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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꺼풀을 연다.
의미도 없이 한쪽 손을 천장으로 뻗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털썩, 하고 뻗은 팔이 이불에 떨어졌다.
「———어쩐지, 무거운데」
몸을 일으키지 않고, 멍한 상태로 천장을 올려다본다.
……뭐라고 할까, 전체적으로 몸이 나른하다.
머리는 여전히 잠에 취해 멍한 상태고, 몸 쪽도 휴식을 원하고 있다.
벌써 아침인데도, 전혀 일어날 마음이 들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응……어째서, 이렇게 피곤한 걸까」
누운 채, 또 멍하니 회상해본다.
———그러자.
「—————」
일단 한 순간에, 잠기운만은 날아갔다.
「———에에」
흘끔 옆을 본다.
옆에는 아무도 없다. 눈에 비치는 건, 꼴사납게 쓰러진 자신의 팔뿐이다.
「뭐야. 사쿠라, 벌써 일어났구나」
그렇다고 하면, 지금쯤은 부엌인가.
사쿠라 성격에, 나를 자게 놔둔 채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진짜. 내버려두면 금방 무리한다니까」
어이없어 하며 몸을 일으킨다.
그 순간, 가벼운 현기증이 났다.
「……읏차. 몸, 정말로 무겁구나」
피로가 쌓여있는 걸까.
확실히 어제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별로, 에, 어젯밤 일 때문에 지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약한 소리를 하도록 무르게 단련하지는 않았다.
이 나른함은 잠이 얕았던 탓이겠지.
「……잠을 잘 못 잤기 때문인 걸까. 뭐, 움직이고 있으면 피도 돌 테고」
애초에, 몸 상태라면 사쿠라 쪽이 몇 배나 나쁘다.
그 사쿠라가 혼자서 힘내고 있으니까, 이 정도 나른한 것 때문에 쉬고 있을 수 있겠느냐구.
좋아, 하며 기합을 다시 넣고 침대에서 나온다.
「———으」
거기서, 또 현기증을 느꼈다.
몸이 나른하기 때문이 아니다.
뭐라고 할까, 자신의 차림이 너무 특수해서, 어젯밤을 쓸데없이 다시 떠올려버렸기 때문이다.
「…………에에. 옷, 입어야지」
이불을 질질 끌고 옷장까지 이동한다.
……곤혹스럽다.
이런 거 정도로 얼굴 붉어지고 있으면, 사쿠라한테 무슨 낯으로 인사하면 좋은 걸까…….
「————하아」
몇 번째인가 심호흡을 해서, 움츠러들어 있는 심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
괜찮다, 이미 몇 번이나 시뮬레이트했다.
어려운 것 따위 아무것도 없다. 항상 해 온 인사(거)니까, 이렇게 긴장하는 것 따위 이상한 거다.
「좋아, 간다」
텅 빈 가슴에 가솔린을 넣는다.
호쾌하게 키를 돌리고, 욕 나오게 무거운 액셀에 킥을 먹이고, 사쿠라가 있는 거실로 발을 내디뎠다.
「「———아」」
그러자.
부엌에 있다고 생각됐던 사쿠라는, 이미 거실에서 아침 식사를 차리고 있었다.
「아———아, 안, 안녕하세요, 선배」
「으———응. 안, 녕, 사쿠라」
서로, 딱딱하게 굳어진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저………………에에」
「아?……………뭐지」
재치 있는 말을 찾아보지만, 새하얗게 된 머리는 텅 비었다.
「—————」
「—————」
——안 좋다.
이런 침묵이 계속되면 아침부터 이상해진다고 할까, 남잔데 여자애를 곤란하게 만들면 어떡하냐구……!
「아, 안녕 사쿠라……! 아침밥, 맛있을 것 같네!」
내가 한 소리지만 재주 없는 대답을 한다.
……아니, 아까 인사랑 아무것도 안 다르잖아, 바보?!
「아, 넷! 아, 안녕하세요 선배!」
「—————」
……그리고.
어쩐지, 사쿠라의 대답도, 아까와 완전히 똑같은 듯한 생각이 든다.
그걸 깨달았는지, 눈이 동그래져서 이쪽을 본다.
틀림없이 사쿠라가 본 나도,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겠지.
「—————하」
어쩐지, 그렇게 생각하니 어깨의 힘이 빠져줬다.
우리들은 서로, 계속 긴장하면서, 그래도 얼굴을 마주하는 걸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 세 번째가 되지만, 안녕 사쿠라」
말을 거는 볼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안도를 담아 입에 담은 말.
「——네. 안녕하세요, 선배」
마찬가지로 웃고, 사쿠라는 세 번째 인사를 받아줬다.
이러저러해서, 어색하면서도 아침 식사가 시작됐는데.
「그럼 잘 먹겠습니다」
「네, 잘 먹겠습니다」
이렇게, 평소대로 인사를 할 수 있어봐야, 역시 긴장은 다 풀리지 않는 거다.
「—————」
진정되지 않은 채 젓가락을 움직인다.
……사쿠라는 아까 그걸로 익숙해지고 말았는지, 기분 좋은 모습으로 밥을 먹고 있다.
……뭐라고 할까, 그런 데는 여자애 쪽이 강한 걸까?
「? 왜 그러세요? 아, 된장국 한 그릇 더 드릴까요?」
「——아니, 아직 한 그릇 째. 하지만 맛있어. 응, 굉장히 맛있어」
「네. 오늘 아침 건 자신작이니까. 좋아해줘서 기뻐요」
「윽———」
크, 그 웃는 얼굴에 가슴이 막힌다.
사쿠라는 이미 진정돼 있는데 이쪽이 얼굴 붉히고 있다고 생각하면 멋쩍어서, 어쨌든 겸연쩍은 걸 숨기려고 밥을 퍼 넣었다.
「———후우」
탁, 빈 밥그릇을 놓는다.
그러나, 식탁에는 반찬이 모조리 남아있다.
밥과 된장국을 맛보기만 하는 게 고작이라, 다른 요리에까지 의식을 할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용서해라 사쿠라.
지금은 여하튼 자리를 떠서, 방에서 진정할 시간을 원하는 거다.
「…………선배. 저, 오늘 아침은 입에 안 맞나요?」
「—————으」
전략적 후퇴, 실패.
