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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고있던 내당동의 광장타운 아파트에서 1992년에 처음으로 테니스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바쁜 사업으로 인하여, 규칙적인 운동을 못하고 있던 제게, 가까운 지인 한분이 '운동도 자기가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종목이라야 꾸준히 할수있다'는 조언을 해주셔서 학창시절부터 여러가지로 좋아하던 운동가운데, 마침 아파트 단지내에 테니스 코트가 3개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아침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광장타운에 거주하시며 운동하시던 분들은 각대학의 교수님 여러분들, 동산병원장님, 개인병원의 원장님 여러분들, 학교선생님 여러분들, 사업하시는 분들, 주부님들....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계신 여러분들이 주민으로 어울려서 아침운동을 하시는분들, 오후에 일찍 퇴근하고 오셔서 운동하시는 분들이 있었고, 한달에 한번씩은 다 함께 모여서 월례회로 A팀과 B팀으로 나누어서 우승팀을 가리곤 했습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공부하느라고 3년, 노후의 여유로운 삶을 계획하며 남태평양의 조그마한 섬나라 피지에서 3년, 세계 각지를 방문하며 함께 즐거운 운동을 한, 테니스 동호인들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금 저는 광장타운을 떠나, 어머님이 거주하시는 집 부근으로 이사를 하여, 가까운 달성공원 테니스장에서 거의 매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테니스장에서 저를 붙들어 주시는 몇분의 조언의 말씀과 인격적인 행동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저를 감동시키셨던 분은, 당시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님으로 계시던 박찬석 교수님 이었습니다. 노련한 테니스 동호인 이었던 학장님은, 사업상 시간이 바빠서 테니스 레슨을 받을 여유가 없었던, 테니스 초보자이던 저에게 직접 공을 쳐주시면서 게임 요령과 발리 로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죄송한 일이었지만, 당시 제게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테니스를 하면서 항상 저분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운동을 하며, 특별히 초보자분들을 소중히 품고 함께 운동하는 분위기를 가져야 겠다고 결심하게 하셨습니다.
그분에게서는 소탈함과 고상한 인격이 느껴졌습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얼마후 경북대학교 직선제 총장 선거에서 총장님으로 선출되셔서 2번에 걸쳐 8년간 재임하셨습니다. 제 큰아이의 경북대학 입시관계로 상담 메일을 드렸을때, 다음날 친히 전화를 주시기도 하셨던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분을 유심히 지켜 보았습니다. 소탈하지만 크고 아름다운 그릇임을 느꼈습니다.
재임기간동안 몇번의 선거에서 대구시장 후보로 거론되시더니만, 퇴임후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제 17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셨습니다. 감히 제가 박찬석 교수님을 따라갈수는 없지만, 흉내라도 내는 인격적인 테니스 동호인이 되고 싶습니다.
또 한분, 당시 계성고등 학교에서 음악선생님으로 재직중이시던 노년의 선생님께서는 게임중 강한 스트로그와 스매싱을 시도하며 홈런을 양산하던 저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부드럽게, '강하게 친다고 두 포인트를 주는것은 아니다. 강약의 조절이 필요하다' 고 하시며 게임에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체력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저에게 두고 두고 좋은 조언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대학 교수님들 테니스 대회에서 매번 미기상을 수상하시던 아주 작은 키의, 당시의 동산 병원장님은 슬라이스의 달인이셨습니다. 서브도, 랠리도, 스매싱도, 모든것을 슬라이스로 하시던 그분에게서 묘한 슬라이스의 매력을 느끼며 한수를 배웠습니다.
한조가 되어서, 저로 하여금 테니스 입문1년 6개월 만에 월례회 B팀 우승을 하게했던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의 최교수님. 항상 사회봉사를 꿈꾸시며 오늘도 의학발전을 위하여 묵묵히 해부학 교실을 지키시는 당신의 모습이, 이기적인 제가 시신기증과 장기기증 서약을 하게 하셨습니다. 함께 테니스를 즐기시는 최교수님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늘 기억합니다.
1992년에 처음으로 테니스를 시작하여, 매일 아침마다 아파트 테니스장에서 열심히 운동 하던중 93년과 94년 두번의 미국방문후 저도 더 공부를 하고싶고 아이들에게도 영어권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고싶어서 3년의 계획을 가지고 95년초에 온가족이 미국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디즈니랜드가 있는 도시인 캘리포니아주 애나하임에 1년간 거주했습니다. 그러나 테니스를 하러가던곳이 20여분 거리여서 1년후 테니스장 옆에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시는 플루턴이라는 도시의 바로옆에 있는 라미라다 시티였습니다.
