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1월 120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유격대 활동거점 구축을 목적으로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한 사건. 이들 무장공비들은 그 해 1월 청와대 폭파를 목표로 서울에 침투하였던 북한민족보위성정찰국 소속의 북한이 무장공비를 투입한 것은 1·21사태 이후의 대남공작 실패를 만회하고 남한에서의 민중봉기를 나아가서 미국의 월맹에 대한 북폭중지와 파리평화협상회의의 진전에 따른 월남전의 종식에 초조한 나머지 무장공비들은 15명씩 8개 조로 편성되어 10월 30일, 11월 1일, 11월 2일의 3일간 야음을 타고 경상북도 울진군 무장공비들은 군복·신사복·노동복 등의 갖가지 옷차림에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지닌 채 주민들을 집합시켜서 북한책자를 배포, 북한의 발전상을 선전하는 한편, 정치사상교육을 시키면서 ‘인민유격대’ 가입을 강요하였다. 울진군 북면 고숫골 의 경우, 11월 3일 새벽 5시 30분쯤 7명의 공비가 나타나서 “경북경찰대에서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어주러 왔다.”라는 말로 마을사람들을 모은 다음, 사진을 찍고 위조지폐를 나누어 주며 사상선전을 하고 이 때 이 마을에 나타난 양양군 장성읍에 거주하는 전병두(32세, 노동)를 대검으로 찔러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른 지역에서의 만행도 잇따랐다. 삼척군 하장면 의 한 산간마을에서는 80세 노인, 52세의 며느리, 15세의 손자 등 일가 세 사람이 난자당 하였으며, 평창군 산간마을에서는 10세의 이승복(李承福)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절규와 함께 처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한편, 공비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신고하자, 당국은 11월 3일 오후 2시 30분을 기하여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 ‘을종사태’를 선포하고, 대간첩대책본부의 지휘 아래 군과 향토예비군을 출동시켜 소탕전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공비에 의해 피해를 입은 민간인과 소탕작전 중 전사자는 모두 18명이었다. 한편, UN한국통일부흥위원단은 이 사건이 한반도의 긴장을 초래, UN의 평화통일노력을 방해하였다는 결론을 내리고 UN총회에 특별보고를 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북한의 이러한 대담한 대남교란행위는 국민의 반공태세를 한층 다지게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울진삼척지구무장공비침투사건 [蔚珍三陟地區武裝共匪侵透事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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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말로 거는 전화 1636 더빌씨엠에스 원문보기 글쓴이: 몸저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