나 혼자 깨닫지 못했을 뿐이고, 이미 퇴로는 없었던 듯 하다.
「………………」
아무 말 없이 밥그릇을 내민다.
「네, 더 드시는 거죠! 잔뜩 했으니까, 많이 드세요」
……곱빼기로 돌아오는 밥그릇을 받아 들고, 아침 식사를 재개한다.
「————」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각오를 하자.
혼자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도 참을 거고, 사쿠라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이 가 버리는 것도 변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사쿠라. 좀, 그녀는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 선배, 문제라니 뭐가요?」
이상하다는 듯이 이쪽을 본다.
즉 사쿠라는,
이렇게, 옆에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라이더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그러니까, 문제라고 하는 건」
흘끗, 라이더에게 시선을 보낸다.
그것 때문에 이 자리에서의 부조화를 깨달았는지,
「저에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어요. 식사를 계속하셔도 좋습니다」
사쿠라에게 지지 않는 우아한 모습으로, 그런 소리를 해댔다.
「에? 선배, 그녀가 신경 쓰였던 건가요?」
「그런 듯 하군요. 확실히, 그와는 몇 번인가 싸웠던 사입니다. 식사하는 자리에 원수가 있어서야 진정되지 않겠죠」
「그렇지 않아. 선배, 라이더를 원망 같은 거 하지 않는걸」
「—————」
……곤란하다.
원망하지는 않지만, A+가 붙을 정도로 거북한 부류야, 사쿠라.
「……어떨까요.
그의 식사가 잘 되지 않는 건 제가 있기 때문인 듯 합니다. 눈에 띈다면 자리를 뜨겠는데요」
「그러니까, 그렇지 않아. 저, 그렇죠 선배. 선배는 라이더가 있어도 상관없죠?」
「………………」
곤란하다.
이건 너무직설적이게 말해두는것도 문제지만,덮어두는것또한 문제가된다.
최후의점검끝에 답을내놓는다.
「……알았어, 사실을 말할게.
하지만 그 전에 양해를 얻어두고 싶어. 나는 겉치레도 빈말도 잘 못하니까, 그런 데는 배려해주면 고맙겠어」
지긋이, 진지하게 라이더를 응시한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녀석이지만, 내가 진지하다는 건 알아주고 있는 듯 하다.
「확실히 말할게. 나는 라이더를 원망 같은 거 하고 있지 않고, 같이 밥을 먹는 것도 상관없어.
그저 거북할 뿐이고, 라이더는, 상당히 좋아해」
힘껏 긴장을 억누르며 확언한다.
「——설마. 당신은 제가 두렵지 않은 건가요?」
「그야 물론 무섭지. 무섭지만 지금은 우리 편이잖아.
너는 한 번 나를 구해줬었고, 학교에서 싸웠을 때도 사쿠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 거야.
그런 네가 싫어질 리가 없지. ……에, 정말로 거북하지만 말야」
「……저는 이해할 수 없군요.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 않네요.
……다시 한 번 묻습니다만, 제가 무섭지 않은 건가요?」
「그러니까 무섭다니까. 네가 얼마나 위험한 서번트인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 말야.
……하지만 뭐어, 본성은 똑바로 잡혔다고 할까, 어딘지 모르게 사쿠라랑 비슷해, 라이더는.
그래서 신용할 수 있고, 이후로도 사쿠라를 지켜줬으면 해. 거북하지만 말이지」
으으……어쩐지, 이래서야 고백하고 있는 것 같다.
눈이 마주치면 또 같은 질문이 돌아올 것 같고, 지금은 다른 쪽을 보고 얼버무려———
…………아.
이런, 사쿠라 앞에서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야, 나……!
「사쿠라. 아냐, 지금 그건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얘기고, 별로 그런 얘기가」
「몰라요. 선배가 바람기 있고, 예쁜 여자한테 약하다는 건 알았지만」
「음」
대단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하는 사쿠라를 보다니 처음 아닐까—
「잠깐 사쿠라, 진정해. 라이더가 좋다는 건 인간으로서 좋다는 거고, 별로 여자니까 그런 게 아냐.
사쿠라도 라이더를 신뢰하고 있잖아. 그거랑 마찬가지야.
애초에 말이지, 예쁘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사쿠라 쪽이 예쁘고, 사쿠라에 비하면 라이더 정도는,」
잠까……어, 어쩐지 지금, 라이더로부터 엄청난 살기를, 느꼈는데요……!
「——에, 지지 않을 정도로 미인이고, 어느 쪽이 예쁘다든가, 그런 시각은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안 좋다.
뭔가 입 밖에 내면 낼수록, 어찌할 수 없는 사태를 부르고 있는 듯 하다.
「——그만두자. 이런 이야기는 우리 집 식탁에 안 어울려. 화제의 변경을 제안하겠어」
두 손을 들고 의견을 어필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만세 항복하고 있는 풍미.
「아뇨, 얘기는 안 끝났어요. 좋은 기회니까 선배의 본심을 추궁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사쿠라에게 찬성합니다. 저로서는 사소한 일이지만, 일은 명확하게 해야죠」
슥, 둘이서 몸을 이쪽으로 내민다.
「선배. 저랑 라이더, 어느 쪽이 취향에 맞아요?
선배의 마음이니까, 모르지는 않을 거예욧」
아.
「사쿠라의 말이 맞습니다. 저로서는 사소한 일이지만, 당신의 대답에는 흥미가 있어요」
으.
「「자아, 대답을 들려 주세요」」
턱, 하고 등이 벽에 달라붙는 감촉.
퇴로는 없고, 입을 연 순간, 한 쪽의 분노를 사는 건 뻔하다.
「으……크」
그러나, 문제는 그런 순간적인 게 아니다.
이번에 판명된 사실은, 이 뒤로 주욱 계속돼 간다.
……사쿠라와 라이더.
여자 사이의 연대감이라고 할까, 이 둘, 저엉말로?서로 닮았구나…….
아침 식사가 끝나고, 시간은 오전 9시가 됐다.
학교는 결석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이상, 성배전쟁이 끝날 때까지 학교에 갈 생각은 없다.
학교에 가는 목적 중 하나는 토오사카와의 공동전선이었다.
