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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玉皇上帝, 태상노군太上老君, 원시천존元始天尊, 도참圖讖
2019.05.29 21:53
김광우
카테고리 종교 댓글쓰기
옥황상제玉皇上帝, 태상노군太上老君, 원시천존元始天尊, 도참圖讖
유교 중심의 조선 사회에 들어 와서 유신儒臣들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됨으로써 도교道敎는 그 규모가 크게 축소되기는 했지만, 왕실과 민간에서의 도교 신봉은 여전했습니다. 특히, 왕실의 도교 신봉은 고려시대에 못지않아 도교 신전과 도교적 의례인 초제醮祭(재초齋醮라고도 함. 흉사시에 지내는 재齋와 길사시에 지내는 초醮를 구별하기도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음)의 폐지를 둘러싸고 왕실과 유신들 사이에 심각한 대립을 일으켜 사화의 간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도학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었으며, 도학의 기본적 특징은 이단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점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학자 관료들은 도교의 여러 신전을 결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도교 신전의 폐지를 끈질기게 건의했고, 이에 조선왕실에서도 송도의 소격전昭格殿 한 곳만을 남겨두고 모두 폐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세조 11년에는 소격전이 소격서昭格署로 격하되었고, 중종 때는 조광조 등의 끈질긴 반대로 소격서마저 잠시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종은 기묘사화己卯士禍 뒤에 모후母后의 병을 구실로 유신들의 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소격서를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소격전을 소격서로 개칭하는 문제나 소격서의 폐지와 관련해 왕실과 유신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이면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깃들여 있었습니다. 유학자들이 소격서의 혁파를 주장한 것은 물론 유학의 강한 벽이단 정신에도 근거하고 있지만, 실은 하늘에 대한 제사는 오직 천자만이 행할 수 있고 제후는 자기 구역 안의 사직 내지 산천에만 제사할 수 있다는 중국 중심의 모화적 사대주의에 입각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격전에서 최고신인 옥황상제玉皇上帝를 모시고 제사하는 건 중화中華의 법도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신들이 신전의 뜻을 가진 소격전을 관서의 의미인 소격서로 개칭한 것도 소격전의 신성성을 격하시키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도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최고신이나 유일신의 위치가 절대적이 아니라, 시대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최고신의 개념이 바뀌기도 하는 독특한 종교입니다. 예를 들면, 5세기경에는 태상노군太上老君(노자老子)이 최고신이었지만, 6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영보천존靈寶天尊, 도덕천존道德天尊과 함께 삼청을 구성하는 원시천존元始天尊이 최고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도교 경전에 등장하는 태상노군, 즉 노자는 사람의 모습과 사뭇 다릅니다. 신장이 약 3m, 몸은 황색, 코는 새의 부리와 비슷하며, 눈썹의 길이는 17cm, 귀는 23cm나 되며, 거북으로 만든 침대에 길게 누워 있는데 몸에는 5색 구름이 휘감겨 있습니다.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어전御殿에 살며, 그곳의 계단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노자의 전후좌우에는 천계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인 청룡靑龍과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가 호위하며, 머리 위에는 번개가 빛나고 있다고 합니다.
원시천존은 하늘과 땅이 아직 분리되지 않고 혼돈 상태에 있을 때에 최초로 생겨서 신神으로 된, 말하자면 천지의 정精이며 세계의 개창자開創者이기도 합니다. 자연히 화생化生한 태원옥녀太元玉女와 통해서 천황씨天皇氏를 낳고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 등을 거쳐 황제黃帝가 된 때 국토가 열리고 인간이 번식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원시천존의 신앙은 남북조 시대 초기에 발생하여 당대唐代에 완성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불교 사상의 영향을 볼 수 있었는데 당 말기의 천존 상像은 불상佛像이었습니다.
