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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지 추천 스크랩 1400년을 이어온 대가람, 오대산 월정사 (09. 07. 05)
무념무상 추천 0 조회 45 19.07.21 08: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오대산 월정사이다.

학교다닐때 수학여행을 포함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수도없이 왔었지만 하나하나 제대로 본적이 없다.

이번에는 사진과 건물에 대한 설명을 하나씩 맷치시켜 참고자료로 만들어 보려 한다.

 

월정사 창건

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띤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자연 조건이며 풍광이

빼어날뿐더러 예로부터 오만 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성지로서 신성시 되어 왔다.

그 오대산의중심 사찰로서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1400여 년 동안, 개산조 자장율사에서부터 근대의 한암,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려니와, 월정사는 오늘날에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이 곳 전나무 숲의 그 곧음과 푸름으로 승가僧伽의 얼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월정사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니 그 때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이었다.
자장율사는 636년에 중국 오대산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 문수사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자장율사는 “너희 나라 동북방에는 일만의 내가 상주하고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나를 친견하라”는 게송을 문수로부터 듣고 신라에 돌아오자 마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오대산에 들어가 임시로 초가를 짓고 머물면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정진하였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태백 정암사에 들어가 입적하게 된다. 비록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뜻은 끝내 이루지 못했으나 이로부터 월정사는

오대산 깊은 계곡에 터를 잡게 되었다.그 뒤로 유동보살 -석가모니가 전생에 보살로서 수행할 때 연등불(燃燈佛)에게 공양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당시의

이름 - 의 화신이라고 전해지는 신효거사와 또 범일국사의 제자였던 두타승 신의 스님이 자장율사가 초가를 지었던 터에 다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이후로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남아 있던 이 암자는 수다사(水多寺) - 진부면 수항리에 있던 절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 의 장로 유연스님이

새로 암자를 짓고 살면서 비로소 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고 그 뒤로 차츰 규모가 커졌다.
그 무렵의 월정사는 금당 뒤쪽이 바로 산인 특수한 산지가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금당 앞에 탑이 있고 그 옆에 강당 등의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남북자오선(南北子午線) 위에 일직선으로 중문, 탑 ,금당, 강당 등을 세운 신라시대의

일반적인 가람 배치와는 다르다.

 

월정사 중창기

고려 충렬왕 33년(1377)에 화재로 모두 타버린 것을 이일스님이 중창하고 조선시대까지 계속 법등을 밝혀 왔는데 조선 순조 33년(1833)에 또다시 큰 화재를

입고 말았다. 그런 지 12년 뒤인 헌종 10년(1844)에 이르러 영담, 정암 스님 같은 분이 앞장서서 중건하여 큰 사찰로서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였다. 1911년에는

전국 31본산의 가운데 하나가 되어 강원도 남부의 사찰을 총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던 월정사는 1950년 6. 25 전쟁의 참화로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하여 영산전, 광응전, 진영각 등 17동 건물이

모두 불타고 소장 문화재와 사료들도 모두 재가 되어버린 비운을 맞이했다.

 

월정사 현대

지금의 월정사는 1964년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하고 그 뒤로 만화스님과 현해스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중건하여 이룩한 것이다. 그리하여 어엿한

대가람의 모습을 되찾게 된 월정사는 비록 몇 차례 화재와 전화로 많은 성물(聖物)과 문화재를 잃긴 하였으나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징을 지닌 당우들이며

국보로 지정된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하여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제일먼저 만나는 금강교

 일주문에서 들어오는 전나무숲. 금강교 우측

 금강교 좌측. 계곡에서 공사중이라 물이 흐리다.

 전나무 숲길

 

천왕문

금강교를 지나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 천왕문이다.

일명 사천왕문四天王門이라고도 하며 대개 일주문 다음에 천왕문(天王門)이 있다.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수미산 중턱에 살고 있는 불법을 외호外護하는 신장神將을 모신 전각이다.
이 천왕들은 수미산 중턱의 동, 서, 남, 북에서 그들 무리와 살면서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며 불법을 수호한다.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오른손에 비파를 들었고, 남방 증장천왕僧長天王은 왼손에 보검을 들었고,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왼손에 보검을 들었고,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차와 보탑을 들고 있다.
월정사의 천왕문은 조선시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천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벽화에는 중국선종의 제2대조인 혜가, 부모은중경, 자장율사, 지장보살,

포대선인, 기인 한산의 설화가 그림으로 설명되어있다. 1974년 만화스님이 중건했다.

