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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5일 금요일 맑음
눈을 떠 보니 아직도 내려간다. 밤새 비틀거리며 내려왔는데 아직도 끝이 난 게 아닌가보다. 차가 성능이 좋으면 뭘 하나, 자연 환경과 도로가 좋아야지 험한 자연환경이다. 엄청난 흙산이고 창문으로 보이는 것은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모래 언덕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황사 먼지가 엄청 올라온다. 나름, 황무지가 떠오르는 태양 빛에 낭만이 있다. 내려가고, 또 돌아 내려간다. 아침에는 햄이 든 빵과 과자가 제공되었다. 빡빡한 빵이지만 그런대로 정신이 들게 하는 식사다. 나스카를 지나간다. 달리는 차에서 보면 그저 자갈이 보이는 황무지다. 건조함이 눈에 보이고 모래와 흙먼지로 가득한 황량한 벌판이다. 나스카는 사막위에 새겨진 고대의 수수께끼가 있는 곳인데 하늘에서 바라봐야만 알 수 있다. 신비한 고대의 수수께끼가 남아있는 메마른 해안의 사막도시 나스까이다. 수백 km에 이르는 기하학적인 선에서 동물이나 사람을 형상화한 그림까지 다양하다. 장장 310km에 걸쳐 그려진 지상화는 상공에서만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독특한 농사 기법과 도예기술을 갖고 사막 문화를 꽃피우던 나스카인들은 정체불명의 그림을 사막위에 남긴 채 어느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엘리뇨의 바람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점점 지워져 가는 땅 위의 그림뿐이다. 그 안에 숨겨진 옛 사람들의 마음과 오랜 역사의 신비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페루라는 나라에 대해서 제대로 들어보지 못 한 우리들조차도 모두 알고 있는 고대 유적이다. 나스카 라인, 세계적인 유명세만큼이나 엉뚱한 가설과 추측도 많은 곳이다. 천문 달력이라는 설에서부터 물을 기원하기 위한 부적이나, 신에 대한 경배의 그림이라는 설까지 다양하다. 우주인이 그렸다는 설도 어린 시절에 본 것 같다. 나스카 시내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넓은 사막 위에 그려진 나스카 라인은 사실 어두운 색깔의 겉흙을 긁어내 안쪽의 밝은 색 암석이 드러나게 만든 것이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기후 특성 때문에 기원 후 1~7세기경에 그려진 이후 1500년이라는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지상에서는 그 모습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데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도마뱀의 머리 부분을 잘라낸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 같은 거대한 훼손부터 나스카 라인을 흉내 내서 그린 각종 다국적 라인과 글씨들 까지, 언제까지 나스카 라인이 원상태대로 보존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다. 나무모양, 벌새, 콘도르, 원숭이, 플라멩고, 앵무새, 거미, 고래, 개, 삼각형 등 그 모양도 다양하다. 하나의 그림이 50m~280m 정도로 그 크기가 대단하다. 우리가 달리는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는 직선 도로로, 그렇게 고속도로 같지 않은 도로다. 우리는 오전 11시가 되어서 이카에 도착했다. 이카는 해안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쿠스코로 가는 사람들과 쿠스코에서 오는 사람들로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다. 특히 버기 투어로 유명한 오아시스의 마을 와카치나로 가는 출발점이다. 와카치나에서는 모래위를 달리는 차를 타고 굉음을 내며 모랫길을 거침없이 다닌다. 롤러코스터처럼 떨어지고 달리기를 반복한다. 거칠긴 하지만 재미있단다. 버기카를 타는 그 자체가 재미있다. 영상으로만 보던 사막이 눈앞에 있다. 끝없이 모래, 모래, 또 모래다. 샌드보딩을 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모래위를 잘 미끄러지라고 양초를 준다. 그걸 보드,그냥 나무 판때기에 열심히 바른다. 그리고 생각보다 경사 급한 모래 언덕을 내려온다. 스키장 최상급이거나 그 이상의 경사를 보여준다. 코스를 옮겨 다니며, 5번 정도를 탄다. 