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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심양합(三心兩合)
독서할 때 세 가지 마음가짐과 다른 것과 합쳐야 할 두 가지를 말한다.
三 : 석 삼(一/2)
心 : 마음 심(心/0)
兩 : 두 량(入/6)
合 : 합할 합(口/3)
근세 중국의 기재(奇才) 서석린(徐錫麟)은 독서에서 삼심양합(三心兩合)의 태도를 중시했다. 먼저 삼심(三心)은 독서할 때 지녀야 할 세 가지 마음가짐이다. 전심(專心)과 세심(細心), 항심(恒心)을 꼽았다.
전심(專心)은 모든 잡념을 배제하고 마음을 오롯이 모아 책에 몰두하는 것이다. 세심(細心)은 말 그대로 꼼꼼히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훑는 자세다. 그는 책을 읽다가 중요한 대목이나 좋은 구절과 만나면 표시해두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부친에게 나아가 물어 완전히 안 뒤에야 그만두었다.
항심(恒心)은 기복 없는 꾸준한 마음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밥을 먹어야 하고 날마다 책을 읽어야 한다. 하루만 굶으면 배가 고프고 하루만 안 읽으면 머리가 고프다." 안중근 의사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고 한 뜻과 같다.
양합(兩合)은 두 가지 결합과 연계를 말한다.
첫째는 독서와 수신양덕(修身養德)의 결합을 강조했다. 그는 책상 위에 직접 제갈공명의 '계자서(誡子書)' 중 다음 대목을 써놓았다. '군자의 배움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길러야 한다. 담박함이 아니고는 뜻을 밝게 할 수가 없고, 고요함이 아니고는 먼 데까지 다다를 수가 없다)夫君子之學, 靜以修身, 儉以養德.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고요함과 검소함으로 자신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향상시킬 때 독서의 진정한 보람이 있다. 내면의 성찰 없는 독서는 교만과 독선을 낳기 쉽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면 못쓴다.
둘째로 그는 독서와 신체 단련의 결합을 중시했다. 공부로 잔뜩 긴장한 머리는 산책과 체조 등의 활동으로 한번씩 풀어주어 독서에 리듬과 탄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욱여넣기만 하면 효율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
그저 읽고 벌로 읽으면 안 읽느니만 못하다. 성호(星湖) 선생 식으로 말하면, 흑백을 말하면서 희고 검은 것은 모르고 말을 하지만 귀로 들어갔다가 입으로 나오는 데 지나지 않아 실컷 먹고 토하는 것과 같게 된다. 건강을 해치고 뜻마저 사납게 된다.
삼심양합(三心兩合)
세 가지 마음가짐과 합쳐야할 두 가지라는 뜻으로, 독서할 때 바람직한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책의 이로운 점이나 독서로 얻게 되는 격언, 성어는 무척 많다. 책을 많이 소장하거나 환경을 이겨내며 잡념을 잊고 공부에 열중하는 선인들을 나타낸 것도 부지기수다. 오거지서(五車之書), 한우충동(汗牛充棟) 등은 많은 책의 소장, 현두자고(懸頭刺股), 형창설안(螢窓雪案) 등은 각고의 노력을 말한 하나의 보기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가까이 하고 공부하는 것은 후일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인 이익을 말한 것이 ‘글 속에 천 종의 녹이 있고, 책 가운데 황금의 집이 나온다(書中自有千鍾粟 書中自有黃金屋/ 서중자유천종속 서중자유황금옥)’는 권학문(勸學文)이고 책을 펼치기만 해도 이익이 있다는 개권유익(開卷有益)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이득 말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을 실천하며 수양에 더 중점을 두는 말도 다수다. 인간의 뇌는 정보에 따라 반응하고 좋은 정보는 독서에 의한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할 때 세 가지 마음가짐(三心)과 다른 것과 합쳐야 할 두 가지(兩合)란 이 성어도 마음을 단련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정민 지음)에 소개된 내용을 보자. 중국 청(淸)나라 말기의 혁명가 서석린(徐錫麟)의 독서법이란다. 그는 일찍 독일, 일본 등지로 유학하여 혁명사상을 흡수, 청나라를 타도하려 무장 봉기했다가 실패하고 처형된 사람이다.