 

 청류다원

전통한옥식 건물로 앞으로는 금강연과 전나무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으며 찻집 가운데는 군고구마와 떡을 구워 먹을 수 있는 난로가 놓여 굴뚝으로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다.
청류다원淸流茶院에서 그윽한 차향 온몸 가득 채우고, 월정사의 향기도 함께 가져 가시길..

 

 

 

 금강루

월정사의 금강루는 사천왕문을 지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한국사찰의 가람배치에 있어서 월정사는 불이문의 자리에 금강문을 두고 있다. 금강문의 오른쪽에는 움금강역사상

이라고도 하는 나라연금강이, 왼쪽에는 훔금강역사상이라고도 불리우는 밀적금강이 있으며 특히 밀적금강역사는 지혜의 무기인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한다.

 

 전경

 설선당 (종무소)

적광전 왼쪽에 동당으로 불리는 설선당이 있다.

ㅁ 자 형으로 지어진 이 큰 당우는 월정사의 일반 사무, 행정을 맡아 보는 종무소이다.
규모가 커 보이나 건물의 배치가 ㅁ 자 구조이며 내부에는 중정(中庭)을 두고 있다. 1979년 만화스님이 중건하고 2002년 현해스님이 전면보수했다

 성보박물관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 자장 율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 월정사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연건평 206평의 한식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로 지상 1층, 지하 1층의 전시실에서는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를 전시 주제로 삼아 불교 문화유산들을

전시하고 있다. 1999년 10월 개관한 이후 2000년 7월 문화관광부에 불교전문박물관으로 등록함으로써 강원도의 유일한 불교전문박물관이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국보인 상원사 중창권선문을 비롯하여 보물 수타사 월인석보와 고려시대 월정사 팔각국층석탑 사리구11점 조선전기 상원사 문수동자상

복장 유물23점을 비롯하여 강원도유형문화재 20여점, 말사에서 이운한 조선후기 불화와 불상, 전적, 근대 한암, 탄허 스님의 유품에 이르기까지 약 500여점의

성보들을 소장하고 있다.

1999년 개관한 이래로 꾸준한 학술행사와 전시등을 개최하여 2000년 “월정사팔각구층석탑의 종합적 검토”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와 유물전, 사진전을 개최하여

월정사팔각구층석탑의 역사적 미술사적 불교사적 의미와 가치를 종합적 조명했다.
2001년 “강원도 불교문화재의 종합적 검토” 의 학술행사와 유물전 및 사진전에서는 오대산에 소재한 조각, 전적, 공예, 회화에 걸친 한국불교미술사에 있어서

강원도의 위치를 찾는 자리였다.

2002년 “오대산 적멸보궁의 종합적 검토”의 세미나와 사진전, 유물전에서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기원과 발전과 신앙의 형태를 되짚음으로써 우리나라 사리

신앙을 고찰하였다. 앞으로도 꾸준한 학술행사의 개최와 전시, 유물의 보수, 연구, 보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심을 통하여 불교전문박물관으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용금루

湧金樓(용금루)는 본래 팔각구층석탑 가까이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누각의 기초를 화강석 기둥으로 하였고 밑으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 누마루형식의 건축으로 용금루의 계단을 한단한단 오르면 월정사경내가 마치 불계佛界와도 같이 조금씩 가까워오는 구조로 월정사의 장엄함을 경험하게 하는 구조라고 하겠다.

월정사성보박물관 특별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으로 팔작지붕이다. 1977년 만화스님이 중건했다

 대웅전과 8각9층석탑

 범종루

범종루梵鍾樓는 북, 종, 운판雲版, 목어木魚 등 사물四物을 두는 곳이다.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하루에 두 번 두드린다. 북은 걸어 다니는 모든 중생을, 종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친다. 이 종소리를 들으면 지옥 옥졸들이

지옥 중생들을 괴롭히다가 잠깐 쉰다고 한다. 운판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구름 모양의 넓은 판인데, 날아 다니는 중생들이 이 소리를 듣고 해탈하라고 친다.

