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詩人
낡은 슬레이트 지붕 너머
해는 뒤뚱 기울고
일 나갔던 개똥이네 검은 아버지는
휘영청 수박 한 덩이를 사들고
돌아오시었다
막노동으로 뜨거워진
아버지 같은 수박을
개똥이가 고추 달랑거리며 목욕하던
고무 다라이에 둥둥 띄워놓고
찬물에 한술 뚝딱 식은
저녁밥 말아먹고
돌아서서 질탕스레
트림 한번 하고 나서
어머니는 내일 먹자 하시지만
개똥이는 수박을
입에 넣으면 시원하고 달콤한 것을
씨앗을 골라 뱉지 않아도
똥을 누면 그냥 쑥 빠져나오는 것을
자꾸 먹고 싶어 통통거리는 것이었다
먹고 없으면
또 사먹지 하시는 아버지는
선풍기 틀어둔 채 어느새 잠이 들고
귀가 찌그러진 쟁반 위에
부엌칼 옆에 식구들 사이에
그놈은 떡개구리같이 와서
개똥이네 둥글디 둥근 목숨들도
은근히 둘러앉아 기다리는데
마침내 수박은 쩍
벌겋게 부끄럼도 없이 갈라져
속살을 내보이는데
보름달을 반달로
반달을 그믐달로
그믐달을
까만 씨앗 같은 어둠으로
할머니는 우물우물
어머니는 가만가만
누나는 조금조금
개똥이는 와그작와그작
먹기 시작하였다
턱에 붉은 물이 흐르도록
배꼽이 없어지도록 먹고
마지막 머뭇거리는 한 조각까지 먹고
꿈같이 잠자리에 누운 개똥이는
어느 때인가 사타구니 휘감는
오줌발소리를 들으며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데
두 눈을 꽉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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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게시판
수박...
유경용
추천 1
조회 83
24.07.14 21:02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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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져부러요 형님
수박 1통에 2만~3만원으로... 식구가 적으면 먹다가 남기게 되면 끝내 버리게 되니... 참 아깝지요. 나누어서 파는 곳이 있다면 참 좋을텐데...
@유경용 형님 반쪽짜리 파는곳 있어요
수박 5키로 짜리는 15000전.후로
살수있습니다
@불사조(대한민국/고등 /1인)
제가 수박을 좋아해서 올 여름도 벌써 몇 개 째 수박을 사다 먹는데 예년보다 값은 비싼데 맛이 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