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한 삶과 관련한 다섯 가지의 덕, 즉 청렴 五德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節制의 덕을 길러 가도록 돕는 일이다. 節制의 節은 마디를 뜻하고 制는 칼로 끊어서 마르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절제는 알맞게 자르는 것, 적절히 마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스스로의 욕구, 감정 등을 잘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이 절제인 것이다. 절제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쾌락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제를 인간의 쾌락 추구, 욕망과 관련시키면서 그것들이 적당한 정도를 지키면서 이치에 맞게 다스려져야 인간의 이성적인 삶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청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절제의 덕을 일찍부터 길러가는 일이 긴요하다. 인간이 부패에 빠지고 청렴과는 반대의 길로 가게 되는 그 근본에는 대체로 사리사욕을 챙겨 호위호식하려는 천한 쾌락주의와 탐욕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제는 개인과 사회 모두의 존립에 결정적으로 요청되는 덕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유에서 서양윤리에서는 고대 희랍에서부터 일찍이 인간 삶에 중요한 4덕 중의 하나로서 절제를 주목해 왔으며, 오늘날 굳맨(Amy Gutmann)과 같은 학자는 민주적 공동체에서 모든 구성원들의 기본적 자유와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공공 관료들의 자기 절제의 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正直의 덕을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직에서 正은 一 과 止가 합쳐진 말이다. 이는 올바른 것(一)에서 그치는 것(止), 진실 그 하나(一)에 도달하여 머무는 것(止)을 뜻한다. 그리고 直,은 十과 目 그리고 ㄴ(隱)이 합쳐서 만들어진 말이다. 이는 여럿이(十) 눈으로 보아(目) 숨김없이(ㄴ) 드러난 진실에 마주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정직은 올바른 것(正)에 거짓이나 숨김없이 바로 대하는 자세(直)를 말한다. 그리고 이는 말과 행동에 있어 거짓이 없고 올바른 것을 충실하게 추구해 가는 삶의 태도로 나타난다.
청렴한 사람이 되려면 이러한 정직의 덕을 길러야 한다. 양심의 한 귀퉁이에서는 부패에 대해 경고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을 때 청렴한 삶은 출발부터 어려워진다. 반부패의 청렴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려면, 부당한 청탁이나 재물의 유혹이 다가올 때 사람이 어떻게 해야 마땅한지에 대해 속이지 않고 진실의 소리에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청렴한 삶을 위한 이 같은 정직의 방향은 내면과 외면 두 가지이다. 내면으로는 자기 자신의 양심에 정직한 것이요, 외면으로는 국가사회적 법규에 정직한 것이다. 따라서 정직의 덕에 기반한 청렴한 삶은 또한 준법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勤儉의 덕도 중시할만 하다. 이 덕은 일찍이 정약용 선생이 청렴한 삶을 살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강조한 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다산은 청렴은 공직자의 기본 임무요 모든 선의 근원이고 모든 덕의 뿌리가 되는 것으로서 청렴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공직자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한 바 있다(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牧民心書』, 淸心篇). 그런데 그러한 다산 선생이 자식들에게 진정으로 추구할만한 인간 삶의 한 방도를 가르쳐 주고자 남긴 유산이 바로 이 勤과 儉의 두 글자이니, 청렴 문제로 고심하는 사람치고 다산 선생이 가르친 이 근검의 덕을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된다 하겠다. 근면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그것은 매사에 게으르지 않고 항상 부지런히 일하는 자세를 일컫는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영혼은 순결하며 그 소금기 버석거리는 얼굴과 두꺼비 등 같은 거친 손에는 부패가 자리할 여지가 없게 된다. 검소는 탐욕과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재화와 관련하여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요, 사치나 허영에 흐르지 않는 것이며, 꾸밈없고 수수하며 소박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청렴은 재물에 대해 그릇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맑고 깨끗하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인 바 이는 근면검소한 삶의 자세가 뒷받침될 때 든든하게 버티어 갈 수 있게 된다.
정의의 덕을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의란 매우 복잡하고 다의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원초적 의미에 따를 경우 정의란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관점에 기초하고 있는 덕이다. 그런데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려면 내 것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즉,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타자의 몫을 또한 그의 것으로 기꺼이 주고자 하는 자세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의라는 덕에는 탈자기중심성과 타존재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라는 매우 중요한 윤리적 자세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개인적 차원이든 사회적 차원이든 부패와 반청렴은 일이 되어야 할 바른 길을 따르지 않고 이를 부당한 방향으로 비틀어 가고자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패를 막고 청렴의 길을 가려면 정의를 추구하지 않으며 안 된다. 즉,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고자 하는 관점에 터하여 모든 사람을 한 인격체로서 평등하게 배려하고 그 요구들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는 것, 사람들 사이의 권익과 주장의 부딪침을 공명정대하고 공평무사하게 해결하는 것 등등이 추구될 때 부패를 이겨내면서 청렴의 길로 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智慧의 덕을 기르는 일이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실천적 지혜(phronesis, practical wisdom)의 덕을 길러야 함을 뜻하는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이러한 실천지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예컨대, 이해, 판단, 심사숙고와 사려분별, 현명함, 바른 지각 등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실천지로서의 지혜의 덕은 청렴한 삶을 위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와 관련하여 신중하고도 현명하게 바른 길을 찾아나가는 자질과 품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부패를 극복하면서 청렴한 삶을 추구해 가려면 자라나는 세대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지혜의 덕을 길러가도록 돕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말하자면 청렴한 삶과 관련하여 제대로 알고 바르게 분별해 낼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길러가도록 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으로 도대체 무엇이 인간 삶으로서 진정 가치 있고 바람직한 것인가, 우리는 왜 살고, 무엇을 위해 살며,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추구해 가는 자세를 길러가도록 돕는 일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 하겠다.
출처: “청렴교육의 교수기법 및 지도방법”, 유병렬(서울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