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1년동안 매주 이틀씩 밤에 모여서 하던 낭독회의 방학기간이다. 방학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모여서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은 뿌듯한 일로 다가온다.
방학이 끝나면 낭독 시즌3을 맞는다.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을 한 번 더 읽기로 하였으니, 니체철학책 읽기는 계속된다. 다만 멤버가 바뀐다. 다 그대로이지만 한 친구가 개인 일정으로 혼자서만 긴 방학을 하기로 했고, 새 멤머 두 분이 함께할 예정이다.
1년 동안 니체철학을 읽으면서,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할까? 나는 고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고심도 필요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다 때가 되면 길이 보인다는 것을 알 것 같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이 있으니 그것은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철학책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어서, 그것을 알아서 가늠하기란 녹록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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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정했던 니체철학 책 읽는 순서에서, <비극의 탄생>에 와서야 땅에 발이 닿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책이 니체의 "출발이었다'는 것이 그냥 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이 책을 다시 읽고 나만의 방식으로 문장을 수정하기도 하고, 재정돈하면서 풀어쓰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 책 한권을 워드로 옮기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책 중간부근쯤에 도착하니,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방법을 바꿔야 하나? 하는 갈등과 매 순간 싸운다. 그러나 또다시 책 안으로 막상 들어가면, 현재는 이 방법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니체가 써 놓은 문장들은 그냥 읽으면 겉면만 보게 되는데, 다시 읽고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가 그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오류 수정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 방식을 통하여 책의 절반까지 도달한 지금은 다시 다 뒤집어진 경험을 하게 된다. 책에서 이렇게 설명해 나가는 와중에 계속 반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책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문장들 안에 숨겨 놓은 니체의 수수께끼가 꿈툴거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분명 글로 설명해 놓았는데, 그동안 내가 보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것들이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부터는 니체가 써놓은 내용들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이제 현재와 세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 역시 이제부터는 책에 그렇게 매달릴 이유도 없다. 정확히 말해서 풀어쓰기로 글쓰기를 할 이유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비극의 탄생>을 해오던 방식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다만 그동안의 더듬더듬 벽을 더듬으며 따라왔지만, 그 방식으로 여전히 계속해야 하는 것에 스스로의 답답함이 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가 시간이 지나면 책에서 내가 느꼈던 그 느낌은 사그라진다. 그래서 흔적을 남겨 놓아야만 다음에도 그 기억이 살아난다.
내가 이것에 대하여 말로 표현한다고 해서 표현을 다 할 수 있겠는가. 책 <비극의 탄생>은 두꺼운 책이 아니다. 이 정도면 얇은 축에 속한다. 그런데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과 비극의 탄생에서 내가 느끼고 알아차린 것들을 설명하려면 책 한 권 분량은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단시간의 말로 해결이 되겠는가. 그리고 이것을 압축한다고 하여 또 잘 전달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니체는 그 자신이 알아차린 것을 왜 글로 썼을까? 그리고 이것에 대해 그 당시에 몇이나 알아들었을까? 단언컨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마음과 마음의 길로 알려면, 그것은 일대일 소통이어야 한다. 옛사람들 방식도 이해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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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끝나면 <비극의 탄생>을 다시 읽기 시작할 때, 그동안 풀어쓰기(문장들 옮겨서 재구성 해보기)한 글들을 다시 읽어 보고, 오류가 있다면 그때 수정할 것이다. 이렇게 점검하면, 적어도 어떤 가닥들이 더 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의 과정을 관찰만 잘해도 많은 것들에 대해 이미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풍경도 그런지도. 그런데 왜곡된 그 자신의 시선 교정은 그토록 또 어렵다는 것에 대해서도. 눈 뜨고도 못 본다는 것에 대해서, 책 중간 쯤에 와서야 깨달았다. 니체의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니체의 말이고 내 말은 또 아니니까. 그런데 어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다시 결국 제자리로 돌려 놓는다. 물론 그 자리가 그 자리는 아니다.
어차피 방학 안에도 다 마무리하지는 못한다. 1월을 또 꼬박 보내야 풀어쓰기를 마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두 달 반을 여기에 나의 온 시간을 투여한 셈이 된다. 요즘은 밥 먹고 비극의 탄생 보고 자고 일어나 비극의 탄생 보고 그렇게 이 책의 노예로 산다. 나도 해방될 그날이 그립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사는 동안에 내 안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을 이 세상에 내놓은 것에 대해 내가 왜 감사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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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난 1년을 함께 보낸 시간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시즌3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플로라_연수_미류_다경
#비극은_서정시며_인간의_정서에_대한_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