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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에서 오전 강의가 끝나자마자 스님은 양산에 계시는 원만행 보살님 병문안을 하였습니다. 보살님은 스님을 보자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해운대 법당에서 이번에 부산 시장으로 츨마 하신 분이 방문을 하여 한담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김해시청에서 열리는 행복한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김해로 출발했습니다.
김해시청 광장에는 삼삼오오 많은 분들이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오는 모습이 밝고 가벼워 보였습니다. 시청 화단에 피어있는 알록달록한 튤립 꽃들도 사람들을 반겨주는 듯 웃고 있었습니다.
강연을 위해 62명의 평화재단 행복학교 봉사자들이 2시부터 미리 나와 강연장 내부 자리 정리를 하였고, 행복학교와 스님 책 홍보를 위해 테이블 정리를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참석하는 분들을 위한 접수도 봄꽃만큼이나 환한 모습이었습니다.
강연장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나서 행복학교 앞에서 기념사진을 같이 찍는 분, 강연 후 스님의 사인회에 참석하기 위해 스님의 책을 사는 분 등 다양한 시민들의 모습에 잔칫집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접수를 마친 다정한 70대와 40대 모녀 두 분은 유튜브를 통해 즉문즉설을 듣고 김해시에 설치된 플래카드를 보고 찾아오셨다고 하면서, 처음으로 스님을 직접 뵙게 되어 기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강연 시간이 다가오자 430여 석의 준비한 자리가 가득 채워졌습니다. 곧이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는 스님을 뵈니 뭉클한 마음이었습니다.
스님은 “올해는 계절의 봄과 함께 한반도의 봄이 같이 온다”며 우리나라의 정세를 간단히 말하고 “지금 계절의 봄이 온 것처럼 마음의 봄이 오는 대화를 해보자”라고 하며 질문자와의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모두 10명의 질문자가 질문하셨고, 거기에 맞추어 스님 또한 지혜로운 혜안을 말씀해주었습니다.
38세의 아들이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직장을 자주 옮겨 다녀서 걱정이라고 말씀하신 분, 일반 직장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고 고민하신 30대 후반의 남성분,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30대 여성의 고민, 희귀병으로 너무 아파서 힘든 생활을 하고 계신 60대 여성의 고민, 단명의 사주로 태어나서 걱정이 된다고 하신 40대 후반의 고민, 남편에게서 새로 생긴 여자와의 수십 통의 문자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남편을 용서할 수가 없다는 60대 여성의 고민, 국가 공무원인 30대 여성은 지방 발령이 나서 남편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힘들다는 고민, 시험을 볼 때나 뭔가를 준비할 때 하기 싫은 마음이 있다는 30세 여성의 고민, 남편 회사의 부도와 외도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40대 여성의 고민 등 여러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이 중 오늘 소개될 사연은 남편과의 사별 후 재혼으로 성이 다른 두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점들을 용기 내어 솔직히 말해준 40대 초반 여성분의 고민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두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첫 번째 남편이 큰아이 18개월 때 자살을 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친정 부모님과 큰아이를 키우다가 큰아이가 5살 때 재혼을 했습니다. 제가 조건만 보고 그 사람을 선택했는데, 재혼하면서 그 사람이 저한테 한 약속들이 다 거짓이었습니다. 그것도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재혼하고 둘째 아들을 갖게 되었어요. 저는 원래부터 헛똑똑이었고, 그분은 아주 똑똑해서 제가 가지고 있던 돈도 그분이 다 가져갔고, 저는 아들만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과 3년 생활 끝에 부모님의 권유와 저의 결정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성이 다릅니다.
지금 첫째 아이는 10살이고, 둘째 아이는 5살인데,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변화가 좀 있었어요. 큰아이가 성이 다른 동생을 좀 꺼리는 것 같아요. 지금 두 아들의 성이 달라 이대로 키워도 잘 자랄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데는 성씨랑 아무 관계가 없어요.”
“아들들이 나이 차이가 있어서 같은 학교에는 안 다니는데, 캠프도 같이 못 보내겠고, 태권도장도 같이 못 보내겠어요. 한 번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큰아들 친구가 ‘네 동생 이름은 뭐야?’라고 물어서 큰아이가 ‘00야’라고 말하니까 ‘그러면 너는 김씨니까 네 동생도 김씨겠네?’라고 하니까 ‘아니야, 내 동생은 이씨야’라고 말한 일이 있었어요. 그때 옆에 있던 친구 엄마가 저를 쳐다보는데 저도 난처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게 왜 난처해요?”