그게 없어진 지금, 대낮부터 밖에 나가는 의미는 없고, 무엇보다———
사쿠라를 밖에 내보내는 건 너무 위험하다.
「………………」
사쿠라는 활기차게 행동하고 있지만, 언제 어제처럼 쓰러질지 알 수 없다.
코토미네의 치료로 회복은 했지만, 사쿠라는 위태한 밸런스 위에 서 있다.
……조켄이 어쩔 작정인지는 모르지만, 불안정한 사쿠라와 조켄을 만나게 할 수는 없다.
사쿠라 안의 각인충을 활성화시키면, 이쪽엔 손쓸 방법은 없는 거다.
신지는 약을 썼다.
하지만, 각인충을 심은 술사인 조켄이라면, 정말로 사쿠라를 보는 그 하나만 가지고 벌레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겠지.
「—————」
……코토미네는 말했다.
사쿠라는 오래는 버티지 못한다, 라고.
그걸 알고 있는 건 나뿐이다.
……그런 거, 사쿠라에게도 토오사카에게도 말할 수 없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사쿠라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이 싸움을 끝내는 것.
나에겐 사쿠라를 구할 힘은 없다.
그러나 성배라면——모든 소원을 이룬다는 성배라면, 사쿠라를 구하는 것 정도는 손쉬울 것이다.
「선배? 아까부터 무서운 얼굴하고, 이상해요? 학교는 빠져버렸으니, 느긋하게 있어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니, 쉬는 건 싸움이 끝나고 난 뒤로 하자. 지금은 싸움에 이기는 것만을 생각해야지」
「……선배. 싸움이라니, 아직 계속할 생각인 건가요?」
불안한 듯한 목소리는, 조금 의외였다.
「………………」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사쿠라에겐 자진해서 싸울 생각이 없다.
성배를 얻는 게 몸을 낫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 텐데, 그걸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싸움에의 혐오.
타인을 상처 입히는 걸, 사쿠라는 극단적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그건 올바르며, 부정할 생각은 없다.
사쿠라는 그 상태로 족하다.
싸우는 건, 지금까지 계속 울린 내 역할이다.
「——응, 싸움은 계속할 거야. 대화로 끝나면 그렇게 할 거지만, 그렇겐 안 되잖아.
조켄이 사쿠라를 놔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고, 사쿠라에겐 미안하지만, 그 녀석에게 성배는 넘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남은 마스터는 4명. 나는 이 중에서 사쿠라를 이기게 해서, 사쿠라가 성배를 쓰게 할 거야」
「……그렇게 말해주는 건 기쁜, 데요……선배, 토오사카 선배와 싸울 수, 있어요?」
「그 녀석이 방해를 한다면 싸울 거야. ……뭐어, 사실은 성배 따위 위험한 건 그 녀석한테 맡기고 싶지만 말야.
그 녀석이라면 깔끔하게 칼집에 넣을 수 있고, 사쿠라를 구해줄 테고」
「……그럴, 까요. 그 사람은, 마술사에요. 저 같이 약한 인간 따위, 생각해주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
그렇지 않다, 라고는 할 수 없다.
……토오사카는 좋은 녀석이다. 그건 이미 안다.
하지만, 그것과는 따로, 그 녀석은 어엿한 마술사였다.
어젯밤, 그 녀석은 사쿠라를 죽일 거라고 했다.
그 때는 그것밖에 없었다고는 해도, 그 녀석은 진심으로 그걸 선택하고, 사쿠라를 자기 손으로 죽일 각오를 했다.
……그러니.
혹시 성배로도 사쿠라를 구할 수 없게 되면, 그 녀석은 성배라는 아쳐 이상의 아군을 얻어서, 사쿠라의 생명을 끊겠지.
「……그래. 하지만, 그래도 토오사카는 할 수 없어. 그 녀석은 사쿠라는 죽일 수 없어」
「에……?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선배는」
「아니. 확증은 없지만, 그 녀석은 뿌리부터 굉장한 녀석이니까 말야.
그 녀석이 선택하는 미래는, 틀림없이 누구도 잃지 않는, 엄청나게 해피한 세계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괜찮아. 토오사카는, 마지막에는 절대로 사쿠라를 구할 거야」
「……저. 선배는, 토오사카 선배가, 저」
「응?」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배가 그렇게 말하면, 저도 믿어 볼게요」
「응. 하지만, 솔직히 그 녀석한테 다 맡긴다는 건 한심하니, 양보하고 싶지 않아. 사쿠라를 지키는 건 나이고 싶어」
사쿠라의 손을 끌고 갈 거라고 결심했으니까, 그 역할을 다른 녀석에겐 넘겨줄 수 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사쿠라를 행복하게 만들 거니까.
「……저, 선배. 마음은 기뻐요. 하지만 선배는 이미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이버 씨도 없어지고, 토오사카 선배와도 대립하고 말았어요.
선배는 이제 성배전쟁에 관여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부디 선배의 일상에 돌아가주세요.
……저는, 저 때문에 선배가 상처 입는 건, 싫어요」
「바보. 그런 건 사쿠라 탓이 아냐.
나는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고, 이제 와서 그만둘 수 있는 싸움도 아냐. 그런 거, 사쿠라도 알잖아」
나는 세이버의 마스터로서 싸움에 참가했다.
말려 들었으니까 마스터가 된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마스터가 됐다.
그렇다면——여기서 절대 그만둘 수 없다.
혼자가 돼도 싸운다.
마지막까지, 이 싸움의 결판을 지켜본다.
……그게 내 제멋대로인 행동에 함께 하다, 생명을 잃은 세이버에의 속죄이기도 하다.
「………………그럼, 선배는 절대로」
「싸움은 그만두지 않을 거야. 그 때문에, 이제부터 이후의 방침을 정하려고 생각해. 라이더도 괜찮아?」
「괜찮아요. 당신의 의견은 옳습니다. 사쿠라는 어떤가요?」
「………………」
사쿠라는 침묵으로 긍정한다.
……다행이다. 일단 납득은 해준 것 같다.
「좋아. 그럼 이후 얘기 말인데, 그 전에」
슥, 라이더에게 시선을 돌린다.
……아침 식사부터 이쪽은, 조금씩 거실에 라이더가 있다, 라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역시 이것만은 어떻게든 하고 싶다.
