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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1일 토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부부의 날 주말 아침이니 사랑이 넘치는 가정 위에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 가정의 달 5월이 너무 빨리 달리는 것 같습니다. 원하고 바라기는 우리 가정 안에 부부의 화목을 위해 서로 잘 살펴보고 마음 아프고 불편함이 있다면 잘 풀어가는 주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그래서 서로 조금 불편하게 지내왔다면, 이제 서로 용납하고 관용으로 행복한 가정과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주말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요한 계시록 6장 1-8절}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 제 목 ◑◑◑◑
◗◗ 차례로 개봉되는 여섯 봉인 (예수께서 피와 말씀으로 불신자들을 심판하심)
◑◑◑ 본문 이해와 요약 ◑◑◑
◗ 6장에서는 예수님이 두루마리 책의 일곱 봉인을 하나씩 뗌에 따라 이 세상에 임할 재앙에 관한 환상을 보게 됩니다.
-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기록된 책이 그리스도의 손에 옮겨진 후 예수 그리스도는 곧 그 인봉을 떼십니다.
- 그렇지만 그 예언의 계시는 대단히 어려우며 시작되는 환난은 예수 십자가로 사단과의 영적싸움에서 승리와 함께 저들을 심판하는 내용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떼신 여섯째 인까지의 내용이 기록되고 있으며, 그 배경은 지상의 환난과 하늘에서 순교자가 호소하는 두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본문에서 네 말들을 보게 되는데 먼저 흰 말을 타고 활을 가진 것은 적그리스도와 악의 세력으로서 장차 나타날 정복과 심판을 의미하며, 붉은 말은 앞으로 대대적인 살육과 전쟁을 상징하는 것으로 내란과 혁명을 의미하고, 검은 말은 가난과 기근이 있고, 전쟁의 결과로서 나타난 슬픔, 애곡, 황폐함을 의미하고 있으며, 청황색 말은 전쟁, 기근, 온역, 짐승의 공격으로 많은 사람이 삶과 죽음의 심판을 것을 의미합니다.
- 그러나 이 재앙을 땅의 사분의 일에만 허락한 것은 이 재앙이 전면적 심판이 아닌 제한적 심판이며, 따라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말합니다.
-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 하는 자들의 결국이 멸망임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 이제 6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4절에서 첫째인은 흰말을 탄 정복자와 둘째인은 전쟁의 적색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한편 5-8절에서 셋째인은 기근의 검을 말을 그리고 넷째인은 사망의 청황색 말을 보게 됩니다.
- 그리고 9-11절에서 다섯째인은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호수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 한편 12-17절에서 여섯째인은 천재지변을 일으키신 어린양의 진노와 악인들이 받는 공포를 봅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4절에서 평화의 첫째 조건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 한편 4절에서 사단의 세력도 실은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만 움직일 뿐입니다.
- 그리고 5-6절에서 기아와 빈곤이 있는 이 땅에서 성도의 사치는 그 자체가 죄악입니다.
- 한편 7-8절에서 인류가 당하는 재난과 고통은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 결론적으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악하고 사단의 세력이 발 부동 친다고 해도 하나님께 마련하신 진노의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도 은혜의 때와 구원의 기회와 그 날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 그러므로 성도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 받을 만한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아울러 믿지 않는 사람들을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특별히 여섯째 인을 뗄 때 나타나는 것은 지진이 일어나고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고,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이 사라지고 지각이 변동함으로 이 땅 위에 큰 공포의 재앙이 임할 것입니다.
- 그리고 마지막 날 심판 때에는 심판의 대상은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을 핍박하던 자들이므로 제시된 심판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강력하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긍휼함이 있으면 예수님의 칭찬을 경험한다. (요한계시록6장 5-6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기아와 빈곤이 있는 이 땅에서 성도의 사치는 그 자체가 죄악입니다.
❥ 오늘 본문은 일곱인 심판 중에 첫 부분 4개 인의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 그런데 계시록은 6장 일곱인 심판부터 그 해석들이 너무나 다양합니다.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지만 기본적인 것은 1세기 사도요한의 편지를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 말씀들을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초대교회 성도들이 받아들인 해석이 기본이고 그것을 기초로 오늘날 현대에 맞게 적용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오늘은 5-6절을 살펴보면 “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셋째 인을 떼실 때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의 손에 저울이 달렸으며,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 라는 음성이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 그런데 성경을 보면 종종 검은 색은 슬픔과 애곡과 황폐를 의미합니다.