점점 길이가 긴 곳으로 안내해준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모든 버기카가 와카치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정차한다. 이유는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정말 작은 오아시스이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환상, 샌드보딩, 이 두 단어에 세계인들이 몰려든다. 또 이카에서 유명한 투어가 배를 타고 파라카스 해상공원을 둘러보는 것이다. 파라카스의 해변은 태평양의 해안선에 있는 작은 마을로, 거센 바람으로 인해서 흙은 다 날아가고 소금과 바위만 남아 있어서 차가 다니는 길을 별도로 공사를 할 필요가 없다. 바닥이 돌처럼 단단한 소금이란다. 파라카스 국립공원은 태평양과 남미대륙이 맞닿아서 태평양의 파도에 의해서 절벽들이 만들어진 곳들이다. 그 절벽들은 우리가 흔히 보는 그런 바위가 아니라 흙처럼 생긴 바위들이 거센 파도에 깎여져 나간 곳들이다. 그리고 파라카스는 외계인이 아닌가 할 정도로 이상하게 생긴 두개골이 발굴된 곳이기도 하다. 파도에 깎여 나간 해안선과 가마우지를 비롯한 각종 새들로 구경거리가 많다. 또 '돈 많은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과 고유종으로 유명한 갈라파고스로 여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바에스타 섬을 간다'는 의미의 별명을 가진, 가난한 자를 위한 바에스타 섬을 가기위한 피스코 항이 있다. 파라카스 해상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 섬을 관광하려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출발하는 곳이다. 이곳 파라카스 해상공원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엘리뇨의 따듯한 공기와 안데스 산맥의 차가운 바람이 만나고 한류의 흐름이 위도에 비해 낮아 극지방에 산다는 물개, 펭귄 등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구름은 비를 만들지 못해 일 년 중 비오는 날이 적고, 심해에서 올라오는 영양염이 있어 세계최고 어장이란다. 이곳에서 잡히는 어패류 등은 주로 수도 리마에 공급된다고 한다. 우리는 잠깐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이카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함께 타고 온 한국 총각과 이곳에서 이별을 했다. 이카에 손님을 내려 주더니 버스는 바로 출발을 했다. 이제는 해안 길을 따라 북쪽으로 달려간다. 가끔 바다가 보이지만 모래땅이 양옆에 펼쳐져 있다. 모래땅이지만 물을 끌어와 채소재배를 하는 곳도 있다. 가끔 축사도 보인다. 이렇게 계속 달려 페루의 수도 리마에는 오후 3시 30분에 도착했다. 쿠르즈 델 수르 터미널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우리가 내린 터미널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삼각점이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구시가지로 가기로 했다. 숙소는 신시가지가 더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구경거리가 있는 구시가지가 더 끌렸다. 택시를 잡아타고 구시가지로 향했다. 도로는 차가 많이 밀린다. 한 나라의 수도답게 규모가 엄청 크다. 남아메리카 중부에 위치한 페루는 3번째로 큰 국가이다. 공식 명칭이 페루 공화국( Republic Of Peru)이다. 기후는 아열대성기후, 열대성기후 이지만 참 다양한 분포를 갖고 있다. 해안지대는 온난다습하며, 밀림지대는 열대성 기후이다. 동·아연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며, 원유·커피가 많이 산출된다. 수산업이 발달하였고, 특히 어분(魚粉) 생산은 세계 1위이다. 수도는 리마이다. 인종은 아메리카원주민(45%), 메스티소(37%),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아이마라어, 에스파냐어, 케추아어를 사용한다. 정부는 중앙집권공화제 이고 의회형태는 다당제 와 단원제다. 국가의 원수는 대통령이다. 종교는 로마가톨릭(81%) 이다. 화폐는 누에보 솔이다. 국화는 해바리기 라고 하는데 한 번도 해바라기 밭을 본적이 이 없다. 북서쪽으로 에콰도르, 북동쪽으로 콜롬비아, 동쪽으로는 브라질·볼리비아, 남쪽으로는 칠레, 서쪽으로는 태평양에 인접해 있다. 페루(Peru)란 말은 16세기 초 파나마의 산 미겔 만 근처에 살았던 지방 통치자의 이름 Biru에서 유래하였다. 