“저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생각하기는요? ‘결혼 두 번 했나 보다.’ 하겠지요.(모두 웃음) 그게 뭐가 문제예요? 질문자가 재혼한 것을 ‘이게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벌써 남 눈치를 보는 거예요. 결혼 두 번한 게 뭐가 문제예요? 아무 흠이 없어요. 그럴 땐 질문자가 먼저 ‘아, 제가 결혼을 두 번 해서 그래요’라고 얘기하면 되지요. 결혼 두 번한 게 왜 문제예요? ‘너는 한 번밖에 못 해 봤지? 나는 두 번해 봤다.’(모두 웃음) 이렇게 생각해야지요.”
“아니요, 혹시나 요즘 엄마들이 워낙... 워낙... 강하시다 보니 저희 아이들과 놀지 말라고 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요.”
“그런 집 애들하고는 안 놀면 되지요.(모두 웃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네.”
“질문자가 먼저 떳떳하셔야 돼요.”
“네, 알겠습니다.”
“질문자가 뭘 잘못했나요? 그리고 첫 번째 남편을 질문자가 돌아가시게 했어요?”
“아니요.”
“스스로 인생을 마감했는데, 질문자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죄의식을 가져요? 남편이 죽으면 ‘여자가 남자를 잡아먹었다’고 비난하는 건 옛날 조선시대 가부장적 사회에서 나온 잘못된 풍속이에요. 남편이 죽은 건 질문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래도 질문자는 아이 하나를 얻었잖아요. 아이를 갖기 위해서 정자은행에 신청하려면 몇 천만 원 줘야 되는데 공짜로 아이를 얻은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그 남자는 나한테 아이를 선물로 주고 갔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아이를 선물로 주고 간 그 남자는 고마운 사람이에요, 안 고마운 사람이에요?”
“고마워요.”
“두 번째 남자도 선물을 하나 주고 간 거예요. 그러니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특히 두 번째 남자는 질문자 돈까지 가져갈 정도로 영리했다면서요? 그러니까 ‘둘째 아이도 앞으로 영리할 거다.’ 이렇게 좋게 생각하세요.(모두 웃음) 이런 걸 긍정적 사고라고 해요. 이미 일어나버린 일은 이미 일어난 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좋게 받아들이라는 게 아니라 사실대로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그걸 긍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안 그랬다면... 안 그랬다면...’ 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그리고 아이들의 성씨에 대해서 말하자면, 남편들로부터 얻은 선물을 기념해서 첫 번째 남편으로부터 받은 아이한테는 김씨를 주고, 두 번째 남편으로부터 받은 아이한테는 이씨를 주는 거지요. 받은 선물에 상표는 붙여줘야 될 거 아니에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성씨가 어떻게 돼요?”
“박씨입니다.”
“그러면 두 아이 모두 박씨로 바꿔도 돼요.”
“두 번째 남편이 협조를 안 해 주고 있어요.”
“요즘 가명도 많이 쓰잖아요. ‘법륜스님’은 호적에 없어요. 호적엔 다른 이름이 있어요.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다 ‘법륜스님’이라고 부르잖아요.”
“하루는 제가 큰아이 이름을 부르고, 작은아이 이름을 불렀더니 큰아이가 갑자기 화를 내더라고요. 제가 놀라서 쳐다보니까 자기도 순간적으로 당황했는지 ‘엄마, 큰아들, 작은아들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너 왜 그러냐?’니까 ‘그냥 이름 부르는 거 듣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걱정이 돼요.”
“아이가 왜 듣기 싫다는 건지 대화를 해 보지 그랬어요.”
“성씨가 틀리니까 듣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작은아들 성씨로 통일시키면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재혼할 때 그 사람하고 약속한 게...”
“그 사람과는 이혼을 했다면서요.”
“법적으로 그 사람의 동의가 없으면 못 바꿔요.”
“그런데 성씨란 게 본래 없어요. 옛날에 왕이 성씨를 하사하거나 중국 왕이 공을 세운 신하에게 성씨를 줘서 성씨가 생긴 거지, 성씨가 본래 없었어요. 소나 말이나 개한테 성씨가 있어요? 사람한테도 본래 성씨가 없었어요, 이 성씨란 건 주어진 거예요.”
“예.”
“요즘은 엄마, 아빠 성을 다 같이 쓰기도 해요 예를 들어 엄마가 박씨, 아빠가 김씨면 ‘박김’이라는 성을 만들어서 자기 이름을 ‘박김영숙’이라고 쓰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러니까 성씨는 그냥 만들면 돼요. 그리고 둘째 아이는 아빠가 있으니까 못 바꾼다면, 첫째 아이는 아빠가 없으니까 얼마든지 바꿀 수 있잖아요.”
