체는 문제가 안된다. 그 수준이라면 역대 웬만한 기보는 훤히 꿰뚫고 있다. 사활의 묘수나 대세점 등등은 아예 식상한 단계가 되는 것이다.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른바 ‘바둑철학’ 또는 점잖게 말해서 ‘인생관’ 차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과연 무엇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실리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랍시고 무턱대고 실리만 탐하는 것은 백이면 백 무조건 패배한다. 거꾸로 세력을 내세우는 기풍이랍시고 아무 때나 중원을 중시하는 바둑을 두다가는 마찬가지로 백이면 백 전부 실패하게 되어있다.
실리와 세력. 이 미묘한 균형을 맞추어야만 한다. 상대방이 세력을 중시하면 나는 상대적으로 실리를 챙기면서, 그러면서도 상대방 입맛대로 세력을 쌓도록 내버려두면 안된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바둑 내공과 이쪽의 내공이 쨍 하고 부딪치는 순간, 그 순간의 그 극도의 긴장감을 이지기 못하는 쪽이 무릎을 꿇게 되어있다.
이창호의 무서움은 바로 그것이다. 그 극도의 긴장된 순간에서 아주, 아니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것이다. ‘침착.’ 그 자체가 이창호 바둑의 전부이다. 네 귀의 사활 문제가 걸려있고 대세의 중앙 접전이 치열할 때에도 이창호의 머리속에는 항상 ‘지금 어디를 놓아야만 제일 좋을 것인가’ 하는 것으로 꽉 차 있다.
흔히 말하는 기세싸움이랄까, 승부의 요처를 다투는 시급한 싸움 자체는 그에게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한 수 한 수를 놓을 때 가장 효율적인 곳이 어디인가 하는 것을 아주 냉철하게 판단하고 그에 따른다는 것이다.
바둑도 인생의 축소판인지라, 싸움판이 한창 벌어지면 그 싸움 자체에 몰두하게 되어있다. 그 판의 승패는 이미 다음 문제이다. 상대방이 걸어온 싸움에 비겁하게 물러나는 것은 소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바이므로. 그래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창호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가 무섭고 또 ‘득도’했다고 추앙(?)받는 것이다.
이창호의 바둑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일종의 흐름, 그 만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상대방이 싸움을 걸어올 때 (사실 그 싸움도 이창호 특유의 ‘무관심’ 혹은 ‘무시’ 전략에 상대방이 제 풀에 겨워서 스스로 걸어온 경우가 99%)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엉뚱한 곳(그러나 나중에 복기하면 그 곳이 천하 명점이라고 전부 다 입을 벌려 얘기하지)에 떠억 두는 것이다.
먼저 싸움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보니 먼저 거는 경우도 몇 번 보이지만, 이 경우 그 실적이 아주 저조하다) 상대방이 몇 번 잽을 날려도 아주 무감각(?)한 스타일이다.
태클을 걸어도 무감각하고 아예 칼을 들고 목전에 설쳐도 무감각한 경우가 태반이다. 상대방은 흥분한다. 그 흥분한 상대방을 한 번 힐끗 쳐다보고도 또 무감각한 표정으로 바둑을 두는 것이다.
상대방은 눈에 핏발이 뻗쳐 아예 끝장을 보자고 설쳐대는 판국에도 아예 무감각한 표정이다. 심지어 “동창이 밝았느냐, 소치는 아이는” 하는 식으로 너무 느긋하게 대응한다.
이러면 승패는 뻔하다. 상대방이 보지 못하는 묘수를 이창호만 보기 때문에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저쪽이 미처 알지 못하는 기막힌 수를 이창호가 천재이기 때문에 보아서 이기는 것도 아니다.
이창호가 진짜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차피 5단 이상의 실력이라면 종잇장 차이이다. 일본과 중국의 대표선수라면 이창호 찜쪄먹을만한 실력이다. 바둑실력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창호는 싸움이나 승패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바둑 그 자체에 관심이 쏠려있는 것이다. 왕시를 비롯하여 상대방이 그 누구이던 간에 ‘내가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다르다. 온통 ‘이창호 하나만을 꺾을 수 있다면’ 식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 것이다.
상대방은 이창호를 주시하고 잔뜩 긴장하면서 째려보고 있는데, 이창호는 진작 상대방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오직 바둑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점이 진짜 이창호 바둑의 진수인 것이다.
사족〕 예전 글에서 이회창 후보가 두 번씩이나 대선에 실패한 이유를 나름대로 짚어본 적이 있다. 이회창 후보의 패인은 단 한가지이다. ‘바둑판을 보지 않고 상대방을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보지 않고, 단지 DJ나 노무현 후보를 ‘이겨야만 하는 대상’ 정도로 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진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아마도 앞으로 우리나라 50년래에 다시 등장하기 힘든 ‘완벽한 카드’였을 것이다.
그 완벽한 카드가 실패한 이유에 대하여 아직도 한나라당은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만 하다.
이창호를 이기고자 바둑을 두는 모든 사람은 이창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