세 가지 마음은 먼저 모든 잡념을 배제하고 마음을 오롯이 모아 독서에 몰두하는 전심(全心), 꼼꼼히 놓치지 않고 세밀히 보며 중요 구절이나 대목은 표시하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물어 깨우치는 세심(細心), 기복 없는 꾸준한 마음 즉 항심(恒心)이다. 두 가지 합칠 것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길러야 하는 ‘독서와 수신양덕’, 우겨 넣기만 하지 말고 신체 단련을 통하여 공부로 긴장한 심신을 이완하라는 ‘독서와 신체단련’을 가리킨다고 했다.
제갈량(諸葛亮)의 계자서(誡子書)에 군자의 행동을 말한 ‘마음을 고요히 하여 몸을 닦고, 검소하게 덕을 쌓아야 한다(靜以修身 儉以養德/ 정이수신 검이양덕)’란 구절을 좌우명으로 했다니 잘 들어맞는다.
더 앞선 사람의 좋은 말도 보자. 당(唐)의 시인 한유(韓愈)가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며 쓴 시 구절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들어있는 시와 글들에 달려 있단다(人之能爲人 由腹有詩書/ 인지능위인 유복유시서).’
송(宋)의 주자(朱子)는 독서삼도(讀書三到)라 하여 책을 읽을 때 입으로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구도(口到), 눈으로 다른 것을 보지 않는 안도(眼到),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고 집중하여 깊이 새기는 심도(心到)를 들었다. 어느 것이나 공부하는 태도, 옳은 사람이 되기 위한 독서를 강조했다.
공무원의 삼심양합과 청렴
세상살이에 경험만큼 소중한 스승은 없다. 경험은 몸으로 익히는 것이니 반성적 사고를 통하여 삶의 지혜를 축적하고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인 선사시대(先史時代)에는 직접경험과 말로 듣는 약간의 간접경험으로 살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경험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다행히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는 역사시대(歷史時代)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활자를 통한 간접경험으로 유익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은 책은 물론이고 음향과 영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활자로 된 책을 통하여 지식을 얻는 독서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편리하고 유용하다.
이와 같은 독서의 태도와 관련하여 중국 청나라의 기인(奇人) 서석린(徐錫麟)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삼심양합(三心兩合)이다. 여기서 '삼심'이란 책을 읽을 때 지녀야 할 세 가지 마음가짐으로 전심(專心), 세심(細心), 항심(恒心)을 말한다.
'전심'은 잡념을 버리고 오직 책에만 몰입하여 읽는 것이다. '세심'은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정독하는 것이다. 중요한 부분이나 좋은 구절에는 밑줄을 긋고 이해가 안되면 물어서 알고 가는 식이다. '항심'은 꾸준하게 책을 읽는 계속 모드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것처럼 책도 그렇게 꾸준히 읽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삼심'에 다른 두 가지를 결합시켜야 하는 것이 양합(兩合)이다.
첫째는 독서와 수신양덕(修身養德)의 결합이다. 책을 읽어 몸과 마음의 결을 고르게 하여 머리와 가슴이 같이 놀아야 한다는 것이니 언행일치(言行一致)와 같은 개념이다. 책을 읽되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지 않으면 교만과 독선이 되기 쉬운 탓이다.
둘째는 독서와 신체 단련의 결합이다. 책을 읽어 긴장된 두뇌를 신체활동으로 이완시켜 몸과 마음을 충전시키는 것이니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과 상통한다. 읽은 것을 새기어 실천하지 않고 말로만 떠드는 구이지학(口耳之學)은 귀로 들어간 지식이 입으로 그대로 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좋은 음식을 먹고 그냥 토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어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삼심양합의 독서법은 공직자의 청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청렴도 전심(專心), 세심(細心), 항심(恒心)으로 하여야 한다. 잡념을 버리고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꾸준하게 청렴을 배우고 말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독서와 수신양덕(修身養德)의 결합에서 청렴의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유추하고 독서와 신체 단련의 결합에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을 끌어내야 한다.