「뭐죠」
「그 눈. 집에 있을 때 정도는 눈가리개를 풀면 어때. 네 마안은 이미 알고 있으니, 무리하게 숨길 필요 없잖아」
그리고 그것보다, 그런 눈가리개 하고 있으면 답답하잖아, 라이더.
「……즉, 제 모습이 미관을 해친다, 라고?」
「응. 단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돼. 그 옷차림은 어쨌든, 눈가리개는 고생이잖아. 모처럼 예쁜데, 숨막히는 건 빼면 어때」
「그렇다는데요, 마스터. 당신의 의견에 따라서는 저도 고려하겠습니다만」
「안 돼욧!
그런 거 절대 안 돼 ? ? ? ? ! !」
「헤?」
……그런데.
어째서 거기서, 사쿠라가 힘껏 반대하는 거지?
「어째서? 사쿠라도, 라이더가 눈가리개 하고 있으면 곤란한 거 아냐?」
「고, 곤란하지 않아요! 애초에 말이죠, 라이더의 눈은 마안이라고요?
대수롭지 않은 계기로 마술에 걸려버리면 어떻게 할 거예요!」
「하아. 걸리냐, 라이더?」
「걸립니다. 제 눈은 마안이라기보다는 사안(邪眼)이니까.
저 본인이 마력을 세이브해 봐야, 당신을 대상 외로 삼는 건 어려워요」
「우와, 뭐야 그거. 라이더, 자기 눈을 컨트롤할 수 없는 거야?」
「할 수 없죠. 그렇기에 얻은 칭호입니다.
……하지만 어제 정도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겠죠. 당신은 제 마안이 석화라고 알고 있어요.
불의의 공격에 의한 인식세정은 약해진 상태니까, 몸이 경직되는 스피드는 떨어질 겁니다」
「그래. 그럼, 어제처럼 갑자기 몸이 마비된다……라는 건 이제 없는 거야?」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당신이 긴장을 풀고 있으면, 마안의 효과는 올라가겠죠」
「흠. 요컨대 긴장을 풀지 않으면 되는 거구나. 그럼 문제 없잖아.
만에 하나 마안에 사로잡혀도, 라이더는 우리 편이니까 금방 해주해줄 테고」
「그렇군요. 저는 당신의 목숨은 빼앗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아무런 위험도 없습니다만」
「안 돼, 안 된다면 안 돼요……! 라이더의 눈은 석화만이 아니니까!」
「그랬군요. 그럼, 봉인은 이대로 두도록 하죠」
휴, 하며 가슴을 쓸어 내리는 사쿠라.
「……?」
……하아.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라이더의 눈가리개는 그대로 둔다는 듯 하다.
「……그래. 신경 쓰이지만, 라이더 본인이 됐다고 하면 상관없나」
「네. 맨 얼굴을 드러내는 건 싫어요. 이후, 이 건은 언급하지 않도록 하세요」
아까까지 띄우고 있던 선선한 분위기는 어디에 갔는지, 차갑게 라이더는 단언했다.
……뭐라고 할까, 파악이 안 되는 성격이다.
역시 라이더와는 상성 나쁜 거겠지, 나.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가자. 이후의 방침 말인데, 일단 사쿠라는 집에서 나오지 말 것.
조켄과 직접 만나는 건 위험하니까 말야. 그 할아범이랑은 이쪽에서 결판을 내겠어」
「그 생각은 옳아요. 하지만,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 마술사를 쓰러뜨릴 건가요. 무언가 생각이 있는 겁니까?」
「—————」
……그렇게 말하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수단은 몇 개인가 있겠지만, 그 중 어느 것을 취해야 하는가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틀림없이, 이 선택이 이후의 운명을 정한다.
선택지는 복수 있다.
그 중에서 현실감이 있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면,
「———다른 마스터와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사정을 이야기하면 우리 편……까지는 안 된다고는 해도, 조켄을 쓰러뜨리는 데 힘을 빌려줄지도 몰라」
「다른 마스터라니……토오사카 선배, 말인가요?」
「에? 아니, 토오사카가 아냐. 나, 버서커의 마스터와는 아는 사이야.
이리야라고 하는데, 그 애라면 얘기하면 제대로 들어줄 거야」
……거기다, 솔직히 이리야를 내버려둘 수 없다.
토오사카는 어쨌든, 조켄이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 없다.
사쿠라에게 벌레를 심어서 억지로 싸우게 하는 녀석이다.
직접적인 실력이라면 버서커를 거느린 이리야 쪽이 몇 배나 위겠지만, 상대는 그 요괴다.
직접 당해내지 못하기에, 여러 가지 수단을 사용해 오겠지.
그렇다고 하면, 버서커를 거느린 이리야라도 방심은 할 수 없다.
「버서커……당신은, 그 광전사가 우리들의 편이 된다고 하는 건가요?」
「우리 편까지는 안 된다고 해도, 당분간은 묵인해줄 거야. 거기다, 협력은 무리라도 충고 정도는 해 두고 싶어」
단신으로 이 도시에 찾아온 소녀.
마스터로서 길러져, 아인츠베른의 이름을 받은 이리야와, 나는 타인이 아니니까.
「……그런, 가요. 하지만 선배, 그 이리야라는 사람이 있는 곳은 아는 건가요?」
「응, 전에 보여줬어. 길 순서는 기억하고 있어. 넓은 숲이라 상상한 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한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야」
「한나절……그건, 지금부터 간다는 거죠?」
「그래. 좋은 일은 서두르라고 하고, 지금부터 가면 밤까지는 돌아올 수 있어」
갑자기 선택을 강요당했지만, 이건 이거대로 마침 잘 됐다.
이리야에겐 어젯밤 도움 받았으니, 감사를 하고 싶기도 했다.
……거기다.
마토 조켄의 암약과, 그, 정체불명의 그림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두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겠지.
「갔다 올게.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올 테니까, 사쿠라는 방에서 쉬고 있어」
「——알았어요, 선배. 그러면, 하다못해 라이더를 데리고 가 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라이더가 지켜줄 테니까」
「아, 그런가. 그 쪽이 안전하지」
……하지만, 그건 들을 수 없다.
위험한 건 저택에 남는 사쿠라도 마찬가지다.
