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 김 대표는 업(
業)의 본질에서 가치를 찾았다. 이전에는 단순히 인쇄용 필름, 기자재 판매로만 인식됐던 회사의 핵심 가치를 문화와 연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성도GL의 비전이 문화 콘텐츠를 세상에 구현하는 일종의 문화지원 사업이라는 가치관을 정립했다. 업의 재조명을 통해 문화예술경영을 기업 철학으로 격상시킨 셈이다.
새롭게 정립된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성도GL은 8년 넘게 적극적인 문화예술 경영을 펼쳐오고 있다. 오페라 전문가, 큐레이터 등을 초빙해 직원을 대상으로 문화 소양 교육을 하고 부부·자녀 동반 각종 문화 공연 행사를 자주 기획해 온 가족이 함께 공연을 관람토록 하고 있다.
성도GL이 적극적인 문화예술경영을 펼치는 이유는 문화활동을 통해 직원들이 예술가들의 창조성과 감수성을 느꼈으면 하는 취지 외에 ‘행복한 일터’ 조성을 통해 애사심을 높이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애사심은 일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 결국 업무 성과 역시 높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행복한 직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김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이는 관심과 애정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직원들에게 자주 친필 편지를 보내거나 직원 가족들에게 전화를 건다. 서울에 혼자 올라와 자취하고 있는 직원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자식이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출산한 여직원에게 최고급 미역을 선물하고 결혼기념일에는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고 말한다.
성도GL의 문화예술경영은 실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우선 2002년 300억 원대였던 매출액이 지난해에는 500억 원대로 늘었다. 외형 성장뿐 아니다.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 숙명여대, 한국메세나협회 주관으로 시행한 문화경영 효과 조사에서 성도GL은 조직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도GL은 문화예술경영을 한 17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평균치보다 높은 충성도를 나타냈다. 동종업계의 평균 이직률이 30%인 데 비해 성도GL의 이직률은 1∼2%대다.
○ 문화마케팅으로 고객과 더욱 가까워지다2002년 CEO 취임 후 김 대표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게 공연 티켓을 고객사에 제공하는 문화접대다. 이전까지는 주로 음주가무 접대를 했지만 그는 과감히 문화접대를 시작했다. 김 대표는 문화접대야말로 음주 접대, 리베이트 같은 불투명한 관행을 없애는 생산적이고 윤리적인 방법이라고 믿었다.
처음 문화접대를 시작했을 때 기존 접대 관행에 익숙했던 일부 고객은 김 대표에게 “수억 원짜리 기계를 사줬는데 술 한잔 안 사냐”며 노골적인 반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에 굴하지 않고 문화접대를 계속 밀어붙였다. 감사의 표시는 제도권 안에서 합리적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술이 아니면 관계 형성이 되지 않는 문화를 근절하고 문화마케팅을 통해 고객 가치 증진에 기여함으로써 고객들에게 평가받자고 영업부 직원들과 다짐했다. 음주가무를 즐길 시간에 고객의 가치 증진에 도움이 될 창의적 대안을 더 생각해내자는 자세로 임했다.
처음엔 공연 티켓의 절반가량을 날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오기로 했는데 정작 공연 당일 나타나지 않는 고객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점차 고객의 가치를 우선시한다는 문화접대의 취지에 동감하는 고객사가 늘어났다. 또 부부 및 가족 동반 초청 행사를 자주 하면서 고객사 대표의 부인들이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일부 고객사 대표의 부인들은 성도GL 홈페이지에 직접 감사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성도GL의 직원들은 고객과 함께 문화예술공연을 관람하면서 더욱 긴밀히 소통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나는 책임, 믿음을 갖고 문화예술경영을 하고 있다. 사업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탁월한 소통을 촉진하는 게 바로 문화예술 경영이다. 창조적 소통과 윤리 경영을 가능케 하는 문화예술 경영이야말로 ‘창조 경영의 모멘텀’이다. 문화가 주는 감동을 고객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 문화예술경영으로 지역 사회와 소통성도GL은 직원과 고객뿐 아니라 지역사회 문화 지원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200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삼더펀드’가 대표적 사례다. 삼더펀드란 낙후지역 아동들의 문화체험 활동을 위한 기금이다. 스마터(Smarter) 스피디(Speedy) 스마일(Smile) 등 ‘3S’를 더 하자는 ‘삼더’ 정신에서 이름을 따 삼더펀드라고 지었다. 삼더펀드의 기금은 직원들이 매달 급여의 1%를 기부하면 회사가 직원이 내는 금액과 같은 금액을 기부해 만들어진다. 단발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펀드를 만들어 지속적인 후원을 한다는 게 특징이다. 올해부터는 단순히 금전적으로만 도움을 주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낙후 지역 아동들을 직원들의 집으로 초청해 묵게 하는 홈스테이도 계획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헤이리심포니오케스트라 후원도 하고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의 중소기업 매칭펀드를 통해 지원하게 된 헤이리오케스트라는 연간 두 번 공연한다. 공연 때마다 성도GL 전 직원이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는 건 기본이고 고객 가족과 해외 귀빈들까지 초대한다. 자연스럽게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2008년엔 50억 원을 들여 경기 파주시 헤이리에 총면적 1990m²(약 602평) 규모로 복합 예술관 ‘공간 퍼플’을 세웠다. 미술관 운영비용 및 상주 직원 인건비로 연간 4억 원 이상(전시회 개최 비용 제외)이 소요되지만 예술을 통한 사회 환원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전시회를 무료로 기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오키 노에, 최만린, 이강소, 곽인식, 이우환 등 국내외 최정상급 예술가들의 전시회가 공간 퍼플을 거쳐 갔다.
전시회가 있는 주말에는 관람객이 많이 모이는 것을 감안해 상주 직원 외에 성도GL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조를 짜서 일손을 돕고 있다. 1년에 다섯 차례가량 순서가 돌아오는데 직원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가족들과 헤이리를 방문해 상주 직원을 돕는다. 관람객들에게 전시회를 설명해 주면서 직원들 스스로 큐레이터로서의 경험을 해 보는 셈이다.
성도GL은 문화예술 경영을 직원들은 물론이고 고객, 지역사회와 함께 해 나가면서 소통의 저변을 확대했다. 특히 지역사회를 위해 펼치고 있는 문화예술 지원으로 성도GL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직원들은 회사에 더욱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성도GL은 어떤 회사1974년 설립한 성도GL은 인쇄출판 장비 및 문서편집 프로그램 솔루션 개발업체다. 세계적 필름업체인 후지필름의 그래픽아트그룹 한국 총책임 기업이기도 하다. 신문사 및 국내 인쇄·출력기업들에 제판·출력용 필름,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에 필요한 공업용 필름, 인쇄용 PS플레이트(감광액이 도포된 평판인쇄용 판재), 현상 관련 화공약품 등 인쇄 출판 관련 제반 소모품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디지털 입출력 장비 및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