“예.”
“제 생각에는 성씨를 바꿔도 되고, 안 바꿔도 된다는 거예요. 성씨라는 게 별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친구는 김씨랑 박씨랑 사이좋게 지내는데, 왜 백씨 아이랑 김 씨 아이는 사이좋게 못 지내요? 엄마가 자꾸 그렇게 위축이 되어있으니까 아이들이 자꾸 그걸 문제 삼는 거예요. 엄마가 떳떳하게 ‘너는 이렇게 해서 백씨다. 너는 이렇게 해서 김씨다. 그런데 백씨거나 김씨인 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너희는 같은 엄마의 두 아들이니까 그런 걸 신경 쓰지 마라.’ 이렇게 딱 부러지게 얘기하면 돼요.”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남편이 자살을 했는데, 그 까르마 같은 것이 혹시 큰 아이에게 대물림될까 봐 걱정이 돼요.”
“아이들의 심리는 엄마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그랬어요, 아빠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그랬어요?”
“엄마가 80%라고 하셨어요.”
“질문자가 살아있으니까 아무 문제없어요.”(모두 웃음)
“네.”
“원래 인류사회가 모계사회입니다. 그러다가 3~4000년 전부터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도가 형성됐을 뿐이에요. 그건 인류의 역사로 보면 잠깐이에요. 옛날에는 사냥하고 농사를 지어야 했기 때문에 힘을 중요시했거든요. 그래서 남성 중심이 되었던 건데, 요즘은 포크레인도 여자가 운전할 수 있고 컴퓨터도 여자들이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요즘은 육체적 힘이 적는 게 아무런 장애가 안돼요. 그래서 지금 모든 부분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못할 게 없고, 오히려 더 나아요. 공무원 시험 수석, 사법고시 수석도 여자가 더 많고, 또 그 구성원도 여자가 많은 시대가 됐어요.
아직은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 중에서 남녀 임금 차이가 제일 큰 나라에 속하긴 합니다. 남자가 100을 받는다면 여자는 평균 70을 받습니다. 그런데 유럽은 임금 차이가 대부분 10% 이내입니다. 그 말은 부부 중에 아내가 남편보다 더 월급을 많이 받는 사람이 한 40%쯤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남편을 ‘가장’이니 하는 말들은 다 없어질 거예요.
질문자가 두 아들을 데리고 혼자 키워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프랑스에서는 여자들이 결혼을 안 하고 정자은행에 가서 정자를 구해서 인공 수정해서 임신한 후에 출산해서 엄마랑 아이만 사는 가정도 많아요. 이런 아이들은 아빠가 없다는 열등의식이 안 생겨요. ‘아빠 어딨어?’ 그러면 ‘엄마가 있으면 됐지, 아빠가 뭐가 필요하니? 엄마가 아빠 역할까지 다 하고 있잖아.’ 이렇게 말하면서 떳떳하게 키워야지, 자꾸 움츠러들면 아이들도 위축이 돼요. 알았지요?”
“예.”
“질문자가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질문자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래요.”
“학부형들이 ‘주말에 가족들끼리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거나 아이 친구들이 ‘아빠랑 목욕탕 다녀왔다’고 하면 속상해요.”
“아이들이 그런 걸 부러워하면 ‘아빠가 있으면 너 야단도 맞고 그럴 거다. 그러니 아빠가 있어서 꼭 좋은 것만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벌써 질문자가 열등의식을 갖는 게 문제예요. ‘애한테 아빠가 있어야 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딱 없애야 돼요. 자기 가는 길에 확신이 있어야지요. 아이가 뭐라 그러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 그런데 목욕은 혼자 하는 게 좋은 거야!’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그럼 스님, 한 가지만 더 여쭐게요. 스님께서는 늘 ‘아이가 세 살 때까지는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첫째 아이 18개월 때 남편을 여의였기 때문에 제가 정신적으로 안 좋은 상태일 때 아이가 자랐어요. 그리고 빚도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가장으로서 친정 부모님과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서 돈 벌러 다녔거든요. 저는 그게 싫어서 재혼을 했는데, 또 둘째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하게 되니 둘째 아이도 어렸을 때부터 제가 또 돈을 벌러 다닌 거예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두 아이 모두 세 살까지 엄마의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았습니다. 지금도 제가 가장으로 바쁜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제가 가장 역할을 해야 되는 상황이에요. 이런 상태에서 아이들이 엄마가 집에 없어도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지내면서 잘 자랄 수 있을까요?”
