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건축의 기원 바실리카(basilica)

바실리카는 원래 고대로마의 시장과 법정(法廷)을 겸비한 공공건물이었다.
이 말은 본디 건물의 내부에 있는 주랑(柱廊)으로 둘러싸인 홀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BC 2세기 초엽 로마에 세워진 아에밀리우스의 바실리카는 가장 초기의 건조물인데, 초석으로 짐작하면 로마시의 핵심을 이루는 포로로마노(공공광장)에 속하는 지붕이 가설된 홀을 가진 건조물이며, 사람들이 자유로이 주랑을 통과할 수 있는 구조이다.
폼페이에 초석이 남아 있는 BC 2세기 말기의 바실리카는, 이탈리아 이외의 지중해 중부의 여러 도시의 것과 같이 벽체로 에워싸인 직사각형의 구조이며, 한쪽 끝에 아트리엄이 만들어지고 다른 끝에는 재판관석이 있었다. 홀의 중부 4둘레는 주랑이 둘러쳐 있고, 재판관석은 열주(列柱)로 둘러싸여 있다.
또 가구법(架構法)이 발달한 AD4세기 전반에 완성된 로마의 막센티우스 황제의 바실리카(완성자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라고도 함)는 교차궁륭(交叉穹隆)을 둥근 기둥대신 지벽(支壁)으로 받치는 구조로 되어 있다.
4세기 초엽의 콘스탄티누스대제에 의한 그리스도교 보호령의 공포는 그리스도교 성당의 건립을 촉진시켰는데, 이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 당시의 건축가들은 고대로마의 초기 바실리카의 기본형식을 본떠 성당을 급히 건축하게 되었다. 이 건조물들은 돌벽체로 둘러싸였고, 나무로 짠 지붕을 가설한 직사각형의 건물이며, 정면 입구와 마주보는 안쪽의 벽체는 반돔을 얹은 앱스를 형성하고, 중앙에 제단을 설치하였다. 이 형식은 유럽 성당건축의 기본이 되었다.
바실리카는 주로 로마의 특징이지만 다른 곳에도 많은 바실리카가 있다. 5세기에 건축된 그리스 테살로니카의 성 데메트리우스 교회와 6세기에 건축된 이탈리아 라벤나의 아폴리나리우스 누오보 교회와 역시 라벤나에 있는 클라세의 아폴리나리우스 교회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예이다.
네이브·아일·앱스로 이루어진 바실리카 평면도는 서방교회에서 교회 건축의 기초가 되었으나, 동방교회에서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콘스탄티노플에 둥근 지붕을 갖춘 하기아소피아 대성당을 지은 이래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