1522년 에스파냐인들이 그의 땅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알려진 유럽인 가운데서 신세계 가장 남쪽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 지역의 더 남쪽으로 탐색하였을 때 이곳이 Biru 혹은 Peru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었다. 1529년 Capitulacion de Toledo로 이 명칭은 "페루 주"로서 옛 잉카의 땅을 이르는 법적 승인을 받는다. 에스파냐의 지배 시대에 이 땅은 페루 부 왕령이었고, 페루 독립전쟁 이후 페루 공화국이 되었다. 이 나라는 15세기 이후 현재의 에콰도르 북부 및 칠레 중부에 걸친 고대 잉카제국의 중심지였다. 1533년 이래 스페인통치를 받아오다가 1821년 7월 26일 독립하였다. 1866년에는 이웃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일부 영토를 상실하였고, 1841년에는 에콰도르와 국경분쟁을 겪었다. 1990년에는 일본계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대통령에 당선되어 화제를 모으고, 1995년 재선되었다. 그는 1992년 4월 의회를 해산시켰으며, 1995년 4월 단원제 의회가 탄생되었다. 현 가르시아(Alan Garcia Perez) 대통령은 2006년 7월 28일 취임하여 집권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 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45년 유엔에, 1973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리마(Lima)는 페루의 수도이다. 태평양에 면해 있다. 리마는 1535년 1월 18일에 잉카를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쿠스코 대신 수도로 건설되었으며 식민지 시대에는 페루 부왕령의 수도였다. 리마는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 많이 남아 있어서 중앙 지구(1988년 12월 9일 - 1991년 12월 13일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와 해안 신도시로 양분된다. 리마의 이름의 유래는 시내를 흐르는 리마크 강(río Rimac)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이름은 "La Ciudad de los Reyes"(왕의 도시)였다. 리마는 태평양에 면한 페루 중부해안 가까이에 있는 상업 및 공업 중심지이다. 페루의 해안 사막에 둘러싸여 있으며 바로 곁에는 안데스 산맥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리마 중심부는 태평양 연안항구인 카야오에서 내륙으로 약 13㎞ 떨어진 곳, 리막강 남쪽 기슭에 있다. 교외지역이 사방으로 확장되어 있지만, 동쪽은 안데스 산맥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열대지대에 있지만, 근해인 페루(훔볼트) 해류의 냉각효과 때문에 평균기온이 겨울에는 약 17℃, 여름에는 약 24℃로 온난한 기후를 나타낸다. 상당히 습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연평균강우량은 25~50㎜에 지나지 않는다. 주로 섬유·플라스틱·목재·제약품·화학제품·화학섬유 같은 경공업 생산을 하나 중공업도 중요하다. 시내에는 은행·금융기관·보험기관 등이 많이 있다. 주요 상업 지구는 대도시권 남부에 형성되어 있다. 옛날에는 도시 성벽의 유적으로 구분할 수 있었던 고도 리마의 경계는 현재, 서쪽과 동쪽으로 알폰소우가르테 거리와 우니온, 남쪽과 북쪽으로 미겔그라우, 리막 강으로 정해져 있다.남서쪽의 교외 거주지이자 해안 휴양지인 지역까지 펼쳐진 대도시권은 미라플로레스, 바랑코 및 초리요스 같은 도시를 포함한다. 산업은 비타르테에서 카야오까지 이어지는 동서 회랑지대와 남북으로 뻗은 팬 아메리카 고속도로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도시권 남부에는 주요상업지구가 있다. 도시를 둘러싼 농업지역에는 바리아다스(슬럼 지역)와 푸에블로스호베네스(신도시)라고 부르는 무단거주자들의 도시가 생겼다. 시골 인구가 도시로 끊임없이 이주하여 주택 및 서비스 시설이 부족한 상태이다. 리마에는 현대식 건물이 식민지시대의 건물과 공존하지만 잦은 지진 때문에 고층건물은 짓지 않고 있다. 스페인 식민지시대의 건축물로는 성당, 산프란시스코의 사원, 타글레 탑 같은 궁전 등이 있다. 리마에서 가장 중요한 대학교로는 1551년에 세운 산 마르코스국립대학교가 손꼽힌다. 언어 및 역사 관련 학술단체가 있어 문화중심지로서 큰 몫을 한다. 그밖에 페루 문화관, 미술학교,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국립음악학교, 국립극장 등도 있다. 