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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6일 토요일 맑음 편안하게 잘 잤다. 숙소는 낡아서 초라해 보이지만 편리했다. 내가 눕는 곳이 최고의 안식처라고 생각하면 좀 초라하던 고급스럽든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초라한 숙소지만 그래도 숙소가 예스러움은 있다. 건물의 구조가 워낙 식민지 스타일이라 멋스러움도 찾아볼 수 있다. 대문에서 길게 걸어와 빈 공간의 문을 통과하면 실내 정원이 나온다. 정원에는 큰 식물들이 열려있는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는데 오랜 세월동안 자라서 나무도 굵고 식물들도 잘 자란다. 크다. 나름 멋이 있는 건물이다. 아침으로 누룽지를 끓여서 남은 망고와 함께 먹었다. 오늘은 리마 시내를 둘러봐야겠다. 먼저 내일 가야할 에콰도르 행 버스 사정을 알아보기로 했다. 남아있는 일정이 얼마 없어 페루 북부는 건너뛰고 에콰도르로 가야할 것 같다. 버스 사정을 알아보고 신시가지와 구 시가지를 돌아볼 생각이다.
아내와 숙소를 나섰다. 먼저 현금 인출기를 찾아서 카드로 돈을 찾았다. 400솔을 뽑았다. 택시(10솔)를 타고 Cruz del Sur 터미널로 갔다. 에콰도르의 과야킬을 가는 표를 예약하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식사 메뉴를 물어본다. 3끼 식사를 준단다. 모두 닭고기를 먹기로 했다. 내일 오후 2시 45분에 출발하는 표다. 요금은 두당 326솔,(117,677원) 12만원이다. 아침에 인출한 돈이 모자라 한 사람은 카드로, 한 사람은 현금으로 지불했다. 거의 25시간이 걸린단다.(저녁 6시 30분 도착 예정) 여행기를 읽어보면 에콰도르로 이동하는 데 몇 군데를 들러서 이동하는 분의 이야기가 있는데, 비용도 더 들고 시간도 더 많이 걸린다고 한다. 뚜렷하게 머물고 싶은 곳이 있다면 들렸다 가겠지만, 그렇지 않아 그냥 가기로 했다. 아내는 또 차에서 시달릴 생각에, 걱정으로 얼굴이 무거워진다. 내일 걱정하기로 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신시가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신시가지 케네디 공원으로 갔다. 신시가지 지역을 미라폴로레스 지역이라고 한다. 리마의 강남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현대적 건물들과 상점들이 즐비한 고급 시가지다. 분수가 있는 작은 타원형 로터리 Ovalo Gutierrez를 중심으로 넓은 도로들이 방사선 상으로 펼쳐져 있다. 사거리 남쪽에는 센트랄 공원과 케네디 공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케네디 공원 남쪽에는 시청사가 있다. 공원 주변 지역에는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식당과 노천카페, 술집들이 잔뜩 모여 있다. 주말 밤에는 다양한 라이브 음악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우리가 내린 곳이 케네디 공원 옆이다. 케네디 공원에는 예쁜 교회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시청사가 있다. 공원에서 한국 교민 아가씨를 만나서 대충 설명을 들었다. 여기에 살고 있는 교민을 만나다니 정말 뜻밖이고 반가웠다. 센트랄 공원과 케네디 공원은 붙어 있다. 규모가 참 작은데 두 개로 이름이 나누어진 것이 이상했다. 케네디 공원은 수리중인지 커다란 천막이 가려져 있다. 시청사 건물은 예스러운 빌딩이다. 십자가만 붙여놓으면 교회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곳은 개보다는 고양이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공원인데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붉은색으로 장식된 황소 모형이 귀엽게 공원에 세워져 있다. 뿔은 황금색이다. 문양이 화려하다. 해변을 볼 수 있는 라르꼬마르로 가기로 했다. 센트랄 공원에서 호세 라르꼬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면 해변이 나온다. 은행과 상점들이 즐비한 미라플로레스의 중심 상업지구를 통과해서 바닷가에 도착했다. 태평양이 보인다. 이곳은 부촌인 미라플로레스의 해안가에 있는 쇼핑몰 라르꼬마르(Larcomar)이다. 리마의 해안은 특이하게도 모래와 자갈로 된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 절벽을 깎아 쇼핑몰을 세웠다. 한국으로 따지면 코엑스와 같은 3층 규모의 현대적 복합쇼핑몰이다. 멀티플렉스라고 불리 울만 하다. 어느 곳에서나 바다가 보이도록 설계되어 전망이 근사하다. 몇 개의 상영관을 갖춘 극장도 있고, 각종 고급 의류 및 장식품들도 팔고, 오락실과 식당 등이 많은 공간이다. 아마 페루에서 이런 공간은 여기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라르꼬마르 앞에 있는 대표적인 건물 두 동이 있다. 하나는 끌라로(Claro)라고 하는 페루 대표적 통신업체(휴대폰, 인터넷 등)이다. 그 옆은 페루에서 가장 비싼 숙박비를 받는 메리어트 호텔(Marriott Hotel)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하루 20여 만 원 정도란다. 