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의 금송아지, 모압의 그모스
렘48.11-25
시 작 기 도
내 눈을 열어 주님의 법을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사람의 법, 돈과 권력의 법, 자기중심의 법으로부터 영향 받지 않고 거기서 떠나게 하소서. 오직 주님이 내 영혼에 새겨주시는 그 법을 온전히 깨닫게 하소서. 그것이 생명으로 자라나서 잎사귀를 내고 열매를 맺게 하소서. 그래서 많은 사람의 영혼을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사람,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본 문 내 용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 계속됩니다.
“모압은 안정되게 살았지만 주님의 심판의 파괴자가 오면, 술 거르는 사람이 오래묵은 포도주를 부어 쏟아내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것은 우상숭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베델에서 우상을 섬기다 수치를 당한 것과 같이, 모압은 그모스신을 따르다가 수치를 당할 것이다. 너희는 전투에 능한 용사요 라고 하지만, 나는 왕이고 만군의 주이다. 내가 모압에 재앙과 멸망을 오게 할 것이다.
주변 모든 나라들이 모압의 통치권력이 무너진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들은 맨 땅으로 밀려나고 모두다 도망치면서 통곡할 것이다. 모든 모압 땅, 모든 도시에 재앙이 임한다. 모압의 힘은 꺾였다.“
주 해
모압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그모스 신을 섬기며 의지하기 때문입니다.(12절). 이것은 이스라엘이 베델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여 심판받아 멸망한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망했습니다(왕하17.1-9)(솔로몬 사후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자 마자,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1세는 백성들이 남유다의 예루살렘성전으로 예배드리러 왕래하다 남유다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위하여 예루살렘 성전 예배와 비슷한 제단을 베델과 단에 세우고 유사 신앙을 퍼뜨렸습니다. (왕상12.25-33)).
하나님은 왕이시며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그 백성의 잘못을 심판할 권능(만군의 주)이 있습니다.(15절). 모압의 통치권은 하나님의 주권앞에서 힘없이 무너질 것입니다. (17절,25절). 그리고 그 심판의 범위는 포괄적입니다(25절).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대상을 의지하고 기대는 것이 죄악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죄목은 우상숭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하신 분이시오,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심판의 능력과 권한을 가직고 계십니다(만군의 주). 인간의 권력과 군대가 아주 힘이 있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 앞에서는 힘을 잃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믿는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사람 모든 민족에게 동일한 기준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행하시는 징계의 심판들은 모두 회복을 가져오기 위한 경고를 주시는 것입니다. 48장47에서 보듯이, 며칠전 살펴보았던 이집트처럼, 모압도 결국 회복될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본문과 연관하여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고 하면서 실상을 다른 대상을 의지하고 섬기게 하는 것이 큰 죄악이고 우상숭배입니다. 베델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백성들을 우상숭배로 이끌었던 왕, 그리고, 출애굽의 하나님이 바로 이 금송아지라고 우상숭배를 하게 만든 아론과 시내산 아래 백성들이(출32장)대표적인 예입니다. 지금도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다’ 하면서, 영적 우상을 세워놓고 그릇된 길로 유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권력과 성공과 안정과 쾌락과 그리고 자기자신을 섬기게 하면서 겉으로는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사람들을 이끌고 사람들이 이끌려가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가운데 징계의 심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 의 묵 상
(비참함)과연 나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겸손히 살아가는 신앙인일까? 과연 나는 하나님이 심판의 권능이 있음을 알고 사는가? 이 질문들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니요’였고, 지금도 ‘예’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서 아직도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 나의 모습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왕은 오직 한 분뿐인 것이 진리입니다. 나의 왕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왕은 나였습니다.
(구원)‘나’는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심판받아 죽었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삽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풍성해집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실 때 내가 그 분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나는 나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내가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삽니다.
(아버지 품)‘내’가 죽었고 주님의 생명으로 그 품안에 거하며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기 도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부어주소서. 주님을 주님으로 알아보는 마음과 심판의 권능자로 알아보게 하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에게 유사신앙의 실체를 드러내시고 버리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주님이 왕이요 주인이시오 심판의 권능자임을 보이소서.
생 명 일 기 (8월7일 수)
내 뜻은 반대하였지만,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업무상 도움이 좀 필요한 상황에서 외면하지 않고 도움을 주어서 좋게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는 오늘 돈도 벌고, 몸도 편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수차례 도움을 주지 않았던 동료이고, 특별히 수 개월 동안 나에게 아주 나쁘게 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말도 거의 하지 않는 사이로 만들어버린 사람입니다. 나도 ‘그런 인간’과 같이 일하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그의 더러움에 나도 영향을 받아 영혼이 부정하게 된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에 부담을 주셨고 저는 그렇다면 주님 안에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이 적절한 환경을 마련하신 것 같아, 그냥 행동했습니다. 오늘도 자기 필요한 몫은 다 챙기고 나서 마무리 시간을 못 맞추고 있는 그를 위해 내 일을 다 마치고 지원을 해주어서 그가 늦지 않게 퇴근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도덕적으로 고상한 사람이 되려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주님을 향해 어렵게 어렵게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좋은 마음과 좋은 얼굴과 말로 화해와 용서의 손을 뻗치지 못하니까, 주님이 만들어주신 상황에서 행동으로나마 순종했습니다. 아직도 내 육신의 생각은 그는 잘되고 계속 이득을 보고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정말 불편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을 느끼고 그렇게 행했습니다. 그가 어떤 인간이든 천사같은 얼굴로 다가가서 감싸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야겠지만, 지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계속 이용 당할 것이 뻔한 것을 알면서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생명이 자라고 풍성하게 나타나려면 받아주고 품어주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주님의 생명이 흘러가는 길에 제한이 걸리는 것은 나의 닫힌 마음과 좁은 마음이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내가 아직도 사람의 법, 자기중심의 법, 돈과 권력의 법에 영향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오늘 이런 행동을 한 것은 나의 좁고 닫힌 마음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로막는 것에 대한 회개의 행동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 앞에서 부드러워지도록 기도하는 몸짓이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