“네네, 잘 자랄 거예요. 대신에 어릴 때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으면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사랑고파병’을 앓게 됩니다. 마음에 빈 공간이 생긴단 말이에요. 키워 보면 알겠지요. 아이들에게 그런 빈 공간이 있으니까 누군가 약간 칭찬해 주면 좋아하고, 누군가 약간 보살펴주면 훅 빠지게 되는 단점이 좀 있을 거예요. 그럴 때 ‘네가 왜 그런 여자한테 빠져서 그러냐?’ 이러면 안 되고, ‘아, 엄마가 제대로 사랑을 못 줬더니 애가 약간 사랑고파병이 있구나.’ 이렇게 알기만 하면 돼요.”
“예, 알겠습니다.”
“아이한테 문제가 있더라도 ‘왜 저러냐?’ 하지 말고 ‘그래, 엄마가 너를 키울 때 좀 보살핌이 부족했기 때문에 너한테 그런 어려움이 있나 보다.’ 이렇게 아이를 탁 이해해 버리면 문제가 안돼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예, 개도 혼자 여러 마리 강아지를 키우는데, 뭣 때문에 엄마가 아이를 혼자 못 키워요?(모두 웃음) 남편이 도와주면 다행이고, 안 도와주면 혼자 키우면 돼요. 자꾸 남들 쳐다보면서 ‘남편이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 마세요. 남편이 있으면 좋겠지요. 그런데 또 있으면 귀찮아요.(모두 웃음) 다 장단점이 있는 거예요. 아이들이 아빠를 찾으면 ‘그래, 부족한 게 좀 있지만 너 진짜로 아빠 있어봐라. 잔소리 듣고, 야단맞고 그럴 거야. 없는 게 훨씬 나아.’ 이렇게 아빠가 없는 걸 문제 삼지 않도록 자꾸 얘기해 줘야 돼요. ‘아이가 자꾸 아빠를 그리워하는데 저걸 어떡하나...’ 그러면 남자를 또 하나 만나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또 두 번째 남자보다 더 나쁜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면 일이 더 복잡해져요. 아이 셋이 다 성씨가 다른 일이 생길 거니까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연애만 하고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면, 아이들한테 ‘엄마가 아빠 역할까지 두 가지 역할을 다 할 거야! 걱정 마!’ 이러면서 당당하게 나가세요. 그러면 아이들한테 상처가 없을 거예요.
아이들한테 아빠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고, 질문자한테 남편이 없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여기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 ‘부족하다’는 심성이 아이들한테 전이되어서 아이들이 열등의식을 느끼게 되는 거거든요. 예를 들면 집이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가 열등의식이 생기는 게 아니고, 엄마가 가난한 것에 대한 열등의식을 갖고 있으면 아이들이 가난에 대한 열등의식을 갖게 되는 거예요. 엄마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살면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는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랐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는 전생에 복을 엄청나게 지어서 가난한 농촌에 태어났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밭고 매고, 낫질도 하는 등 조기교육을 잘 받아서 요즘 동남아시아를 다니면 얼마나 유리한지 몰라요. 제가 만약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그런 걸 모를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야 부잣집에 태어나는 거예요.(모두 웃음) 생각을 바꾸셔야 나에게 좋습니다. 옛날엔 놀고먹는 걸 좋아하는 가치관이 있었으니까 ‘전생에 복을 지어야 부잣집에 태어난다’고 했던 건데, 부잣집에 태어나는 게 실제 별로 좋은 게 아니에요.”
무거운 질문을 했지만 가볍게 풀어주신 혜안에 사람들은 감탄하였습니다. 10명의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화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니 그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청중들에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고, 현실을 바로 제대로 볼 줄 아는 현명함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진리란 재미도 있고 유익한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모든 강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오늘 소개해드린 질문의 질문자와 잠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동안은 지금 상황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봐 두려웠는데, 스님과의 대화 후 이제는 당당하게 떳떳하게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보겠다”라고 하시며 밝은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 외 강연에 참석한 분도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내 삶도 달라진다.”라며 밝은 표정으로 말해주었습니다.
430명의 청중 모두가 질문자의 마음이 되어 같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분위기에서 마음의 따뜻한 봄이 온 것을 느꼈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하루였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을 찾은 스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책 사인회, 수고해준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두북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내일은 두북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송현숙, 강문헌, 정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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