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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8 07:37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어?"
자신만만했다. 2007년 6월, 홍현수(40) 대위는 호기롭게 군복을 벗었다. 이왕이면 장교로 가자는 생각으로 학사장교에 지원해 6년 중기복무를 마쳤다. 부부 군인으로 하사관이었던 부인 방혜정씨도 그보다 4개월 먼저 전역했다.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복무 기간 부부는 얼굴 맞대면 군대 욕하느라 바빴다. 군대는 비합리적이고 답답하고 말 안 통하는 조직이었다. 오죽하면 초록색과 얼룩 무늬라면 꼴도 보기 싫었을까. 군대만 나오면 전혀 다른 세상이 자신들을 환영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툭하면 소집명령 떨어지는 ‘재해통제’도 없고 폭설이 내려도 제설동원 없는 세상은 천국 같았다. 잠깐의 행복 끝에 기다리는 것은 엄혹한 현실이었다. 자랑스러웠던 대위 계급장은 취업에 방해만 됐다. 기업은 머리 굵은 대위를 원하지 않았다. 최전방 포병장교로 어떤 재난 앞에서도 끄떡없다고 자신했지만 사회의 냉대 앞에서는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나약한 존재였다.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이 되겠다 싶어 대학 전공 살려 토목기사 시험을 준비했다. 몇 번 고배를 마시고 1년2개월 만에 합격했지만 자격증은 도움이 안 됐다. 토목기사 자격증이 안 먹히자 더 어려운 ‘기술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3년 넘게 매달렸지만 실패했다. 사회의 쓴맛을 보고 나니 군대 ‘짬밥’이 얼마나 고마운지 깨달았다.
돌격 앞으로! 생각과 행동이 동시에 이뤄지는 부인은 경찰 시험에 도전했다 떨어지자 뒤도 안 돌아보고 취업을 했다. 임상병리사 전공을 살려 종합병원에 들어갔지만 군대보다 이해 못 할 일들이 더 많았다. “차라리 군대가 낫다”는 말과 함께 2년 만에 재입대를 했다. 현재는 중사로 근무 중이다.
홍씨는 현재 국군복지단 일동지원본부 계약직 근무원 신분이다. 군무 군대 충성마트(PX)의 관리관이다. 군대에 한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 군인 아내와 사는 홍씨는 군복 벗고 10년 만에 군대 예찬론자가 됐다. 혹독한 학습 끝에 얻은 결론이다. 그는 자신이 힘들게 배운 것들을 책으로 펴냈다.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 700곳을 두드렸다. 관심을 보인 곳이 몇 곳 있었지만 ‘안 팔리는 책’이라는 이유로 막판에 거절을 당한 것도 수 차례, 그의 열정을 알아봐준 곳이 딱 한 곳 있었다. 지난 3월 27일 포천에서 날아온 그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근에서 만났다. 그는 긍정의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땡큐! 솔져’(이지출판), 전역한 대위의 좌충우돌 인생역전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의 꿈은 원대했다.
‘땡큐! 노트’ 스토리텔링의 힘
그의 명함에 적힌 ‘3p바인더 마스터’가 궁금했다. 바인더를 활용한 자기경영 관리자로 그는 마스터가 되기 위해 17주 과정의 교육을 거쳤다고 했다. 그가 가방 속에서 스케줄 노트를 한 권 꺼냈다. ‘꿈 리스트’ ‘라이프 플랜’ ‘일년 플랜’ 등이 눈에 띄었다. 달력, 메모지로 구성된 보통 노트가 아니었다. ‘라이프 플랜’ 페이지 아래 일/직업, 자기계발, 가정/재정, 신체건강, 신앙/봉사 등의 항목으로 칸이 나뉘어 있었다. 날짜별로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 스케줄러는 그가 개발한 것으로 특허신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했다. 그의 꿈은 특허 노트를 활용해 우리나라 군대를 바꾸는 것이다.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이젠 스펙이 인생을 보장해주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록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해야 합니다. 기업들도 성적, 스펙보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제가 발명한 노트에는 관계, 업무, 학술 영역이 한 면에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삶에서 3가지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영역별로 노트를 하다 보면 자기 관리가 되고, 관리가 되면 성장하고, 목표의식이 생깁니다. 컴퓨터가 빠르긴 하지만 손으로 쓰면 창의력과 자기주도력도 키워집니다.”
그가 경쟁률 6 대 1을 뚫고 근무원이 된 것도 노트 덕분이었다. 기록의 습관은 군대서 생겼다. 일기처럼 노트를 하면서 고된 훈련을 견뎠다. 그는 근무원 면접장에 노트들을 들고 들어갔다. 그 노트들이 그의 성실을 증명해줬다. 이번에 낸 책 ‘땡큐! 솔져’도 노트를 정리하니 술술 엮어졌다.
그가 사회에 나가 얻은 첫 일자리는 노량진 고시촌 청소였다. 월급 30만원에 고시원을 쓸 수 있는 조건이었다. 이른 새벽 손걸레로 계단을 훔치고 내려오다 엉덩이 툭툭 치는 여학생이 턱짓으로 비키라는 순간, 폭발하는 화를 누르고 말없이 비켜주면서 자신이 ‘사회화’가 되고 있음을 느꼈다. 1년 동안 했던 방과후교사는 그나마 행복한 일이었다. 아내가 임신하자 공부 때려치고 시작한 일이 군납 트럭기사였다. 18년 된 고물 트럭으로 창고에서 술병과 음료수병을 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작업용 장갑을 하루에 3개 이상 갈아치워야 할 정도로 물건을 날랐다. 단순노동이지만 바인더를 들고 다니면서 주소록과 연락처를 체계적으로 모았다. 남다른 행동이 소문이 났다. 주변에서 근무원에 도전해 볼 것을 권했다. 근무원이 되기까지 고생은 헛되지 않았다. 고생의 기록이 인간 홍현수의 스토리가 된 것이다.
군대는 엘리트 대학
그는 군대야말로 인생훈련소이자 최고의 엘리트 대학이라고 믿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등병부터 시작해 병장까지 짧은 시간에 한 조직의 리더가 돼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군대를 원해서 오는 청년은 거의 없다. 그들을 상대로 리더 훈련을 한다면 사회에 나가서 못할 일이 없다는 것. 성공스토리를 쓸 수 있는 첫 번째 장소인 셈이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가서 시간 때우는 곳이 아닌, 리더를 키워내는 ‘명문군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노트 특허이다. 어린이, 일반, 군인용 3개 버전으로 만들 계획이다. 목적은 교육이다. 군인들을 대상으로 노트 교육을 하고, 노트 시스템을 군대 전체에 확산하고 싶다. ‘사람인’ 등 취업사이트의 이력서에 스펙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노트를 첨부하게 하는 것도 그의 꿈 중 하나이다. 그는 ‘땡큐! 솔져’에 이어 두 번째 책으로 ‘땡큐! 노트’를 준비하고 있다.
“쉬운 것은 남들이 다 했어요. 어려우니까 저한테까지 기회가 왔겠죠. 군인을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라도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