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꿰뚫는 혜안, 시니컬한 소설 한편>
[[사랑의 묘약 (The Chaser)]]
-존 콜리어-
앨런 오스톤은 겁 많은 새끼 고양이처럼 조심해서 계단을 올라갔다.
펠 가(街)에 위치한 이 건물의 계단은 낡아서 계속 삐걱거렸고 빛도 제대로 들지 않아 어두웠다.
어두침침한 층계참에 멈춰 선 앨런은 각 방의 문에 걸린 명패의 희미한 글씨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드디어 찾던 이름을 발견한 앨런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당히 작은 방이었다.
가구라고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식탁과 흔들의자, 그리고 작은 의자가 전부였다.
먼지로 더러워진 황갈색의 벽 한쪽에는 항아리 십여개와 병들이 놓인 선반이 두 개 있었다.
그리고 흔들의자에는 늙은이 한 명이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앨런은 노인에게로 다가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이 받아 온 카드를 건네주었다.
"앉으시오, 오스톤씨.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소."
노인은 정중하게 말했다.
"저, 그게 사실인가요?"
앨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이 그..... 그 무언가 상당히 특별한 효과를 지닌 약품을 가지고 있다던데 정말인가요?"
"아, 손님!"
노인이 앨런에게 대답했다.
"난 그렇게 많은 양을 취급하지는 않소. 그리고 완화제나 진통제를 뒤섞은 것 같은 싸구려도 취급하지 않소. 난 내가 파는 물건 중에 평범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저, 사실은 말이죠....."
앨런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노인은 들은 체도 않고 선반에서 병을 하나 집어들면서 말했다.
"이 병 속에는 맹물처럼 아무런 색도 없고 맛도 거의 없어서 커피나 우유, 와인같은 음료에 타도 감쪽같은 액체가 들어있소. 물론 어떤 부검방식으로도 탄로나지 않는다오."
"독약인가요?"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앨런이 물었다.
"뭐, '가죽 장갑용 세제'라고 불러도 상관은 없소."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아직 한 번도 해보진 않았지만, 이것으로 가죽 장갑을 닦을 수도 있을거요. 아니면 '인생 청소액'이라고 해도 괜찮겠지. 때로는 깨끗이 청소해 버려야 될 인생도 있으니까."
"난 그런 건 필요없어요."
앨런이 중얼거렸다.
"아마 그럴거요."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얼마나 하는지 아시오? 차숟가락 하나 정도, 뭐 그 정도면 충분한 양이지. 그 정도에 난 오천달러를 부른다오. 그 아래로는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오."
"다른 약들은 그렇게 비싸지 않으면 좋겠네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앨런이 말했다.
"오, 걱정말아요."
노인이 안심시키듯 말을 이었다.
"'사랑의 묘약' 따위에는 그런 값을 불러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오. 사랑의 묘약을 찾는 젊은이들은 대개가 가난한 사람들이지. 많은 돈이 있다면 이런 묘약이 없어도 얼마든지 원하는 사랑을 얻을 수 있지 않겠소?"
"그것 참 다행이군요."
앨런이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오."
노인이 말했다.
"일단 무언가 한 가지 상품으로 고객을 만족시켜 주는 거요. 그러면 그 고객은 다른 물건이 필요할 때 또 다시 나를 찾게 된다오. 설령 원하는 물건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내게 오게 되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죠......"
앨런은 다짐이라도 받아내려는 듯 노인에게 물었다.
"정말 사랑의 묘약을 팔기는 파는 거죠?"
"만약 내가 그 사랑의 묘약을 팔지 않는다면."
다른 유리병을 하나 집어 들면서 노인이 말을 이었다.
"무엇하러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겠소?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도움을 준다오."
"그럼, 저.....그 약들은 그저....."
주저하는 듯한 말투로 앨런이 입을 열자 그가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 알아차린듯 노인이 말했다.
"걱정할 것 없소. 약효는 영원하니까. 그리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큰 효능을 발휘하지. 아주 집요하고도 엄청난, 그리고 영원한 약이라오."
"정말 굉장하군요."
아직도 어딘지 미심쩍다는 듯 앨런이 말했다.
"정신적인 측면을 한 번 생각해봐요."
노인이 말했다.