아니, 조켄과 만나면 거역할 수 없어지는 사쿠라 쪽이, 나보다 몇 배나 위험하겠지.
「아니, 라이더는 사쿠라를 지켜줘.
혹시 조켄이 오면 마력을 소비하는 전투는 피하고, 사쿠라를 안아 들고 도망칠 것.
라이더의 발이라면 따라 잡히지는 않잖아」
「—————」
라이더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순순히 끄덕여줬다.
「봐. 라이더도 그렇다고 하잖아. 이번엔, 사쿠라는 집 지켜」
「…………하지만, 선배도 위험해요. 그 숲은, 지금」
「걱정하지 마.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도망칠 거야.
거기다 이리야는 마스터 이외에 흥미는 없어. 마스터에서 탈락한 내가 가도 위험은 없지」
통, 사쿠라의 어깨를 두들기고 거실을 뒤로 한다.
——자.
우선은 광에 가서, 무기가 될만한 걸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사쿠라에게 배웅 받으면서 에미야 저택을 뒤로 한다.
짐은 목도를 둘 쑤셔 넣은 죽도주머니와, 가벼운 식료품을 채워 넣은 배낭뿐.
지도, 컴퍼스 같은 것은 가지고 오지 않았다.
본래 이리야의 마술에 의해 얻은 직감이다. 그렇다면, 의지할 수 있는 건 보여준 기억과, 자신의 직감뿐이겠지.
「………10시 전. 택시로 1시간, 숲 속을 걸어서 4시간……」
으로 끝나면 좋겠는데.
일단, 택시는 서행하게 해서, 그 때 본 숲의 입구를 찾아낸다.
입구를 찾아내면 택시에서 내려서, 거기부터 도보다.
——최단으로 가면 황혼이 되기 전에 이리야의 성에 도착할 수 있다.
그 뒷일은, 이리야와 만나고 나서 생각하자.
「———시로우」
「에?」
……그러자.
뒤로 한 에미야 가에서, 그리운, 소리가 났다.
사무적인, 자칫하면 차갑게 들리는 호칭.
그래도 정중하게, 서툴면서도 가능한 한 친밀감을 담아서 불러준, 그 소리.
「———세이」
있을 수 없는 이름을 입 밖에 내다 만다.
「기다리세요. 출발 전에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라이, 더」
돌아보고, 현실을 받아들인다.
눈앞에 있는 건 라이더다.
나를 그 소리로 불렀던 소녀는, 이제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관없는데, 뭐야. 이쪽도 서두르고 있으니까, 짧게 부탁해」
「제 질문은 하나뿐입니다. 당신은 사쿠라를 지킨다고 했죠. 그 이유를 저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에미야 시로우」
「그거, 나는 신용할 수 없다는 거야?」
「네. 저는 사쿠라만큼 당신을 알고 있는 게 아니니까」
「………………」
그건 지당하다.
라이더가 지키는 건 사쿠라지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일단 아군인 내 생각을 알아두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후우. 한 번 밖에 말 안 할 테니까, 이런 질문은 이걸 마지막으로 해 줘.
점잔 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할 만한 게 아니니까 말야」
「………………」
「——알겠어? 나는 사쿠라가 좋아. 그것만이 아냐. 어젯밤, 사쿠라를 안았어」
「……그런 듯 하군요. 아침, 사쿠라의 마력은 안정돼 있었어요.
외부로부터의 공급이 없으면, 사쿠라는 또 열에 눌려 있었겠죠.
——그게 왜?」
「그것뿐이야. 나는 사쿠라가 좋고, 사쿠라를 안았어. 사쿠라를 지키는 이유는 그것뿐이야.
자기 여자를 지키는 건, 남자로서 당연하잖아」
「—————」
「……그럼, 당신은 사쿠라를 위해서 싸우는 거군요? 목적은 어디까지나 사쿠라의 몸을 구하기 위해.
사쿠라가 성배를 얻게 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길 생각은 없다고요?」
「아니, 챙길 거야. 성배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게 사쿠라를 행복하게 해 준다면 얼마든지 써 주겠어」
「———사쿠라를, 행복하게 해요?」
「그래. 지금까지 사쿠라 혼자를 괴롭혀 왔어. 그러니까 그만큼,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라이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서 있다.
……아무래도 지금 그, 남 얼굴에다 대고 말하기에는 멋쩍은 이유에 납득한 모양이다.
「——좋아. 라이더의 질문에 대답했으니까, 이번은 이쪽 차례야. 바라는 게 있는데, 들어줄래」
「에, 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라면 들어주도록 하죠」
「응, 간단한 거야. 아까 부른 거 말인데, 시로우라는 발음은 삼가 주지 않겠어?
부를 때는 올바르게 시로라고 해 줘. 시로. 마지막 장음을 작게 하는 게 아니라, 전부 확실히」
「? ……아, 알았습니다. 시로오, 면 되나요?」
「그래서야 시로오지. 이상하게 액센트 안 줘도 된다니까」
「에에, 시, 시로우. 시로오. 시로야. 시로이, 시로아, 가 아니라, 시로, 시로」
으음, 하며 악전고투하면서도 발음을 연습하는 라이더.
……응.
눈가리개와 검은 복장 때문에 예리한 이미지가 있지만, 라이더는 의외로 같이 있기 편하다.
왠지 모르긴 하지만, 사생활에서는 맹한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로. ……흠. 발음은 이거면 되는 거죠, 시로」
「그래, 흠잡을 데 없어. 미안, 내가 제멋대로 한 부탁을 들어주게 해서」
「제멋대로……? 당신은 시로, 라고 불리는 게 불쾌한 거죠? 그럼, 제가 발음을 정정하게 하는 건 옳다고 생각하는데요」
「———설마. 아까 그렇게 부르는 건, 좋아했어」
……그렇다.
좋아했기에, 다른 녀석은 쓰지 말았으면 한다.
하찮은 집착이라고 알고는 있어도, 그렇게 부르는 것만은, 그녀의 것으로 해 두고 싶었던 것이다.
「미안, 정말로 그저 제멋대로 한 부탁이야. 라이더가 잘못한 게 아냐」
「……알았습니다. 당신이 그렇다니, 저도 이유는 묻지 않겠어요」
「그래. 그럼 갔다 올게. 사쿠라, 잘 부탁해 라이더!」
라이더에게 손을 흔들고 달리기 시작한다.