이와 같은 삼심양합의 정신으로 청렴을 잘 실천하면 교육계의 조직문화가 개선되고 이를 통하여 우리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공직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독서할 때의 마음가짐
뭔가를 얻어 보겠다는 목적으로 독서하는 사람은 아무리 읽어도 소득이 없는 법이다.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은 입술이 썩고 이가 문드러질 지경에 이르도록 독서를 해도, 일단 글 읽기를 멈추면 마치 장님이 희고 검은 것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캄캄해진다.
그런 사람의 말은 단지 귀로 들어와서 입을 통해 나오는 것에 불과하다. 마치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토해낸다면 우리 몸에 아무런 이로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리에 어긋난 행동으로 그 뜻조차 온당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배우는 도리에서 어려운 것은 스승을 엄숙하게 대하는 것이다. 스승을 엄숙하게 대한 후에야 도리가 높아지게 되고, 도리가 높아진 후에야 학문을 공경하게 된다. 태학의 예절에는 비록 황제 앞이라고 하더라도 스승은 북면(北面: 임금을 바로 보고 앉는 신하의 자세)하는 일이 없다. 이것은 스승을 엄숙하게 대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독서를 할 때는 상서로운 동물인 봉황이 우연히 산모퉁이에 이르렀는데 걸음이 너무 느려서 보지 못할까 걱정하는 마음처럼 책을 보지 못할까 염려해야 한다. 책을 볼 때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여겨야 한다.
또 독서를 하다가 의혹이 생기거나 학문을 강의하고 토론할 때는 유명한 의원에게 아픈 자식의 치료법을 묻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독서를 하다가 마음속에 깨달음이 있을 때는 더위를 만나 갈증이 심할 때 길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하고, 독서를 통한 깨달음을 실천할 때는 보검을 갈아 시험 삼아 베어보는 것처럼 해야 한다. 이것을 일러 눈으로 보고, 입으로 굴리고, 마음으로 운용하고, 손으로 처리하는 것이 모두 딱 들어맞는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옛날에 남영주가 노자를 만나, "기러기처럼 뒤를 쫓되 노자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외발 짐승인 기(夔)처럼 섰다가 뱀처럼 나아가 가르침을 받았고, 10일 동안 굶주렸다가 아주 귀한 칼인 태뢰(太牢)를 얻은 것처럼 여겼다"고 했다. 이는 모두 독서와 학문을 할 때 스승을 엄숙하게 대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언어(말)의 품격과 위력
먼저 제목의 사전적 의미를 하나씩 보자.
언어란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관습 체계’이며, 말은 언어의 한 부분으로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기호로, 곧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품격이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性品: 사람의 성질과 됨됨이), 품위(品位: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품이나 위엄), 기품(氣品: 고상한 성품이나 품격)’이며, 위력이란 ‘위대한 힘’이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 성대중(成大中)이 쓴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내부족자(內不足者) 기사번(基辭煩)’하고 ‘심무주자(心無主者) 기사황(基辭荒)’이니라 는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여 마음에 주관이 없어 말이 거칠고, 말과 글에는 사람 됨됨이가 서려있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언어 중 말은 우리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고 육체를 변화시키기도 하며, 또한 행동을 지배하기도하고, 환경과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오늘은 어제 한 말의 결실이고, 내일은 오늘 한 말의 결실이기도 해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이는 것처럼 말의 파장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말은 자아상(自我像:자신의 역할이나 존재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영국의 대처수상의 말이다.
언어(말)의 품격은 무엇인가? 먼저 품격의 한자(漢字) 품(品)의 구조를 보면 입구(口) 세 개가 모여 이루어 진 것으로 상품의 수준은 품질(品質), 국가의 수준은 국격(國格), 사람의 수준은 인격, 품격으로 그 사람의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인간의 품성(品性)을 이룬다’는 것이다.