"무관심하던 사람들은 헌신적으로 변하고, 경멸하던 사람들은 사모와 숭배를 바치게 된다오. 당신이 원하는 여자에게 이 약을 아주 조금만 써 봐요. 오렌지주스나 수프, 칵테일에 섞어 먹이면 아무도 눈치 못 챌 거요. 아마 변하고 말걸. 아무리 명랑한 여자라도 이 약만 먹이면 고독 속에 빠져들어 오로지 당신만 찾게 된다오."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그 여자가 파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앨런이 말했다.
"아마 더 이상 파티 근처에는 가지도 않을걸."
노인은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여자는 당신이 만나게 될 여자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될 거요."
"그녀가 나 때문에 질투를 하게 된다는 말인가요?"
황홀한 듯 앨런이 소리쳤다.
"그렇다니까. 그녀는 당신의 전부가 되길 원할거요."
"오래 전부터 그녀는 나의 전부였어요. 단지....그녀가 그걸 모를 뿐이지....."
"이 약을 쓰고 나면 금세 깨달을 거요.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그녀는 오직 당신에게만 모든 정신을 집중시킬 거요."
"세상에!"
앨런이 거의 울부짖듯 감탄했다.
"그녀는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려고 할거요."
노인이 말했다.
"낮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말이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왜 갑자기 미소를 지었는지, 왜 슬퍼 보였는지, 그 모든 행동을 알고 싶어할 거요."
"그게 바로 사랑이죠!"
앨런은 울먹이며 말했다.
"그렇소. 정말 극진하게 당신을 위하게 될 거요. 당신이 피곤하거나 술에 취한다거나 끼니를 거르도록 두지 않을 거요. 만약 당신이 한 시간 정도 늦게 나타난다면 그녀는 거의 미칠 듯 걱정을 하게 되겠지. 아마 당신이 죽어버렸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미녀가 당신을 빼앗아가 버렸다고 생각할 거요."
"다이아나가 그러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요."
기쁨에 넘쳐서 앨런이 말했다.
"그저 상상 속의 일만은 아니라오."
노인이 말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다른 여자와 가까워져 잠시 한 눈을 팔게 되더라도 걱정할 필요없소. 그녀는 모든 걸 용서할거요.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겠지만 결국 당신을 용서할 거요."
"전 결코 한눈 따윈 팔지 않을 겁니다."
앨런은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그렇겠지, 암!"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만의 하나 그런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걱정할 필요 없을 거요. 그녀는 결코 이혼따위는 하지 않아요. 절대로 그리고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일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요."
"그 마법 같은 약은 도대체 얼마죠?"
앨런이 물었다.
"이건, 아까 보여주었던 소위 '가죽 장갑용 세제'처럼 비싸진 않소. 그건 오천달러였지. 한 푼도 깎아 줄 수가 없다고. 그런 물건은 당신보다는 훨씬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살 수 있는 거요. 꽤 오래 돈을 모아야 가능한 거지."
"그럼 사랑의 묘약은요?"
불안한 듯 앨런이 또 한 번 물었다.
"아, 이거?"
식탁 서랍을 연 노인은 조그맣고 지저분한 유리병 하나를 꺼내면서 말했다.
"이건 일달러면 돼요."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노인이 유리병에 약을 채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앨런이 말했다.
"난 도움을 주기를 좋아한다오."
노인이 말했다.
"그러고 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오. 그때는 좀 더 형편도 나아져있고, 처음보다는 더 비싼 물건을 찾게되지. 자, 여기 있소. 효과는 금세 나타날 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앨런을 배웅하며 노인이 말했다.
"또 봅시다."
-끝-
첫댓글
네살 넘으면 예술은 불가능하다라고 어느 분이 말씀하셨는데.
사랑이라는 미약(媚藥) 역시 소년 소녀를 지나고 나면 돌팔이 약장수 엉터리 약일지라~~~ ㅎㅎ
영원한, 완벽한 사랑을 원한다면
영원한, 완벽한 구속, 감옥에 갇힌다는 것.
오로지 장미빛으로 가득한
영원한 사랑의 망상
그걸 깨달았을 때
벗어날 수 있는, 탈출을 위한 묘약을
또 구하러 오겠지요.
노인이 말하는, ' 또 봅시다 ' 가 암시한다.
오, love ! love !
너를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는
너를 풀어 낼 오이디푸스를
발견치 못하느뇨 !
벗님들,
오늘도 힘 내시고 건강한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