우선은 교차점까지 내려가서, 택시를 잡는다.
그 뒤엔 교외에 나가서, 한 번 보기만 한 숲의 입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되지.
———그리해서, 그녀는 남겨졌다.
이제 싸울 의미가 없는 소년.
마스터에서 탈락한 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원흉인 자신이 안식에 빠져있다.
그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한층 깊게 가라앉힌다.
「그는 숲에 향했어요. ——후회하고 있는 건가요, 사쿠라」
종자는 자신의 주인에게 묻는다.
그녀는 끄덕이지 않고, 괴로운 듯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단 한 번 머리를 옆으로 흔들었다.
「……후회 같은 거 할 수 없잖아, 라이더. 그런 거, 이제 와서 아무 의미도 없어」
「그렇군요. 확실히, 의미 없는 질문이었어요」
「응. 하지만, 괴롭기만 한 건 아냐. 나 말야, 조신하지 못하다고 알고 있어도 기뻐.
선배가 날 위해서 무언가 해 주는 건, 순수하게 기쁘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얼굴은 고뇌에 차 있었다.
기쁘다고 중얼거리는 입은, 죄의식으로 꿰매진 것처럼 무겁다.
「하지만, 그건 잘못이야. 할아버님은 용서 따위 하지 않아. 선배가 싸우는 한, 항상 죽음의 위험성이 있어.
거기다, 무엇보다———」
이 이상 싸움에 참가하면 곤란하다.
그건 자신에게도 그에게도, 좋지 않은 미래를 가지고 오겠지.
그렇기에 싸움을 그만두게 해서, 그는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했다.
어차피 자신은 오래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그만은 살아 있어줬으면 한다.
……하지만.
그렇게 소원하는 반면, 희망에 매달리는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가 싸우는 걸 통해서, 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아니, 사랑하는 자가 자신을 위해서 상처 입으면서까지 싸워주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싸우지 말았으면 한다.
하지만, 싸워주는 게 너무 기쁘다.
두 소망은 대립하고,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길항한다.
「……거짓말. 길항 따위, 안 하는 주제에」
괴롭게 입 밖에 내고, 그녀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렇다.
사실은 싸워줬으면 한다. 자신을 구해줬으면 한다. 지금까지 돌아봐주지 않았던 만큼, 몇 배나 응해줬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면———그가 상처 입어도 좋다, 라고.
그녀는,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마저, 생각하고 말았다.
「하, 큭…………!」
가슴을 누른다.
몸 안의 벌레가, 그녀의 어두운 정념에 응하듯이 신경을 긴다.
……단 한 순간.
단 한 번, 상처 입은 그의 모습을 상상했을 뿐인데, 벌레들은 그녀의 몸을 침범해 간다.
지끈지끈.
지끈지끈.
지끈지끈지끈.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이명이 난다.
혈액에 녹아 순환하는 오한이 든다.
.
……혈액에 녹은 벌레는 미약이 되어, 그녀의 몸에 고통을더해 간다.
몸 안에서 생겨, 의식째 삼키는 파도.
그, 계속 희열하는 의식 속에서 그녀는 항상 생각하는 것이다.
이 손발은 이미 완연히 더럽혀져 있어서, 사람의 것이 아니다.
몸은 희열에 빠져 금방 쓰러져서, 천하게 지면에 달라붙는다.
파괴되어가는 내장 지끈지끈쑤시는 골절.
그건 신경에 휘감긴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부정하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벌레들은 신경을 공격해, 의식은 흐물흐물하게 녹고, 그리고,
———자신이, 벌레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최후에는 불길한 착각에, 온몸을 지배당하는 것이다.
「사쿠라」
「……괜찮아. 나는 아직 괜찮아. 그것보다 부탁해, 라이더. 부디, 선배를 따라가 줘」
「……명령이라면 따르겠어요. 하지만 사쿠라. 당신의 몸도 역시 오래는 못 버텨요.
저를 행사한다는 건, 당신의 남은 목숨을 깎는 겁니다. 그래도 괜찮은 거군요?」
「……응. 어차피 오래 못 사는 걸, 나.
지금은 멀쩡하지만, 긴장을 풀면 말야, 자기가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게 돼.
……날이 갈수록 기억이 애매해지고, 손발의 감각도 없어. 시간 감각도 조각조각이라, 하루가 오래 계속돼 주지 않아.
……오늘 아침도. 어쩐지, 선배를 배웅하고 나서, 1주일 정도 지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속에서 희망에 매달리는 추한 자신과 싸우면서, 그를 지켜줬으면 한다고 소원한 것이다.
「——잘 알았습니다. 주인의 명에 따라, 에미야 시로를 호위하겠어요」
「고마워. ……미안, 라이더. 내가 못 쓰게 되면, 바로 새 사람이랑 계약해. 선배……는 좀 싫지만, 라이더라면 괜찮으려나」
억지로 웃는다.
거기에 수긍만을 돌려주고, 검은 옷을 입은 서번트는 주인에게 등을 돌렸다.
「……좋지 않은 바람이에요. 보구를 사용하게 될 텐데, 상관없죠」
「응. 위험해지면 선배를 데리고 돌아와」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쿠라.
저는 그 노인이 아니라, 그 신부야말로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등을 돌린 채 라이더는 말한다.
「—————」
그것이, 그녀에겐 놀랄 일이었다.
이 서번트는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들은 것, 명해진 것만을 실행하는 과묵한 성격이었다.
그런 라이더가 지금처럼, 스스로 그녀를 걱정하다니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다.
「——그래. 나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해」
그건 노래하는 듯한 중얼거림이었다.
아까까지의 우려는 그림자를 감추고, 그 몸짓에 우아함마저 띄우며,
「——하지만 안심해, 라이더.
왜냐면 그 사람, 나한테는 못 이기는걸」
쿡 하고.
꽃을 꺾는 소녀처럼, 그녀는 웃었다.
정비된 국도에서 떠나기를 몇 분.
처음 보면서 본 기억이 있는 숲의 입구는, 한낮인데도 아침 안개처럼 흰 빛을 띠고 있었다.
