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샌들 / 이문식
습관처럼 떠날 거야 또는 연습처럼 보헤미안 샌들을 끌고 낡은 지도 한 장 구겨 쥐고 헐렁한 청바지에 그러나 가볍지는 않게 불확실한 동선을 따라 아무렇게나 떠날 거야 해묵은 시집 따위는 찢어 버리고 발등에 번지는 햇빛은 늘 등 뒤에서 외톨이 그림자만 복제할 뿐 오늘은 아주 다르게 굵은 폰트로 발톱에 새긴다 서툴지만 되도록 거칠게 거친 성향 그대로 아무 데로나 귓불에 매달리는 범고래의 노래 이명에 찰랑이는 하얀 포말 얼른 떠나자고 떠나서는 돌아오지 말자고 묵은 발자국을 무작정 데리고 나서면 밤으로 길게 펼쳐지는 수평선 린넨 커튼은 펄럭이고 푸른빛 책상 서랍 속 샌들이 몸살을 앓듯이 칭얼거린다
- <아토포스> 2026년 여름호 -----------------------------------
* 이문식 시인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2025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손바닥에 빠지다』 용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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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랍 속에는 보헤미안이 산다. 그녀에게는 샌들이 없다. 습관처럼 구석으로 스며드는 존재. 맨발 맨손이 전부다. 떠나지 못한 상상은 점점 두꺼워지고, 끝내 52헤르츠 고래가 된다.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고래의 푸른 신호만 남는 시간. 수평선에 걸린 입술은 밤새 자신만의 방언을 중얼거린다. 나는 내 주파수를 맞춘다. 틴벨을 사용한다. 1만 7000헤르츠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서비스. 더 잘 듣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샌들이 없는 나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이다. 오늘은 또 살아진다. 나는 문명에 등을 기대고, 내 안의 고래가 보내는 푸른 신호를 듣는다. - 이우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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