한 인간의 체취, 향기는 그 사람이 구사하는 말에서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말에서 그 사람의 도덕성도 가름할 수 있다. ‘인간의 도덕성은 그의 언어에 대한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사상가 레프 톨스토이의 말이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이는 인간의 정체성(正體性), 존재의 본질(本質)을 드러내는 또 다른 얼굴로, 정제된 언어의 사용은 인간의 특권이자 의무이기도하다. 생각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말과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운명이 되어, 성공과 실패로 양분(兩分)되어 지는 것이다. 거친 말은 건전하고 건강한 사고와 행동을 배척(排斥: 거부하여 물리침)하게 되고, 창의성과 진취성(進就性: 일을 차차 이루어 나갈 만한 성질 )을 해치게 된다.
그러므로 좋은 말, 특히 진심이 담긴 말은 듣는 상대에게도, 말하는 자신에게도 바람직하고 복(福)이 되는 것이다. ‘진심어린 말을 해야 완벽한 소통을 할 수 있다.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못한다면 짐승이 그대보다 나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시성(詩聖) 사이디의 말이다.
그런데 말의 품격에는 내말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도 포함된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며, 경청은 지혜의 특권이다.’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의 말이며, ‘경청하고 대답을 잘 해주는 것은 대화술에서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미국의 문필가이자 의학자인 올리버 웬댈 홈스의 말이다.
언어(말)의 위력은 무엇인가? 말의 위력은 살상(殺傷: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를 입힘)의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대인관계에서는 적대적인 사람끼리 화해를, 조직 내에서는 단결과 총화(總和: 전체의 화합)를 이룰 수도 있다. 한마디의 말이 행복과 불행을 가를 수도, 절망과 희망을 갖게도 할 수 있게 하고, 친구와 적을 만들 수도 있으며, 그리고 단결이나 분열을 초래 할 수 있다.
당나라 말기부터 오대십국시대 다섯 왕조를 거치면서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는 설시(舌詩)에서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피할 길이 없으니 말조심할 것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입은 재앙의 문이고)이고,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이니라.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하면 안신처처우(安身處處宇: 가는 곳 마다 몸이 편안하게 된다)하리라.
한마디로 ‘어디에서든지 말은 모든 화근(禍根: 재앙의 근원)이니 잘못 말하느니 안하느니 못하다는 말이다.’ 말의 위대한 힘은 바로 진실 된 말, 고운 말, 논리 정연한 말, 칭찬 하는 말, 감사하는 말,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의 가능성을 독려(督勵:감독하고 격려함)하는 말에서 나오는 것이다.
유대인의 경전이자 잠언 집으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탈무드’ 혀(1)에서 ‘인생을 참되게 사는 비결은 바로 자기의 혀를 조심해서 쓰는 일이다.’ 혀(2)에서는 ‘언제나 부드러운 혀를 간직해야 한다. 딱딱한 혀는 불화(不和)를 몰고 올 수 있다.’ 그리고 혀(3)에서는 ‘혀가 좋으면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나쁘면 더 나쁜 것이 없다.’
여기서 혀는 말(내용), 말씨(말하는 태도나 버릇), 말투[말하는 버릇이나 본새(동작이나 버릇의 됨됨이)]를 말하는 것으로, 혀가 딱딱하고 나쁘다는 것은 요샛말로 언어폭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언어폭력 자(者) 들의 입술은 예리한 면도날이고 치아는 엇갈린 톱날이며, 혀는 날카로운 송곳이고, 그리고 목구멍은 둔탁하나 날선 도끼이다. 한마디로 상대의 가슴, 마음을 베고, 찌르고, 썰고, 찍어내고 도려내고 후벼 파기 까지 하는 것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시성(詩聖)중 한사람인 사이디는 ‘입과 혀라는 것은 화(禍)와 근심의 문이요, 몸을 죽이는 도끼와 같다.’고 말 했다. 언어폭력 자들의 가장 일반적인 자기 합리화의 말 ‘내가 오죽했으면 그렇게 말 하겠느냐!’ 아니면 ‘뭐 그 정도 말 가지고!’로 빠져 나가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언어폭력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정(하다못해 ‘내 말이 너무 지나쳤나!’)도 하지 않으려 한다. 한마디로 언어폭력 자들의 일련의 과정들은 염장 지르고, 재 뿌리고, 어깃장 놓고, 그리고 다음으로 오리발 내밀고, 가증(可憎:괘씸하고 얄미운)스럽게도 상대에게 그 원인을 덮어씌우기로 끝을 낸다.