자욱하게 낀 안개와 나무들에 가려진 햇빛이, 숲에서 시간 감각을 빼앗고 있다.
「……우와. 괜찮냐, 이거」
새삼스럽게 자신의 무대포 같은 점에 질린다.
그 때는 이리야의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헤매고 자시고 할 게 없었지만,
이건 정말이지, 기억만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아니, 약한 소리는 나중이다. 형편 따지고 있을 수 없으니까, 일단 부딪혀 보자」
흥, 하고 기합을 다시 넣고 색을 등에 진다.
시간은 정오를 지난 정도.
이리야의 “눈”으로 봤을 때, 성까지는 여기에서 대충 4시간 정도였다.
이 앞은 자신의 체력과, 마술사로서의 기억력과 재현력이 문제가 되는 도정이 된다———
숲을 걷는다.
충만한 수액 냄새가 조금 답답하다.
산길 정도는 아니라곤 해도, 포장돼 있지 않은 지면은 조금씩 체력을 빼앗아 간다.
그 뒤로 2시간, 이리야가 보여준 길 순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전혀 앞이 보이지 않고, 맞는지 아닌지 확증이 없는 건 좀 괴로웠다.
평소 단련하고 있는 만큼, 이 정도 험한 길이라면 하루 걸어도 문제는 없지만,
정신 면의 피로는 깨닫지 못하는 새에 체력을 빼앗는 것이다.
기억으로는, 그 성까지 앞으로 2시간 정도.
그 때가 돼서 전혀 다른 풍경에 조우한 경우, 지금과 같이 숲을 답파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체력적인 한계는 아직 나중이겠지만, 흐트러진 정신으로는 사소한 실도 일으키겠지.
등산에서는 수분의 보급, 신체의 체크는 당연히 만전의 상태가 아니면 안 되고,
그 끝에는 내디디는 발이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다음에 손을 대는 바위 표면이 1mm 얕은가 깊은가의 판단이 요구된다.
숲의 이동은 그렇게까지 곤란한 것이 아니지만, 여기는 여기대로 산과는 다른 위험이 있다.
방향을 잃는 것, 현재 위치가 확실하지 않은 것.
그러한 조난될 위험성은 물론, 숲에 생식하는 동물과의 조우는, 그야말로 생명에 직접 관계된다.
이만큼 넓은 숲이라면 야생 동물은 당연히 영지를 펴고 있다.
이런 부류의 길에서 동물에게 습격 당하는 건, 대개 그들의 영지를 침범했을 때다.
거리낌 없이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건 덮쳐 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고,
일견 똑바로 난 짐승이 다니는 길이라도 우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 이 숲에 뱀 종류는 생식하고 있지 않다.
있는 건 들개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흔적뿐이고, 그것도 가끔밖에 보이지 않는다.
생물의 기척이 희박한 것은, 아인츠베른의 마술에 의한 것이겠지.
그래도 들개 종류는 있고, 어쩌면 그건 들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조차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저쪽은 곤란한가. 돌아갈 때는 조심해야지」
보기에 무언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수풀을 우회해서, 기억대로 발을 나아가게 한다.
……군자 위험한 곳에 다가가지 않는다.
위험을 만나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위험한 장소에는 다가가지 않는 것이, 이런 길을 갈 때의 철칙이다.
「……그건 그렇다 쳐도. 이 숲, 이리야가 보여줬을 때와 낌새가 다른 듯 한데」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가 다르다, 라고 할까.
한 발짝 안으로 나아갈 때마다, 등골에 좋지 않은 저린 느낌이 달린다.
——이 앞으로 나아가지 마라.
——지금 당장 이 숲에서 도망쳐 돌아가라.
——오늘만은, 어느 누구라고 해도 살아서는 돌아갈 수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고 보니, 이 냄새」
수액 냄샌가 했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코를 찌르는 달콤함은 같아도, 숲의 싱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분명히.
「————잠깐」
죽도 주머니에서 목도를 꺼낸다.
……발을 멈추고 의식을 집중시켜, 몇 분 걸려서 목도에 “강화”를 건다.
「———무언가, 온다」
……수풀 저편에서 발소리가 난다.
귀를 기울이면 가지가 스치는 소리에 섞여서, 키이키이 소리가 난다.
「—————」
……온다.
그것은 녹음 안에서, 망설이지 않고 일직선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목도를 쳐든다.
두 팔에는 혼신의 힘을, 자루를 쥔 두 손에는 약간 힘을 넣고, 목도를 상단에서 멈추고
「거기까지다, 움직이지 마———!」
「거기까지야, 움직이지 마———!」
둘이서, 딱 굳어져버렸다.
「………………」
「………………」
………………자.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을까?
「……이봐. 슬슬, 그거 내려주지 않겠어? 도깨비집이 아니니까」
……먼저 자세를 푼 건 토오사카였다.
「아, 미안」
엉겁결에 따라서 목도를 내린다.
「………………흥. 희한한 데서 만났잖아. 일단 묻는데, 피크닉 사전답사인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냐. 그러는 토오사카야말로 뭐야. 삼림욕이라니 안 맞잖아, 너. 이번은 뭘 꾸미고 있는 거야」
「실례되는 소릴, 삼림욕 정도는 해. 물론 오늘은 다른 용건이지만」
울컥, 하며 항의한다.
여기서 놀라야 하는 곳은,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 데겠지, 음.
「———토오사카. 너, 이리야랑 한 판 벌리려는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낸다.
「……그렇다고 하면 어쩔 거야. 너는 이미 마스터가 아냐. 그럼, 우리들의 싸움에 머리를 들이밀 자격도 의리도 당연히 없지」
「———없, 지만. 토오사카가 이리야와 싸운다고 하면, 막을 거야」
「어째서. 혹시 이리야랑 사쿠라를 손을 잡게 하려는 속셈?」
「그것도 있지만. 토오사카, 이리야랑 싸우면 그냥은 안 끝나. 시작하면 한 쪽이 반드시 다쳐. 그런 건 싫어. 나는, 본래」
「처음부터 싸움을 막기 위해서, 지? 뭐야, 그거 아직 안 바뀌었구나」
가시 돋친 태도에서 완전히 바뀌어, 어깨를 움츠리며 토오사카는 말한다.
