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 김지헌
저 우두커니를 보고 있으면 지나간 누군가의 생을 보는 것 같다 불 꺼진 저녁의 외딴집 눈 코 입 떨어져 나간 저 우두커니를 보면
청맹과니처럼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할 말이 많아도 입 꾹 다문 채 소신공양하듯 스스로를 무너뜨리며 존재를 지워 가는 사람
저 우두커니를 보면서 지금 지구 한쪽에서 죽이고 죽어 가는 이름 모를 병사를 떠올린다 영혼 없이 적진을 향해 총탄을 날리다 한 줌 이슬로 사라져 가는
분수처럼 솟구치던 아이들 웃음소리 가난한 어떤 생에도 찬란(燦爛)의 한순간 있었을 것이다 고요히 지상으로 착지하는 눈송이들에게 묻는다 일그러진 모습으로도 홀로 빛날 줄 아는 다만 세상일에 어리숙한 우두커니들에게도 축복처럼 은총 내려 줄 수 있겠느냐고
- 시집 『다정이 찾아왔다』(청색종이, 2026) --------------------------------------
* 김지헌 시인 1956년 충남 강경 출생, 수도여자사범대 과학교육과 졸업 1997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회중시계』『황금빛 가창오리 떼』『배롱나무 사원』『심장을 가졌다』『다정이 찾아왔다』등 제13회 미네르바문학상, 제8회 풀꽃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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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되면 겨울보다 더 많이 눈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없는 습한 무더위를 견디며, 나 또한 한여름 길가에 세워진 눈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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