이 지역의 여러 박물관에는 미술, 고고학적 공예품, 역사적 유물 및 금으로 만들어진 신대륙 발견 이전 시대 유물 등 특색 있는 수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국립도서관과 페루 국립 문서국에서 소장한 도서류는 질과 양 모든 면에서 국내 최고로 손꼽힌다. 간선도로망은 방사선 모양으로 잘 발달되어 있는데 북부와 남부에서는 팬 아메리카 고속도로, 동부에서는 센트랄 고속도로에 연결된다. 세계에서 표준 궤간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페루 중부철도는 리마에서 북동쪽에 있는 라오로야까지 안데스 산맥을 타고 올라간다. 1851년에 개통된 카야오 행(行) 철도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카야오에는 리마의 국제공항이 자리 잡고 있다. 아는 곳이 없으니 중심지인 아르마스 광장에서 내렸다. 먼저 숙소를 찾기로 했다. 직선으로 교차되는 도로들은 좁다. 보통 50솔이면 구한다는 숙소가 그렇게 많지 않다. 몇 군데를 가보니 공통점이 오래된 건물이라 천장이 높고 창문이 거의 없다. 맘에 드는 숙소를 찾았지만 빈 방이 없단다. 검찰청 건물이 버티고 있는 대로 건너편에서 경찰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엄청 많이 다니는 길이다. 경찰에게 숙소를 물으니 가까이에 있는 호텔을 알려준다. 별 하나짜리 Grand 호텔인데 길가에 있다. 들어가 보니 역시 오래된 건물로 천장이 높고 안 정원을 중심으로 빙 둘러 사방으로 숙소가 있다. 정원을 향해 커다란 창문이 있어 맘에 들었다. 낡은 시설이지만 여기서 묵기로 했다. 그래도 따듯한 물은 잘 나온다. 또 재래시장이 가까이에 있어 편리했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시장을 가기로 했다. 먼저 환전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숙소 주인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우리를 데리고 가서 환전상을 소개해 준다. 환전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거리에 환전상들이 모여 있다. 100불을 바꾸니 340솔을 준다. 돈을 손에 쥐었으니 이제 시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다닌다. 차들도 복잡하다. 검찰청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길을 건너가니 재래시장이 나온다. 지역 전체가 시장이다. 종류별로 상가들이 모여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과일 야채 가게를 찾았다. 입구에는 고기 상점이 가득한데 주로 소고기와 닭고기 종류가 많다. 생선 가게도 있다. 닭들이 털을 뽑히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 가게들이 많다. 크기로 보아 오리나 거위들도 있다. 과일가게는 안쪽에 있다. 바나나 비슷한 플라타노라는 과일도 보인다. 채소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불에 굽거나 튀겨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생 걸로 먹으면 떫고 쓰다. 모양만 과일이지 채소에 가깝다. 하기야 토마토도 과일가게에 있으니, 분류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우리는 망고와 파파야를 사가지고 나왔다.
저녁 먹을 시간이 가까운 것 같다. 시장 거리 주변에는 길 따라 식당들이 가득하다. 길 가운데 차이나 거리라는 중국 문양의 커다란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중국 사람은 보이지 않고 중국 냄새가 나는 식당의 장식이 많이 보인다. 이름도 모르는 식당으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그림에 가격이 씌어 있어서 주문하기가 쉬웠다. 볶음밥과 누들, 닭고기와 배추 만둣국도 나온다. 튀김 롤도 2개 나온다. 거기에 잉카 콜라가 제공된다.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서민들의 삶이 보이는 지역이다. 복잡한 거리에 사람들도 많고 파는 물건도 다양해서 재미있고 먹거리도 다양하다. 숙소로 오는 길에 길을 건너니 대형 슈퍼가 있다. 나중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밀린 빨래를 해서 널고 파파야와 망고를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이제 페루의 중심부 리마에 들어왔구나. 내일은 이 부근을 돌아다녀야 할 것 같다. 고산 증으로 시달리던 머리가 개운해 져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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