「…………아」
그건 나를 실컷 여기저기 끌고 다닌, 사쿠라가 그렇게 될 때까지 가까이에 있었던, 토오사카의 맨 얼굴이었다.
「뭐, 뭐야. 한 번 결정한 거니까, 그렇게 간단히 바꿀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렇겠지. 정말.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무슨 생각인지.
토오사카는 하아, 하고 야단스럽게 한숨을 쉬어 보이고,
「에미야 군은, 굉장한 바보지」
이쪽이 놀랄 정도 웃는 얼굴로, 그런 소리를 지껄였다.
「뭐———」
「하지만 좋아. 넌더리도 안 나는 녀석이지만, 너는 그렇지 않으면 손맛이 없지.
재주 없는 녀석은 재주 없는 대로, 힘껏 노력하도록 해」
「뭐, 뭐야 그 의기양양한 얼굴은! 어쩐지 이유 없이 화 난다, 너!」
「됐어 됐어. 그래서, 그 차림으로 보건대 에미야 군도 이리야스필에게 볼일이 있다는 거네.
아까는 어림짐작으로 말했지만, 정말로 이리야스필과 대화를 할 생각이구나」
이쪽이 화내고 있는데도, 히죽히죽 뭐어 정말 재미있는 듯 이쪽을 바라본다.
「음———」
……제길.
이런 상황이 되면 어째서인지 토오사카에겐 약하다.
무슨 소리를 해도 말에서 진다고 할까, 반론하면 할수록 코너에 몰려간다고 할까.
「?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입 다물어버리고. 묵비라니 에미야 군답지 않은데?」
「………흥.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지금부터 이리야를 만나러 갈 거니까 방해하지 마. 따라오면 쫓아버릴 거야」
「어라? 뭐야, 혹시 이리야스필이 있는 곳 알아?」
「아」
실수다.
또 말 안 해도 되는 걸.
「잘 됐다, 그럼 안내해 줄래?
나도 장소는 대충 알지만, 아주 옛날 지도니까 신빙성이 낮아서. 에미야 군이 안다면 얘기는 빠르지」
「———너 말야. 나는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구」
「어머. 에미야 군은 이리야스필과 대화하러 가는데, 나한테서 눈을 떼도 돼?
만일 내가 먼저 도착해버리면, 이미 대화하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윽! 너, 너 나를 협박할 생각이냐!?
도대체, 같이 가 봐야 이리야한테 싸움 걸 거잖아, 너는!」
「안 걸 건데? 이리야스필과 함께 싸울 수 있다면, 그게 최상인걸.
일단 해야 하는 건 조켄의 배제잖아. 내가 여기에 온 건, 이리야스필에게 충고하러 왔을 뿐인걸」
「윽———충고라니, 무슨?」
「마토 조켄이 무언가 꾸미고 있으니까, 얕보고 있으면 따끔한 맛 본다고.
캐스터 건도 있고, 버서커까지 그렇게 돼 버리면 이쪽이 불리하잖아.
하지만, 그렇게 충고해봐야 싸움이 벌어질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지만 말야. 나랑 그 애는 대화 같은 거 할 수 없어.
일단 충고하고, 그리고 싸움이 벌어진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결국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니, 늦느냐 빠르냐의 차이잖아?」
「하지만, 보기에 에미야 군한테는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잖아? 그럼 모험을 할 필요도 없고,
에미야 군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일은 원만하게 마무리된다는 거지」
「—————」
「자, 못마땅한 얼굴 하지 마. 네가 이리야스필을 설득할 수 있다면, 나는 얌전히 돌아가줄게.
그리고, 혹시 실패하면 협력해서 그 애를 쓰러뜨리든지, 둘이서 도망칠 수 있도록 힘을 빌려줄게.
어때? 나쁜 얘기는 아닌 거 아냐?」
「………………나쁜 얘기고 자시고. 너,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뒤를 따라올 생각이잖아」
「설마아, 그런 거 트집이야아? 우연히 가는 곳이 같다는 경우도 있으니」
「………………」
……악마 녀석.
하지만 뭐어, 안내를 하는 만큼, 토오사카는 나를 우선해준다.
내버려두면 이리야에게 싸움을 걸 토오사카지만, 여기서 데리고 간다고 하면, 토오사카는 얌전히 있어주는 거다.
「———말해두는데. 나도 길에 확증은 없어. 헤매도 불평하지 마」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네가 향하고 있는 방향, 지도랑 딱 일치하는걸.
내 지도랑 에미야 군의 안내가 있으면 절대 헤맬 일 없어」
「—————」
하아, 하고 토오사카에게 보이게 한숨을 쉰다.
「알았어, 단념했어. 성까지 같이 가자. 그렇게 하면, 일단 이리야랑은 싸우지 않는 거지?」
「그래, 네가 이리야스필과 교섭하고 있는 동안도 방해는 안 할게.
그 애, 적으로 돌리면 성가시지만 아군으로 만들 수 있다면 믿음직———」
「뭐, 지진……!?」
나무들이 흔들린다.
멀리에서는 폭발 같은 소리가 울려온다.
……아니다.
이건 지진 따위가 아니라, 무언가, 태풍 같은 것이 바로 가까이에서 날뛰고 있다———
「토오사카, 이거……!」
「———버서커. 아무래도 한 발 늦은 것 같네, 우리들」
「뭐……그럼, 저편에서 날뛰고 있는 건 버서커인 거야!?」
「그래. 우리들이 여기에 있는 이상, 버서커가 싸울 상대는 한 명밖에 없어.
……어떻게 할래? 나는 갈 건데, 에미야 군은 남을 거야?」
생각하고 있을 틈은 없다.
「———나도 갈게. 그러기 위해서 온 거니까 말야」
「그럼 내 뒤에 있어. 아쳐를 선행시킬 테니까, 그걸로 만나자마자 즉사……라는 것만은 피할 수 있어」
그것만 말하고, 토오사카는 숲 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영체에서 실체화한 아쳐는 딱 한 번 이쪽에 시선을 돌리고, 길을 만들듯이 질주해 간다.
「이리야, 무사해라…………!」
목도를 세게 쥐고, 늦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둘의 등을 쫓았다.
첫댓글 흥미진진~ ㅎㅎ 항상 수고하십니다
즐감하고가요~~
잘봐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