 

목어는 물고기 모양으로 나무의 속을 파서 만들었으며 물 속에서 사는 중생들을 위해 두드린다. 범종루梵鍾樓 아래 있는 석경원碩經院에서는 불교 서적과

불구용품佛具用品을 판매하고 있다. 단청이 화려하며 아름다운 팔작지붕의 누각형 건축이다. 1994년 현해스님이 보수했다.

범종루는 원래 1층 목조건물이었던 것을 1973년 8월에 육바라밀을 상징하여2층 6각으로 개축한 것입니다. 범종루에는 신라계통과 중국계통의 범종양식을

절충한 높이 154cm, 구경89cm인 연대미상의 범종이 있는데 용문산 상원사에서 옮겨온 것으로 그 소리가 은은하기로 유명합니다

범종의 주조연대는 불기 2524년(1980)이고 몸체 사방에는 생황, 비파, 북, 피리의 악사비천을 배치하였다. 이는 8세기 신라 상원사 동종 악사비천상 이래의

범종장식을 계승한 것이다.

 

불유각

부처님 우유가 있는 집이란 뜻으로 월정사를 찾는 이에게 시원한 감로수甘露水를 제공하고 있다.
큰 석확안으로 세조가 피부병을 낳고자 등을 씻었던 물이 좋기로 유명한 오대산의 샘물이 솟고 있다. 
 

 

 

 8각9층석탑

월정사의 본당인 적광전의 앞뜰 중앙에서 조금 비껴난 자리에 팔각구층석탑이 서 있다.
팔각구층석탑은 연꽃 무늬로 치장한 이층 기단과 균등하고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 그리고 완벽한 형태의 금동장식으로 장엄한 상륜부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뛰어난 석탑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하나, 그 무렵의 탑들은 평면 정방형에 삼층 또는 오층의 탑으로 이루어진것에 견주어, 이 탑은 평면이 팔각형이며 탑의 층수도

구층에 이르는 늘씬한 자태를 이루어 고려시대의 석탑양식을 따른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탑은 전체를 화강암으로 조성하고 상륜부에 일부 금동장식을 더하였는데 여러차례의 화재로 손상을 입은 부분이 더러 있으나 오늘날 까지도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해 오고 있다. 기단은 아랫층 각면에 안상을 새기고 연꽃 장식을 베풀었다.

그 위로는 괴임돌을 놓아 윗층 기단을 정성스레 받들어 기단 전체가 마치 부처님의 연꽃 대좌 처럼 장식 되었다.
그 위에 탑신을 받았으니 탑신은 곧 부처님이다. 탑신안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으니 불사리는 부처님의 진신이나 다를바 없고 그러한 진신의 부처님이

연꽃 대좌 모양의 기단위에 계신것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기단 위에는 부처님을 앉히기 위한 방석과 같은 석재를 별도로 끼웠으며 탑 앞의 석조보살 좌상도

부처님과 같은 탑앞에서 공양하는 자세를 하고 있다.

탑신은 각 층마다 줄어듬이 적고 층수는 구층을 헤아려 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르는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팔각은 불교의 실천수행에 기본이 되는 팔정도

八正道를 상징한다.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지고 일층의 사면에는 네모난 감실이 하나씩 있는데, 남면의 감실이 가장 크며 문틀을

단 흔적도 있다.
몸돌은 모서리마다 귀기둥이 새겨지고 끝은 밑면이 수평이고 위는 곡면으로 처리하여 추녀 끝이 살짝 위로 솟아 가뜬해 보이며 추녀 끝마다 풍탁이 달려 탑은

언제나 바람의 향기를 음미한다.

흐트러집이 없는 정연한 상륜은 보탑의 격조를 한층 더하여 주며, 여기에 금동장식을 더하여 탑위에 보관을 얹은 듯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하여 보탑의

절정부는 세련된 조형미를 유감없이 발휘 하였다.
여러번의 화재로 인하여 1970년 해체보수를 통하여 1층 5층 6층 9층을 새 돌로 갈았으며 그 당시에 1층과 5층에서 총 12점의 사리구가 발견이 되었다.

은제의 불상 1구와 4점의 청동 거울, 금동 향합과 향주머니, 전신사리경 등의 총 12점의 유물들은 2003년 6월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또한 2000년 8월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보수공사시에 지하 1m아래에서 탑의 기단부로 보이는 또하나의 유구가 발견이 되어 학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팔각구층석탑은 높이 15.2미터로 우리나라의 팔각석탑으로는 가장 크다.
그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에서도 단연 으뜸이며 고려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려시대 초기인 10세기경의 작품이며 국보 제 48호.