라르꼬마르는 멀티플렉스 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와 연결된 곳은 넓은 잔디와 쉼터도 많고, 어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그래서 부모들도 아이들 손잡고 많이 놀러오는 곳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이곳이 페루인가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서구화된 지역으로 각종 고급식당과 호텔이 들어선 현대식 건물로 가득하다. 절벽과 해안에 있는 도로가 해안을 따라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의 해변은 자갈이다. 일부러 쏟아 부은 걸까. 모래 앞으로 자갈이 있는 걸 보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강남이나 이촌 동의 한강 공원처럼 이곳에서는 부유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미라플로레스의 주거지역은 마치 그림을 복사한 것처럼 거의 같은 모양을 이루면서 넓게 퍼져있다. 도로도 새것 같고 공원도 새것 같고 사람도 새것 같다. 현대적인 조각상도 전망대도 있다. 모든 것이 새것이다. 태평양의 바다만은 옛날 그대로 인 것 같다. 하얀 파도가 밀려온다. 파란하늘과 참 잘 어울린다. 곰 동상이 있다. 영국 유니언 국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곰 동상이다. 영국과 무슨 관계가 있나보다. 내려다보니 참 시원하다. 잠시 바다를 내려다본 후 우리는 사랑의 공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절벽 아래 방파제 위에는 팔각형 지붕의 예쁜 고급 레스토랑 ‘라 로사 나우띠까(La Rosa Nautica)’도 보인다. 파란색 지붕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모습이 아주 멋지다. 다리를 건너간다. 바닷가로 내려가고 싶으면 다리 아래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된다. 내려가는 다리 밑에는 고층 빌딩을 뒤로 한 많은 테니스 코트가 있고 그 앞에 커다란 흑백 사진이 있다. 서핑 맨 들의 모습이다. 라르꼬 마르 서쪽에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어서 10분 정도 가니 해안 절벽 위에 만들어진 작은 테마공원, 사랑의 공원이 나온다. 넓은 태평양을 따라 길게 뻗은 해안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노을 질 무렵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빛과 낙조가 아름답단다. 특히 이 공원에는 두 연인이 키스하는 동상과 바다를 향해 뚫린 하트모양 창문으로 연인들과 신혼부부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사랑의 공원(Parque del Amor), 인터넷에 올라온 페루에 관한 글 중 가장 많은 사진과 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곳은 바다와 바로 인접하고 있어 석양을 보러 오기도 하고, 공원이 넓고, 잔디도 잘 관리되고 있어 동물들과 산책, 운동, 취미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잔디밭 위에서 날씬한 대머리 강사가 8명의 젊은이들을 데리고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매우 진지하게 배운다. 사랑의 공원의 전설로 들리는 얘기는 이 공원에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를 하게 되면 그 사랑이 영원히 간다고 한다. 그래서 연인들이 많이 온다. 사실 키스하는 모습은 리마 곳곳에서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다. 공원이나 이런 관광지에 있는 남녀들은 거의 접착제 수준이다. 그리고 아침, 점심을 가리지 않고 대놓고 '쪽쪽~'한다. 하긴 키스하는데 어느 때가 중요하랴마는........ 그래도 우리가 보기에는 좀 낯 뜨겁다. 사랑의 공원(Parque del Amor)은 바다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경치가 멋지다. 또한 지질학적으로도 관심거리가 되는 해안절벽은 보기만 해도 형성과정의 궁금증이 생기고 멋진 모습에 감탄하게 되어 있다. 바람은 바다에서 육지로 불어오는데 이러한 해안절벽의 지형적 이유로 바람이 순간 상승하는 바람으로 바뀌게 된다. 이 때문에 패러글라이딩을 많이 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패러글라이딩을 하기는 딱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 더군다나 이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크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이 공원의 재미 중 하나이다. 바닷가로 내려가면 또 다른 맛을 보여줄 것 같다. 모래가 아닌 자갈로 이루어진 해안가에 수영을 하는 사람들, 썬텐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서핑 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파도의 높이가 크게 높지가 않아 초보자도 많이 즐기는 모습니다. 주차장에는 차가 꽤 많다. 멀리서도 이곳으로 써핑을 즐기러 오는 모양이다. 구시가지로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탔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내렸다. 