언어폭력은 상처가 남지 않을 뿐, 신체폭력과 결코 다름이 없다. 언어폭력이 주는 고통은 신체폭력 못지않게 크며,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치유 불가능하기도 하다. 몽골속담에 ‘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고 한다. 대인관계, 조직생활 특히 가정의 가장 근본이 되는 부부사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글귀이다.
부부사이의 파탄의 원인이 여러 가지 있지만 상대의 언어폭력에 의한 경우에는 감정의 골이 깊기 때문에 회복 불가능 하여, 결국 대부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상대에게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그 어느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음식을 먹기 전 그 음식이 상했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 말을 내 뱉기 전에 그 말이 미칠 파장(波長)을 염두(念頭)에 두어야한다. 성경 시편에도 ‘여호와여 내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게 하소서!’라고 쓰여 있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 참 말 싸가지 없게 해!’라는 말들을 하거나 듣게 된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싸가지’는 무엇인가? 바로 인성이다. 그렇다면 말하는 인성은 어떻게 형성이 되는가? 무엇보다도 집안 내림이다. 생물학적 DNA가 작용하는 것이다.
주변을 잘 지켜보아라. 어떤 한 사람이 말이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채, 흔히 하는 말로 싸가지 없게 행동하고 말하면, 대체로 그의 형제자매들도 거의 비슷비슷하다. 요새 인터넷 신조어(新造語)로 뇌피셜[뇌/腦) official(공식입장): 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사실이나 검증된 것 마냥 말하는 행위]이라는 말이 있는데 상대방이나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나 정서에 맞지 않는 말을 지껄여 상대나 주변사람 들을 당황케 하거나 역겹게 하여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사실 대인관계에서 대화를 할 때에는 내 뱉고자 하는 말은 먼저 뇌를 거쳐 가슴에서 적절한 필터링[filtering: 여과(濾過)]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적절한지, 아니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아닌지’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말을 시작하기 전 생각할 시간이 있다면 하고자 하는 말이 가치가 있는지, 말할 필요가 있는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생각해 보라.’ 러시아의 작가이자 사상가 톨스토이의 말이다.
집안 내림 다음으로는 환경적 요인이다. 어떤 부모님을 만나고, 어떤 스승님을 만나느냐에 달려있다. 사람은 6~7세 정도면 어느 정도 인격 형성이 되므로 유치원 교육이 먼저 중요하다. 또한 사춘기시절인 중, 고등학교시절 교우관계는 더더욱 중요하다. 특히 중3~고1시기가 가장 위험하고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직종별 분위기나 정서에 따라 인격, 인성에 큰 변화를 맞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집안 내림이나, 환경적 요인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올바른 인격, 인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독서이다. ‘사람의 품격을 그가 읽는 책으로서 판단 할 수 있는 것은, 마치 그가 벗으로 판단되는 것과 같다.’ 영국의 저술가 스마일즈의 말이다.
독서란 자신의 인생의 폭을 넓히고 자신의 체험을 정확하게 만들어 주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정확하게 해 표현력을 증대 시킨다. 결국 바람직한 인격 형성을 하는데 독서의 목적이 있다. 인간은 생각하기 위한 지식을 독서에서 구하고, 생각하는 방법을 독서에서 배우며, 독서와 더불어 생각할 때 비로소 사물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빠르고 폭넓은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며, 나아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창의력을 갖게 된다.
또한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듯이 미련과 착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독서 밖에는 없다. 한 마디로 독서의 양과 인격, 인성은 비례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내 삶과 인격의 도정(搗精:곡식을 찧거나 쓿음), 정백미(精白米:더 이상 손댈 것 없는 깨끗한 쌀)’이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 지혜, 그리고 인격수양은 어느 누구도 가져 갈 수 없는 것으로,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인생의 투자, ‘독서’인 것이다.