라미라다 시티는 주로 은퇴한 백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쾌적한 도시였습니다. 제가 운동하러 가던곳은 시티의 큰 공원 중간에 있었는데, 하드 테니스 코트가 무려 12개(항상 무료, 밤에는 라이트도 무료로 사용) 있었으며, 시티의 청소하시는 분들이 항상 깨끗하게 청소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저녁에 공부를 하러가므로 주로 아침 식사후 9시경에 테니스를 하러 갔습니다. 테니스를 시작한지 3년밖에 안되었지만 매일 아침 운동을 하다보니 제법 게임에는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테니스장에 가면 코트 중간에 테니스장에 도착한 순서대로 앉아서 기다리는 벤치가 있었습니다. 한국인 중국인등 아시아계, 남미계, 흑인, 인디언, 백인등 세계 각곳에서 이민 오신분들 혹은 유학, 잠시 여행 오신분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모두가 테니스를 좋아하는 동호인들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면서 서로가 테니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다가, 어느 코트에서든지 게임이 끝나면 순서대로 4명(단식을 원할 경우 2명)이 들어갑니다.
물론 자주 같이 게임을 하다보니, 서로의 실력을 알기때문에 때로는 자기 순서에 들어가지 않고 뒷사람에게 양보하기도 합니다. 정말 상쾌한 분위기 였습니다. 남녀 노소, 인종 등이 전혀 문제가 되지않았습니다. 금방 서로 친구가 되고, 파트너를 격려하고, 상대방팀에게도 아낌없이 굿샷을 외쳐주고.....
처음 게임을 하던날, 노련한 백인 여자분과 파트너가 되어, 그분의 윌슨 테니스볼로 게임을 했습니다. 상대방이 로빙한 볼이 우리팀 코트 중간쯤 왔습니다. 저는 제가 받겠다는 뜻으로 한국에서처럼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마이 볼 !!!! 파트너 백인 여자분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며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몇번의 같은 상황이 반복된후 파트너분은 상황을 파악했나 봅니다.
" 앤드류(제 영어 이름). It's my ball. not your ball............ I got it.......... understand.... ? ok.....? 당시 저의 영어실력은 문법에 안맞는 콩글리쉬 수준이었습니다. ..........이 볼은 자기가 가지고 온 자기볼이다. 네가 볼을 받고 싶을때는 아이가릿( I got it) 이라고 외쳐라..........
ㅎㅎㅎ 한국에서는 너무나 이해하기 쉽고, 당연했던 마이볼이 영어권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되었었나 봅니다.
그후 저는 제가 받을 공이 오면 마이 까지 하다가.....아이가릿 이라고 외치며, 더 이상 파트너를 혼돈에 빠뜨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들은 몇년전에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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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올림픽> 발로 서브하는 美테니스선수.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4-09-24 07:11
선천성관절장애로 손.발 못써.. 휠체어혼성복식 결승진출
(아테네=연합뉴스) 황정욱기자 = 주홍색 운동화 위의 녹색 테니스볼. 왼쪽 발등으로 이 공을 높이 띄워 라켓으로 휘두른다.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출전한 니컬러스 테일러(29). 선천성 관절 장애인인 그는 두발뿐 아니라 양손도 거의 쓰지 못한다. 서브를 넣기 위해선 오른쪽 발바닥으로 왼쪽 발등에 공을 올린 뒤 위로 차올려야 한다.
23일 오후(한국시간 24일 새벽) 올림픽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휠체어 테니스 혼 성복식 준결승전. 테일러는 왜그너 데이비드(30)와 한조를 이뤄 캐나다의 맥패이트 브라이언(41)- 헌터 새러(39)조를 1시간4분만에 2-0(6-0,6-3)으로 가볍게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휠체어 테니스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손을 사용하지 않고 서브를 넣는 그이지만 정확도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이 경기에서 단 한번의 더블 폴트도 범하 지 않을 만큼 섬세하다.
그의 팔.다리 장애 수준은 심한 편이다. 경기 중간 잠깐의 휴식시간에 수건으로 손과 라켓에 묻은 땀조차 제대로 닦지 못할 정도다. 보통 휠체어 선수들은 수동식 휠체어를 타지만 그는 전동 휠체어를 이용한다. 국제테니스연맹(ITF)이 그에게만 전동 휠체어 사용을 허용했다.