리마 센트로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은 1998년부터는 마요르 광장이란 이름을 같이 쓰고 있다. 1535년 쿠스코에서 리마로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를 세워나갔다. 광장 주위에 남아있는 대통령궁과 대성당을 비롯한 식민시대의 옛 건물들이 카톨릭과 총독, 귀족들이 권력을 장악했던 당시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하지만 실상 이 모든 것들은 잉카의 궁전과 신전을 허물고 세운 것으로, 원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의 흔적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1821년 독립 이후 북쪽에 마주한 작은 광장에는 피사로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지만 2001년 원주민 출신인 톨레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스페인 침략자 피사로의 동상은 철거되었고 지금 그 자리는 분수대가 대신하고 있다. 유럽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도시의 관광 중심은 단연코 구시가지이다. 리마의 구시가지 센트로(Centro)는 "아르마스 광장 "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실제로 1535년 쿠스코에서 리마로 천도한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스페인의 이베리아 양식에 기초하여 이 광장을 중심으로 이곳에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시청 건물과 정부청사인 대통령궁 그리고 대성당을 보고 산마르틴 광장을 가면서 식민지 시대의 건물이 늘어선 라우니온 거리를 보는 것이 센트로 여행의 일반적인 루트이다. 먼저 발길을 끈 곳이 대통령 궁이다. 사열행사가 있는 지 근위병들과 관악대가 모여 있다. 악대가 먼저 연습하고 근위병 60여명이 사열 연습을 한다. 고급스러운 의자 3개가 놓여있다. 구경인파가 많다. 지금도 페루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곳인 것 같다. 현재는 관광객을 위한 역사적 건물로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내부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면 볼 수 있단다. 이 궁은 스페인이 페루를 점령하고 수도를 리마로 옮긴 후 세훈 궁이다. 피사로가 1541년 암살되기 전 마지막 몇 년을 살았던 궁이다. 1938년 개축해 이제는 다소 현대적인 느낌이 풍기는 건물이 되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1시 45분에 건물 앞 광장에서 대통령 궁 근위병들의 교대식이 벌어지는데,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절도 있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대통령 궁의 왼쪽의 노란색 건물이 리마 시청(Palacio Municial)이라고 한다. 리마 시에 시청이 여러 개 인가보다. 국기가 유난히 견고하게 휘날리고 있다. 오른편에 있는 대성당으로 갔다. 대성당이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정복자 피사로가 손수 초석을 놓아 그 위에 건설된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이다. 기독교 포교의 미명하에 수많은 잉카인들을 학살하고 결국 금을 노린 피사로 때문에 생긴 대성당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암살당한 피사로의 미라가 안치되어 있기도 하다. 멋진 외관만큼이나 내부에도 금, 은 등으로 이루어진 멋진 실내 장식, 조각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국주의 시절, 군사를 동원한 총칼과 함께 종교도 정복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함께 다니곤 했다. 슬프고 안타까운 역사이고, 종교를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 성당은 아직도 미사를 드리고 있으며, 관광 온 외국인도 함께 자유롭게 드나들어 예배를 본다. 정복자 피사로는 1500년 초반 스페인으로부터 남미 쪽을 정복하여 획득한 금의 몇 십%를 스페인 왕에게 보내 줄테니 배와 군사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페루의 수많은 금과 귀금속을 모으는데 열중했고, 스페인으로 보냈다고 한다. 대성당으로 들어서니 마침 결혼식을 하고 있다. 하객들로 성당 안이 가득하다.
우리가 갔던 날은 운이 좋았는지, 전통 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원색적인 색감이 인상적이다. 오늘은 대통령 궁에서 대통령이 보는 가운데 퍼레이드가 열린다고 한다. 전통악기와 전통 복장으로 치장한 젊은 아가씨들의 얼굴이 밝다. 여러 지역 대표들이 모인 것 같다. 연습을 하는 팀도 있고 그늘에 앉아서 쉬는 팀도 있다. 신발이 나무로 만들어져 경쾌한 소리를 낸다. 전통하프와 바이올린 소리가 잘 어울린다. 대기하고 있는 팀들과 아내는 사진을 찍었다. 가면과 모자 그리고 동물들의 두상을 머리에 얹은 팀들도 있다. 사슴 독수리 등의 모습과 동물 가죽옷을 입고 있는 팀도 있다. 피사로의 동상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분수대는 오늘도 분수를 뿜고 있다.