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하게 쓰고 있는 속담중 하나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일 것이다. 이는 대인관계에서 의사소통 시(時)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말이란 우리가 사회생활하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통로로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고, 설득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상대와 나,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해 조리(條理: 말의 앞뒤가 맞고 체계가 섬) 있는 말, 설득력 있는 말, 분별력 있는 말, 친절한 말(친절한 말은 짧고 하기 쉽지만, 그 울림은 무궁무진하다 -테레사 수녀님), 특히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사기(士氣)를 꺾지 않는 말, 그리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말’은 원만한 대인관계와 조직 내(內)의 인간관계에서 필수요건(要件)이자 우리 모두의 생활의 지혜인 것이다.
▶️ 三(석 삼)은 ❶지사문자로 弎(삼)은 고자(古字)이다. 세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 젓가락 셋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셋을 뜻한다. 옛 모양은 같은 길이의 선을 셋 썼지만 나중에 모양을 갖추어서 각각의 길이나 뻗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❷상형문자로 三자는 '셋'이나 '세 번', '거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三자는 나무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늘어놓은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三자는 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숫자 3을 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덥석 받는 것은 중국식 예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3번은 거절한 후에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三자가 '자주'나 '거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三(삼)은 셋의 뜻으로 ①석, 셋 ②자주 ③거듭 ④세 번 ⑤재삼, 여러 번, 몇 번이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석 삼(叁)이다. 용례로는 세 해의 가을 즉 삼년의 세월을 일컫는 삼추(三秋), 세 개의 바퀴를 삼륜(三輪),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세 대를 삼대(三代), 한 해 가운데 셋째 되는 달을 삼월(三月), 스물한 살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삼칠(三七), 세 째 아들을 삼남(三男), 삼사인이나 오륙인이 떼를 지은 모양 또는 여기저기 몇몇씩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삼순 곧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삼매경(三昧境), 유교 도덕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인륜을 일컫는 말을 삼강오륜(三綱五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삼성오신(三省吾身),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사흘 간의 천하라는 뜻으로 권세의 허무를 일컫는 말을 삼일천하(三日天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하루가 삼 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몹시 사모하여 기다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삼추지사(三秋之思),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삼가재상(三可宰相),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삼간초가(三間草家), 봉건시대에 여자가 따라야 했던 세 가지 도리로 어려서는 어버이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삼종의탁(三從依托),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삼척동자(三尺童子), 세 사람이 마치 솥의 발처럼 마주 늘어선 형상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을 삼자정립(三者鼎立), 세 칸에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오막살이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간두옥(三間斗屋),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언약 곧 약혼을 이르는 말을 삼생가약(三生佳約),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세 치의 혀라는 뜻으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르는 말을 삼촌지설(三寸之舌),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의 벗으로서 정직한 사람과 성실한 사람과 견문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익지우(三益之友), 세 가지 아래의 예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지지례(三枝之禮),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함이니 괴상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센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두육비(三頭六臂),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삼사일언(三思一言) 등에 쓰인다.