옥황상제가 등장한 건 원시천존이 최고신이던 6세기 무렵으로, 송宋나라 진종眞宗(968~1022)이 다스리던 시대에 최고신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진종은 옥황상제의 열렬한 신자였기 때문에 신하는 물론 백성들까지 이 신을 최고신으로 숭배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도 도사는 원시천존을, 서민은 옥황상제를 최고신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옥황상제를 떠받드는 이유는 그가 가진 신으로서의 임무 때문입니다. 중국인의 가정에서는 조신竈神(竈王)이라는 부뚜막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 신의 역할은 그 집에 사는 식구들의 생활을 자세히 관찰해서 연말에 개인별로 상세한 보고서를 만들어 상급신에게 제출하는 것입니다. 그 보고서를 최종적으로 받아보는 신이 바로 옥황상제입니다. 옥황상제는 보고서를 검토하여 개개인의 행위를 파악한 다음 선행이 많으면 이듬해에 행운을 주고, 악행이 많으면 벌을 내립니다. 이렇게 선악에 따라 응분의 보상을 하는 것을 공과격功過格이라 합니다.
고려 왕실에서 그렇게 끈질기게 소격전을 유지시키면서 계속 초제를 거행했던 것도 양재초복禳災招福(잡귀와 화를 쫓고 복을 부르는 일)이라는 생각만이 아니라, 초제를 통해 최고의 신에게 직접 제사함으로써 내적으로라도 국권의 자주성을 확보하려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고려조에서 여러 가지 정치 문제를 일으켰던 도참사상圖讖思想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크게 유행했습니다. 태조는 하륜河崙 등의 학자들에게 풍수를 연구하여 새 도읍을 정하게 했습니다. 도참圖讖도 점술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미래의 길흉화복을 알고자 하는 염원에서 나온 것이지만, 점술과는 달리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일부에서만 보이는 현상이었습니다. 도圖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상징·표징·신호·징후·전조·암시를 뜻합니다. 일정한 문자나 기호 또는 구체적 대상물이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어떤 일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고방식의 표현입니다. 참讖은 참언讖言·참기讖記·참위讖緯 등의 용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은어隱語와 밀어密語의 상징적 언어로 역시 장래에 일어날 사상事象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도참圖讖이란 결국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예언서, 즉 미래기입니다.
도참에는 천문·지리·음양오행·주술뿐 아니라 도교나 불교까지 원용되고 있습니다. <후한서> 광무기光武紀 첫 장은 “이통李通 등이 도참으로 광무제에게 아뢰기를 유씨劉氏가 다시 흥하고 이씨李氏가 그를 도울 것이라 하였다”는 기사를 위시해 많은 도참의 사례가 보입니다. 이를 근거로 도참이 전한 말에서 후한 초부터 널리 유행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 이전은 확실치 않으나 삼국시대 말에 한반도에 도참식 비기祕記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를 보면 의자왕 20년(660)에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百濟同月輪新羅如新月”는 기사가 있습니다. 즉, 백제는 달이 차서 장차 기울 것이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아 번성할 것이라는 예견이었는데, 그 뒤 왕조의 흥망을 예언하는 도참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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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원시천존은 5세기 옥황상제님은 6세기 부터 최고의 신으로 됩니다.
그럼 원시천존과 옥황상제님은 동격입니까?
아닙니까?
아마 아니라고 하시겠지요 대순에 귀딱지가 앉으신 분들은 그러리라 봅니다.
최고의신이 옥황상제님도 인간이 십만겁의 선업을 연속적으로 쌓으면 옥황상제 위에 오를수 있다 가르치고 있고요 제가 보는 바는 증산상제님께서 옥황상제님의 자리를 도주님께 물려 주시기 위해 후인으로 세우신 것이다 라고 봅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원시천존이나 옥황상제님은 최고의 신격을 뜻합니다. 즉 하느님이지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구천상제라는 존함은 대순에 와서 처음 들었으며 당연 하느님을 옥황상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집안 어른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더군요.
심지어 어릴 때 보던 연속인형극에서도 옥황상제님이 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듯 우리 영대가 있기 전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신의 존재가 최고의 신이라고 생각했을겁니다.
이제는 알죠. 하늘에 사방천궁이 있고 그곳에 최고의 신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요.. 그 사실을 밝혀 바르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영대가 있어야 했고 그 사방천궁의 천자님들께서 직접 밝혀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옥황상제님 위에 구천상제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거의 옥황상제님과 구천상제님은 사람들의 표현법이었으니 그다지 구분이 되어진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드네요...
증산상제님께서 유일신 이시다 옥황상제님과 미륵세존께는 신명이 응해 주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음양은 나오는 것은 이제 천지부모이신 태을천상원군의 천부님과 천모님 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 입니다.
양산 의 음양 증정지간 이 대음양이 될수 없는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