-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은 검은 말은 자연 재해는 기근과 흉년을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 첫째 말과 둘째 말은 활과 칼을 가졌지만 셋째 말을 탄자는 저울을 가졌는데, 이 저울은?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서인데 저울을 가졌다는 것은 기근이 심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 세상의 악은 전쟁을 통해서 나타나고, 둘째는 테러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그러한 전쟁의 결과는? 기근이 오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엄청난 식량난이 오게 된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 이사야 50장 3절에서 “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예레미야 4장28절에서 “ 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어두울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 저울은 양식의 무게를 다는 데 사용되는 도구로 성경에서는 기근을 말할 때 상징화되어 나타나곤 합니다.
- 레위기 26장26절에서 “ 내가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에스겔 4장9-11절에서 “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너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네가 옆으로 눕는 날수 곧 삼백구십 일 동안 먹되 너는 음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씩 때를 따라 먹고 물도 육분의 일 힌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데나리온은 로마의 기본 화폐 단위로서 한 데나리온이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는데,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밀 한 되는 남자 한 사람의 식량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 마태복음 20장2절에서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라고 하였습니다.
- 따라서 노동자의 하루 품삯으로 겨우 한 사람의 식량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은 곧 극심한 인플레와 식량 부족을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 왜냐하면 밀 한 되의 가격이 한 데나리온이나 하는 것은 평상시 시세의 열 배가 훨씬 넘는 가격이기 때문입니다.
-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하면 셋째 인은 곧 주님께서 종말의 한 징조로 말씀하신 극심한 빈곤과 기아의 재앙을 의미하는 것임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마태복음 24장7-8절에서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사실 역사 이래 인류는 항상 이러한 빈곤과 기아에 시달려 왔으며 앞으로도 이 상태는 계속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성경의 예언과 함께 주님께서도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 요한복음12장 8절에서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만성적으로 인류가 고통 받고 있는 기아와 빈곤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 이에 대해 성경을 근거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 인류의 죄 때문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기아와 빈곤은 결국 생산력의 부족과 전쟁과 같은 재앙, 그리고 착취와 불평등과 같은 불의한 사회제도에서 오는 것으로서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 인류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 생산력의 절대 부족도 인류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며, 전쟁이나 착취, 불평등 역시 죄로 오염된 인류의 정복욕과 탐욕 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창세기 3장 17-18절에서 “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라고 하였습니다.
- 따라서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일차적으로는 그들 스스로의 무지와 게으름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인류 전체의 범죄로 인한 고통의 짐을 가장 크게 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처럼 인류 전체의 죄로 인해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상존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 이에 대해 흔히 세상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니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 세상의 기아와 빈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 우리 성도들은 분명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제사장과 선지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 야고보서1장27절에서 “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제사장과 선지자란 바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의 아픔을 함께 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이자 선지자였던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아 멸망했을 때 이를 그토록 아파하며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의 애가를 불렀던 것입니다.
- 이러한 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제사장이자 선지자라 하는 성도들이 자신만의 안락과 축복을 위해 기도하며 사치스럽게 사는 것은 그 자체가 죄악이요 스스로의 본분을 망각하는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 갈라디아서 2장10절에서 “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나는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지니고 살고 있는지? 본문에서 셋째 인을 때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지? 검은 말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이해하는지? 손에 저울을 가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땅에서 성도의 위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도바울도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라는 이유는 무엇인지? 성령님은 오늘 나에게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소식 앞에 어떤 자세가 필요하겠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마지막 때에 자연재해로 기아와 빈곤이 있는 저 땅의 소식을 듣고도 성도들이 자신만을 위하고 사치하는 자체가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 생활에 힘겨워 하는 저들을 위해 주의 사랑과 긍휼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함이 있으면 예수님의 칭찬을 경험합니다.
- 이사야 5장 8절에서 “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라고 하였습니다.
- 이 말씀은 서로가 힘들어 하는데 혼자 호의호식하는 것은 하나님께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이므로 어려운 때에 서로가 위로와 힘이 되고 섬김과 돌봄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 성도의 삶의 바른 자세입니다.
- 힘든 때에 나의 이웃과 북한의 우리 형제들과 열방의 질병과 전쟁으로 고통 받는 그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 만일 손내미는 자들을 보고도 눈감고 돌아선다면 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이 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도 코로나 질병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지구의 삼분지 일이 넘는 사람들이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땅에서 우리 성도들만큼은 적어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며,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볼 때마다 더욱 아픈 마음으로 기도해 주며 검소하고 소박한 삶으로 남은 것을 이웃과 나누며 부지런히 복음을 전함으로써 인류의 죄를 함께 마음 아파하며 그 해결점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선한 영향력으로 살아내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