▶️ 心(마음 심)은 ❶상형문자로 忄(심)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심장의 모양, 마음, 물건의 중심의, 뜻으로 옛날 사람은 심장이 몸의 한가운데 있고 사물을 생각하는 곳으로 알았다. 말로서도 心(심)은 身(신; 몸)이나 神(신; 정신)과 관계가 깊다. 부수로 쓸 때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로 쓰이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心자는 ‘마음’이나 ‘생각’,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장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心자는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참고로 心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위치에 따라 忄자나 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心(심)은 (1)종기(腫氣) 구멍이나 수술한 구멍에 집어넣는 약을 바른 종이나 가제 조각 (2)나무 줄기 한 복판에 있는 연한 부분 (3)무, 배추 따위의 뿌리 속에 박인 질긴 부분 (4)양복(洋服)의 어깨나 깃 따위를 빳빳하게 하려고 받쳐 놓는 헝겊(천) (5)초의 심지 (6)팥죽에 섞인 새알심 (7)촉심(燭心) (8)심성(心星) (9)연필 따위의 한복판에 들어 있는 빛깔을 내는 부분 (10)어떤 명사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마음, 뜻, 의지(意志) ②생각 ③염통, 심장(心臟) ④가슴 ⑤근본(根本), 본성(本性) ⑥가운데, 중앙(中央), 중심(中心) ⑦도(道)의 본원(本源) ⑧꽃술, 꽃수염 ⑨별자리의 이름 ⑩진수(眞修: 보살이 행하는 관법(觀法) 수행) ⑪고갱이, 알맹이 ⑫생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물(物), 몸 신(身), 몸 체(體)이다. 용례로는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心理), 마음에 품은 생각과 감정을 심정(心情), 마음의 상태를 심경(心境), 마음 속을 심중(心中), 마음속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을 심상(心象), 어떤 일에 깊이 빠져 마음을 빼앗기는 일을 심취(心醉), 마음에 관한 것을 심적(心的), 마음의 속을 심리(心裏), 가슴과 배 또는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心腹),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를 심성(心性), 마음의 본바탕을 심지(心地), 마음으로 사귄 벗을 심우(心友),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심심상인(心心相印),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이제까지의 먹었던 마음을 바꿈을 심기일전(心機一轉), 충심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함을 심열성복(心悅誠服),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을 심광체반(心廣體胖),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지인(心腹之人) 등에 쓰인다.
▶️ 兩(두 량/양, 냥 냥/양)은 ❶상형문자로 両(량)과 两(량)은 통자(通字), 两(량)은 간자(簡字), 刄(량)은 동자(同字)이다. 兩(량)은 저울추 두개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둘, 한쌍을 뜻한다. 兩(량)은 무게의 단위이며 나중에 돈의 단위에도 쓰고 또 둘, 쌍의 뜻으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兩자는 ‘둘’이나 ‘짝’, ‘무게의 단위’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동안 兩자는 저울추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해석했었다. 兩자가 ‘무게의 단위’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兩자의 금문을 보면 이것은 마차를 끌던 말의 등에 씌우던 ‘멍에’와 ‘고삐 고리’를 함께 그린 것이었다. 두 개의 멍에가 있다는 것은 말 두 필이 마차를 끌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兩자는 본래 ‘쌍’이나 ‘짝’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지만, 후에 저울을 닮았다 하여 무게의 단위로도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兩(두 량/양)은 ①두, 둘 ②짝, 쌍 ③두 쪽 ④동등(同等)한 것 ⑤기량(技倆), 기능(機能) ⑥수레를 세는 단위. 50승(乘) ⑦대(隊: 편제 단위. 25인) ⑧무게의 단위 ⑨필(길이의 단위) ⑩짝하다 ⑪장식하다, 꾸미다 ⑫아울러, 겸하여 그리고 ⓐ냥(화폐의 단위)(냥) ⓑ냥(무게의 단위)(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양쪽의 옆면을 양측(兩側), 조선시대 지체나 신분이 높은 상류 계급 사람 곧 사대부 계층을 이르던 말을 양반(兩班), 관련이 있는 두 쪽의 사물이나 사람을 양자(兩者), 사물의 양쪽의 면을 양면(兩面), 어떤 관계의 두 사람을 양인(兩人), 두 쪽이 다 큰 것을 양대(兩大), 어떤 사물의 두 가지를 성질을 양성(兩性), 서로 반대되는 양쪽 극단을 양극(兩極), 동물이 물 속이나 땅 위의 양쪽에서 다 삶을 양서(兩棲), 역량이 비슷한 같은 두 용자를 비유하는 말을 양호(兩虎), 두 집안을 양가(兩家),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움을 양난(兩難), 둘로 나눔을 양분(兩分), 아버지와 어머니를 양친(兩親), 두 과부가 슬픔을 서로 나눈다는 양과분비(兩寡分悲), 양손에 떡을 쥐었다는 뜻으로 가지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어려운 경우를 양수집병(兩手執餠), 둘 중에서 하나를 가림을 양자택일(兩者擇一), 용과 범이 서로 친다는 뜻으로 강자끼리 승부를 다툼을 양웅상쟁(兩雄相爭), 두 마리의 봉황이 나란히 날아간다는 뜻으로 형제가 함께 영달함을 양봉제비(兩鳳齊飛) 등에 쓰인다.