라켓도 제대로 잡지 못한다. 장애 정도가 더 심한 오른손으로는 전동 휠체어를 조작한다. 왼손도 엄지, 중지, 약지 손가락만 그나마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고 리를 이용해 라켓을 왼쪽 손목에 걸어 지탱케 하는 '특수 장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이 부분에서 당당히 세계 랭킹 4위다. 지난 1999년 미국 테니스협 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휠체어 선수로 뽑힌 이후 지금까지 각종 휠체어 테니스 대회에서 11차례나 우승했다.그는 경기뒤 기자들과 만나 "세상에 불가능한 게 있을지 모르지만 노력하기에 따라 그 불가능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선천성 장애인으로 테니스에 입문한 지 10년 경력에 그치지만 일찌감치 세계 정상권에 진입했다.
그는 경기중 근처에 볼만 오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내가 치겠다'(I Got It)를 외쳤다. 이런 적극적인 성격이 자칫 소외되기 쉬운 환경속에서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데 큰 힘이 됐을 것이다.
올해 고향인 캔자스주의 위치토 주립대학에서 경영정보시스템 석사학위를 딴 것 도그의 이런 단면을 엿보게 한다. 그는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믿을 수 없는 경험"이라고 자랑 스러워했다. h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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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2004-02-25 15:03:47, Hit : 1378, Vote : 709)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야구용어, 테니스 용어에는, 일본에서 잘못 건너온것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캐치볼이란 말도 그중 하나입니다. 물론 미국에서는 플레이 캐치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야구선수 박철순 선수의 일화를 한가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박철순 선수가 미국에 진출했을 때 가장 생소한 것이 바로 야구 용어 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끔씩 그가 일화로 말하곤 했던 것은 바로 “마이볼”사건이였다고 한다. 경기 중 자기 앞쪽으로 날라드는 공을 잡기 위해 박철순 선수는 크게 “마이볼(my ball)이라고 외쳤던 것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 뜻을 모르더 라는 것이다. my ball 이보다 더 쉬운 영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실제로 미국 선수들은 이 뜻을 알지 못했고 나중에 박철순 선수가 이에 대해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마이볼(이건 소유의 의미) 이란 말 대신 “I GOT IT” (아이 가릿, 내가 이 볼을 받겠다는 뜻) 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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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팅(Fighting)의 진실
얼마전 한 신문의 투고란에 '파이팅'이 굳어진 우리말이라는 참으로 우려할 만한 글을 읽게되었다. 며칠전에는 우연히 래디오 채널을 맞추다 초등학생들의 입에서 '파이팅'이란 말을 다시 듣게 되었다. 그것도 영어를 배우는 프로그램에서...
심지어는 '반전' 시위에 참가한 이들의 입에서도 거침없이 '화이팅'이란 말이 흘러나오는 아이러니를 목격할 수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원어민들도... 외국에서 살거나 오랜 기간 공부한 사람도... 콩글리쉬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선뜻 나서서 강하게 이야기 하지 못한다.
Finghting을 쓰지말고 Go!, Go for it!, Stay in there 등 정확한 영어를 사용하라고 하라고 해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만다.
왜냐하면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파이팅'이란 말이 사용되게 되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콩글리쉬는 개인의 문제로 실수로 넘어가거나 창피한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이 '파이팅'은 크게 외쳐대는 말이어서 외국인들의 귀에 쏙쏙 전달 되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Fight'라는 말은 우리말의 '싸움'과 같이 강한 뉘앙스를 가진다. 우리가 시도 때도 없이 '싸우는', '싸우자'고 외쳐되는 그런 민족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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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정말 상쾌하게 테니스를 했습니다. 의사 소통이 부족했지만, 오직 테니스라는 하나의 공통 분모로 세계 각국의 많은 친구들을 사귀며 항상 기분좋게 테니스를 했습니다. 저는 구력이 짧아 자주 실수를 하는편이었지만, 한번도 파트너에게서 싫은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실수를 했을때 들은 말은 항상 굿 츄라이(good try, 좋은 시도), 올모스트(almost, 거의, 아까비)였습니다.... 돈 들이지 않고 실수한 파트너를 격려하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읽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미국 라미다다 공원안의 테니스장. 미국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지금 중 1인데 테니스를 제법 한답니다)
( 피지를 방문하셨던 거래처 새마을 금고의 전무님께서 촬영하신 남태평양 피지의 조그마한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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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멋지네요..마이볼ㅋㅋ 각성해야겠네요~^^
ㅎㅎㅎㅎ.. 한국에서는 잘 알아들으시니까 문제 없는것 같아요.. 그래도 대테클에서는 한 단계 업해보면 좋을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