대통령궁과 대성당 사이에서 바로 본 광장으로 노란 건물들 사이로 들어가면 많은 상가들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참고로 잉카제국에서부터 그러했겠지만 페루 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노란색이다. 황금과 같은 색이라 그런가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노란색 건물이 많이 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Superunda 거리를 따라서 북서쪽으로 한 블록을 지나면 식민시대의 건축물 중에서도 특히 보존이 잘 되어있는 핑크 빛 외장을 한 산토 도밍고 교회(Iglesia de Santo Domingo)가 나온다. 각종 어려움을 딛고 과거의 모습을 비교적 많이 간직한 건물이라고 한다. 척 봐도 멋지다. 1549년 지어진 교회 뒤에는 1603년에 지어진 수도원이 연결되어 있는데 오래된 스페인산 청색 타일 Azulejos로 장식된 수도원 내부는 전형적인 남부 스페인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수도원 지하 무덤에는 리마 사람들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2명의 성인 Santa Rosa de Lima와 San Martin de Porras가 잠들어 있다. 특히 San Martin de Porras는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흑인 성자로 페루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교회 앞에 구두 닦기 소년을 동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좀 처량해 보이는 금빛 형상이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어둡고, 조용하고 금빛으로 화려하다. Rimac 강 쪽으로 걸어가니 강가에서 음식축제를 하고 있다. 페루에서 먹을 수 있는 각종 유명 음식은 다 나온 것 같다. 코너 별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다. 오후 1시가 넘었기에 시장끼가 돈다. 아내와 눈을 크게 뜨고 먹을 음식을 찾았다. 주로 고기종류와 함게하는 요리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에 기니피그도 보인다. 페루에서 가장 많은 동물은 라마, 알파카, 비쿠냐이고, 라마 한 마리의 가격을 비유하자면 기본 승용차 한 대와 라마 50~100를 바꿀 수 있다. 라마는 식용으로도 쓰이고, 화물운반용으로 쓰인다. 라마고기를 잘라 소금에 절여 건조시켜 육포처럼 먹는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찾아보니 이런 고기들은 보이지 않았다. 파나마에서 먹었던 세비체가 이곳의 대표음식으로 등장한다. 높은 산도를 지닌 레몬이나 라임으로 생선살이나 각종 해산물을 버무려 살짝 재워 만든 음식이다. 그리고 로모살타도 있는데 간장에 소고기 등심과 채소를 볶아 바과 함께 먹는 중국식 음식이다. 쥐과 동물인 기니피그를 통째로 구워먹는 페루의 대표적인 음식인 꾸이라는 요리가 제일 신기했다. 우리는 푸노를 찾아가다가 먹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튀김과 감자 옥수수 삶은 요리를 선택했다. 야채도 곁들여 나왔다. 사람들이 많아 자리가 없어서 헤매다가 구석진 자리를 발견하고 앉아서 맛있게 먹었다. CHICHA MORADA, CHICHA DE JORA, 치차는 남아메리카에서 발효된 모든 종류의 음료수를 부르는 말이다. 치차 모라다(보라)는 잉카시대 때부터 마시던 전통적인 음료수이다. 눈으로 마시고 또 입으로 마시는 진한 보랏빛 음료다. 원래 치차는 전통적으로 특정한 종류의 노란빛을 띠는 옥수수(조라)로 만들며 흔히 치차 데 조라 라고 한다. 우리는 진한 보라색을 띤 모라다는 포도주인줄 알고 조라라는 음료수를 사서 마셨다. 달짝지근한 맛이 순하고 시원해서 먹을 만 했다. 큰 컵은 5솔, 작은 컵은 1솔이다.