 

 해행당

解行堂(해행당)은 천왕문을 지나 오른편에 자리하여 양지바른 곳에 있는 사무실과 방을 가지고 있는 팔작지붕 건물이다.
1978년 만화스님이 중건했다.

 적광전

팔각구층석탑 뒤에 만월산 자락의 한 기운이 엉긴 곳에 자리한 적광전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법당으로,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갖가지 문양이 어우러진 단청은 매우 화려하다.
1930년대의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과거 7불을 보신 칠불보전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아군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68년에 만화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다시 중건되었다.

적광전 외부 기둥 18개 중 16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이고 2개는 괴목이며, 내부기둥 10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전나무로 만들었다. 적광전이 소실되기

전에는 칠불보전七佛寶殿이라 했다.

대체로 적광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인데 이곳 적광전은 그 통례를 깨고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그대로 따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이는 1964년 만화스님 법당 중창당시에는 현판이 대웅전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탄허스님의 오대산수도원을 기념하기 위해 결사의 주主 경전이었던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으로 고쳐 현판을 달았다.

적광전 뒷면 벽화는 10개의 소를 찾아 다니는 이야기를 그린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적광전 현판주련柱聯 글씨탄허스님의 친필이다. 주련의 넉 줄은

자장율사의 불탑게이다.  

     만대윤왕삼계주     萬代輪王三界主

     쌍림시멸기천추     雙林示滅幾千秋

     진신사리금유재     眞身舍利今猶在

     보사군생예불휴     普使群生禮不休

     만대의 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여
     사라쌍수 열반 이래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지금 여기에 모셨으니
     뭇 중생으로 하여금 예배를 쉬게 하지 않으리.

 진영당

진영당은 개창주開創主나 중창주重創主와 같은 고승의 진영을 모시는 전각이다.

월정사의 진영당은 조사당을 따로 두어 개창주를 따로 모시고 있어 근 · 현대의 스님들만을 모시고 있다.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형태인 월정사

진영당은 근대 월정사에 주석한 조계종 초대 종정이신 한암스님, 현대불교학의 아버지이신 탄허스님,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지암스님, 6.25의 전란후 월정사를

중건하신 만화스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1975년 만화스님이 중건하고1994년에 현해스님이 증축했다.

 

 적광전 지붕과

 설선당의 추녀

 적광전 단청

 조사당

적광전 寂光殿 뒤에 자리잡은 조사당 祖師堂은 규모가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이며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월정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진영眞影을 모신 곳이다. 자장율사의 진영은 1804년에 제작된 통도사에 모셔져 있는 자장율사의 진영이 가장 오래 되었으나

월정사의 자장율사진영은 최근에 제작한 것이다. 1958년 영해당 경덕 스님이 중건했으니 현존하는 월정사 당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삼성각

삼성각 은 독성 나반존자, 산신님, 칠성님을 함께 모신 곳이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깨달은 성자로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을 신격화한 것으로 신앙되고 있다. 칠성님은 본디

중국에서 유입된 도교신앙의 신으로 불두칠성의 별자리를 신격화한 것으로 한국에 들어와 토착화 되었다.

 수광전

무량수전 은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 수광전, 극락전 이라고도 불리운다.

아阿란(아미타(바)Amitabha 무량광無量光·무량수無量壽) 한량없다無의 뜻이며 미타는 수명을 뜻하니 목숨이 없는 수명의 다함이 없는 부처님이란 뜻이다.

월정사 무량수전은 상단에는 아미타부처님과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좌우에 모시고 뒤쪽으로 극락의 법회 장면을 묘사한 목각탱화 극락

회상도極樂會上圖를 모시고 있다.

중단에는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지장시왕地藏十王 목각탱화를 봉안하고 있으며, 하단에는 지옥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님을 금선묘金線描의

탱화로 봉안하고 있다. 지금 무량수전은 1989년 도명스님 때 시작해 1992년 현해스님이 완공廻向했다.

 신축중인 건물이다.

 용금루를 바깥쪽에서 바라본 모습

 전나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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