▶️ 合(합할 합/쪽문 합, 홉 홉)은 회의문자로 閤(합)의 간자(簡字)이다. 세가지 기원(起源)이 있는데, ❶口部(그릇의 몸통 부분)와 亼(집; 뚜껑을 의미)의 합자(合字)로 뚜껑과 몸을 맞추는 일, 후세의 盒(합)과 같음 ❷亼(집)이 集(집)과 같고, 口(구)는 사람의 입으로 소리를 합하다, 대답하다로 쓰임. 후세의 答(답)과 같음 ❸亼(집)은 集(집), 口(구)는 물건을 나타내어 물건을 모으다, 합하다를 쓰임. 그 어느 것이나, 모으다, 모이다, 합하다, 맞다의 뜻이 공통됨. 그래서 合(합, 홉)은 (1)여럿을 한데 모음, 또는 모은 그 수(數). 화(和) (2)내합(內合). 외합(外合) (3)인도(印度) 논리학(論理學) 곧 인명(因明)의 술어(術語). 삼단 논법의 소전제(小前提)에 해당함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합하다 ②모으다 ③맞다 ④대답하다 ⑤만나다 ⑥싸우다 ⑦적합하다 ⑧짝 ⑨합(그릇) ⑩홉(양을 되는 단위) ⑪쪽문 ⑫협문(夾門: 대문이나 정문 옆에 있는 작은 문) ⑬마을 ⑭대궐(大闕) 그리고 ⓐ홉(양을 되는 단위)(홉)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겹칠 답(沓), 합할 흡(翕),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나눌 분(分), 떠날 리(離)이다. 용례로는 서로 뜻이 맞음으로 서로 의사가 합치하는 일을 합의(合意), 둘 이상의 국가나 기관 등 사물을 하나로 합침을 합병(合倂),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서로 의논함을 합의(合議), 시험이나 조건에 맞아서 뽑힘을 합격(合格), 두 가지 이상이 합하여 한 가지 상태를 이룸을 합성(合成), 서로 맞음을 합치(合致), 여럿이 어울려서 하나를 이룸을 합동(合同), 많은 사람이 소리를 맞추어서 노래를 부름을 합창(合唱),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 일을 합헌(合憲), 법령 또는 법식에 맞음을 합법(合法), 둘 이상의 흐름이 한데 합하여 흐르는 것을 합류(合流),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한데 모음을 합심(合心), 둘 이상의 글자를 합하여 한 글자를 만듦을 합자(合字), 모두 합쳐서 하나로 모음으로 둘 이상의 것을 하나로 모아서 다스림을 통합(統合), 개개 별별의 것을 한데 모아 합함을 종합(綜合),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공동 목적으로 둘 이상의 개별적인 단체나 조직체가 아울러서 하나를 이룸을 연합(聯合), 틀림없이 서로 꼭 들어맞음을 부합(符合), 한 곳으로 모음 또는 한 곳으로 모임을 집합(集合), 둘 이상이 서로 관계를 맺고 합치어 하나가 됨을 결합(結合), 화목하여 잘 합하여 짐을 화합(和合), 꼭 합당함을 적합(適合), 모여서 합침 또는 한데 모아 합침을 취합(聚合), 녹아서 하나로 합침을 융합(融合), 두 가지 이상이 거듭하여 합침을 복합(複合), 뒤섞어서 한데 합함을 혼합(混合), 밑천을 한 데 모아서 이익을 도모한다는 말을 합본취리(合本取利), 이상하게 결합하는 인연이란 뜻으로 부부가 되는 인연을 가리키는 말을 합연기연(合緣奇緣), 한마음을 가지면 큰 의미의 대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보합대화(保合大和), 가난한 두 사람이 함께 모인다는 뜻으로 일이 잘 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을 양궁상합(兩窮相合), 헤어졌다가 모였다가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합집산(離合集散), 교제하는 데 겉으로만 친한 척할 뿐이고 마음은 딴 데 있다는 말을 모합심리(貌合心離),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한다는 말을 동심합력(同心合力)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