Rimac 강 건너편에는 메마른 산이 보이는데 정상에 십자가가 있다. 산에는 나무가 없고 산을 향해 가난한 자들의 집들이 가득 있다. 강물을 내려다보니 시냇물처럼 흐른다. 지저분하고 자갈이 많다. 그 옆으로 철길이 보인다. 물건 파는 광장으로 걸어가는데 이곳이 데삼파라오스 기차역 광장이었다. 페루 문학의 집(casa de la literatura de peruana)을 만났다. 연초록색 건물이다. 1층에는 전시관들로 꾸며 놓았고 아래층으로 가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도서관이라고 이름 붙인 작은 라이브러리가 있다. 요사의 모든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책장 바깥쪽으로는 요사의 문학과 생애의 연대기로 꾸며 놓았다. 여기서 다시 훌리아 아주머니를 만났다. 훌리아 아주머니는 그냥 아주머니가 아니다. 미모의 30대 여인이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라틴 아메리카, 그중에서도 페루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에게서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법대생으로 페루의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일하면서 작가의 꿈을 꾸던 젊은이의 세월을 뛰어넘는 가슴 벅차오르는 로맨스와 자신의 꿈을 좇던 시절의 이야기가 있다. 자기보다 14살이나 위의 훌리아 아주머니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풋내기 작가 지망생 시절에 등장하는 여인이다.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라는 책이 있다. 길 따라 걸어가면 보이는 유명한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산 프란시스코 성당(Iglesia y Convento de San Francisco)이다. 일단 건물 외벽부터 상당히 독특하게 생겼다. 가까이 가보면 엄청난 비둘기 때가 장난 아니다. 건물도 비둘기의 배설물로 뒤범벅이다. 다행이 비가 안 오기 때문에 물과 뒤섞여 산화되어 부식을 촉진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습기 때문에 꽤 부식이 진행 될 텐데,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스럽기도 하다. 1546년에 지어진 건물로 지하에는 성직자들의 수많은 유골이 아직도 보관중이라 한다. 개인적으로는 대성당보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이 더 인상적이었다. 바로크와 안달루시아 풍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산 프란시스코 성당의 외관만 본다면 파사드(건물의 정면부)를 제외하고는 대성당보다 인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 파사드의 조각들은 상당히 섬세하며 매력이다. 허나 내부의 카타콤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태리 로마의 카타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하 무덤인 "카타콤(Catacumbas) "로 가기 위해서는 가이드 투어를 해야한다. 계단을 내려가서 낮은 천장의 지하도 사이를 계속해서 가다 보면 철장 속에서 수많은 뼈들을 볼 수 있으며, 관 같은 정방형의 돌무덤 같은 곳에 뼈는 뼈대로 해골은 해골대로 모아져서 수북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긴 이르다. 이곳의 정점은 우물 같은 원형의 장소에 해골과 뼈들이 소용돌이치듯 한 원형의 모양으로 가지런하게 전시하듯이 나열되어있는 모습이다. 다소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는데, 대부분 식민지 시대 때의 일반인들의 뼈와 해골들이었다.
실내에는 안 뜰을 주변으로 둘러싼 아름다운 회랑과 다양한 종교화 들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서관이었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2500여권의 도서들이 보관되어있고, 성직자들이 사용했다는 도서관은 정말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러운 면서도 성스러운 곳이었다. 숀 코너리, 크리스찬 슬레이터, 피도르 찰리아핀 주니어, 엘리야 배스킨 등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도서관이 생각난다. 영화는 1327년. 이탈리아 북부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그림 그리는 채식 수사 아델모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프란시스코 수사인 윌리엄(숀 코너리)은 수련 제자를 데리고 이곳에 들른다.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 윌리엄이 수도원이 심상치 않음을 간파하자 수도원장은 윌리엄에게 이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밝혀내는 흥미 있는 영화다. 아내는 입장료가 아깝다고 그냥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오래 구경하려니 아내 생각이 나서 서둘러 나왔다.
다음 건물이 국회의사당이다. 하얀색 건물이 식민지 시대 건축물 같다. 광장에는 볼리바르의 말 탄 기념상이 있다. 종교 재판소를 찾아 갔다. 유럽에서 중세 시대에 많이 행해지던 종교 재판이 이곳에도 있다니 궁금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Junin 거리를 따라 남동 방향으로 4 블럭, 차들로 북적이는 아방가이 대로를 조심해서 건너간다. 겨우 찾아간 종교재판소다. 이곳 종교 재판소 박물관은 식민시대에 교회 세력이 미친 영향력을 한 눈에 보여준다. 잉카를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이교도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개종시키거나 살해했다. 박물관 안에는 사람크기의 밀랍 인형을 이용해 당시 고문 방식이나 재판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입장료가 없이 그냥 들어간다. 어둑한 내실에 인형으로 실재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종교 재판하는 장면, 주로 고문하는 장면이 많다. 능지처참이라는 고문이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끔찍한 장면들이 연출되어 있어 더위가 싹 가신다. 당시의 유물과 유적도 전시되어 있다. 종교 재판이 정치적인 탄압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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